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화 〉 김미희 주임의 반항(2)
* * *
“바베큐요?”
김미희 주임이 약간 황당하다는 듯이 나를 본다.
“네, 돼지고기 바비큐, 닭 바비큐. 불 맛 나는 바비큐 요리요.”
김미희 주임이 혼자 골똘히 생각하더니 말한다.
“아! 오늘 점심에 저희 바비큐 먹으로 가요? 스테이크가 더 좋긴 하지만 바비큐도 괜찮죠. 오늘 점심 회식인가 보네요?”
“아, 그렇구나. 김미희 주임님은 바비큐 좋아하시는 구나. 스테이크도 좋아하시고.”
“네. 뭐, 그렇죠.”
“그러면 혹시 바다도 좋아하세요? 파란 에메랄드 바다! 어때요?”
김미희 주임의 얼굴이 단 번에 밝아졌다.
“왜요? 시현씨? 혹시 이번 저희 여름휴가 때 해외여행 상품권이라도 주는 거예요? 바다 좋죠. 에메랄드 바다! 안 그래도 이번에 비키니도 샀는데. 잘 됐다.”
“역시, 김미희 주임님은 바비큐도 좋아하고 에메랄드 바다도 좋아하고. 딱이네. 진짜.”
“네? 뭐가요? 뭐 저 이번 여름휴가 때 이탈리아나 그리스, 스페인. 이런 지중해 나라라도 보내주는 거예요? 그런 거죠? 저 뭐 당첨 된 거죠? 아이, 시현씨. 사람 애태우지 말고 빨리 말 해줘요.”
나는 성현대리님에게 눈짓을 하며 미희 주임에게 귓속말을 했다.
“조금 이따 회의 시간에 다 알게 될 거예요. 너무 보채지 마세요. 아, 그리고 어제는 미안 했어요. 이건 진심이에요. 내가 어제 미희 주임한테 너무 심하게 군 것 같아요.”
미희 주임의 얼굴이 살짝 새침하게 변했다.
“아니 뭐. 시현씨가 어제 좀 심하긴 했지. 집에 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참 어이가 없더라고요. 그래도, 뭐. 유럽 여행권 정도 준비 했으면, 참아 줄게요. 아이, 오전 회의 시간 기다려진다.”
“네. 미희 주임님. 궁금해도 조금만 참아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성현대리 옆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곧 이어 아영팀장 주관 아래 오전회의가 시작되었다.
“자, 다들 앉으셨죠? 오늘은 저희 회의 안건이 좀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이제 곧 여름휴가가 다가오잖아요. 그러니까 연가 쓰실 분들은 미리미리 서류 제출 해 주세요. 그래야 다른 사원들이랑 날짜 안 겹치게 연가 쓸 수 있을 테니까요.”
서유리 사원이 여름휴가라는 말에 기뻐서 크게 대답한다.
“네, 팀장님!”
김미희 주임도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나를 바라보며 싱글벙글이다.
아, 이제 말을 하긴 해야겠네.
나는 김아영 팀장을 향해 말했다.
“팀장님 저기 제가 오늘 말씀 드릴 안건이 있는데요. 오늘 아침에 이은우 상무님을 만났는데, 상무님이 저에게 부탁을 하시더라고요.”
“네? 무슨 일이죠?”
“그러니까, 이런 일은 공정해야 하니까요. 먼저 팀원 분들 중에 혹시 돼지고기 바비큐나 뭐 이런 음식 좋아하시는 분 있어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미희 주임이 손을 번쩍 들었다.
“저요! 시현씨. 저 에메랄드 바다도 좋아하는데.”
아영팀장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다시 나에게 물어 본다.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 다 끝나고 말씀드릴게요. 팀장님. 팀장님도 참여해 주셔야 합니다. 중요한 일이에요.”
“아? 예.........”
나는 김미희 주임을 1순위로 체크했다.
“자 다음으로는 혹시 바다 좋아하시는 분? 해산물도 좋아하면 더 좋고요.”
뭔가 낌새가 이상함을 눈치 챈 서유리 사원, 이미영 대리, 아영팀장도 재빨리 손을 들며 말하려 했지만........
“저요! 저요. 시현씨. 나 바다 완전 좋아하잖아. 해산물 킬러야. 나. 특히 게, 새우 이런 거. 지중해에서 나오는 거. 그런 거 나 그런 것만 열흘 내내 먹어도 되거든. 그러니까. 나! 나!”
“아, 예. 김미희 주임님. 진짜 딱이긴 하네. 해산물도 좋아해, 바비큐도 좋아해. 바다도 좋아해. 완벽하네요.”
