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화 〉 김아영 팀장(8)
* * *
남녀가 역전된 세계로 바뀌고 나서 오냐오냐 해 줬더니 개념이 없네.
일 좀 더 몰아서 줘야 정신 차릴래. 성현대리!
“아저씨는 뭐여? 아저씨는 가만히 있어. 다치기 싫으면.”
“아니, 사장님. 그게 아니라. 저희 좋게 말로 해결을 좀.”
“아저씨. 말귀 못 알아듣네. 가만히 있으라고. 내가 지금 뚜껑이 열려부렀으니까. 이 싸가지 없는 년이 감히 내 식당에서 행패를 부렸다 아니오. 행패를! 저 씨발년이 깨버린 물 컵. 우리 딸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정성스럽게 만들어 준 개업 선물이었는디. 아, 이 씨발년이 진짜. 내가 오늘 식당 문 닫아도, 우리 딸과 내 마음에 스크래치를 낸 너 이 씨발년 팔 하나는 가져간다. 알긋냐!”
정말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흘러가자 성현대리가 전직 조폭이었던 닭갈비 집 사장의 팔을 잡았다.
하지만 닭갈비 집 사장이 성현대리의 팔을 후욱 밀며 떨어뜨리어내자, 성현대리가 뒤로 밀리며 넘어졌다.
믿었던 성현대리마저 나가떨어졌다.
이제 더 이상 이 미친년을 막아 줄 사람은 없는 건가.
“아그야. 움직이지 마. 움직이면 더 아파. 하나, 두울!”
미친년이 내 팔을 양손으로 꽉 쥐고 힘을 가한다.
“하으윽. 하, 하지 마. 진짜. 내가 잘 못했어요. 언니. 사장님. 제바알... 흐흑.....”
이 미친년이 진짜 내 팔을 부셔버리려고 한다.
너무 무서워서 살짝 오줌을 팬티에 지렸다.
그런데, 그 때 성현대리가 밀려 넘어지는 걸 본 유시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장님, 흥분 좀 가라앉히시고 잠깐 저랑 나가서 얘기 좀 하시죠.”
“시현씨. 아무리 시현씨라고 해도, 이번에는 못 참소. 그러니까 가만히 앉아 있으요. 다치기 싫으면.”
“저기, 그게 아니라.......”
유시현이 재빨리 다가와서는 전직 조폭이었던 닭갈비집 사장의 팔을 붙잡는다.
그리고는.........
거짓말처럼 닭갈비집 사장의 팔을 붙잡고는 내 팔에서 떨어뜨린다.
닭갈비 집 사장이 빨개진 얼굴로 알 수 없는 말을 한다.
“어? 으? 시현씨. 뭐 이렇게 힘이.......”
부들부들 떨며 내 팔을 붙잡고 버텼지만, 곧 닭갈비 집 사장의 억센 팔에서 내 가녀린 팔이 해방 되었다.
뭐야?
유시현의 힘이 저 산적 같은 닭갈비집 사장보다 쎄지는 않을 테고.
유시현이 고개를 숙이며 예의바르게 닭갈비 집 사장에게 감사를 표한다.
“그,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장님. 잠시만 밖에 나가서 얘기 하시죠.”
“이해가 아니라. 시현씨가......”
말을 하던 닭갈비집 사장이 유시현의 눈을 바라본다.
그리고는 마치 야생에서 사자라도 만난 사슴처럼, 일순간 얼어 붇는다.
“눈빛 한 번 살벌하구만. 이제 보니 내 상대가 아니네. 하여간 알겠어요. 나가서 얘기하죠.”
그렇게 말하고는 얌전하게 유시현과 밖으로 나간다.
“팀장님 괜찮으세요? 아이 뭐 저런 미친년이 다 있어.”
그제야 서유리 사원이 다시 아부를 떨며 나에게 다가온다.
씨발, 나는 서유리 사원에게 차갑게 말한다.
“됐어요. 신경 끄고 그 맛있다는 삼계탕이나 계속 먹어요. 씨발.”
잠시 후 닭갈비 집 사장과 다시 가게로 들어 온 유시현이 고개를 숙이며 정중하게 사과한다.
“사장님. 저희 일행이 행패 부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얌전해진 닭갈비 집 사장이 무안한지 빨개진 얼굴로 말한다.
“시현씨가 사과할 건 없고, 저 싸가지 없는 년이 사과를 해야죠. 저 년이 사과하고 깨트린 컵 싹 안 치우면, 아무리 시현씨가 쎄도 나도 가만히 안 있으요. 쥐도 화나면 고양이를 무는 법이니까.”
