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화 〉 김아영 팀장(3)
* * *
미친년들이 다들 지들 좋을 대로만 정하고 우리는 무조건 따르라고 한다.
진짜 세상 참 편하게 산다.
이기적으로.
“그래, 그럼 되겠다. 아저씨~”
아영팀장이 닭갈비집 사장님을 부른다.
“아, 예.......”
“여기 닭갈비 4인분 먼저 주시고요. 나머지 2인분은 저 한방 닭백숙 1인분 나올 때, 같이 주세요.”
“아, 예. 알겠습니다.”
일을 번거롭게 두 번 하게 만들어도 이미 미친년들이란 걸 파악한 닭갈비집 사장님이 주문을 받고 군소리 없이 주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잠시 후........
철판이 테이블에 깔리고 맛있어 보이는 닭갈비와 피망, 양배추, 당근 같은 야채들이 테이블 위로 올라온다.
으........ 나도 먹고 싶다.
배고픈데 맛있는 음식을 보자 샘솟는 침을 음식대신 꿀꺽꿀꺽 삼킨다.
성현대리도 넋이 나간 사람처럼 빨갛게 양념이 잘 버무려진 닭갈비를 보며 군침을 흘린다.
안 그래도 다른 건 참을성이 좋아도, 식탐은 쎈 성현대리인데, 음식을 눈앞에 두고도 못 먹는 처지라니.
얼마나 먹고 싶을까?
지글지글.......!
철판이 뜨겁게 달구어지고 있다.
그런데, 그때.
김미희 주임이 손을 들고 닭갈비집 사장님을 부른다.
“아저씨~!”
아니, 씨발 또 무슨 짓을 하려고?
걱정부터 앞선다.
미희 주임이 물티슈로 손을 닦으며 도도하게 말한다.
“아저씨, 여기 야채 당근이랑 양배추는 빼 줘요. 다들 당근, 양배추 안 좋아하지?”
서유리사원, 최다정 차장, 미영대리가 동의한다.
“네, 저도 채소는 별로.”
“고기체질이라.”
“채소는 샐러드만 먹어서.”
또 눈을 댕그랗게 뜨고 머리를 굴리던 서유리 사원이 얄밉게 말한다.
“아니, 그러면. 저희는 다 고기 좋아하고 야채 싫어하는 거잖아요. 그럼 아깝게 야채 버릴 필요 없이. 우리 야채는 이따가 먹을 성현대리님이랑 시현씨 닭갈비에 넣어달라고 하면 되죠. 시현씨, 성현대리님 괜찮죠?”
나와 성현대리는 고개를 끄덕끄덕 거린다.
“아, 예. 그렇게 해주세요.”
사실 나는 야채도 잘 먹는다.
성현대리는.........
음, 아무거나 다 잘 먹는다.
음식이면 되는 것 같다.
음식이 적다고 불평하는 건 봤어도, 맛없다고 성현대리가 음식가지고 불평하는 건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웬일로 서유리 사원이 우리 생각을 다 해 주는 거지?
존나 불안하다.
“그리고 말이죠. 시현씨, 성현대리님.”
서유리 사원이 말을 이어 한다.
씨발. 불안하다.
“그러면 우리거만 주는 거니까 불공평 하니까, 우리도 성현대리, 시현씨 닭갈비 좀 가져 와야죠. 안 그래요?”
아.......
씨발년,
좆같은 년.
야채를 주고 황금 같은 고기를 가져가시겠다!
부들부들........
손이 떨린다.
고기를 빼앗긴 성현대리의 표정은 나라를 잃어버린 듯 망연자실 한 표정이다.
그나마 유일하게 회사에서 기다려지는 점심시간이었을 텐데.
내가 다 안타깝다.
“저기, 그건 좀.........”
반박을 해보려 했지만, 나와 성현대리의 의사는 물어보지는 않고 최다정 차장이 닭갈비집 사장님에게 말한다.
“아저씨. 우리 철판에 이따가 추가 할 닭갈비 1인분 더 넣어 주세요. 대신에 저쪽에는 우리 야채 양배추, 당근 주고요.”
닭갈비집 사장님이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여자팀원들을 바라본다.
야채와 고기를 교환하다니.
