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 유시현 악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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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화
유시현 악마.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미영대리의 목을 조였다 풀었다를 반복해야 한다.
“그래서 말인데 누나. 누나랑 우리가 협조해서 그년들 엿 먹이는 게 어때? 사실 나랑 성현이형도 그 년들 재수 없었거든.”
“여, 엿 먹인다고? 어떻게?”
망설이지만 관심이 있다.
하긴 원래 사회가 그런 거다.
약육강식의 세계.
다른 사람을 짓밟아야 자기가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려면 누나가 우리를 좀 도와줘야 하는데.......”
“도와주라고? 어떻게 내가 도와야 하는데? 너무 곤란한일은 좀 그런데.”
미영대리가 한 발짝 뒤로 물러서려고 한다.
당연하다.
도와주라는 말은 보통 자신에게 하기 힘든 일을 부탁한다는 말이다.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먼저 든다.
“아, 누나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야. 진짜 간단해. 누나한테 피해도 안 가고. 이게 다 우리가 누나 도와주려고 하는 일인데. 진짜. 일단 말이나 들어봐. 내 말 듣고 곤란할 것 같으면 안 해도 돼.”
미영대리에게 선택권을 준다.
무조건 도와줘! 라고 말하는 것과 일단 말이라도 들어 봐! 는 어감의 차이가 크다.
흥미로운 정보만 듣고 발을 뺄 수 있다.
자신에게 손해 볼 것이 전혀 없다.
“그래, 일단 말이나 해봐. 말 듣는 거야 뭐. 어려울 게 있나.”
“그러니까 누나는 그 개년들이랑도 친하잖아. 그치?”
“어? 아니야. 친하기는. 무슨. 그 씨발년들이 언제 나 사람취급 하는 거 봤어? 나이 많고 상용직이라고 지들이 나를 얼마나 왕따 시키는데. 앞에서만 호호 거리는 거지.”
미영대리가 우리와 같은 편이라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다른 여직원들을 까기 시작했다.
“아, 진짜? 누나가 그년들한테 그렇게 잘 해 주는데, 누나를 왕따 시켜? 씨발년들이네.”
“아, 진짜. 씨발년들. 특히 서유리 그 썅년. 나이도 어린 게. 아영팀장한테 잘 보이려고 얼마나 여우짓 하는데. 나는 개 무시 하면서.”
상대가 마음을 열고 안에 담아놓고 있던 것을 쏟아내기 시작 할 때는 리액션이 중요하다.
“아, 사실 나도 그 여우 같은 년 진짜 마음에 안 들었어. 씨발. 누나가 결혼만 일찍 했으면 그 년 만한 딸이 있을 텐데. 누나를 무시해? 와 진짜 그 년은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은 거야. 미친년. 진짜.”
“최다정 차장. 그 창년은 또 어떻고. 회사가 무슨 룸싸롱이야? 옷은 아주 그냥 야시시 한 것만 입고 다니면서. 남자직원들한테 꼬리는 존나게 처요. 아예 벗고 다니지. 씨발년.”
한 번 물고가 터지자 거침없이 계속해서 정규직 여직원들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빙고!
제대로 골랐다.
“누나. 그래서 말인데. 그 씨발년들이 만든 카통 단통방에 누나도 들어가 있지?”
“어? 그... 그게 뭔데?”
미영대리가 당황한다.
우리팀 회사 여직원들만 회원인 비밀 단톡카통방.
남자직원들을 헐뜯고, 자기들만의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만든 남자는 배제된 단통방이다.
사회에서 정보는 곧 힘이다.
현세계에서도 있었으니 이세계에도 있을 거다.
“아, 이미 다 알고 있어. 아. 진짜 서운하다. 나는 누나가 우리 편인 줄 알았는데. 모른 척 할 거야?”
미영대리가 짧은 순간 나를 유심히 본다.
그냥 찔러보는 건지.
아니면 확실히 여자단통방을 내가 알고 있는 건지 확인하려는 눈초리다.
“성현이형도 다 알고 있어. 그거 모르는 직원이 어디 있어? 그치 형?”
“어, 아, 알지.”
성현이형이 눈치 있게 장단을 맞춰준다.