“팀장님. 지금 사장님 말 들었죠. 어서 사과드리고, 깨트린 잔 치우세요.”
무슨 수로 유시현이 저 미친 들소 같은 닭갈비집 사장을 잠잠하게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얼른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유약한 유시현이 막아주는 건 일시적이다.
또 저 조폭 사장이 미쳐서 날 뛰면 내 가녀린 팔이 남아나질 않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깨트린 컵이랑 접시도 치울게요.”
“후우..... 내가 진짜. 성질 많이 죽어서 착하게 살라고 이번에는 용서하는데, 한번 만 더 이렇게 무개념 짓 하면 나도 못 참아요.”
씨발.
무개념은 네가 했지.
내 팔목을 거의 부러트릴 뻔 하고 못 참는다니.
일단은 위기를 넘기고 보자.
“아, 예........ 조심할게요. 사장님”
그리고 이제야 흥분이 가셨는지 닭갈비 집 사장이 엉덩이를 털며, 일어나는 성현대리를 보며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 아저씨. 미안해요. 제가 너무 흥분 했었네요. 별거 아니어도 서비스로 닭갈비 많이 드릴 테니까, 먹고 가세요. 미안합니다.”
흥분이 가셔서인지 말투도 어느 덧 어설픈 서울 말씨로 바뀌어 있다.
성현대리는 서비스로 고기를 더 준다는 말에 그저 활짝 웃으며 고개를 숙인다.
“아. 예. 잘못은 저희가 먼저 했는데....... 감사합니다. 사장님.”
이런 배알도 없는 남자 새끼 같으니라고.
자기팀 팀장 팔이 부러질 뻔 했는데, 고기 더 준다는 말에 웃음이 나와 지금?
흥분하지 말자.
지금은 일단 참아야 한다.
나는 부어오른 팔을 감싸 쥐고는 바닥에 깔린 유리 파편들을 치웠다.
아직도 오른팔이 부어서 지근지근 거린다.
산 도적 같은 년.
진짜 힘만 멧돼지처럼 쎄 가지고.
하지만 다른 팀원들은 부어 오른 내 팔에는 관심도 없는지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그저 닭갈비를 기다리며 자기들끼리 떠들고 있다.
씨발......
나쁜 새끼들.
내가 누구 때문에 팔이 부러질 뻔 했는데.
지들한테 리더로서의 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보여주려다가 이렇게 된 거 아니야.
쓱쓱, 싹싹........
아픈 팔을 부여잡고 말끔하게 청소를 끝냈다.
그러자, 유시현이 도저히 더는 못 먹겠는지 방금 한 닭갈비를 깨끗한 접시에 덜어서 나와 서유리 사원에게 건넨다.
“아, 미안해요. 팀장님. 저는 팀장님이 닭은 불쌍해서 못 드시는 줄 알고 한방 삼계탕에 닭고기를 빼 버렸네요. 이거라도 좀 드세요.”
“하아, 진짜. 유시현씨. 생각 좀 하고 삽시다. 생각 좀. 대가리에 돌맹이만 들었다고 자랑 하는 것도 아니고 시키지도 않은 짓은 좀 하지 좀 말라고. 이 빡대가리야.”
나는 혹시나 닭갈비집 사장이 들을까 봐 이번에는 조용히 유시현을 야단쳤다.
유시현도 이번에는 반항하지 않고 순순히 자기 잘 못을 인정했다.
“아, 예. 죄송합니다. 팀장님. 제가 주제넘게 행동했네요.”
그런데 이 새끼가 나한테 혼나면서도 입은 웃고 있다.
건방진 새끼.
회사에 돌아가면 다시 갈구어서 기를 더 죽여 놔야지.
아무리 남녀가 역전된 세계라고 할지라도 내가 팀장이고 자기는 팀원.
팀원 중에서도 신입사원인데 너무 얄미운 짓이 도가 지나치다.
나는 유시현이 준 닭갈비를 젓가락으로 쿡 찍어서 먹었다.
사장은 좆같지만, 야들야들하고 보들보들 한 것이 닭갈비가 맛은 있네.
우물우물........
닭갈비를 음미하며 먹고 있는데, 서유리 사원이 닭갈비 집 사장이 안 들리게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그런데, 우리 팀장님 방금 전에 전직 조폭이랑 맞서서 하나도 안 밀리고 싸우던 거 완전 멋있지 않았어요? 진짜 우리 팀장님 카리스마 죽여주던데요.”
