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화 〉 김미희 주임의 반항(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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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현씨, 시현씨가 이은우 상무님한테 말씀드려서 어떻게 좀 안 될까? 응? 제발..... 이렇게 부탁할게.”
김미희 주임이 회의실에서 다른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천하의 건방지고 도도하기로 소문난 김미희 주임이 스스로 내 앞에서 무릎을 꿇는 날이 오다니.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나는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울먹거리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김미희 주임을 바라보며 말했다.
“거, 참. 사람 곤란하게. 왜 이러세요. 김미희 주임님. 부하직원 앞에서 무릎을 다 꿇으시고. 일어나요. 일어나.”
하지만 정말 필리핀 톤도로 파견 나가는 것만은 피하고 싶은지, 김미희 주임이 내 바지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진다.
“시현씨. 아니 주인님. 어떻게 방법이 있지 않을까? 네? 내가 진짜 주인님이 시키는 일이면 앞으로 모든지 다 할게. 주인님이 빨라면 빨고, 벗으라면 벗을게. 더 한 것도 할 수 있어요. 제발........ 그 더러운 필리핀 톤도를. 그것도 3년이나. 나 절대 못 가. 제발 살려주세요.”
역시 김미희 주임이 필리핀 톤도를 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필리핀 톤도의 더러운 주변 환경이었다.
수많은 폐품과 인분, 오물이 떠다니는 쓰레기 바다가 바로 삼종리서치 필리핀 톤도 지부 바로 옆에 있다.
하수구 냄새보다 더 심한 악취가 난다고 들었다.
그 것 뿐만이 아니다.
김미희 주임이 가장 소름끼치게 싫어하는..........
사람 손가락만한 바퀴벌레가 날아다니고, 고양이랑 맞짱을 뜰만큼 크고 흉포한 큰 쥐가 우굴우굴하다.
“왜 그래요. 미희 주임님. 가면 다 사람 살게 되어있다니까요. 거, 참. 알겠어요. 그렇게 치안이 걱정되면, 거기 저희 필리핀 톤도 지부 지키는 경비 아저씨한테 미희 주임님 좀 잘 부탁한다고 미리 이메일 보내 놓을게요. 그런데 인터넷이 없어서 이메일 읽을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김미희 주임이 풍만한 젖가슴을 내 다리에 비비며 붙잡고 늘어진다.
“주인님. 경비 아저씨가 어떻게 총 막 쏘는 마약쟁이들한테서 저를 지켜요. 거기는 외국인 여자를 강간하는 사건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는데. 저 거기 가면 진짜 필리핀 남자들한테 타겟 되어서 며칠도 못 버텨요.”
사실 김미희 주임의 하얀 피부와 섹시한 외모정도면, 며칠이 아니고 몇 시간도 안 되어서 필리핀 톤도에 사는 험악한 아저씨들과 할아버지들의 간식거리가 될 수도 있다.
“아니, 그래서 전기 충격기도 준다니까요. 아니 정 그러면 회사 그만 두시던가. 이미 공정하게 투표를 통해서 다 정해진 걸 지금에 와서 어떻게 바꿔요. 안 그래요? 미희씨?”
김미희 주임이 침울한 표정으로 울먹거리며 말한다.
“주인님. 진짜 저도 회사 그만두고 싶은데, 저번 달에 샤넬이랑 구찌 백 사느라고 사채를 좀 끌어서서........ 오빠들이 내 준다고 했는데. 씨발. 갑자기 세상이 바뀌어서. 하여간 저 회사 그만 못 둬요. 회사 그만두면 당장 사채업자들이 원양어선 태워 버린다고 난리칠거란 말이에요. 흐흑.”
아, 그렇지.
이곳은 남녀가 역전 된 세상.
김미희 주임이 예쁘기는 하지만, 그건 회사에서 탑급이지 남녀가 역전된 세상의 바깥세상에서는 아니다.
