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 출근길에 만난 양아치들
* * *
아침 햇살이 오늘따라 짜증난다.
다행히 어제 꿈에는 할머니가 안 나왔다.
하아.
회사가야지.
남녀역전 세계에서도 좆같은 회사는 가야한다.
세수를 했다.
후우.
정신 차리자.
옷장에서 정장을 꺼냈다.
이세계 유시현에게 맞춰진 사이즈다.
정장을 입으니 고등학생같다.
새끼 어려보이네. 진짜.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문을 잠갔다.
부모님은 수요일에나 오신다고 했다.
지하철을 탔다.
출근길 사람들은 바쁘다.
가끔 출근하는 여자들이 나를 본다.
하지만 큰 관심은 없어 보인다.
덜컹덜컹.
지하철이 흔들린다.
“어딜 만져요!”
남자 목소리다.
“죄, 죄송합니다. 지하철이 흔들려서.”
여자가 사과한다.
“일부러 그런 거잖아. 아줌마! 아까부터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거 다 봤거든.”
“아니에요. 진짜. 오해하신 거예요.”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여자는 연륜이 좀 있는 직장인 같다.
야근이라도 했는지 무척 피곤해 보인다.
남자는 대학생 같다.
얼굴이 메주같이 생겼지만 옷이 학생 차림이다.
사람이 많은 지하철이다.
흔들렸다.
손이 몸에 닿을 수도 있다.
그게 저렇게 화낼 일인가?
“빨리 경찰 불러요. 경찰! 성추행 현행범이잖아요.”
나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자세히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현세계에서는 저런 일이 발생했을 때 남자가 억울한 경우가 많다.
여자를 보니 무척 당황한 것 같다.
40대로 보인다.
성추행 당했다고 주장하는 남자는 쉽게 회사원 여자를 놓아 줄 것 같지 않다.
마치 건수라도 잡은 것처럼.
“그. 학생. 내가 봤는데. 지하철이 흔들려서, 아주머니가 실수한 것 같은데. 사정 좀 봐드리지 그래요.”
나이가 많으신 우리 친 할머니뻘 되는 할머니가 도와주려 한다.
“뭐야! 같은 여자라고 편드는 거야? 할머니도 한 패지? 한 패 맞지! 변태 같은 것들이, 둘이서 어린 남자들 성추행 하고 다니는 거야. 뭐야!”
다른 여자들이 도와주고 싶어 한다.
하지만 같이 말려들까봐 겁이 나서 누구도 도와주지 못 한다.
남자들은 방관한다.
어차피 자기 일이 아니다.
귀찮은 일에 끼고 싶지 않다.
“학생, 아니 그게 아니라. 미안해요. 아주머니가 안 되어 보여서. 우리 딸 같아서 도와주려 한 건데.”
“딸? 씨발년아. 너희 딸도 저 년처럼 어린 남자 몸이나 더듬는 성추행 범인가 보네? 너희 둘 다 안 되겠다. 둘 다 콩밥 좀 먹어야지.”
뭐?
이 씨발새끼가.
보자보자 하니까.
아무리 그래도 할머니뻘인 분한테 반말을 찍찍하면서 딸 욕을 해?
좆만한 새끼가. 선 넘네.
다른 여자들도 분노에 차 보인다.
하지만 법이 두렵다.
남자에게만 유리한 법이 두렵다.
단전에 힘을 모아서 우렁차게 내뱉는다.
“야! 이 좆만한 새끼야!”
사람들이 전부 나를 바라본다.
목소리가 좀 컸나?
하지만 남자는 기선 제압이다.
“네...네?”
새끼가 쫄았다.
설마 같은 남자가 개지랄 할 줄 몰랐겠지.
나도 큰 키는 아니다.
하지만 저 새끼는 나보다 훨씬 작다.
고작 160cm도 안 된다.
만약의 경우엔 싸워야겠지?
녀석에게 다가간다.
길이 홍해처럼 갈라진다.
“씨발새끼야. 얼른 할머니한테 사과 안 드려? 이런 싸가지 없는 새끼를 봤나.”
“제, 제가 왜요. 왜 사과해요. 잘 못 한건 저쪽인데.”
이 새끼가 개념이 없네.
“할머니가 무슨 잘 못을 했는데? 그리고 저 아주머니가 정확히 어디를 만졌다고 지랄인데? 딱 봐도 피곤에 쩔어서 출근하시는 분인데. 아무리 피곤해도 가족들 먹여 살리려고 출근하시는 분이다. 그런 분이 너 같이 메주같이 생긴 새끼를 성추행 했다고? 야! 똑바로 말해. 저 아주머니께서 정확히 너 이 새끼 어디를 그렇게 성추행했냐고. 씨발아.”