서유리가 나를 도와주지 못한 게 미안했던지, 아부를 떨기 시작한다.
그런데 다 맞는 말이라서인지 듣기 싫지는 않다.
“그러게, 나도 아영팀장님이 그렇게 깡이 좋은지 몰랐어요.”
유시현도 맞장구를 쳐 준다.
그래, 그러니까 나한테 괜히 까불다가 밟히지 말고 시키는 일이나 열심히 해.
유시현 이 병신새끼야.
“그러게, 나도 아영팀장님 다시 봤어. 나이어린 꼰데인 줄로만 알았는데, 의외로 쿨하더라.”
김미희 주임이 살짝 내 신경을 긁으며, 동의한다.
팔이 부어서 아프기는 하지만 그래도 팀원들에게 카리스마로 인정받으니까 나름 기분이 괜찮았다.
하긴, 조폭까지 했던 내 덩치 두 배나 되는 여자한테 나처럼 당당하게 맞설 깡다구를 가진 여자가 어디 흔하겠어?
“뭐, 그런 걸 가지고. 그리고 꼰데는 누가 꼰데야. 미희씨. 나 그런 사람 아니야.”
나처럼 쿨한 팀장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어디서 꼰데 타령이야. 진짜.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는데, 유시현이 실실 웃으며 말한다.
“이야, 우리 팀장님. 그러면 우리 야자 타임 한 번 할까요? 쿨하시니까, 왠만한 건 다 받아 주실 것 같은데. 그쳐?”
씨발 박쥐 같은 놈.
이번에는 또 무슨 짓거리를 꾸미려고.
내가 너 이 새끼 수작에 안 넘어가지.
“아니, 시현씨. 받아주니까 너무 기어오르네. 적당히 해요. 적당히. 하여간 사람이 적당히를 몰라. 적당히를. 야자 타임은 무슨 야자타임이야. 여기가 대학교도 아니고.”
유시현이 내 얘기를 듣다 말고 나에게 말한다.
“어, 팀장님. 자리 밑에 5만원. 팀장님 돈 아니에요?”
5만원 짜리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의자 밑으로 몸을 숙였다.
그런데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돈은 안 보인다.
내가 화가 나서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들어 올리니까 유시현 새끼가 조롱하듯 말한다.
“아이고, 우리 아영이 인사 잘한다~”
씨발.......
유시현 개새끼. 지금 나랑 장난 하는 거야?
“유시현씨! 지금 나랑 장난 해!? 어디다 대고 반말을........”
내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이번에는 김미희 주임이 싸가지 없게 툭 말을 내 뱉는다.
“어머. 아영아? 지금 설마 쿨하지 못하게 야자 타임 하기로 하고 시원이한테 화내는 거 아니지?”
아, 씨발.
이거 뭔가 느낌이 싸하다.
김미희 주임까지 야자타임에 동참한 상황이다.
여기서 더 화를 내면 나만 쿨하지 못한 꼰데 팀장처럼 보일 것 같고.
“아니야. 미희야. 너무 갑자기 야자타임을 해서 당황해서 그런 거야.”
김미희 주임이 여우같은 눈빛으로 나를 보며 말한다.
“아, 그래. 그래 아영이가 꼰데도 아니고. 내가 오해 할 뻔 했네. 우리 아영이는 젊은 팀장이라 역시 틀리네.”
내가 막 대답을 하려는데, 이번에는 조용히 있던 미영대리가 김미희 주임을 바라보며 말한다.
“미희씨. 지금 우리 야자타임 하는 거야? 그러면 상사한테 불만 같은 거 있으면 막 말하면 되는 거네?”
아니, 미영대리.
그거는 야자타임이 아니고, 그냥 싸우자는 거 아니야.
미영대리가 김미희 주임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나에게 빨개진 얼굴로 몰아붙인다.
“야, 김아영. 너 왜 내가 점심시간에 소설 보는데 못 보게 해? 씨발. 점심시간에는 뭘 하든 자유시간 아니야?”
“아니, 미영아. 그거는 네가 여자 노출이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는 표지의 소설을 보니까 그런 거지. 그 사이트 이름이 그게 뭐니. 노X아? 그런 남자들이나 보는 저질 사이트 말고 조X라 같은 여성향 사이트 BL이나 로판 같은 거 보면 내가 뭐라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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