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 최다정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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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화
최다정 차장
메스커뮤니케이션의 이론 중에 침묵의 나선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침묵의 나선 이론이란, 새로운 생각에 당면했을 때 각자 재빠른 판단을 하는데(quick check, or quick assesment),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유사 통계적 감각기관(a quasistatistical sense organ)에 의해 자신이 판단한 생각이 그 의견을 지지하는 것이면 더욱 자신 있게 말하고, 그렇지 않으면 침묵하여 양방의 결속이 '침묵의 나선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A
B
C
X
4개의 선이 있다. 어떤 선이 선 X와 길이가 똑같은가? 정답은 명백하게 A다. 그러나 실험 집단을 만들어 정답이 B라고 입을 맞추자고 약속한 뒤 한 사람을 그 실험 집단에 투입시켰을 때 그는 매우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분명히 A가 정답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주위 사람들이 모두 B라고 대답하게 되면, 만약 내가 A라고 말하면 이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내게 화를 내지 않을까, 아니면 더 나아가 나를 조롱하지 않을까 걱정에 빠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심리적 과정은 어떤 특정 국민들에게 나타나는 특징이 아니라 대다수 사람들이 집단 압력에 직면하게 될 때 경험하게 되는 불안 심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회의실 안에 있는 최다정 차장.
그녀가 침묵의 나선효과 이론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그녀는 곤란에 빠진 서유리를 돕고 싶었다.
회사에서 서유리는 그녀와 나름 단짝이었다.
하지만 팀원들이 모두 그녀를 무시하고 있다.
심지어 서유리를 그렇게 예뻐하고 있던 아영팀장 마저 생리 스트레스를 서유리에게 풀고 있다. 내가 여기서 서유리를 두둔하고 나선다면?
나 역시도 팀원들에게 찍히는 건 아닐까?
혹시라도 왕따 당하는 건 아닐까?
불안하다.
괜히 서유리를 도왔다가 불똥이 나한테 튀면 감당할 자신이 없다.
남녀가 역전된 세계에서 회사의 룰은 남자에게 유리하다.
아니 회사뿐만이 아니다.
사회체계와 법이 그들의 편이다.
서유리를 돕다가 남녀역전 세계의 유시현과 다툼이라도 생긴다면.
앞으로 회사생활이 껄끄러워 진다.
언제 어떤 꼬투리를 잡아서 날 괴롭힐지 모른다.
아니 꼬투리뿐만 아니라 아예 파멸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
감사팀 이수아 차장은 연차문제로 주환사원과 다투었다가 회사에서 해고 되고 재판까지 받는다. 회사에서 해고당하고, 심하면 감옥까지 갈 수 있다.
이세계의 유시현.
저 새끼와 문제가 생긴다면 저 새끼는 충분히 나를 파멸로 몰아넣을 새끼다.
아니 그러고도 남을 새끼다.
현세계의 유시현은 우유부단하고 병신 같은 새끼였다.
하지만 이세계의 유시현은 카리스마 있고 똑똑하다.
그와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다.
한 번 부정적인 생각을 하기 시작하자 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
“최다정 차장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세요?”
“예.. 예?”
오전회의가 끝났는데도 최다정 차장이 자리에 앉아서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장난 좀 쳤다.
마침 할 말도 있고.
상념에 빠져있던 최다정 차장이 내 얼굴을 보고는 놀란 토끼처럼 깜짝 놀랐다.
“아니에요. 시현씨.”
“아, 예. 혼자 상념에 깊이 빠져 있길래 무슨 고민있나 했네. 그나저나 다정 차장님 오늘 저녁에 시간 있어요?”
“오늘 저녁에요?”
“네. 왜요? 저녁에 바빠요?”
최다정 차장의 얼굴에 곤란함이 가득하다.
“뭐. 바쁘면 할 수 없고요. 오랜만에 차장님이랑 오붓하게 술이나 한 잔 할까 했죠.”
“아, 저 그게......”
씨발년.