당장 나와 연락하고 지내는 한예슬이나, 강세나. 미유키에 비해서도 김미희 주임의 외모는 몇 등급 떨어진다.
그러니까 김미희 주임은 남녀역전 세계의 텐프로급 호스트 bar에서 일하기도 조금 애매한 외모다. 한 마디로 사채업자들 생각에 그렇게 애매하게 돈을 버느니 차라리 몸이 튼튼한 김미희 주임을 원양어선에 팔아서 한 몫 단단히 챙기는 게 낫겠지.
물론 이건 회사에서 짤려서 당장 수입이 없을 때를 가정했을 때 얘기다.
원양어선을 타는 김미희 주임이라.
이것도 나름 어울리기는 하다.
“아, 그건 김미희 주임이 무리하게 사채 끌어다가 명품백 사서 발생한 일이고요. 그러게 왜 사채로 명품백을 사요. 빽을.”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나요. 주인님. 걱정 말고 명품백 사라고 한 새끼들이 갑자기 다 연락 두절이라.. 흑흑. 주인님. 제발. 저 진짜 필리핀 톤도만 안 가게 해주세요. 네?”
하아.....
이거 뭐 듣고 보니 김미희 주임 사정도 딱하긴 하네?
명품백 사느라 사채 써서 회사도 그만 못 그만두다니.
씨발. 존나 김치녀 같은 사정이다.
나는 한숨을 쉬며 내 손을 붙잡고 애원하는 김미희 주임의 손을 매몰차게 뿌리쳤다.
“아이, 진짜. 나는 모르니까. 회사를 그만 두던지 필리핀 톤도를 가던지 미희 주임님 마음대로 해요.”
나는 김미희 주임을 뒤로 한 채 뚜벅뚜벅 걸어서 회의실 입구로 걸음을 옮겼다.
김미희 주임이 갑자기 달려와서는 내 등을 꼬옥 끌어안았다.
김미희 주임의 크고 풍만한 젖가슴이 내 등에 와 닿았다.
나를 뒤에서 꼬옥 끌어안은 상태에서 김미희 주임이 속삭이듯 말했다.
“시현씨. 아니 주인님. 나 오늘부터 주인님의 충실한 노예가 될 게요. 시키는 건 다 할게요. 몸도 마음도 다 주인님 거니까. 어떻게 이 번 한번 만 도와주세요. 제발.”
김미희 주임이 생각하기에 자신이 살아 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나에게 매달리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사실 그 생각이 맞기는 하다.
나는 할 수 없다는 듯이 뒤돌아서서 김미희 주임을 바라보았다.
김미희 주임의 예쁘고 하얀 얼굴이 보인다.
큰 고양이 같은 눈에 작고 귀여운 코.
붉은 입술.
사실 외모만 보면 우아하면서 섹시하다.
“하아. 진짜 어쩔 수 없네. 그러면 김미희 주임. 내 앞에서 노예 서약서 쓸 수 있어요?”
김미희 주임이 살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쉰다.
“하아..... 살았다. 살았어! 쓸 수 있어요. 주인님. 주인님이 원하는 건 다 할게요. 어떻게 쓰면 되요?”
나는 김미희 주임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살짝 야릇하게 웃었다.
김미희 주임이 알겠다는 듯이 갑자기 내 앞에서 무릎을 꿇으며, 내 은밀한 부분을 요염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주인님, 여기서 빨까요? 아니면, 이따 회사 끝나고 따로 부르시겠어요?”
김미희 주임이 당장이라도 내 은밀한 곳을 잡아먹을 듯한 야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역시 김미희 주임 생각은 단순하다.
나는 차가운 목소리로 김미희 주임에게 말한다.
