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 김미희주임! 못하겠다고. 했잖아. 왜? 뭐 잘 못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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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화
김미희주임!못하겠다고. 했잖아. 왜? 뭐 잘 못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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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현씨. 잠깐 만 일어나 봐요. 상무님이 부르셔.”
이 목소리는 성현대리다.
아, 성현대리도 출근했나보네.
천천히 눈을 뜨고 멍한 눈으로 성현대리를 바라봤다.
“시현씨. 쉬고 있는데, 미안해. 이은우 상무님이 지금 좀 오라고 하셔.”
“아, 예.......”
자리에서 일어나 이은우 상무님 방으로 갔다.
똑! 똑! 똑!
“누구세요?”
“유시현입니다.”
“아, 예. 들어오세요.”
삐그덕!
문을 열고 들어가자 상무님이 온화하게 미소를 짓고 서 계셨다.
“시현씨, 요즘 회사 생활 어때요?”
“상무님이 배려해 주셔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이, 배려는요. 무슨. 슈퍼스타가 저희 회사를 다니는 게 영광이죠.”
회사에서 유일하게 이은우 상무님만이 내 정체를 알고 있다.
그래서 상무님이 내 편의를 많이 봐 주시고 계신다.
연예인으로 바쁜 스케줄이 있을 때는 알아서 외근으로 처리하고 편의를 봐 주신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로 부르셨나요. 상무님?”
“아, 다른 게 아니라. 곧 저희 회사에서 인사이동 있는 거 아시죠?”
아무리 회사 업무에 관심이 없어도 그 정도는 알고 있다.
우리팀 여자대리들도 인사이동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
곧 정리해고 칼바람이 불 것이라는 말이 많다.
“네. 상무님. 알고 있습니다.”
“네, 그래서 실은 시현씨 부탁 좀 하려고요. 물론 바쁘시겠지만, 시현씨가 우리 사원들에 대해서 가장 객관적으로 평가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또 회사 중역이 아니고 사원이니까 다른 사원들이랑도 거리가 가깝잖아요.”
“네? 무슨 말씀이신지?”
“그, 업무 평가야 뭐 저희가 평가를 할 수 있지만. 사원들 인성이라든가 그 외의 사적인 부분에 대한 평가는 사실 어렵거든요. 그래서 시현씨가 우리 사원들 업무 이외의 부분에 대해서 좀 평가서를 작성해 주셨으면 하는데. 예를 들어 회사의 암행어사? 하하. 뭐 좀 이렇게 말하면 너무 거창할라나? 하여간 그만큼 시현씨를 믿고 있고 권한을 드리려고 해요. 사실 시현씨만큼 회사 내에 아무런 파벌 없이 사원들을 객관적으로 평가 할 수 있는 사람이 없거든요. 꼭 좀 부탁 좀 드릴게요.”
하아.
사실 거절하고 싶다.
사원들 인성평가를 나 보고 하라니.
나한테는 너무 벅찬 일이다.
하지만, 이은우 상무님도 고민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겠지.
여러 부분에서 나를 배려해 주시는 분이니 만큼 거절하기가 어렵다.
그냥 모든 사원들에게 좋은 평가를 내리면 되겠지. 뭐.
“아, 예. 알겠습니다. 상무님. 부족하지만 한 번 해보겠습니다.”
“아이고. 이렇게 고마울 때가. 내가 고민을 한시름 덜었어요. 고마워요. 시현씨. 언제든 곤란한 일 있으면 저한테 말하세요. 알겠죠?”
“네. 알겠습니다. 상무님.”
상무님께 꾸벅 인사를 하고는 개발사업팀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내가 뭐라고 회사의 암행어사가 되어 사원들을 평가 하라고 하시는 건지.
참.......
이은우 상무님은 가끔 엉뚱한 곳이 있으시다.
다시 개발 사업부로 돌아왔다.
아직도 회의중인지 개발사업부에는 아무도 없다.
나는 다시 후드를 뒤집어쓰고 책상에 엎드렸다.
하아.
요즘에 너무 무리해서 활동했나?
자도, 자도 피곤하네.
하긴 매일 거의 3시간 정도밖에 못 자고 활동했으니.