“그, 그러니까. 여기 제 어깨 만졌거든요. 손이 어깨에 닿았다고요. 더. 더럽게.”
“새끼야. 아주머니 손이 너 어깨 좀 닿았다고 그게 더러워? 사람 만원인 지하철이 흔들리면 닿을 수도 있고 부딪칠 수도 있는 거지! 어디서 개수작을 부려.”
그 때
성추행 당했다고 주장하는 녀석 근처에 있던 새끼들이 시비를 걸었다.
“어이, 아저씨. 지금 이 친구가 성추행 당했다잖아. 아저씨가 뭔데 나서?”
“아저씨도 저 씨발년들이랑 같이 깜빵 구경 좀 해야겠네! 세상이 씨발 그렇게 만만해 보여?”
이것 봐라.
이 씨발 새끼들 지금 보니까 한 통속이네.
사실 나도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주머니의 잘 못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직접 보지 않았다.
그저 저 어린 새끼가 할머니뻘 되는 분에게 하면 안 될 말을 했다.
그래서 나선 거다.
하지만 이제는 확신한다.
저 새끼들.
성추행 범으로 몰아서 선량한 시민들을 삥뜯는 악질들이다.
현세계에도 있던 전형적이고 뻔한 수법들이다.
“씨발놈! 너 저년들이랑 한 패거리지? 나 혼자라고 무시했겠다. 너 이제 좆 된 거야. 개새끼야. 지하철에 탄 시민들이 다 증인이거든. 봐! 일면식도 없는 이 분들도 내가 억울하니까 도와주려고 나서 주잖아.”
일면식도 없긴. 개새끼야.
너희 지금 팀플 중이잖아.
“좆 까고들 있네. 너희 같은 새끼들 수없이 봤거든. 세상이 바뀌어도 하는 짓거리는 똑같네. 법의 취약점에 기대어서 선량한 사람들 괴롭히는 개새끼들. 너희 부모님들이 그렇게 살라고 가리키셨니? 너희 부모님들이 불쌍하다. 너희 같은 개새끼들을 낳으셔서.”
새끼들 표정이 제대로 구겨졌다.
남녀역전 세계에서 남자가 이렇게 험한 말을 하는 건 평범하지 않다.
정말로 열 받았는지, 셋 다 얼굴이 빨개졌다.
“하! 이 씨발새끼 진짜 안 되겠네. 씨발새끼야! 네가 뭔데, 우리 부모님들을 욕해! 곱상하게 생긴 얼굴 오늘 한 번 제대로 갈아 줄 테니까. 다음 정거장에서 따라 내려라. 뒤지기 전에.”
검은 자켓을 입은 새끼가 윽박질렀다.
저 새끼가 세 명중 우두머리인 것 같다.
남녀역전 세계의 남자치고는 덩치가 큰 편이다.
키는 175cm.
돼지다.
다행히 근돼지는 아니었다.
“우리? 그러니까 너희들이 패거리 지어서 사람들 괴롭히고 있다는 거. 인정한 거네? 맞지?”
정곡을 찔렀다.
“닥치고, 따라 내려라. 확, 그냥. 넌 오늘 제대로 뒤졌어.”
이제 시민들도 진실을 안다.
지하철 승객들은 대부분 여자다.
눈빛만 봐도 안다.
다들 나를 도와주고 싶어 한다.
하지만 남녀역전 세계의 법은 남자에게 말도 안 되게 유리하다.
여자가 잘 못 나서서 싸움이라도 나면 큰일이다.
서로 똑같이 쌍욕만 박아도 여자는 벌금행이나 집행유예로 빨간줄이 그어질 수 있다.
쌍방폭행으로 법정으로 가면 100프로 여자가 진다.
심지어 남자에게 계속 두들겨 맞다가 도망가려고 밀기만 해도.
쌍방폭행이 될 수 있다.
“저기, 총각. 다 제 잘못이니, 제가 해결할게요.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총각이 도와준 건 정말 잊지 않을게.”
성추행 했다고 지목당한 아주머니가 나섰다.
자기를 도와주다가 괜히 내가 다칠까 봐 나서주신 거다.
보통 비열한 사람이라면 자기 때문에 발생한 곤란이라도.
그 문제가 도와준 사람에게 넘어 갔을 때.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더 확신한다.
이런 분이 성추행 따위를 할 리가 없다.
다 저 개새끼들이 파 놓은 함정이다.