“미희씨. 괜히 오버하지 마. 내가 언제 미희씨 보고 그럼 음란한 상상을 하라고 했어요. 노예 계약서 항목은 천천히 생각해 볼 테니까. 그렇게 알고. 흠. 그런데 말이에요. 아무리 그래도 다른 팀원들도 납득을 해야 하니까. 필리핀 톤도를 가기는 가야겠어요. 이번 여름휴가 때 10박 11일 정도로. 봉사 활동도 가서 좀 하고. 우리 삼종리서치 필리핀 지사 상황도 파악해서 리포트도 써오고. 그래야 나도 이은우 상무님한테 보고 할 거리가 생기지.”
10박 11일 필리핀 톤도 출장 행.
그것도 여름휴가 때.
손가락만한 바퀴벌레와 강아지만한 쥐가 뛰어 노는 곳으로.......
평소의 김미희 주임이라면 기를 쓰고 반항했겠지만.
지금의 김미희 주임은 순한 양과 같다.
필리핀 톤도에서 3년을 굴러야 할 걸, 겨우 10박 11일만 참으면 된다.
마치 내가 천사처럼 보일 것이다.
“네, 주인님. 제발요. 이렇게 부탁드려요. 꼭 그렇게 하게 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김미희 주임이 머리를 땅바닥에 쿵쿵 소리가 날 정도로 박으며 나에게 감사인사를 한다.
“아, 김미희 주임. 그 너무 좋아하지는 말아요. 아직 확실히 결정 난 건 아니니까. 김미희 주임 생각해서 내가 힘을 좀 써보겠다 이런 거지. 알겠죠?”
“네. 주인님. 앞으로 뭐든 부탁할 일 있으시면 저만 찾으세요. 회사에서도. 회사 밖에서도. 주인님. 주인니임...... 사랑해요! 정말 감사합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렇게 말 안 들어서 강제로 조교해서 노예로 만든 김미희 주임이 이제는 충성의 의미로 주인님이라고 부르며 사랑해요라고 애교까지 부른다.
역시 노예는 스스로 감동해서 충성을 다하게 만드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나는 손을 들어서 성의 없게 흔들어 보이고는 회의실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바로 이은우 상무님이 있는 상무님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똑똑!
내가 이은우 상무님 방에 노크를 하자, 상무님이 대답한다.
“들어와요. 안에 있습니다.”
나는 거침없이 상무님 방문을 열고 들어가서는 반갑게 상무님에게 인사를 한다.
“아이고, 상무님. 아침에 뵙고 또 뵙네요.”
“허허. 이거 시현씨가 이렇게 찾아 온 걸 보면, 제가 아침에 부탁한 일 해결하셨나 보네요? 만만치 않았을 텐데........”
“아, 예. 잘 해결됐습니다.”
“아, 그래요? 그게 쉽지 않은 일인데. 반발이 심하지 않았나요? 사실 누가... 여름휴가 반납하고 필리핀 지사에서 봉사 활동 하고 싶겠어요. 그것도 그 위험한 빈민가 톤도에서 10박 11일을. 부사장님도 사실 지시는 내렸지, 반쯤 포기하고 있던 일인데. 역시 시현씨 유능해요. 유능 해.”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실린다.
그렇다.
사실 필리핀 파견 근무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는 얘기였다.
처음부터 이은우 상무님이 지시 내렸던 건, 여름휴가 때 10박 11일 필리핀 지사 상황파악도 하고, 회사 이미지를 쇄신시킬 봉사활동도 할 직원을 우리 개발 사업부에서 찾아 줄 수 없냐는 말이었다.
그런데 미치지 않고서야 누가 순순히 여름휴가를 반납하고 필리핀 빈민가로 봉사활동을 가겠는가?
그래서 나는 이 상황을 역 이용해서 최고의 성과를 이루어 낸 것이다.
“아, 예. 우리팀 김미희 주임이 흔쾌히 여름휴가를 반납하고 필리핀 톤도로 봉사 겸 회사 업무를 보러 출장 갔다 오신다고 하네요. 제발 보내 달라고 하던데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