이건 황금과 돌을 교환하는 것과 같지 않은가!
“그러면, 나중에 드실 분들이 너무 드실게 없으실 텐데........”
김미희 주임이 확 닭갈비집 사장님을 째려보며 날카롭게 말한다.
“아니, 아저씨. 아저씨는 장사나 하면 돼지. 무슨 손님 주문에 관여를 하고 그래. 아, 빨리 시킨 거나 줘요. 배고파 죽겠네. 정말.”
“아, 예..........”
힘없는 닭갈비집 사장님이 나와 성현대리를 불쌍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다시 자리로 돌아간다.
지글지글.........
보글보글.........
맛있는 닭갈비가 빨갛게 익어간다.
꼴깍꼴깍........
익어가는 닭갈비를 지켜보는 나와 성현대리의 굶주린 배는 꼬르륵 소리를 낸다.
이건 또 다른 신종 고문인가?
하으........
배고파서 미치겠다. 진짜.
“어머. 오늘 닭갈비 양념이 숙성이 잘 되어서 그런지 맛있다 정말.”
젓가락으로 맛있게 닭갈비를 집어서 깻잎에 싸 먹으며 다정 차장이 말한다.
우물우물.......
열심히 우물거리며 닭갈비를 씹던 미영대리도 동의한다.
“오늘따라, 진짜 닭이 신선한지 너무 맛있다.”
“그러게요. 여기 주인아저씨는 거지같은데, 닭갈비는 맛있네.”
서유리 사원도 동의한다.
아........
얼마나 맛있으면 입맛 까다로운 서유리 사원까지 맛있다며 칭찬을 할까.
먹고 싶다........
나와 성현대리를 제외한 네 명의 여사원들이 열심히 먹다보니 어느 덧 닭갈비가 거의 바닥을 드러낸다.
그러자, 이번에는 최다정 차장이 은근슬쩍 우리를 바라보더니, 곧 고개를 돌려 서유리 사원,김미희 주임, 미영대리에게 말한다.
“저기, 말이야.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나머지 닭갈비도 우리 테이블에 달라고 한다. 알겠지?”
“찬성.”
“저도 좋아요.”
“그래, 닭갈비 1인분 남자 둘이서 나눠 먹으면 안 먹은 만 못하지. 남자가 없어 보이게. 그냥 아예 야채 볶음밥이 낫지. 안 그래요? 성현씨, 시현씨? 아저씨!!! 남은 닭갈비 1인분도 여기로 추가해주세요.”
씨발.....
우리도 닭갈비 먹을 줄 아는데.
성현대리의 얼굴을 보니, 그나마 닭고기 몇 점이라도 먹을 줄 알았다가, 못 먹게 되자 실망해서 눈가가 붉어졌다.
다른 일은 잘 참아도 음식만큼은 양보 못하는 성현대리인데.
씨발년들.
내가 세상이 미쳐서 남자가 여자보다 인권이 보장받는 날이 오면, 이 닭갈비 복수 꼭 해줄게요.
성현대리님.
닭갈비 사장님이 이번에는 군말 없이 닭갈비 1인분을 더 가져와서 다시 철판에 볶기 시작한다.
괜히 또 우리 편 들어주었다가 미친년한테 물리기 싫은 거다.
그저 동정의 눈길로 봐라 봐 줄 뿐이다.
지글지글지글.........
아, 냄새 쩐다.
하아.........
참다 참다 못한 성현대리가 한 마디 한다.
“아니, 그래도. 닭갈비 몇 점은 주셔야......... 명색이 닭갈비 먹으로 왔는데, 야채만 먹고 가는 건 좀 억울합니다.”
이번에는 김미희 주임이 성현대리를 바라보며, 어이없다는 듯이 말한다.
“아니, 대리님. 지금 남자가 쪼잔 하게 닭갈비 1인분 가지고 그러는 거야? 여자한테 그거 하나 양보 못해요? 그리고, 닭갈비가. 꼭 닭이 들어있어야. 닭갈비에요? 그 양념에 닭 냄새 다 스며들어 있어요. 양배추랑 피망이랑 당근 밥. 닭갈비 양념에 잘 비벼 먹으면 그게 닭갈비지 뭐야. 안 그래요? 미영대리님?”