“아, 미안. 미안. 그 카통 단통방. 모르는 척 했던 게 아니라. 그게 나름 우리끼리는 비밀이었던 거라. 그런데 보니까 다른 직원들도 다 알고 있는 거 같네. 아, 진짜. 미안해. 시현아.”
“아, 누나 입장이야 이해하지. 그런데 누나. 또 거짓말 하면 나랑 성현이형도 누나 도와주려던 마음이 사라질지도 모르잖아. 나랑 성현이형은 누나랑 회사 오래오래 같이 다니고 싶은데 말이지.”
지금은 미영대리의 목을 조여야 한다.
철저하게 을의 입장이 되도록.
미영대리의 이마에서 땀이 흐른다.
나와 성현대리에게 신뢰를 잃으면 무조건 다음 인사평가 때 회사에서 해고당한다.
불안하다.
위기감이 든다.
“누나. 사실 그 년들이 단통카통에서 나랑 성현이형 빼고 정보 공유하잖아. 그치? 아 그럴 때마다 나랑 성현이형이 얼마나 서운하겠어. 안 그래 누나?”
“그, 그렇지. 씨발년들 진짜. 어떻게 우리 시현이랑 성현대리를 빼놓고 정보 공유를 해. 나는 진짜 반대했어. 시현씨랑 성현씨도 다 같이 알아야 한다고. 알지 내 마음?”
걸렸다.
내 거미줄에.
완벽하게.
“그러니까! 그래서 우리는 누나가 그 정보들 우리한테도 공유 해 주었으면 좋겠어. 사실 누나는 우리하고도 다 공유하고 싶잖아. 그치?”
“아....... 그 정보를 공유해 달라고?”
곤란하겠지.
정보를 공유하다가 들키면 배신자로 낙인찍힐 텐데.
지금도 왕따 당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그건 우리한테 잘 보이려고 한 말이다.
하지만 정보를 빼돌리다가 들키면?
그때는 진짜 여직원들 사이에서 왕따 당한다.
여기서 결정적인 한 방이 필요하다.
“누나. 잘 생각해봐. 누나가 회사에서 해고당하면. 여직원들하고 잘 지내는 거?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누나는 회사 해고당해서 뒤질 것 같은데. 그 씨발년들이 누나 신경이나 써줄 것 같아? 그 자기들밖에 모르는 개 같은 년들이? 그리고 누나도 알다시피 누나가 다음 분기 때 우리팀에서 해고당할 직원으로 가장 유력한 후보잖아.”
숨이 턱턱 막히게 목을 조이는 거다.
질식해서 뒤지기 전까지.
“그렇지. 그 씨발년들은 회사 잘 다니면서 내 뒷다마나 존나 까겠지.........”
흔들리고 있다.
그럼 여기서 꽉 조였던 목줄을 풀어준다.
“하지만! 나랑 성현이형이 도와주면. 해고당하는 건 그 개년들 중에 하나지. 누나는 아니잖아? 어때? 누나도 우리 도와 줄 거지?”
미영대리의 눈동자가 오른쪽 위를 향한다.
나름 가설을 세우고 불투명한 미래를 위해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머리를 굴리고 있다.
하지만 이미 정답은 정해져 있다.
지금 상황에서는.
“그, 그래. 시현아. 에이. 까짓 거. 할게. 시현이랑 성현대리한테 비밀 카통방 정보 공유한다. 내 마음 알지? 그 씨발년들이 우리 시현이랑 성현대리 빼 놓고 정보공유 하는 거 예전부터 마음에 안 들었던 거.”
“알지. 누나. 고맙다. 진짜. 누나 결정 진짜 잘 한 거야. 그 씨발년들 라인 타봤자. 누나한테 도움 되는 거 하나도 없는 거 알지? 이제 누나는 우리팀이다. 알지?”
“어. 알지. 시현아 진짜 고맙다. 성현대리 진짜 잘 부탁해. 부탁할 거 있으면 언제든 말만해. 내가 다 할게. 회사에서야 내가 시현씨 성현대리보다 오래 일했지만, 지금 우리 사적인 모임에서는 내가 막내잖아. 모든 다 열심히 할게. 진짜.”
예상보다도 쉽게 미영대리가 우리를 위해 일하는 스파이 겸.
