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화 〉 김미희 주임의 반항(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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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우 상무의 표정에 놀라움이 가득하다.
남녀가 역전된 세계에서도 김미희 주임은 싸가지가 없었나 보다.
“아니, 그 자기밖에 모르는 김미희 주임이? 거, 참 별일도 다 있네. 하여간 수고했어요. 시현씨. 앞으로도 이런 곤란한 일이 있으면 시현씨 도움 좀 받아야겠어요. 허허. 이거 좀 부탁해요.”
나는 당차게 웃으며 이은우 상무님에게 말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상무님. 앞으로도 곤란한 일이 생기시면 꼭 저희 개발 사업부 팀 여직원들을 활용해 주세요. 오늘도 서로 필리핀 톤도에 가고 싶다고 투표까지 했다니까요.”
“아, 진짜요? 이거 참. 알겠어요. 앞으로 봉사활동 같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은 꼭 개발사업부 여직원들에게 부탁해야겠네요. 고마워요. 시현씨. 허허허.”
“아닙니다. 상무님.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나는 이은우 상무님의 총애를 받으며 상무님이 부탁했던 곤란했던 업무를 끝냈다.
하아~
상쾌한 마음으로 다시 개발사업부 실로 돌아가니까 김미희 주임이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 같이 애잔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어떻게 얘기가 잘 되었어요? 주인님, 아, 아님. 시현씨??”
나는 짐짓 너스레를 떨며 김미희 주임에게 말했다.
“하아. 그게 이은우 상무님에게 보고는 올렸는데, 과연 잘 될지........ 일단 저는 김미희 주임님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김미희 주임이 손을 싹싹 비비며 고개를 연신 끄덕거린다.
“알죠. 시현씨 없었으면 진짜 꼼짝없이 필리핀 빈민가에 끌려가서 3년 동안 개고생 할 뻔 했는데. 끝까지 힘 좀 써줘요. 시현씨. 제발....... 나 시현씨만 딱 믿고 있을게. 씨발. 진짜. 시현씨 빼고 나 생각해 주는 사람 진짜 하나도 없어. 의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씨발년들. 도대체 누구야! 나 필리핀 빈민간 보내자고 투표한 년들은.”
김미희 주임은 아직도 투표에서 자기가 뽑힌 것에 대해서 많이 분해하고 있었다.
이렇게 김미희 주임이 열불이 나 있을 때는 기름을 부어서 더 활활 타오르게 만들어야지.
아예 잿더미가 될 때까지 다 타버리도록.
“그, 김미희 주임님. 제가 진짜 김미희 주임이 이제부터 완전히 내 노예. 그러니까 우리편이라서 특별히 말해주는 건데요........”
내 말에 김미희 주임이 귀를 기울인다.
“응. 시현씨. 알지, 진짜 시현씨 말고는 내 편 우리 회사에 하나도 없어. 그래서? 응? 응?”
나는 김미희 주임이 귀에대고 속삭인다.
“사실, 내가 성현대리 투표할 때 몰래 적는 것 봤는데, 성현대리는 아영 팀장 적었어요. 그리고 나도 물론 아영팀장 적었고. 자, 그러면 누가 김미희 주임을 그 손가락만한 바퀴벌레가 날라 다니고, 쓰레기 음식 끓여먹는. 좆같은 빈민가로 보내자고 투표 했을 까요? 그것 도 나랑 성현대리를 제외하고 세표나 나왔는데.”
내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김미희 주임이 열이 잔뜩 올랐는지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오크처럼 숨을 거칠게 쉭! 쉭! 거리며 내 쉬었다.
“씨발! 개 같은 년들! 진짜 내가 이럴 줄 알았어. 그러니까 시현씨랑 성현대리는 아영팀장 찍었는데, 다른 씨발년들이 전부 다 나 찍었다는 거 아니야? 필리핀 가서 강간당하고 장기 털리라고. 내가 진짜 이 씨발년들을 다 찢어 발길거야. 나 막지 마. 시현씨. 나 오늘 진짜 회사에서 제대로 사고 칠 테니까.”
나는 흥분해서 날 뛰는 김미희 주임의 어깨를 토닥이며 진정시켰다.
