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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 미소년이 살아남는 법-104화 (104/413)

〈 104화 〉 김미희 주임의 반항(4)

* * *

서유리 사원이 깜짝 놀라서 나를 바라본다.

“투표하게 종이랑 펜 좀 가져다주세요.”

“넵! 주인님, 아니 시현씨.”

이제 주인님이라는 말이 입에 붙었는지, 주인님이라는 말이 서유리 사원의 입에서 항상 먼저 나온다.

서유리 사원이 다람쥐처럼 재빠르게 움직이며, 펜과 종이를 팀원들에게 나누어 준다.

나는 투표를 하기에 앞서 먼저 말한다.

“뭐, 운이라고 하면 운이기는 한데, 지금 이 자리에 최다정 차장님은 없으니까. 최다정 차장님은 일단 제외합니다. 그리고 이미영 대리님은 다들 아시다시피, 파견직이라 해외 지사장으로 근무가 불가능 합니다. 정사원만 가능 하니까요. 불만 없으시죠?”

마음 같아서야 다들 최다정 차장도 파견 대상에 넣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내가 반대하는 이상, 괜히 긁어 부스럼만 만드는 일이다.

아영팀장도 괜히 성현대리를 파견 보내야 한다고 헛소리 했다가, 나한테 찍힐 뻔 하지 않았던가.

내 말에 김아영팀장, 서유리 사원, 그리고 김미희 주임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러니까 결국 필리핀 최대의 빈민가 톤도.

강간이 대낮에 이루어지고 마약을 하는 사람들이 길거리에 널린.

그리고 손가락만한 바퀴벌레가 날라 다니는 최악의 근무지.

그 곳으로 파견을 가야하는 사람은.

김아영 팀장, 서유리 사원, 그리고 김미희 주임.

셋 중에 한 명이기 때문이다.

* * * * *

“자, 그러면 필리핀 톤도로 파견 근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팀원을 적어주세요.”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각자 투표용지에 서로의 눈치를 보며 팀원들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이름을 다 적은 후 안보이게 잘 접어서 내가 미리 준비해 놓은 바구니 안에 넣었다.

“그러면 3년 간 필리핀 톤도에서 지사장으로 근무하게 될 사원은 누가 될지. 제가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불만 없죠?”

이미영 대리와 성현대리는 당연히 불만이 있을 리 없고, 김미희 주임과 아영팀장, 서유리 사원도 수긍한다.

나는 바구니를 내 앞으로 가져와서는 하나씩 펼치며 크고 낭랑한 목소리라 발표를 시작한다.

“자~ 그럼 개표 시작 할게요. 가장 먼저........”

첫 번째로 가장 깔끔하게 접힌 투표용지를 꺼내서 읽었다.

“서유리씨 한 표.”

첫 번째, 톤도 지사로 파견 나갈 직원으로 서유리 사원이 뽑혔다.

이건 좀 의외인데?

누가 지목 했을까?

서유리 사원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손도 부들부들 떨고 있다.

그만큼 긴장되는 거겠지.

나는 다음 투표 용지을 열었다.

반듯하게 네모 모양으로 접혀 있다.

“김미희 주임님 한 표!”

김미희 주임이 매서운 눈으로 팀원들을 쏘아본다.

억울한가 보다.

눈빛이 표독스럽다.

얼마나 가기 싫으면 저런 눈빛이 나올까.

하긴 필리핀 톤도에 가면 매일 에어컨도 없는 곳에서 40도에 육박하는 더위를 참고 지내야 하는데.

그것뿐만이 아니다.

인터넷도 안 되고, 팍팍이라는 사람들이 먹고 버린 음식물 쓰레기 죽을 억지로 먹어야 한다.

위험한 것도 위험한 것이지만, 일상생활 자체가 지옥 그 자체다.

나는 다음으로 대충 접은 투표용지를 꺼내 든다.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된다.

“김아영 팀장님 한표!”