“에이, 아주머니. 진작 그렇게 나오셨어야죠. 다음역에 내려서 좋게 합의 봐요. 좋은 게 좋은 거잖아요. 안 그래요? 너 이 씨발새끼 운 좋았다. 다음에 걸리면 진짜 뒤진다.”
“야, 뭘 꼴아 봐? 빨리 안 꺼질래. 확 그냥! 눈깔을 파 버릴라.”
검은 자켓을 입은 새끼가 내 머리를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마치 장난감을 가지고 놀 듯.
“꺼지라고. 이 좆밥아. 한국 말 못 알아들으세요? 쫄아서 한국 말 잊어버리셨어요? 병신 새기야. 네가 그렇게 싸움을 잘해? 잘하면 한 번 덤벼 보던가. 개새끼야. 야리지만 말고.”
후우,.....
숨을 들이 쉰다.
깊게.
더 깊게.....
페미가 판치는 개한민국에서는
아무리 분해도.
화가 나서 혈압이 터질 것 같아도.
진짜 다 뒤집어 엎고 싶을 때도.
참았다.
세상이 그들의 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법이 내 편이고, 사람들이 내 편이다.
세상이 내 편이다.
더 이상.
더 이상은.
참지 말자.
툭.
무언가 내 안에서 끊어졌다.
“야! 이. 씨발새끼야. 뒤질래?”
내 머리를 툭툭 치고 있는 새끼의 손가락을 잡았다.
지하철 안에 무거운 공기가 감돌았다.
여자들끼리의 싸움은 자주 있다.
하지만 남자들끼리의 싸움은 흔한 일이 아니다.
“뭐? 이. 씨발 새끼가. 허세 쩌네. 손가락 놔라. 진짜 여기서 초상 치르고 싶지 않으면.”
검은색 가죽 자켓을 입은 새끼가 다른 두 새끼들에게 눈빛을 보냈다.
두 명이 나를 둘러쌌다.
그리고 메주 같이 생긴 성추행 피해자로 코스플레이 했던 새끼가 먼저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이 슬로우 비디오처럼 느리게 보인다.
충분히 피할 수 있는 느린 주먹이었지만 피하지 않았다.
퍽!
“후회하지 마라. 네가 먼저 쳤다.”
메주 같이 생긴 새끼를 향해 사정 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쩌어억!
주먹이 녀석의 왼쪽 눈에 정확히 맞았다.
기우뚱하며 녀석의 몸이 뒤로 넘어 간다.
쩌억! 쩍!
빠르게 두 번 더 주먹을 날렸다.
털썩.
메주 새끼가 그 자리에 고꾸라졌다.
나를 둘러 싼 다른 새끼가 달려들었다.
터억!
달려든 놈의 팔을 밀쳐냈다.
퍽!
뾰족하게 세운 엄지로 녀석의 턱 아래를 세차게 올려 찍었다.
“컥! 커흑!”
목을 부여잡은 녀석의 인중을 시원하게 올려쳤다.
쩌어어억!
상체를 구부렸던 녀석이 슬로우 모션처럼 고개를 들었다가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졌다.
당황한 검은 재킷을 입은 새끼가 주먹을 내질렀다.
앞의 두 새끼들에 비해 강맹한 펀치였다.
퍽! 퍼벅! 퍽! 퍽!
검은 재킷 새끼의 주먹을 팔꿈치로 막았다.
엄지를 뾰족하게 새워서 검은 재킷 새끼의 옆구리에 찔러 넣었다.
녀석의 상체가 앞으로 구부러졌다.
중지를 세워서 검은 재킷 새끼의 안면을 강타했다.
쩌어억!
녀석이 뒤로 사람들을 밀치며 넘어졌다.
기우뚱. 콰다당!
그래도 다른 일당들 보다는 맷집이 좋았다.
곧 다시 일어났다.
자세를 낮췄다.
녀석이 다시 주먹을 날렸다.
아까 보다는 날카로움이 많이 떨어졌다.
녀석의 손목을 잡아 채어 쭉 당겼다.
콰자작!
끌려오는 놈의 미간을 이마로 시원하게 들이받았다.
쿠다당.
녀석의 몸이 뒤로 완전히 무너졌다.
그때,
쓰러져있던 메주가 일어나서 뒤를 붙잡았다.
나를 붙잡은 메주의 손을 오른팔로 당겨 팔꿈치가 위로 오게 어깨에 걸쳤다.
우득! 우드득!
녀석의 손목을 힘껏 아래로 당기자 팔이 거꾸로 뒤집혔다.
메주 녀석이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까무룩 정신 줄을 놓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지하철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다들 놀란 눈으로 나와 메주 일당들을 바라봤다.
어떤 승객들은 비디오를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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