“아이 미희 주임. 그렇게 화 내지 마요. 그 말 몰라요? 분한 사람이 지는 거라고요. 그리고 미희주임 사고 쳐서 회사에서 짤리면? 사채 빛은 어떻게 할 건데요. 진짜 원양어선 탈거야? 그러니까 흥분하지 말고 내 말 잘 들어봐요. 알았죠?”
미희주임이 빨개진 얼굴로 여전히 씩씩 거렸지만, 내 말은 듣는 것 같았다.
그래, 아무리 김미희 주임이 열 받아도 원양어선 타고 물고기 잡고 싶진 않겠지.
그것도 며칠 전까지만 해도 회사에는 공주처럼 대접 받던 여직원 이었는데.
나는 김미희 주임을 잘 토닥이며 조근 조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희 주임님. 억울하죠? 미희 주임은 존나 열과 성의를 다해서 아영팀장 보필하고, 존나 여우짓만 하는 서유리 사원 사고 칠 때 마다 뒤에서 다 커버 해 줬는데. 그런데 이 은혜도 모르는 년들이, 미희 주임은 강간당하던 말 던, 장기 털리던 말 던. 그 좆같은 필리핀 빈민가로 나 몰라라 보내버리려고 했으니까 말이야. 이거 진짜 칼만 안 들었지. 살인이지. 살인. 꼭 직접 칼로 찔러야 살인인가. 이렇게 여러 명이서 작당하고 한 명 골로 보내는 게 더 비겁하고 잔인한 거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김미희 주임은 내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여자 팀원들에 대한 증오심이 쌓여만 갔다.
“내가, 진짜. 흐윽....... 내가 진짜.... 시현씨. 내가 그 년들한테 해 준 게 어딘데. 이렇게 은혜를 복수로 갚아. 시현씨. 나 진짜 그 년들 다 죽여 버리고 나도 죽고 싶어. 특히 김아영 그 씨발년. 개 같은 년. 진짜. 그래, 다른 년들은 그렇다 쳐. 그런데 김아영 씨발년은 진짜 그러면 안 돼지. 내가 진짜 그 씨발년 딱가리를 이 년이나 했는데. 씨발년이 서유리를 안 적고 내 이름을 적어. 씨발.... 씨발......”
김미희 주임의 얘기를 듣고 보니, 특히 아영팀장에게 서운한 게 많은 거 같다.
그러면 오늘의 오후 조교할 타겟은 아영팀장과 서유리로 낙찰.
안 그래도 아직 전혀 조교가 되지 않은 팀원은 아영팀장 밖에 없고, 서유리는 조교율 100프로 까지 올려야 하는 임무가 있다.
“그러게 말이에요. 김미희 주임님. 씨발, 사실 나도 성현대리도 아영팀장 그 년이 맨날 생리다 뭐다 하면서 유난 떠는 거 존나 재수 없었거든요. 그러니까 우리도 아영 팀장을 투표 용지에 적었지. 이 기회에 필리핀으로 보내버리려고요. 그리고 그 자세히 보면 눈도 항상 풀려 있는 게 뭔가 음습하지 않아요? 미희주임님. 뭐, 아영팀장 음습하고 이런 거 아는 거 없어요? 이 기회에 그냥 싹 다 말 해 버려요. 어차피 미희주임도 이제 우리편인데, 이제 아영팀장한테 아쉬울 거 없잖아요. 아영팀장이 팀장이어도 나랑 성현대리가 반대하면 아무 것도 못해요. 알잖아요. 미희 주임도.”
듣고 보니 미희 주임도 귀가 솔깃한 것 같다.
아영팀장 코인에 올라탔다가 제대로 배반당하고 떡락했다.
이제는 시현 코인으로 갈아타야 할 때이다.
“시현씨. 진짜 이거 나만 아는 건데. 사실, 아영팀장.........”
미희 주임이 아영팀장에 대해서 막 뭔가 중요한 말을 하려고 하는데, 뒤에서 음습한 여자 목소리가 들린다.
“둘이서 뭘 그렇게 속닥속닥 거려요? 그리고 시현씨는 이은우 상무님 만나서 미희 주임 톤도 보내는 건 잘 해결 했어요? 나도 개인적으로 잘 부탁드린다고 따로 이은우 상무님께 말씀드리려 했는데 자리에 안 계시네.”
음습하게 뒤에서 숨어서 일을 꾸미는 비열한 모략꾼(??꾼).
