〈 115화 〉 김아영 팀장(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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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래도 아영이가 미영이 보는 소설 사이트까지 검열하는 건 너무 한 거 아니야? 너는 노X아 소설 읽지도 않잖아? 그런데 거기 소설 표지 여자가 노출을 하든지 말든지 네가 무슨 상관이야?”
유시현 개새끼가 미영대리 편을 들고 나선다.
“야,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안 보는 소설이라도, 그렇게 여자가 발가벗은 그림이 표지로 있으면 여자로서의 인권이 무시 받는 거야. 하여간 남자새끼들은 여자 벗은 것만 보면 좋아가지고. 짐승이랑 다를 게 없다니까. 머리에 좆만 박힌 새끼들. 진짜.”
“아영아. 너는 남자가 여자 야한그림 그려진 표지 보는 건 그렇게 두 눈 시뻘겋게 뜨고 검열해야 한다고 하면서, 너는 왜 여자들이 다 벗고 서로 음란한 짓 하고 있는 남자들 그림이 표지인 BL소설은 검열해야 한다고 안 그러는데? 네 말 대로라면 그런 BL소설 표지들은 남자들 인권이 무시 받는 거 아니야?”
씨발, 유시현새끼.
끝까지 사람을 물고 늘어지네.
“그게 어떻게 남자 인권을 무시하는 거야? 애초에 남자 새끼들이 BL소설 표지에 왜 관심을 가지는데? 게이도 아니고. 말이 되는 소리를 좀 해라. 진짜.”
유시현 새끼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내 말이 그 말 아니야. 애초에 너는 보지도 않는 남성향 소설에 왜 그렇게 관심이 많냐고. 남자들도 여자들이 야한 남자 그림들 그려진 BL소설들을 보든 말든 상관안하잖아. 어차피 그거 다 판타지 인거 아니까. 그런데 여자들은 왜, 남성향 소설은 보지도 않으면서, 여자 좀 야하게 나오는 표지 가지고 검열해야 된다고 개지랄을 떠는 거냐고.”
하아, 이 새끼.
진짜 말이 안 통하는 빡대가리네.
“그러니까, 내가 처음에 말했잖아. 이 빡대가리야. 내가 안 보는 소설이라도, 그렇게 여자가 발가벗은 그림이 표지로 있으면 여자로서의 인권이 무시 받는 거라고!”
아, 진짜 머리에 돌만 들었나.
내가 한 말은 듣지도 않고 어떻게 자기주장만 저렇게 일방적으로 할 수 있지?
하여간 남자라는 새끼들은 어디까지 이기적인지 이해가 안가는 동물들이다.
그런데.........
내가 분명 맞는 말을 했는데, 팀원들은 나를 이상한 사람 보듯 바라본다.
내 말에 무슨 오류가 있다고.
하여간 멍청한 것들.
다들 내가 하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 못한 게 틀림없다.
“하아~ 진짜 말이 안 통하네.”
유시현 새끼가 한 숨을 쉬며 화장실 갔다 온다고 하며 자리를 비웠다.
병신 새끼 논리적으로 밀리니까 도망이나 가고.
유시현 새끼가 나가자 이번에는 김미희 주임이 나에게 시비를 건다.
“아영아. 너하고 서유리가 나 필리핀 빈민가 톤도 가라고 내 이름 적었지?”
아, 씨발.
저 년은 또 어떻게 그걸 알아가지고.
이미 다 아는 것 같은데, 발뺌하는 것 보다 당당하게 부딪치자
“적었다. 그래서 뭐? 야, 그러면 미희 네가 가는 게 맞지. 팀장인 내가 필리핀 빈민가를 가야겠니? 아니면 신입사원인 서유리가 필리핀 빈민가를 가야겠니? 씨발, 상식적으로 네가 가는 게 맞잖아.”
김미희 주임이 입술을 꽉 깨물며 말한다.
