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 거미줄에 걸린 미영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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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거미줄에 걸린 미영 대리
최다정 차장의 얼굴에 수치심에 붉게 물들었다.
숨소리가 가빠진다.
나를 쳐다보는 눈빛에 망설임과 설렘이 가득하다.
분명 직장 부하 직원에게 공개적으로 성희롱을 대 놓고 당했다.
그런데 화내야 할지 좋아해야 할지 모르는 얼굴이다.
공개적인 장소.
부하직원.
성희롱.
모든 것이 부조리한 조화이다.
배덕감 때문인지 그녀의 허벅지가 가볍게 떨린다.
모르지만 그녀의 보지는 축축하게 젖었을 거다.
“앞으로는 조심하세요. 성현대리.”
성현대리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그리고 내손을 꽉 잡으며 속삭인다.
“시현씨.”
일부러 그녀가 더 가까이 몸을 밀착시킨다.
시원하면서 신비로운 오묘한 향수냄새가 오감을 자극시킨다.
“시현씨...... 남자다워졌네.”
걸어간다.
최다정차장의 하이힐에서 또각또각 소리가 난다.
자리에 앉는다.
조교에는 당근과 채찍이 필요하다.
당근만 주면 매력을 못 느낀다.
조련자가 아니라 호구가 된다.
날카롭게 말했다.
“차장님!”
“네. 네?”
당황한 목소리로 최다정 차장이 대답한다.
“앞으로 회사에 늦지 마세요. 5분 지각도 지각입니다.”
최다정 차장이 야릇한 눈빛으로 나를 본다.
“네. 주의 할게요. 시현씨.”
띠링!
귀에서 소리가 울린다.
나에게만 보이는 창이 뜬다.
걸레 조련도: [숏 컷 머리 50% 완료] [최다정 차장 3% 완료]
“시현씨, 잠깐 담배타임 콜?”
나에게만 보이는 창을 닫았다.
굳이 말로 안 해도 생각만으로 가능하다.
“아, 네. 대리님.”
회사 옥상으로 올라갔다.
장소가 바뀐 건 없다.
다만 현세계에서는 옥상이 남자들의 아지트였다면 지금은 여자들의 아지트다.
사람이 별로 없는 한적한 곳으로 갔다.
어제 쇼핑몰에서 산 전자담배를 꺼냈다.
“어? 시현아. 너 전자담배로 바꿨어?”
“아. 예. 이세계로 오면서 입맛이 바뀌었는지. 담배가 역하더라고요. 어제 펴 봤는데 전자담배가 달달하니 입에 맞네요.”
“그래? 하긴 나도. 담배 피긴 피는데 예전 맛은 안 나더라. 야! 그리고 네 말대로 입맛이 여자 입맛이 됐나봐. 다크초코 프라프치노가 맛있더라? 현세계에 있을 때는 그냥 줘도 안마시던 건데.”
“형! 말도 말아요. 저는 민초단 되었다니까요. 현세계에 있을 때는 보기만 해도 토 나왔는데.”
“민초단? 민트초코? 으....... 그건 좀 심하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니야. 야, 그것 보다 너 아까 최다정 차장이랑 무슨 얘기를 그렇게 속닥속닥 거린 거냐? 그 미친년이 갑자기 고분고분 해 졌던데. 궁금해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담배타임 요청 한 거지.”
“아, 뭐 별거 없어요. 그냥 당근 좀 줬다가 채찍질 해 줬죠.”
“뭐? 당근? 채찍?”
“예, 뭐 그런 게 있어요. 최다정 차장은 앞으로 제가 전담해서 교육시킬 테니까요. 대리님은 아무 걱정 마세요. 최다정 그 씨발년이 아주 제 구두를 혀로 핥으면서 오줌 지릴 때까지 조련시켜 버릴 테니까요. 아 그리고. 대리님.”
“어?”
“그 제가 한 명 더 저희 담배타임에 초대 했는데. 괜찮으시죠?”
“어. 누구? 동철이형?”
“아니요. 그게 아니라 앞으로 함께 할 저희의 든든한 동반자요. 마침 저기 오네요.”
성현대리가 내 가리킨 손가락을 향해 눈을 돌렸다.
마치 자로 대고 자른 것처럼 일자로 자른 앞머리를 휘날리며 한 사람이 걸어왔다.