그냥 한동안은 계속 이렇게 쉬고 싶다.
이 평온한 곳에서.......
*
<현재의 유시현,="" 회사="" 옥상=""/>
“그러니까, 누나 말은. 저는 오전에는 거의 업무도 안 보고 책상에 엎드려서 잤다는 말이죠? 오전회의에도 참석 안하고요?”
“응. 정말 기억 안나? 어디 크게 다친 건 아니지?”
“아, 뭐. 다친 건 별거 아니에요. 그것보다 그러면 제가 하는 업무는 뭐였어요? 오늘 아침에 컴퓨터 폴더를 살펴봤는데, 너무 간단한 업무 밖에 없어서요. 제가 원래 맡고 있던 업무 파트가 뭔지를 모르겠어요.”
“시현이가 하던 업무? 그냥 회사 모델로 홍보영상 분기별로 찍고, 사내 모델 정도? 나머지는 시현이가 원할 때 다른 팀원들 도와주는 정도. 사실 시현이는 말이 개발사업부지 우리 개발사업부랑 관련된 일은 거의 없지. 시현씨를 위해서 부서를 하나 만드는 건 좀 그러니까 이은우 상무님이 시현씨를 우리 부서로 배치 한 거지. 진짜 머리 크게 다친 건 아니지? 원래 하던 업무도 기억 안 날 정도면.......심각한 거 아니야? 병원에는 가 봤어?”
“아, 예. 네 병원에서도 별거 아니래요. 일시적인 기억상실이에요.”
윽. 거짓말 하려니 조금 양심에 걸리긴 하지만 다른 방법은 생각이 안 난다.
“응. 그래도. 조심해. 부작용이 있을수도 있고.”
“네, 누나. 아 그리고 혹시 JYK가 누군지 알아요?”
미영대리가 전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글세. 전혀 모르겠는데.......”
역시 미영대리에게서 이세계 유시현의 비밀카통에 대한 단서는 찾기 힘들었다.
“알겠어요. 누나. 그건 됐고. 오늘 우리가 나눈 대화는 누나하고 나만의 비밀인 건 알죠? 다른 팀원들이 알면 골치 아파져요. 누나를 제일 믿으니까 누나한테만 말한 거예요.”
누나를 제일 믿는다는 말에 미영대리가 기분이 좋아졌는지 밝게 대답했다.
“응. 당근이지. 걱정 마. 아무한테도 얘기 안할게.”
“알겠어요. 누나 먼저 내려가 보세요. 저도 좀 이따 내려갈게요. 둘이 같이 내려가면 다른 년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요.”
“응. 알겠어. 그런데....... 나는 시현이가 다른 팀원들과 사이좋은 줄 알았는데, 아닌 가봐?”
“제가 다른 팀원들이랑 사이가 좋았다고요?”
흐음.
뭐 하긴 이세계의 유시현과 이세계의 팀원들이었다면 사이가 좋았을 수도 있겠다.
남녀역전 세계에서의 유시현은 팀원들에게 귀여움 받고 회사생활을 했을 수도 있으니까.
이세계의 미영대리만 봐도 나쁜 사람처럼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 다른 팀원들도 그랬겠지.
하지만 지금의 유시현은 예전의 유시현은 다른 사람이다.
외형만 똑같을 뿐 안에 있는 알맹이는 완전히 다르다.
그리고 미영 대리를 제외한 다른 팀원들 역시 마찬가지다.
어떠한 이유로 그녀들이 이세계로 빙의되어 왔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당한만큼 철저히 갚아주고 조련 할 거다.
그리고 그래야만 내가 이 세계에 남아 있을 수 있다.
다시 그 지옥 같은 개한민국으로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
"뭐, 그랬을 수도 있겠네요. 하여간 누나는 신경 쓰지 말고, 다른 팀원들 감시나 잘 해서 보고해 주세요. 그래야 누나가 이번 인사개편 때 살아남는 거 알죠?”
“어? 으응. 걱정하지 마. 시현아. 그럼 나 내려간다.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 물어봐. 몸조심 하고.......”
멀어져 가는 미영대리를 보며 혼자 생각에 잠겼다.