아영팀장의 동공이 커진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초조해서 미치겠다는 얼굴이다.

사실 이 투표용지에 적힌 아영팀장은 내가 적은 것이다.

조교가 잘 된 서유리 사원이나 김미희 주임 보다는 아직 조교가 전혀 되지 않은 아영팀장을 필리핀 톤도로 보내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투표용지는 세 장.

한 표씩 받은 서유리 사원, 아영팀장, 김미희 주임의 얼굴에 긴장감이 잔뜩 서려있다.

이제 한 표라도 더 받으면, 그만큼 지옥 같은 필리핀 빈민가 톤도행이 거의 확실해 지기 때문이다.

아영팀장은 두 손을 모으고 기도라도 하고 있는 것 같고.

서유리 사원은 목이 타는지 계속해서 물을 마신다.

김미희 주임은 다리를 덜덜 떨며 입술을 깨물고 있다.

“자 그러면 발표를 이어 가겠습니다.”

나는 대충 꼬낏꼬깃 접힌 투표용지를 손에 들었다.

“음. 이거 참....... 이를 어쩌나.”

김미희 주임이 안절부절못하며 나에게 재촉한다.

“왜? 왜요. 시현씨. 누구기에 그래? 응? 하으.... 진짜 긴장 되서 미치겠다. 입사 발표날 보다 더 떨려, 진짜.”

나는 김미희 주임을 말없이 바라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김미희 주임이 긴 손톱을 깨물며 달달달 떤다.

“나, 나야? 시현씨. 거기에 적힌 거 나야?”

나는 살짝 여유롭게 웃으며 말한다.

“김아영 팀장님. 두 표.”

김미희 주임이 안도의 한숨을 쉬며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아, 아영팀장! 진짜? 아싸아! 하아, 난 줄 알고 존나 떨었네.”

아영팀장이 씨발! 하면서 김미희 주임을 째려본다.

김미희 주임은 그제야 자기가 너무 흥분해서 분위기 파악 못하고 소리 친 걸 깨 닳고는 아영팀장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사과한다.

그래도 기분이 좋은 건 어쩔 수 없는지 입 꼬리는 올라가 있다.

나는 아영팀장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으며 말한다.

“팀장님, 너무 실망하지 말아요. 아직 투표용지 두 장 더 남아있어요.”

아영팀장이 이제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거칠게 말한다.

“씨발, 빨리 읽기나 해요. 아, 좆같네. 진짜.”

평소라면 회사에서 욕 쓴다고 개지랄을 하며 갈구였겠지만, 지금은 아영팀장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일단 봐주기로 한다.

“네, 그러면 다음 투표용지 개봉합니다.”

나는 손을 뻗어서 이제 두 장밖에 남자 않은 투표용지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투표용지에서 향수 냄새가 난다.

여자가 쓴 것이 분명하다.

나는 천천히 투표용지를 펼쳤다.

이거 꽤나 흥미로운데?

나는 천천히 투표용지에 적힌 이름을 읽었다.

“김미희 주임님. 두 표.”

김미희 주임이 다시 절망의 구렁텅이에라도 빠진 것 같이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 미치겠네. 진짜. 씨발 진짜. 나 적은년 도대체 누구야!”

김미희 주임이 팀원들을 하나하나 째려보았지만 다들 김미희 주임의 눈빛을 피할 뿐이었다.

그리고 남은 마지막 투표용지 하나.

그런데, 이 투표용지에........

멍청하게도 이런 글씨가 써져있다.

[미영대리 투표용지 >.

아니 우리 미영대리님은 순수해도 너무 순수하네.

이거 무슨 초등학생 반장선거도 아니고.

하여간 이 투표용지는 미영대리가 적은 것이었다.

나도 살짝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투표용지를 개봉했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아영팀장과 김미희 주임을 바라보며 말한다.

“일단, 서유리 사원은 아니네요. 아쉽겠다. 서유리 사원. 해외 지사장으로 승진할 수 있었는데.”