“김아영. 너 솔직히 서유리랑 그렇고 그런 사이라서 내 이름 적은 거잖아. 씨발년. 내가 너 뒷바라지 하며 지낸 시간이 3년인데, 아무리 서유리랑 물고 빠는 사이라고, 이제 입사한지 일 년도 안 지난 신입 사원 때문에 나를 그렇게 버려?”
아, 씨발.
김미희 씨발년이 내가 서유리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았지.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건 회사에 소문나면 안 된다.
다음 회사 승진 때 악영향이 갈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서유리가 먼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어머, 미희야. 그건 네가 오해하는 거야. 나랑 아영팀장은 아무 사이도 아니야. 진짜야.”
아무리 지금 나랑 만났던 거 들어나 봐야 좋을 게 없다고 하지만, 너무 강하게 부정하니까 이상하게 마음이 쓰렸다.
너랑 내가 아무 사이도 아니면.
설렘 속에서 나누었던 회식 후의 키스와 뜨거웠던 그날 밤은 도대체 뭔데?
설마 직장생활 편하게 하려고 나를 가지고 논 거야?
“아무 사이도 아니긴 뭐가 아니야. 서유리 너도 매번 아영이만 감싸고돌잖아. 안 그래? 아니면 증명 해 봐. 김아영한테 서운한 거 너도 있을 거 아니야. 야자타임 할 때 말 해 보라고.”
서유리가 조심스럽게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원망스러워 하는 내 눈빛을 피하며 말한다.
“그래. 나도 당연히 김아영 마음에 안 드는 거 있지. 야. 김아영. 사실 나도 아까 네가 부추겨서 미희 이름을 적기는 했는데, 사실 필리핀 빈민가는 팀장인 네가 가야하는 거 아니야? 무슨 팀장이 되어가지고 책임감도 없이 부하직원 이름이나 적어내라고 협박하고. 미희야 사실 나는 아영이 이름 적어서 내고 싶었어. 진짜야. 그러니까 오해 하지 마.”
서유리 씨발년이 잔머리를 굴리며 나를 버리고 김미희 주임에게 붙는다.
직함은 팀장이지만,
유시현, 성현대리, 이미영 대리, 김미희 주임에게 까지 괄시 받는 나한테 붙어 봤자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을 내린 것 같다.
씨발.......
“야, 서유리 지금 너 누구 편을 드는 거야? 너 진짜 이러다 크게 후회 한다”
“누구 편은 누구 편이야. 바른 말 하는 쪽 편이지. 아영이 너나 정신 차려. 세상이 바뀌었는데, 언제까지 정신 못 차릴래? 너 그러다 진짜 팀원들한테 다 왕따 당한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오늘 따라 진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그러고 보니 에어컨 바람이 차서인지 배도 점점 더 아파온다.
나는 리모컨을 들어서 에어컨 off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이번에는 좆밥으로만 생각했던 성현대리가 나를 바라보며 한 마디 한다.
“아영아. 너 지금 온도가 몇 도인 줄 알아? 35도야. 35도. 너 혼자만 춥다고 에어컨 끄면 되겠니? 다른 사람 생각도 좀 해야지. 추우면 옷을 따뜻하게 가지고 와서 겹쳐 입으면 되잖아.”
아, 저 병신 새끼가 진짜.
“아니, 성현대리. 씨발. 여자가 몸이 안 좋아서 추워서 에어컨 좀 끈다는데 그거 하나 남자가 못 참아? 진짜 군대는 왜 갔다 온 거야. 그렇게 징징 거릴 거면 고추 떼어 버리지.”
그런데, 그때.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방해꾼이 나타났다.
“아니, 지금 누구 장사 말아먹을 일 있어? 이렇게 더운 날에 에어컨을 왜 꺼! 그리고 보아하니 아줌마 생리날인 거 같은데. 나도 오늘 그 날이거든. 생리는 혼자 하나 왜 이리 유난을 떨어 유난을. 얼른 에어컨 안 켜! 애꿎은 곰돌이 아저씨 그만 잡고. 추우면 지 혼자 나가서 밥을 처먹든가 하면 되지. 저러니까 동료들한테 왕따를 당하지. 왕따를.”
