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화 〉 김아영 팀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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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실 오늘 가장 조심해야 할 건 최다정 차장도.
여우 서유리도 아니다.
바로 한 달에 한 번 오는 그 날을 맞은 민감 끝판왕 아영팀장이다.
평소에도 좆같지만, 오늘 같은 날은 아영팀장에게 잘 못 걸리면, 진짜 개작살나는 날이다.
그러기에 평소보다 심한 말을 한 최다정 차장에게도 성현대리가 그저 한숨만 푸욱 쉴 뿐 대들지 않는다.
괜히 대들었다가 아영팀장한테 불똥이 튀어서 개지랄하기 시작하면 답이 없기 때문이다.
“자, 자. 성현대리랑 시현씨도 어서 자리에 앉아요. 메뉴 주문하게.”
아영팀장이 메뉴판을 보며 한참동안 고민하기 시작한다.
다른 팀원들은 아영팀장이 빨리 메뉴 고르기만을 기다린다.
한참동안 메뉴를 보던 아영팀장이 뜬금없이 말한다.
“나는 오늘 몸이 안 좋아서 한방 닭백숙 먹을래. 다른 팀원들은 닭갈비 먹어요. 오늘 팀비로 회식하는 거라 예산 빠듯해.”
아니.
닭갈비집에 와서 혼자 닭백숙을 쳐 먹겠다는 건 또 무슨 사차원 논리야.
서유리 여우같은 년이 얼른 아영팀장에게 아부를 시작한다.
“아유, 오늘 같이 몸 안 좋으신 날은 우리 팀장님 닭갈비 같이 매운 거 먹으면 안 돼요. 팀장님, 한방 닭백숙이 여자한테 좋데요. 역시 센스 있어. 우리팀장님. 아저씨, 여기 주문이요!”
서유리가 손을 들어서 닭갈비집 사장님을 부른다.
“아, 예. 메뉴 뭐 드릴까요?”
닭갈비집 사장님이 우리 테이블에 오자 아영팀장이 메뉴를 주문하기 시작한다.
“네, 여기 닭갈비 6인분 이랑요. 한방 닭백숙 1인분 하나요.”
닭갈비집 사장님이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네? 한방 닭백숙은 최소 한 마리부터 인데요. 그게 유기농으로 기른 큰 닭으로 하는 거라.”
아영팀장이 인상을 팍 쓰며 닭갈비집 사장님에게 소리친다.
“그래서요? 우리 팀비 빠듯해서 한 마리는 못 시켜요. 그러니까 1인분 줘요. 알겠죠?”
“아니, 손님. 그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한 마리를 시켜야 하는 메뉴라서요.”
“그건, 사장님 사정이고요. 아 몰라요. 1인분 줘요. 한방 닭백숙. 나 몸이 안 좋아서 오늘 한방 닭백숙 먹어야 해. 알겠죠? 인삼이랑 대추, 잣도 좀 팍팍 넣어주시고요.”
아, 진짜 내가 부끄러워 죽을 것 같다.
우리팀 팀비 빠듯하고 자기 생리라는 이유로 한 마리 시켜야 되는 메뉴를 1인분 달라고 떼쓰고 있다.
닭갈비집 사장님이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곤란해 하신다.
거기다가 서유리 사원이 무개념 지원 사격을 나선다.
“아니, 사장님. 저희 몰라요? 저희 저기 삼종리서치에서 일하잖아요. 우리 회사 직원들이 여기 얼마나 자주 오는데. 이런 거 하나 못 해줘요? 손님이 1인분 달라면 1인분 줘야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요.”
“아니, 손님 그게 아니라. 저희 식당도 기본 이라는 게 있는데, 어떻게 한 마리 메뉴를 1인분으로 만들어 드립니까.”
아, 진짜 창피해서 다른 일행인 척 하고 싶다.
이런 기본상식도 없는 뇌절녀들 같으니라고.
서유리 사원이 싸움닭처럼 붉어진 얼굴로 꽥! 소리를 지른다.