회사 끝나고 따로 보자고 했다고, 이렇게 쩔쩔 매는 모습은 처음 본다.
항상 남자 사원들을 손안에 쥐고 가지고 놀던 년이었는데.
“어어? 진짜 싫은가 보네. 아 싫으면 말아요.”
살짝 삐진 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다정 차장이 가녀리고 하얀 손으로 나를 붙잡았다.
“마, 만나요. 회사 끝나고.”
최다정 이년도 제법 눈치가 있네?
상황파악 좀 되는가 보지?
회의실을 둘러보았다.
나와 최다정 차장 밖에 없다.
“네, 그러면 회사 끝나고 다래정으로 곧장 와요. 거기가 프라이빗 룸이 있어서 술 마시기 편하더라.”
“프라이빗 룸이요?”
최다정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그녀의 검은색 생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귓가에 속삭인다.
“왜요? 저랑 프라이빗한 공간에 있기 싫어요?”
최다정 차장의 섹시한 얼굴에 당혹감이 서린다.
맹수에게 쫒기는 사슴 같은 표정이다.
최다정 차장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가며 더듬는다.
피아노를 치듯 그녀의 쇄골을 타고 부드럽고 능숙하게.
최다정 차장의 호흡이 거칠고 빨라진다.
“시, 시현씨.”
그녀가 내 손을 붙잡는다.
나는 악마처럼 웃으며 내 팔을 붙잡은 그녀의 손을 밀쳐 낸다.
그리고 계속해서 손을 그녀의 탱탱하고 풍만한 하얀 가슴이 있는 곳으로 리드미컬하게 움직인다.
“회. 회사에서. 이러면 안 돼요........”
나를 바로 보는 그녀의 얼굴이 수치심에 달아올랐다.
그러면서도 더 이상 반항은 하지 않는다.
씨발년.
존나게 밝히네.
안된다고 하면서 몸은 그게 아니다.
그녀의 가슴이 흥분해서 탱탱하게 바짝 섰다.
탄탄한 허벅지에 힘을 꽉 줬는지 덜덜 떨린다.
아마 그녀의 은밀한 부분은 꽉 조여지고 질퍽하게 젖었을 거다.
그녀의 가슴언저리를 손으로 부드럽게 쓸어간다.
그녀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져 간다.
내 숨결이 그녀의 목에 닿을 정도로 가까워 졌을 때.
그녀의 풍만하고 탱탱한 가슴에 거의 닿을 듯 안 닿을 듯 하던, 손을 부드럽게 그녀의 블라우스 위로 움직였다. 그리고 거의 가슴이 보일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풀려있던 그녀의 블라우스의 하얀색 단추를 채우며 속삭였다.
“다정씨, 감기 걸리겠다. 아무리 여름이라도 회사는 에어컨 때문에 춥잖아. 안 그래?”
“네, 네....”
최다정 차장이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살짝 미소를 지으며 최다정 차장을 바라보고는 회의실 입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럼 이따가 다래정에서 봐요. 최다정 차장님.”
최다정 차장이 대답하는 것도 잊은 체 멍한 얼굴로 사라져가는 나를 바라본다.
*
“최다정 차장이랑 무슨 얘기를 둘이서 그렇게 오래 해?”
성현대리가 회의실에서 나오는 나를 보며 궁금한지 묻는다.
“아니에요. 대리님. 그냥 뭐 심심해서 최다정 차장한테 장난 좀 쳤죠.”
“아휴, 적당히 해라. 야. 그 미친년 남자 잡아먹는 불여우인거 모르냐?”
“에이. 대리님. 그거는 현세계에 있을 때 얘기고요. 지금은 다르죠. 씨발년이 남녀가 역전된 세계에서 뭘 할 수 있겠어요. 아까 사무실에서 엉덩이 만지는데도 가만히 있는 거 못 보셨어요?”
“봤지. 씨발. 나도 존나 꼴리더라. 그 야한년 오히려 시현씨가 엉덩이 만져주니까 존나 흥분한 것처럼 보이던데.”