충실한 개가 되었다.
“누나, 우리가 같은 팀인 건 맞지만, 여자들하고도 잘 지내야 해. 그래야 우리한테 유리한 정보를 쏙쏙 빼올 거 아니야? 그러니까 회사 안에서는 평소처럼 시현씨, 대리님으로 지내고. 이런 사적인 모임에서는 누나, 동생 하는 거다. 알지?”
“어, 잘 알지. 걱정하지 마. 내가 그 씨발년들 사이로 싹~ 파고들어서 정보 다 빼와서 우리 시현이 성현대리랑 다 공유 할 거니까.”
“그래그래. 알았어. 누나. 진짜 든든하다. 우리 이번 주 수요일에 회사 끝나고 사적인 모임 한 번 갖자. 우리 미영누나 환영회 겸. 술도 한 잔 하고. 노래방도 가고. 좋지 누나? 성현이형도 괜찮지?”
성현대리가 존나 똥씹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 가, 가자 가.”
미영 대리는 흥분했다.
새로운 사적인 모임의 일원이 된 것이 기뻐 보인다.
더불어 가장 큰 걱정이던 다음 분기 해고 문제도 지금은 해결 된 것으로 보일 테니.
“아, 진짜 고마워. 시현아. 성현대리.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앞으로 진짜 나만 믿어!”
“알겠어. 누나. 아. 그리고 누나는 이제 그만 내려 가봐. 다른 팀원들이 의심하겠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앞으로 진짜 잘 부탁해.”
미영대리가 시계를 보고 옥상 계단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완벽하게 거미줄에 걸린 게 아니다.
지금 당장은 분위기에 휩쓸려 하겠다고 했지만.
막상 여자들 사이에 섞이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누나!”
나는 큰소리로 미영대리를 불렀다.
“어! 시현아. 왜?”
핸드폰을 보여주며 흔들었다.
“누나, 우리 방금 전에 말한 거 다 녹음했는데, 괜찮지? 어차피 누나 생각 안 변할 거잖아.”
미영대리의 얼굴이 싹 굳었다.
설마 내가 녹음까지 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 한 거다.
하지만 이미 거미줄에 발을 들여놨다.
돌이킬 수 없다.
“어, 그럼. 괜찮지. 나 내려 가볼게.”
계단으로 향하는 미영대리의 발걸음이 힘이 없어 보인다.
완벽하게 족쇄가 채워졌으니.
무겁겠지.
성현대리가 나를 바라보며 혀를 내 두른다.
“야, 시현아.”
“네. 대리님.”
“너, 군대에서 별명 뺀질이 아니지?”
“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에요? 대리님.”
“야, 너 지금 사람 다루는 거 보니까 완전 악마다 악마. 빈틈없이 사람을 노예로 만드네. 너 이제부터 회사에서 별명은 유시현 악마. 이걸로 하자. 어때?”
“아, 대리님! 진짜. 다 저희 그만 당하려고 머리 쓴 거죠. 생각해 보세요. 미영대리 빼고 나머지 씨발년들은 형이랑 저처럼 현세계에 있다 이세계로 빙의 된 것 같은데. 저 여우같은 썅년들이 그냥 나 몰라라 하고 당할 년들이에요? 어떻게든 회사를 또 자기들 방식에 맞게 유리하게 바꾸려고 하겠죠.”
성현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시현씨 말도 맞기는 하네. 시현데빌님.”
“아, 대리님. 진짜 그만 놀리시라니까요. 에이.”
말로는 싫다고 했지만, 사실 그렇게 듣기 싫은 별명은 아니었다.
악마라.
어차피 사회는 치열한 생존경쟁의 연속이다.
어중간하게 착한 녀석 보다는 차라리 완벽한 악마가 되는 게 낫다.
아무도 감히 나를 넘볼 수 없도록.
다시는 현세계에서와 같이 바보처럼 살지 않으려면 그 정도 각오는 있어야겠지.
아무리 법이 남자에게 유리해도 준비가 없으면 당한다.
아예 씨발년들이 끼어들 여지를 주며 안 된다.
철저하게 감독하고 조련시켜야 한다.
그 년들의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이 노쇠하고 뭉툭하게.
완벽하게 조련 될 때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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