“아니, 아저씨. 단골손님이 해 달라면 해주는 거지. 뭐 이리 말이 많아요! 내가 이런 말 까지는 안 하려 했는데, 나 사실 네이바에서 유명한 음식 블로거거든요. 내가 진짜 이 식당 한 번 제대로 망가트려줘? 내가 네이바 블로그에 글 한번 올리면 이식당 매출 바닥이야. 바닥! 알아!”
서유리 사원 싸가지 없는 년이 자신의 아버지뻘 되는 닭갈비집 사장님에게 반말을 지껄이며 달려든다.
아오, 씨발.
그리고 사실 서유리 사원이 네이버 음식 블로거이긴 한데, 구독자는 10명도 안 된다.
구독자 10명 있는 블로그에 글 올린다고 누가 읽기나 할까?
미친년. 미친년. 제대로 미친년이다.
닭갈비집 사장님이 한숨을 푸욱 내쉰다.
딱 봐도 미친년들처럼 보여서인지 닭갈비집 사장님이 머리 숙이며 사정한다.
“아니, 안 그래도 요즘에 손님 없어서 힘든데, 사정 좀 봐주세요. 아가씨. 미안합니다. 진짜. 한방 닭백숙을 1인분으로 만들면, 음식팔고 오히려 손해에요. 손해. 그리고 남은 닭은 어떻게 해요. 다 버려야 하는데........”
“아니, 아저씨가 손해를 보건, 닭을 버리건 말건 그건 아저씨 사정이고. 아 몰랑. 빨리 줘요. 이러다 회사 점심시간 끝나면 아저씨가 책임질 거야? 아, 진짜. 성질나오게 하네.”
아영팀장이 서유리 사원의 지원을 받아 개소리를 작렬하고 있다.
“사장님, 잠시 만요. 저랑 얘기 좀.”
보다 못한 성현대리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닭갈비집 사장님을 데리고 뒤로 간다.
나는 성현대리가 무슨 얘기를 하나 집중해서 귀를 기울인다.
“사장님. 죄송합니다. 진짜. 저희 일행들이 너무 곤란하게 해 드려서. 일단 한방닭백숙 하셔서 1인분만 주문한 여자분께 드리고요. 1인분 해 주신다고 하세요. 나머지는 포장하셔서 여자분들 안 보이는 곳에서 저한테 주시고요. 제가 따로 한 마리 값 다 드릴게요. 죄송합니다. 소란 피워서.”
“아휴. 진짜. 요즘 세상은 여자분들 기가 너무 쎄서......... 진짜 장사하기 힘들어요. 뭐 좀만 마음에 안 들면 무조건 컴플레인에다가........ 상냥한 여자분들도 있지만. 점점 막무가네 여자 손님들이 많아져서, 참 장사하기 힘드네요. 사장님이 한 마리 값 주신다고 하니, 일단 알겠습니다. 그렇게 할게요.”
“예, 사장님. 죄송합니다.”
그렇게 김아영팀장 한방 닭백숙 사건은 일단 마무리가 되었다.
닭갈비집 사장님이 성현대리가 부탁한대로 우리 자리로 와서 말한다.
“네, 한방 닭백숙 1인분 해 드릴게요. 시간은 한 30분 걸려요.”
서유리 사원이 마치 자기 때문에 한방 닭백숙 1인분 주문이 가능했다고 착각했는지, 가슴을 쫙 펴며 당당하게 말한다.
“그러면 닭갈비는 얼마나 걸려요?”
“닭갈비는 바로 가능하세요. 지금 준비 해 드릴까요?”
“잠깐만요. 먼저 한방 닭백숙 1인분 조리 들어가 주시고요. 닭갈비는 일행들이랑 상의하고 다시 말 할게요.”
“아. 예........”
닭갈비집 사장님이 주문을 받고 다시 자리로 돌아가자, 서유리 사원이 아영팀장을 향해 너스레를 떤다.
“팀장님. 봤죠? 제가 이래서 음식 블로그를 한 다니까요. 어느 식당에 가도 제 음식 블로그에 글 올려서 매장 시켜 버린다고 협박하면, 절대 손해 안 봐요.”
아영팀장이 손뼉을 치며 호응한다.