바로 아영팀장의 목소리다.
앞에서는 나한테 기죽은 척, 쫄은척 하지만, 내가 아는 아영팀장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분명히 진심은 마음속에 숨기고 반란의 기회만 옆보고 있을 거다.
사실 그래서 아영팀장을 필리핀으로 보내서 개고생 좀 시키려 했는데.
평소에 여자들한테 인심을 잃은 김미희 주임이 딱 걸려 버린 거다.
김미희 주임이 붉게 충혈 된 눈으로 아영팀장을 쏘아 본다.
당장이라도 무슨 일을 낼 것 같은 기세다.
나는 힘을 주어서 미희 주임의 손을 꽉 잡으며 참으라는 의미로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다행히 김미희 주임이 흥분을 가라앉히며 말한다.
“아, 네. 시현씨가 신경 써 준 덕분에 잘 해결 될 것 같아요. 누구는 나를 필리핀 톤도로 보내 버리려고 안달 났는데 말이죠. 씨발. 이 년간 개같이 굴렀는데, 돌아오는 건 필리핀 빈민가행 밖에 없네. 진짜 안 그래요? 아영씨?”
김미희 주임이 욕도 하고 팀장이라는 말을 빼고 불렀지만, 아영팀장은 찔리는 게 있어서인지 김미희 주임의 매서운 눈빛을 피한다.
그리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며 말한다.
“일들 봐요. 노닥거리지 말고. 아, 그리고 오늘 점심은 저희 자주 가는 식당에 닭갈비 먹으러 가려고 하는 데 이견 없죠?”
나는 빈정거리며 아영팀장에게 말했다.
“팀장님은 채식주의라고 하지 않았어요? 닭갈비에는 닭고기 들어가는 데요? 소는 불쌍하고 닭은 안 불쌍해요?”
그제야 아영팀장은 자기가 회의시간 때 한 말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급하게 말을 바꾼다.
“아, 그게. 말이죠. 채식도 좋은데, 너무 채식만 하면 그 뭐냐. 영양실조! 영양실조에 걸린다고 해서요. 가끔 고기도 먹어야지. 아유, 참. 하여간 오늘 점심은 닭갈비에요. 그렇게 알아요.”
아니,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채식한다고 영양실조라니.
급하게 변명을 하다 보니 진짜 아무 말 대잔치다.
김미희 주임도 아영팀장이 말도 안 되는 변명에 기가 차는지, 한숨을 푹푹 내쉰다.
나는 자리에 돌아와서 미영 대리에게 카통을 보냈다.
[나: 아니, 미영 대리님. 아영팀장한테 투표하기로 하고, 왜 갑자기 미희 주임을 찍었어요?]
사실 미영대리한테 미리 아영팀장을 찍으라고 메시지를 보내 놨었다.
그런데, 미영대리가 엉뚱하게도 미희 주임한테 투표를 한 것이다.
[미영 대리: 시현씨 미안해요. 아니, 나도 아영팀장 찍으려고 했는데, 김미희 주임이....... 나는 얼굴이 무기라서 톤도가도 현지화도 잘 되고 여자라고 위협당할 일도 없다고 해서, 열 받아서 미희 주임 적었어요. 미안해요. 진짜 미안합니다.]
아....... 이건 김미희 주임이 실수했네.
비록 아영팀장한테 투표하기로 한 약속은 어겼지만, 이건 인정이다.
나 같아도 미희 주임이 나한테 그 딴소리를 지껄였으면, 미희 주임한테 투표 했을 거다.
[나: 아, 예. 그건 미희 주임이 잘 못했네요. 이번에는 그냥 넘어 갈 테니까, 다음에는 제가 말한 대로 해야 해요. 알겠죠?]
[미영대리: 네. 시현씨. 제가 갑자기 너무 욱해서. 죄송해요. 진짜. 다음에는 꼭 하라는 대로 다 할게요.]
휴우.......
다행히 미영대리가 다른 마음을 품어서 약속을 어긴 건 아니었다.
자, 이제 상황을 정리해 보면, 현재 우리팀에서 내 적이라고 할 수 있는 여자는 거의 아영팀장 한 명 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제는 능구렁이 아영팀장만 잡으면, 우리 개발사업부 페미년들 조교는 거의 오부 능선은 넘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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