“그치? 그치? 시현씨. 내가 딱이야.”
나는 다시 김미희 주임 이름에 크게 별표로 표시 했다.
“자, 그러면 마지막 질문. 혹시 코코아 오일, 마사지 이런 거 좋아하시는 분 있어요?”
김미희 주임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진짜, 나!!!!! 나 휴일이면 SPA에서 살잖아."
뭐, 내가 김미희 주임이 휴일 때 뭐하는지 관심은 없고.
하여간 이것도 김미희 주임.
서유리사원과 아영팀장 미영대리도 아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이제 그녀들도 대충 무슨 일인지 눈치 첸 것 같다.
“자, 그러면. 뭐 이건 거의 이견 없이 김미희 주임님이 가셔야겠네요. 필리핀으로.”
김미희 주임의 얼굴이 휴지처럼 구겨진다.
“피, 필리핀?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말고?”
“네. 이번에 저희 필리핀에 지사 생겼잖아요. 톤도에. 아시죠. 톤도?”
톤도라는 말에 김미희 주임의 얼굴이 덜덜 떨린다.
“토, 톤도?”
톤도는 사실 필리핀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이다.
필리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삼종리서치 부사장이 렌트비가 싸다는 이유만으로 필리핀 톤도에 지사를 만들었다.
하지만 회사에서 그 누구도 필리핀 톤도에 가고 싶지 않아하기 때문에 회사에서 가장 유능한 인재라는 말로 포장한 가장 쓸모없는 사원을 톤도로 발령 내야 한다.
그래도 엄연히 그 곳에 가면 지사장이기 때문에, 신입사원은 발령을 낼 수 없다.
남자들에게는 너무 위험한 곳이기 때문에 남자 사원도 갈 수 없다.
그렇다면 튼튼하고 쓸모없는 여자 사원들 중에서 한 명이 가야한다.
그래서 고민이 되었던 후보가 김아영팀장과 김미희 주임이었다,
최다정 차장은 운이 좋게도, 오늘 출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후보에서 제외되었다.
뭐, 이런 것도 다 자기 운이지.
톤도라는 말에 서유리사원과 아영 팀장의 얼굴이 얼음처럼 얼어붙는다.
아영팀장이 떨리는 음성으로 나에게 말한다.
“시, 시현씨. 필리핀 톤도라면, 그..... 빈민가 중에 빈민가잖아요. 납치랑 강간이 흉흉하게 발생하고, 낮에도 총 소리가 들린다는 그런 곳인데.........”
“아, 그래요? 저는 전혀 몰랐네. 그런데 뭐 어쩌겠어요. 우리 부사장님이 거기다가 삼종리서치 지사를 만드시는 바람에 누군가 한 명은 가야 하잖아요. 어떻게 팀장님이 가실래요?”
아영팀장이 눈을 내리 깔며 고개를 푹 숙인다.
“아, 아니요. 시현씨. 저는 더운 곳은 질색에다가 채식 주의자에요. 채식주의자! 필리핀 사람들은 채식은 안 먹고 바비큐 스테이크 같은 고기만 먹는다면서요.”
“아, 우리 아영팀장님은 채식주의자구나. 나는 여태 몰랐네. 저번 회식 때 돼지 갈비 잘 뜯어 드시던데?”
“아, 그러니까 얼마 안 되었어요. 채식하기 시작한 지. 그, 소들이 불쌍하잖아요. 아유, 그 불쌍한 것들을 어떻게 먹어요. 나는 진짜 필리핀은 안 되겠어요.”
이번에는 서유리 사원을 바라보았다.
“서유리 사원은 어떻게 생각해요?”
서유리 사원이 불안한지 다리를 덜덜덜 떨면서 말한다.
“저는 공항장애가 있어요. 주인님,.... 아, 아니 시현씨. 저는 비행기타면 발짝하고 기절해 버려요. 진짜에요. 그리고, 아, 그 씨푸드! 그 해산물 같은 거 먹으면 온 몸에 알레르기 생겨서 한 숨도 못자고. 업무도 못 봐요. 아유, 톤도 가고 싶은데, 진짜 사정이 안 되네요.”
서유리 사원........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랍스타에 작년에 친구들이랑 제주도 갔다왔다고 하지 않았나?
제주도는 배타고 갔나?
뭐, 하여간 서유리 사원은 필요하니까 일단 그렇다치고 넘어가자.
모두의 눈길이 거침 숨을 쉭쉭 거리며 몰아쉬고 있는 김미희 주임에게 향한다.