돼지처럼 잘 처먹고 입술을 물티슈로 닦던 미영대리가 김미희 주임의 개소리를 돕는다.
“아, 그럼. 그렇고말고. 원래 닭갈비는 그게 하이라이트지. 어머. 맛있겠다. 누룽지 살살 해서 닭갈비 양념이랑 비벼 먹으면. 아..... 배불러. 다들 배부르죠. 그쳐? 오늘 닭갈비 진짜 맛있네. 신선하고 쫄깃쫄깃 육즙이 살아있어.”
씨발 이건 약 올리는 거야 뭐야.
더 말해봤자 본전도 못 찾을 걸, 아는 성현대리가 한숨을 쉬며 입을 다문다.
미영대리가 배부르다는 말에 서유리 사원이 아영팀장을 향해 말한다.
“팀장님, 이제 우리 저희 다 먹어서 스벅 갈까 하는데, 팀비로 계산하면 되죠? 팀장님은 오늘은 몸이 안 좋으시니까 따뜻한 녹차! 테이크 아웃해서 팀장님 책상에 가져다 놓을게요.”
“응. 그래요. 서유리씨. 부탁해. 다 먹었으면 어서들 가 봐요. 나도 이제 곧 음식 나오니까 먹고 합류할 수 있으면 스벅으로 합류할게.”
“네, 알겠습니다. 팀장님. 맛있게 드세요~”
서유리 사원과 아영팀장의 얘기를 듣고 있던 성현대리가 용기를 내어서 말 해 본다.
“저기, 팀장님. 스벅도 팀비로 계산하는 거면, 저랑 시현씨는 스벅 안마시고 그냥 닭갈비 추가 해 주시면 안 될까요? 그 돈이 그 돈인데.........”
성현대리의 말을 들은 서유리 사원이 건방지게 혀를 차며 말한다.
“아니, 성현 대리님. 남자가 무슨 스벅이에요. 스벅은. 여자도 아니고. 대리님이랑 시현씨 스벅 비용은 원래 팀비에 계산 안 되어 있던 거거든요. 그러니까 괜히 팀장님 곤란하게 하지 말아요.”
씨발.........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하네.
지들 불리 할 때만, 남자가? 남자가 무슨.........
이따위 논리로 넘어가려고 한다.
내가 남자로 태어난 게 이렇게 큰 잘 못인가?
성현대리도 서유리 사원이 아영팀장을 걸고넘어지자, 아무 말 못하고 입을 다 문채 망부석처럼 앉아있다.
불쌍한 우리 성현대리님.
어떻게든 고기 몇 점 먹어보겠다고 발악을 했지만, 결국 돌아오는 건 닭갈비 냄새 스며든 야채 쪼가리 밖에 없다.
“그럼 팀장님, 저희는 가 볼게요. 좀 이따 봐요.”
“네, 잘가요. 이따 봐~”
여자 팀원들이 전부 다 나가 버리자, 식당 안은 나와 성현대리, 아영팀장.
그리고 남자직원들끼리만 닭갈비를 먹으로 온 한 테이블 밖에 남지 않았다.
원래 작은 식당이라 손님이 많은 곳은 아니었다.
아영팀장이 주위를 은근슬쩍 살피더니, 바로 앞에 놓인 에어컨을 바라본다.
아, 이거 또 불안한데?
제발............
하지만 언제나 불안한 예감은 현실이 되어 다가온다.
눈치를 보던 아영팀장이 에어컨의 off 버튼을 천연덕스럽게 눌러서 에어컨을 꺼 버린다.
지금 날씨는 33도.
그야 말로 에어컨 앞이 아니면 더워서 일사병 걸리기 딱 좋은 날씨다.
거기다가 이곳은 철판에 닭갈비를 볶는 닭갈비집.
한 낮의 야외보다 열기가 뜨겁다.
제발.
이 미친년아.
미친 짓도 때와 장소를 봐 가면서 좀!!!!!
“아유, 에어컨 앞에 앉아서 그런지 춥네. 시현씨, 성현대리. 자기들도 춥지?”
아니요.
더워 뒤질 것 같은데요.
그렇게 말하고 싶은데, 또 무슨 개소리를 들을지 몰라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성현대리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땀이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줄줄 흘러내린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