전직 조폭 닭갈비 사장 아줌마가 성현대리를 도와준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나는 슬며시 눈을 깔고 다시 에어컨을 틀었다.
씨발.. 참아야 하는데 자꾸 눈물이 나려고 한다.
산적 두목 같이 생긴 식당 아줌마한테 이렇게 당하는데도 도와주는 팀원이 하나도 없다.
으윽.......
거기다가 진짜 배도 아프다.
이건 생리가 아닌데.......
느낌상 며칠 동안 소식이 없던 급똥이 오는 것 같다.
화, 화장실.........
나는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영이 어디가려고?”
미영대리가 안 그래도 짜증나 죽겠는데 성질나게 아직도 야자타임을 하며 말을 놓는다.
“미영대리. 적당히 좀 해. 적당히. 아, 진짜. 안 그래도 오늘 좆같아 죽겠는데, 눈치 없이 계속 말 놓을 거야!”
“그래요. 미영대리. 적당히 해요. 이제 야자타임 끝났는데, 아영팀장님께 그러면 안 돼지.”
김미희 주임이 오랜만에 바른 말을 한다.
나는 배를 부여잡고 닭갈비 집 화장실로 향한다.
“팀장님~”
그런데, 김미희 주임이 나를 부른다.
나는 다급한 얼굴로 뒤를 돌아본다.
“왜? 왜? 미희 주임.”
김미희 주임이 여우같이 재수 없게 웃으며 말한다.
“똥 싸러 가는 것 같은데, 휴지 가져가야지. 아영아~”
씨발년.
저 년이 끝까지 나를 놀려.
일단 급한 거 해결하고 보자. 씨발년아..........
나는 대답할 가치도 느끼지 못해서, 얼른 다시 뒤 돌아서는 배를 부여잡고 화장실로 향했다.
더럽게도 이 닭갈비 집 화장실은 남녀 공용이었다.
평소라면 남자들이나 사용하는 남녀 공용 화장실은 절대 가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너무 급하다.
당장이라도 3일간 묵은 녀석들이 세상밖으로 탈출을 감행할 것 같다.
“으으윽. 아,,,, 미치겠네. 하으윽.”
뒤뚱뒤뚱.........
하이힐을 신고 오리걸음으로 겨우 화장실에 당도했다.
하으........
됐어, 이제 된거야.
조금만 참으면 이 극적인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어.
김아영! 너는 할 수 있어.
나는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너무 빠르게 움직여서 배에 진동이라도 오면, 지옥이 열릴 것 같다.
“흐윽. 하윽. 다, 다 왔어.”
겨우 지저분한 남자 소변기를 지나서, 양변기가 있는 화장실 문에 도착했다.
나는 화장실 문고리를 잡고 돌렸다.
달그덕........
윽........
뭐, 뭐야!
당연히 열려야 할 화장실 문이 열리지 않는다.
당황해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여기서 더 시간을 끌면 줄줄 흘러내리는 건 식은땀이 아니라, 3일간 묵은 급똥일 것이다.
나는 다시 한 번 문고리를 쎄게 잡고 돌려 보았다.
달그락.
역시나 문이 열리지 않고 헛 손만 돌아간다.
누가 안에서 잠근 것이 틀림없다.
나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서 화장실 문을 쿵쿵 두들기며 외쳤다.
“아, 아흐흑. 빠, 빨리 좀 나와요.”
으윽!!!!!!
억지로 배가 아픈 것을 참으며 말을 했더니, 살포시 급 똥들이 엉덩이를 꾸욱 압박한다.
항문을 최대한 조이며 참아보지만, 당장에라도 쏟아져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가 안 들린다.
아흐하으힉흐으히이잉응!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이제는.........
마지막의 마지막이다.
나는 어떻게든 이 급똥을 처리하기 위해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우연찮게도 아주 내 엉덩이 사이즈에 딱 맞아 보이는 분홍색 대야가 하나 보인다.
청소 아주머니들이 화장실을 청소 할 때 물을 담는 대야 같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