성현대리가 넉살좋게 웃으며 말한다.
“그. 괜찮을 거예요. 김미희 주임님. 필리핀 톤도도 뭐. 다 사람 사는 곳인데요. 가서 봉사도 좀 하시면 좋고. 거기 톤도에는 사람들이 버린 음식을 다시 끓여서 옛날 우리나라 6.25 때 꿀꿀이 죽 만든 것처럼. 쓰레기 음식도 재활용 한다 던데....... 주말에는 불쌍한 사람들도 좀 도와주시고.”
나는 성현대리 말을 거들었다.
“아, 그걸 뭐라고 하더라. 아, 맞다 팍팍(pagpag). 음식물 쓰레기 특성상 요리 전까지 구더기도 생기고, 약품처리도 한 다던데. 김미희 주임님도 한 번 드셔 보셔야겠다. 거기가시면. 봉사활동도 하시고 팍팍 드시면서 현지 체험도 하시고. 얼마나 좋아요? 그래도 조심하세요. 그 벌레퇴치제도 뿌려서 몸에 위험 할 수도 있다고 하니까. 아쉽다. 이제 미희 주임님 회사에서 못 보는 거예요?”
눈치 없는 미영 대리도 끼어든다.
“아, 진짜요? 미희 주임님 필리핀 톤도 가는 거예요? 거기 세계 3대 빈민촌이잖아요. 우리 미희 주임님 어떡해요? 거기 살인 사건도 수시로 일어난다고 들었는데. 진짜 필리핀 톤도로 발령 나면 몸 사리셔야겠다. 얼마 전에 한인 연쇄 납치 사건도 필리핀 톤도 아니에요?”
김아영 팀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 거기가 거기구나. 그, 장기 밀매하고........”
우리의 대화를 듣던 김미희 주임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눈물방울이 맺힌다.
“씨발........ 지금 뭐하는 거예요. 나 거기 안가요. 안 간다고! 내가 필리핀 톤도를 왜 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안 쓰럽다는 눈빛으로 김미희주임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 미희 주임님 말고 적격자가 없잖아요. 필리핀 사람들 주식인 바비큐, 스테이크. 고기도 잘 드시고. 마사지도 좋아하시고. 그리고 뭐 톤도 근처에 바다도 있데요. 쓰레기 바다라 그렇지. 그 가서 힐링 좀 하고 오세요. 가면 지사장 아니에요. 지사장.”
뭐 지사장은 맞지.
직원이 필리핀 현지인 5명밖에 없어서 그렇지.
“시현씨. 나 안 좋아해. 바비큐, 마사지, 해산물 다 안 좋아해. 진짜야. 내가 잘 못했어. 내가 아침에 잘 못해서 그래? 응? 진짜 안 그럴게. 진짜 하지 마. 톤도. 톤도...... 씨발. 진짜 제발 이렇게 부탁해. 나 보내지 마. 내가 잘 할게요. 진짜. 잘할게요.”
나는 나에게 애원하는 김미희 주임을 매정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 김미희 주임님이 안 가면, 다른 사람이 가야 되는데 누굴 보내요? 이은우 상무님이 저한테 오늘 오후 2시 전까지 필리핀 톤도 지사로 발령낼 사람 정해서 보고하라고 했단 말이에요. 거 참. 사람 곤란하게. 김미희 주임님. 비행기도 잘 타. 못 먹는 음식 없어. 미희 주임님 말고 필리핀 톤도 갈 사람이 더 있어요?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가면 스스로 경호 할 수 있게 그 뭐냐. 전기충격기 이런 것도 준데요. 회사에서 다 지원 해 준다니까. 주임님.”
김미희 주임이 거의 얼빠진 사람처럼 소리친다.
“거기 막 총기 합법이라 총 쏘고 칼로 찌르고 그런다는데, 전기충격기 가지고 뭘 어쩌라고! 난 못 가. 절대 못 가. 씨발......... 뉴스 보니까 장기 다 없어진 채로 한국사람 발견 된다 하던데. 전기충격기! 전기충격기가지고 뭘 어쩌라고!!!”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니, 김미희 주임님. 그러면 어떡해요. 우리 회사가 막대한 돈을 투자해서 지사를 만들었는데, 그냥 버려? 누구 하나는 가야지. 안 죽어요. 안 죽어. 그냥 쥐 죽은 듯이 거기서 한 3년만 지나면, 다시 돌아 올 수 있다니까요.”
3년이라는 말에 김미희 주임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며, 몇 달도 아니고. 삼 년! 삼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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