서유리 사원이 자기도 모르게 기뻐서 꺅! 소리를 질렀다.

“아, 아니에요. 그런 막중한 업무는 나중에 팀장님 정도 되고 나서야 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그냥 일개 평사원으로 충분히 만족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너무 기쁜 나머지 나를 자연스럽게 주인님이라고 부른다.

뭐 서유리 사원은 조금 있으면 조교가 100프로 이루어지는데, 해외로 도망가면 내가 아쉽긴 하다.

이건 나에게도 잘 된 일이다.

서유리 사원은 천국행 열차를 탔지만, 김미희 주임과 아영팀장의 표정은 거의 정신이 나간 좀비 같다.

김미희 주임은 계속해서 손톱을 물어뜯으며, 다리를 떨고 있다.

아영팀장은 두 손을 모으고 계속해서 뭐라고 중얼중얼 거리고 있다.

하으......

이것도 못 봐 주겠네.

“자, 그럼 발표 합니다. 필리핀 톤도 지사장으로 발령이 날 사원은.........”

모두의 이목이 나에게 집중된다.

허험!

살짝 헛기침을 하고 뜸을 들이다가, 아영팀장을 바라보며 말한다.

“팀장님.”

아영 팀장이 거의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네...네...? 저, 아니죠? 저 진짜 억울해요. 진짜 고기도 못 먹고. 채식주의자인데. 아직 연애도 한 번 제대로 못 해 보고, 나 아니지? 진짜?”

나는 한숨을 후우 쉬며 말한다.

“네. 팀장님 아니에요. 김미희 주임님. 총 3표. 김미희 주임님이 톤도 지사로 파견 나가게 생겼네요.”

내 마지막 발표를 들은 김미희 주임이 회의용 탁자를 쾅!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씨발! 누구야. 누가 내 이름 적었어? 어떤 년이야!!!!”

지금은 흥분해서 눈앞에 아무것도 안 보이는 듯하다.

씩씩 거리는 숨소리가 우랑우탄 같다.

자연스럽게 김미희 주임을 적은 이미영대리가 김미희 주임의 살벌한 눈빛을 피한다.

나도 가만히 생각해 본다.

나는 아영팀장을 적었고.

성현 대리도 아마 아영팀장을 적었을 것이다.

평소에 성현대리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우리팀에서 아영팀장만 없으면 살만 할 텐데! 라는 말이었으니까.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김미희 주임이 서유리 사원을

나머지 여자 세 명.

즉 이미영 대리, 서유리 사원, 아영팀장이 김미희 주임을 적은 것이다.

김미희 주임이 나한테 씩씩 거리며 다가와서는 바구니를 뺏어 든다.

그리고 투표용지를 하나하나 다 확인하더니, 머리를 쥐어뜯으며 자리에 앉는다.

투표용지를 내가 제대로 읽었는지 확인하고는 이상이 없자.

이제는 자포자기 상태가 된 것 같다.

사실 팀원들 투표로 결정 된 만큼, 더 이상 반박할 여지가 없다.

이제는 꼼짝없이 필리핀 최대의 무법도시이자, 세계 3대 빈민가 톤도로 도살당하는 소처럼 끌려가게 생긴 거다.

다른 팀원들은 분위기가 이상하자 다들 회의실에서 슬슬 자리를 뜨기 시작한다.

괜히 이런 날 김미희 주임한테 잘 못 걸려서 화풀이 대상이 되기 싫은 것이다.

물론 찔리는 것들도 있고.

성현대리도 눈치를 보며 자리를 피한다.

“시현씨, 좀 이따가 옥상에서 보자.”

“네, 대리님. 저는 미희 주임님이랑 얘기 좀 하고 올라갈게요.”

성현대리 마저 회의실에서 나가 버리자, 회의실에는 나와 김미희 주임 둘만 남게 되었다.

김미희 주임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하다가 고개를 들어서 빨개진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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