“시현씨? 저 왔는데요? 어. 성현대리도 계시네요?”
“아. 예. 미영대리?”
성현대리가 내 귀에 대고 작게 말했다.
“야. 저 처키는 여기 왜 부른 거야? 불편하게.”
“형. 미영대리님께 처키라니요. 앞으로 저희를 많이 도와주실 분인데. 그냥 보고 계세요. 담배나 한 개 줘 봐요.”
“어? 어.”
나는 성현대리한테 받은 담배를 미영대리에게 건넸다.
“회사 생활 많이 힘드시죠?”
“아, 아니요. 힘들기는요. 이거 저 피우라고 주는 거예요?”
“아. 네. 여기 저랑, 성현대리님. 미영대리님 말고 다른 사람 있나요? 편하게 피우세요.”
“아. 예. 고마워요. 시현씨.”
과연 미영대리는 꼴초다.
담배를 받아서는 능숙하게 입에 물었다.
틱!
라이터로 담뱃불을 붙여 줬다.
후우~
미영대리가 맛깔나게 담배를 피기 시작했다.
일단 1차 작업은 끝났다.
이제 슬슬 미끼로 엮어볼까?
“다름이 아니라. 저랑 성현이형이 미영이 누나 믿고 있는 거 알죠?”
“네? 누나요?”
“아. 예. 이런 사적인 자리에서는 다 형, 누나 하는 거죠 뭐. 안 그래요. 성현이형?”
성형대리가 어색하게 웃었다.
“어. 그. 그렇지. 시현아.”
미영대리가 어색하게 웃었다.
아직 분위기 적응이 안 되겠지.
곧 적응하게 될 거야.
“아 실은. 미영누나 아직 애인 없으시죠?”
“애인이요?”
미영대리의 쭉 찢어진 눈이 커졌다.
현세계에서도 얼굴이랑 몸매가 병신이라서 애인이 없던 미영대리다.
남녀 비율이 10대 1인 이세계에서 애인이 있을 리가 없다.
“아이 제 주제에 무슨 애인이에요. 그런데 그건 왜요?”
그래.
이미영 대리.
군침 싹 돌겠지?
미영대리의 나이는 벌써 마흔 살이다.
현세계라면 여자가 나이 마흔에 중소기업에서 대리로 일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이세계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나이 마흔인데도 여자가 일을 해?
대견하다.
라는 평가가.
나이 마흔에 고작 중소기업 대리야?
그것도 상용직?
그래서 결혼은 어떻게 한데?
라는 평가로 달라진다.
“제가 아는 형 중에 괜찮은 형이 있는데. 요즘 외롭다고 해서요.”
슬쩍 동철차장과 술집에서 찍은 핸드폰 사진을 본다.
"이 형인데요.”
일부러 미영대리에게 바로 보여주지 않는다.
핸드폰 화면을 내 쪽으로 향한다.
하지만 미영대리에게도 살짝 보일 듯 말듯 한 사각지대다.
관심 없는 척 하면서 미영대리가 눈알을 굴린다.
미영대리 동공에 지진이 날 것 같아 보인다.
사진 속 동철이형을 보기위해 안간힘을 쓴다.
“관심 있으세요?”
미영대리가 쑥스럽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인다.
“아니 뭐. 정 소개시켜주겠다면 싫지는 않죠.”
이게 어디서 대가리를 굴려?
갑에서 을로 바뀌는 건 한 순간이다.
“누나 별로 의욕이 없으시네. 괜히 말 꺼냈나 보다.”
미영대리가 재빨리 태도를 바꿨다.
“아, 아니에요. 시현씨가 해주면 감사하죠. 감사합니다.”
그래. 그래.
이제야 조금 고분고분 해 졌네.
성현대리가 내 귀에 속삭인다.
“야! 이건 동철이 형 의견도 물어보고 소개팅 시켜줘야 하는 거 아니야?”
“형, 제가 언제 동철이형 미영대리한테 소개시켜 준다 했어요? 그냥 외로운 형이 있다고 했지. 나머지는 미영대리가 상상임신 한 거고.”
“야....... 너 갑자기 존나 무섭다.”
미영대리가 고개를 갸웃 거린다.
“또 두 분이서 무슨 얘기를 그렇게 속닥속닥 하세요.”