“뭐, 여자라고 성욕 없겠어요? 그런데 그년은 존나 걸레여서, 평범한 곳에서는 흥분 안 되고, 공개된 장소에서 성추행쯤 당해야 보지가 좀 촉촉이 젖나 봐요? 변태 같은 년. 그나저나 유리씨는 아직도 안 왔네요? 회의 끝났는데.”
성현대리도 그제야 유리씨가 음료수를 사러 간지 한참이 흘렀는데도 아직 회사로 안돌아 온 것이 이상했나 보다.
“아마 미희 주임이 스탈벅스 주문해서 그런 거 아닐까? 스탈벅스는 음료 테이크아웃 하는데 시간 좀 걸리잖아.”
“아, 하긴요. 요즘 스탈벅스에 사람 많더라고요. 그나저나 진짜 그 김미희 또라이년. 아무리 그래도 거기서 스탈벅스를 사오라고 시켜요. 그것도 유리씨 돈으로 산다니까 제일 큰 사이즈로 메뉴도 바꾸고. 진짜 같은 편 팀킬 하는 거 쩔든데요. 뇌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그러게 말이다. 나도 식겁하더라. 김미희 그 년은 신이 외모로만 몰빵 했나 봐. 우리 회사는 어떻게 입사했는지 몰라. 그 닭대가리로.”
“뭐, 현세계에서야. 어떻게 빽 만들어서 낙하산으로 들어왔겠죠. 머리는 텅텅 비었는데, 또 그런 쪽으로는 미희 주임이 머리가 잘 돌아가잖아요.”
“거, 참 신기해. 그런 것 보면 공부하는 머리. 일하는 머리. 잔머리. 다 따로 따로 있나 봐.”
“제 말이요. 유리 씨발년은 잔머리에 신이 몰빵 했잖아요.”
그때,
서유리의 실루엣이 유리문 사이로 보였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었는지 제법 씩씩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죄송해요. 스탈벅스 사람이 많아서 좀 늦었습니다.”
다시 서유리 갈구기 시작 해 볼까?
“아, 나는 유리씨가 커피를 만들어서 오는 줄 알았네. 유리씨가 음료수 사온다고 농땡이 피우고 늦게 와서 오전회의 다 끝났어요.”
또 존나 억울해 하면서 씨부렁 되겠지?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서유리가 나를 향해 90도로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미안해요. 시현씨. 다음부터는 일찍, 일찍 다닐게요. 죄송합니다.”
입가에 웃음이 퍼졌다.
서유리 씨발년도 남녀역전 세계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혼자서 성질내고 반항 해봤자.
돌아오는 건 무시와 질책뿐이다.
씨발 페미년들도 사회가 정한 환경과 법을 거스를 수 없다.
그러니까 다른 여자들처럼 억울해도 남자들한테 눈 깔고 회사생활 하던가.
도태되어 해고당할 뿐이다.
그리고 서유리는 좆같아도 남자에게 유리한 회사 환경에 적응하는 것을 택했다.
그 증거로 90도로 고개를 숙이고, 정수리를 보이며 내게 충성하고 있다.
이 회사는 엑스페리먼트라는 영화 속의 감옥과 다를 봐 없다.
다만 감옥이 회사로 바뀐 것뿐이다.
나는 그녀들의 간수고, 저 년들은 내 죄수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저 미친년들이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하게 철저히 조교시키는 것이다.
간수로서의 사명을 다한다.
띠링!
귀에서 상쾌한 소리가 울린다.
나에게만 보이는 창이 뜬다.
걸레 조련도: [숏 컷 머리 50% 완료] [최다정 차장 5% 완료][이미영 대리 10% 완료]
[서유리 5% 완료]
남녀가 역전 된 세계에서의 회사 생활 첫날.
시작이 상쾌하다.
마치 얼음 잔에 담긴 사이다를 시원하게 들이 킨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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