그러니까 이 세계의 유시현은 개발사업부에서 프리한 위치였다는 거구나.
심지어 회사에서 잠을 자도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미영대리의 말대로라면 나 유시현은 책상만 개발사업부에 있는 거다.
실제 업무는 회사의 홍보모델이다.
하지만 모델 일이 얼마나 자주 있겠는가?
그냥 홍보 비디오 찍을 때 또는 사보 만들 때나 좀 바쁘겠지.
그리고 회사에서 컨퍼런스 같은 거 할 때 얼굴 마담 쯤 하면 되려나?
그러니까 평소에는 그냥 멍 때리면서 가끔 심심 할 때 잡무나 보는 꿀 보직이다.
하아.
회사에서의 위치 자체가 현세계의 유시현이랑은 너무 차이가 났다.
현세계의 유시현은 모든 업무를 커버해야 하는 좆같은 신입이었다.
뭐 덕분에 다른 팀원들이 하는 업무를 대충은 다 알고 있다.
그럼 이 위치를 이용해서 어떻게 해야, 팀원 씨발년들을 더 괴롭히고 조련 할 수 있을까?
어찌 보면 정해진 보직이 없는 만큼, 더 괴롭히기 좋을 수도 있다.
알짱알짱 거리면서 숨통을 조이자.
씨발년들이 짜증나서 스스로 급발진 할 때 까지.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회사가 더 재미있어 질 것만 같다.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띵!
엘리베이터를 타고 개발사업부로 돌아왔다.
팀원들은 열심히 맡은 업무를 하고 있었다.
미희주임이 눈치를 살짝 보며 나에게 다가왔다.
“시현씨 지금 하는 거 없지? 우리 창고 정리해야 하는 데, 이거 원래 시현씨가 하던 일이잖아. 해 줄 수 있지?”
김미희 이 씨발년은 역시 뇌절녀라 그런지 학습능력이 제로 구나.
창고정리를 하던 유시현은 현세계의 유시현이고요.
지금 여기는 남녀가 역전된 세계이거든요.
마침 심심했는데 잘 걸렸다.
이 씨발년아.
어디 좀 가지고 놀아 보자.
“창고 정리요? 일단 같이 가시죠.”
“응. 시현씨. 비품 있는 창고알지? 오늘 그거 다 정리해야 하거든. 내가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 알려줄게.”
나는 아무 말 없이 미희주임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또각 또각!
미희주임이 걸을 때 마다 구두소리가 울린다.
오늘도 미희주임은 적어도 굽이 10cm 정도는 되어 보이는 비싼 명품 구두를 신고 회사에 왔다.
저런 게 신고 다니면 발이 안 아프나?
거 참.
무슨 회사까지 저런 걸 신고 와?
봐줄 사람이 누가 있다고.
미희 주임과 나는 어두운 비품 창고에 도착했다.
“시현씨, 여기 있는 박스 다 풀어서 비품들 정리하고. 저기 아래 무거운 것들 차곡차곡 쌓아서 공간 좀 만들어줘. 남은 공간에 생수통 배달 오면 그거 받아서 옮기면 되고. 점심시간 전에 끝내 줄 수 있지?”
미친년.
이건 현세계의 유시현이라고 해도 적어도 3시간은 걸리는 일이다.
무슨 막노동꾼도 아니고.
혼자서 저 작업을 다 하려면 허리 다 나간다.
나는 가만히 미희 주임 옆에 서서 그녀가 하는 말을 경청했다.
그리고 무심하게 말했다.
“아. 힘든 일이네요. 저는 못 하겠어요. 미희 주임님 열심히 하세요. 다 하려면 시간 좀 걸리겠다.”
미희 주임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시현씨, 지금 뭐라고 그랬어? 지금 못하겠다고 한 거야? 내가 잘 못 들은 거 아니지?”
미친년.
지랄을 하시네요.
그런 개수작은 원래 있던 개한민국에서나 떠시고요.
여기는 자랑스러운 남녀역전 대한민국이라 안 통하거든요.
입가에 미소를 띤 체 미희 주임을 똑바로 바라보며 팔짱을 끼었다.
“아니, 제대로 들었는데? 못하겠다고. 했잖아. 왜? 뭐 잘 못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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