“아~ 아니에요. 그것보다 누나. 그 얘기 들었어요? 조만간 회사에서 정리해고 감행한다고 하던데요?”
“아, 예. 저도 들었죠.”
역시 회사 상황은 현세계와 이세계가 다를 봐 없다.
현세계에서의 우리 회사는 다음 달에 대대적인 권고사직 및 정리해고가 진행 될 예정이었다. 물론 현세계에서 정리 대상이었던 사원들은 남자직원들이었다.
그래서 대리 이상 급의 직원들은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남녀역전 세계라면 정리해고 대상자들은 여자직원이겠지.
“누나 참 회사생활 요즘에 힘들겠다.”
일단 미영대리를 위로해 준다.
같은 편으로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
“아. 예. 좀 그렇죠. 아무래도 제가 회사를 오래 다녔고 위치가 위치다 보니.”
이미영 대리는 정규직이 아니다.
상용직이라 회사에서 칼바람이 분다면 가장 먼저 해고당할 수 있는 위치다.
“하아. 진짜. 요즘 같은 시대에 나이가 마흔이신 분이 해고당하시면 갈 곳도 없으실 텐데. 미영대리님 특별한 기술도 없으시잖아요?”
미영 대리가 괜히 나와 성현대리의 스탈벅스 심부름을 하는 게 아니다.
자기 딴에는 우리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거다.
인사기록평가를 작성할 때, 남자직원들의 여자직원들에 대한 평가는 승진인사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반대로 승진이 아닌 해고도 마찬가지다.
“그렇죠. 저 진짜 해고되면 안 돼요. 시현씨.”
나도 저 간절한 마음 안다.
현세계라면.
나이 마흔 먹어서 특별한 기술도 없이 회사에서 해고되면 그 막막함이 얼마나 심할까.
사실 이세계의 미영대리에게는 별다른 악감정이 없다.
내가 복수하고 싶은 대상은 현세계의 미영대리다.
같은 사람이지만 안에 있는 본질은 다르다.
“사실 그래서 저희가 누나를 부른 거예요. 특별히 따로.”
“네?”
미영대리의 쭉 찢어진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다음주에 직원들 인사기록평가 작성하는 거 아시죠?”
“예. 알죠.”
“그럼 그 인사기록평가가 다음 인사이동 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 지도 잘 아시겠네요?”
꿀꺽.
미영대리가 마른 침을 삼켰다.
긴장 될 거다.
말하기 힘든 주제다.
대 놓고 인사기록평가서 잘 써 주세요. 할 만큼 미영대리의 간이 크지 않을 테니까.
그러다가 밉보이면 오히려 반대의 결과가 나온다.
아니 최악의 결과로 인사 청탁으로 해고당할 수도 있다.
“네. 잘 알죠.......”
미영대리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간다.
“에이. 누나. 이제 말 좀 놓지 그래요. 어색하게 진짜. 이런 사적인 자리에서 언제까지 시현씨 하면서 존댓말 할 건데요? 안 그래요. 성현이 형?”
성현대리에게 눈치를 줬다.
“아, 그래. 미영이 누나. 말 놔라. 진짜. 우리가 벌써 같이 일한 게 3년인데. 이런 사적인 자리에서는 말 놓을 때도 됐잖아?”
미영대리가 눈치를 보며 어색하게 말을 놨다.
“그, 그럴까?”
“그러니까 미영 누나. 우리가 아무리 누나 인사기록평가를 좋게 작성해도, 다른 년들이 더 좋게 받으면 소용이 없잖아. 안 그래?”
이제 목을 조였으니 슬슬 본론을 꺼내자.
“그렇지. 다른 정규직 직원 분들이 더 좋게 평가 받으면........”
“누나. 누나!”
“네? 아, 아니. 어?”
“거참, 말귀를 못 알아듣네. 누나. 사적인 자리라니까. 그런 고상한 말 쓰지 말고.”
그제야 미영대리가 눈치를 깠는지 재빨리 말했다.
“그러니까 그 년들이 나보다 더 평가 좋게 받으면 나만 해고되는 거잖아? 씨발. 진짜. 존나 개 같네.”
“그렇지! 이제야 말이 좀 통하네. 누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 말이야.”
드디어 미영대리가 내가 쳐 놓은 거미줄에 발을 들여 놓았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절대로 빠져 나갈 수 없는 그런 끈끈한 거미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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