“그러게. 진짜. 나도 네이바에 블로그 하나 만들어야겠어. 서유리씨처럼. 개념 없는 식당 주인들 협박용으로. 아니면 우리 같이 뉴튜브나 하나 같이 할까? 요즘엔 블로그보다 뉴튜브가 그렇게 수입이 짭짤하다던데. 뒷광고도 막 받고.”
“어머. 팀장님. 뉴튜브도 아세요? 진짜 우리 팀장님 완전 젊어. 센스가, 센스가~ 완전 10대 라니까. 하긴 외모도 동안이시라 교복만 입으시면 완전 고등학생이지 뭐.”
아니, 아영팀장이 어려보이는 외모는 맞는데, 고등학생이라니.
진짜, 이 미친년.
주둥아리를 확 실로 꿰매 버리고 싶다.
그리고 뉴튜브 안다고 젊고 센스가 좋아?
아니 요즘 시대에 뉴튜브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서유리 사원의 과도한 아부에 김미희 주임과 최다정 차장의 얼굴도 찌푸려졌다.
하지만 아영팀장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서유리 사원을 바라보는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진다.
“아이, 아영씨. 아무리 그래도 고등학생이라니 그건 좀 오버다~ 호호호. 그런데 사실 내가 화장 안하고 비행기 타러 공항에 가면 꼭 여권 다시 확인하더라. 그거 어려 보여서 그런 거 맞지? 아이 진짜. 그렇게 성인이라고 말을 해도, 꼭 확인해야 한다고. 안 그래도 화장안하면 어려 보인다는 말 하도 들어서 귀찮은데. 사람 부끄럽게.”
“어머, 어머. 진짜? 우리 팀장님. 생얼이 더 동안이시구나. 팀장님 화장 안하고 회사 오면 안 되겠다. 너무 베이비 페이스라, 무슨 고등학생이 회사에 견학 왔냐고 입구에서 쫓겨나면 어떡해?”
아주 그냥 부창부수(????)네.
둘이 전생에 부부였겠어.
씨발, 공항에서 여권 재확인 하는 건, 너 이 씨발년 생얼이랑 메이크업 한 얼굴이랑 너무 괴리감이 커서 그런 거겠지.
이 화장발로 먹고사는 화장 전후 구분 안가는 년아.
아영팀장이 이번에는 나와 성현대리를 날카롭게 째려보며 말한다.
“아이, 서유리씨. 그 정도는 아니고. 하여간 그래도 나 생각해 주는 사람 우리 서유리씨 밖에 없다니까. 진짜 남자직원들은 뭐하는 거야. 이런 잡스러운 일 하나 해결 못하고. 꼭 우리 서유리씨 같은 유능한 사원이 직접 나서서 해결해야겠어요? 진짜 남자 사원들은 군대 갔다 왔다고 폼 잡고, 다 자기 잘 되라고 조언 좀 해주면 열 받아서 소리나 빽! 지를 줄 알지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어. 으휴.”
씨발, 분명 방금 무개념 사건을 해결 한 건, 자기 돈 써가면서 무마한 성현대리인데 칭찬 받는 건 서유리 사원이고.
돌아오는 건 욕 밖에 없네.
하아. 진짜 억울하다.
그래도 돈 쓰고 욕먹고 있는 성현대리를 생각하며 참자.
그 때, 아영팀장과 서유리 사원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미영 대리가 배를 부여잡으며 말한다.
“아, 다들 배 안 고파요? 빨리 주문하죠. 주문.”
서유리 사원이 또 끼어든다.
“그러면, 우리 최다정 차장님, 김미희 주임님, 미영대리님 배고프니까, 우리가 먼저 닭갈비 시켜서 먹고. 시현씨랑 성현대리님은 팀장님 한방 닭백숙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시켜요. 팀장님 혼자 밥 드시면 외롭잖아요. 안 그래요?”
최다정 차장, 김미희 주임, 미영대리가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며 동의한다.
“그래, 그렇게 하자. 남자들은 좀 참았다 30분 후에 먹어요. 점심 좀 늦게 먹는다고 죽는 거 아니잖아. 알겠죠?”
하아, 씨발.
나도 오늘 아침도 안 먹고 나와서 배가 등가죽에 붙을 판인데.
남자만 아영팀장 밥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먹으라고?
진짜 개 씨발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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