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 그 남자는 너무 어렵다! (피자걸 한예슬)
* * *
31화
그 남자는 너무 어렵다! (피자걸 한예슬)
*강세나 에필로그
그라비아 모델 촬영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그냥 수영복을 입고 예쁜 포즈만 잡으면 됐다.
사진기사 선생님이 좋아 했다.
재능이 있다고 했다.
우리틴모는 뭐 하고 있을까?
핸드폰을 켰다.
GPS 어플리케이션을 열었다.
구걸 지도에 틴모의 위치가 찍혔다.
여기서 멀지 않았다.
쇼핑몰에 있구나.
틴모야 기다려 금방 갈게!
하아. 하아.......
틴모가 사라질까 봐 뛰었다.
틴모는 쇼핑을 끝내고 극장에 들어가는 중이었다.
다행히 늦지 않았다.
우리의 첫 번째 극장 데이트.
“언니, 방금 표 산 남자 옆자리로 주세요. 남자친구인데 제가 데이트에 늦어서요.”
“네. 알겠습니다. D63번 자리 선택하셨고요. 10,000원입니다.”
“네. 여기요.”
헐레벌떡 틴모 옆자리에 가서 앉았다.
이렇게 어두운 곳에서 틴모와 단 둘이라니.
설렜다.
틴모와 어두운 곳에 붙어 앉아있으니 자꾸만 야한 상상이 떠올랐다.
하응.......
틴모 먹고 싶다.
그때,
틴모의 귀여운 목소리가 들렸다.
“저 괜찮으시면 팝콘 같이 먹어요. 혼자 먹기 많아서.”
틴모야.......
지금 나 배려해 주는 거야?
너도 우리 첫 데이트가 기쁜 거지?
그렇지?
행복해서 눈물이 났다.
바보 같이.
목이 메어서 말이 잘 안 나왔다.
간신히
“그... 고. 고맙습니다.”
두 시간의 영화상영 시간 동안 나는 틴모만을 바라봤다.
영화 따위 아무래도 좋았다.
나에게는 틴모가 이 세상의 전부다.
틴모는 내거야.
누구든 틴모한테 손대면 죽여 버릴 거야.
남자든 여자든.
틴모는 내거니까. 틴모는 내거니까. 틴모는 내거니까.
*
(피자배달 걸 한예슬)
“예슬아. 무슨 일 있어? 왜 하루 종일 핸드폰만 보고 있어.”
“하아아~~ 몰라앙~ 언니! 원래 남자들은 다 이렇게 도도해?”
“어? 예슬이 너 무슨 일 있구나? 그렇게 너 좋다고 따라다니던 남자들은 다 무시했던 애가 갑자기 웬 남자타령이야?”
“아이. 몰라 진짜! 하유우우.......”
아, 진짜 내가 왜 이러지?
나 스스로도 이해가 안 간다.
그 남자를 만난 건 정말 잠깐 뿐이다.
그 것도 나는 피자배달걸 그 남자는 손님.
그런데 도저히 그 남자의 모습이 잊히지가 않는다.
계속 생각나서 미칠 것만 같다.
이런 게 한 눈에 반했다는 건가?
한눈에 반 해?
나 한예슬이?
하아. 진짜 미쳤나 봐.
한예슬 정신차려 진짜!
너, 그 도도하기로 YJ에서도 유명했던 한예슬이야.
지금 한 남자한테 빠져서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는 이 모습이 말이나 돼!
그랬다.
비록 키는 크지 않지만, 얼굴로는 YJ에서도 1티어.
그리고 나 같이 아담한 스타일을 좋아하는 남자 녀석들도 꽤 있었다.
YJ 연습생 시절 동안 수많은 남자 아이돌과 배우들이 사귀자고 고백했다.
하지만 나의 관심사는 오직 아이돌로서의 성공뿐이었다.
“미안해요. 선배.”
하루에 몇 번씩이나 남자녀석들에게 하 던 말이다.
심지어 대한민국 탑급의 아이돌 선배도 나에게 고백했다.
Z드래곤.
모든 여자들의 우상.
내 차가운 모습이 마음에 든다나?하지만 내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Z드래곤은 쿨한 오빠였다.
탑급 아이돌의 대쉬를 거절했다.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을 거다.
그런데 차이고 나서도 오히려 내가 공개오디션을 받을 수 있도록 많이 도와줬다.
지금도 연락이 가끔 온다.
[예슬아. 오빠는 기다릴게. 언제든 마음이 열리면 연락 줘. 나 예슬이 너 포기한 거 아니다.]
하아.
그렇게 대한민국 정상급의 아이돌 오빠가 기다려줘도 흔들리지 않던 마음이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 남자를 본 이후로 핸드폰만 들었다 놓았다 하고 있다.
내 연락처 가게에 물어보면 알 수 있을 텐데.
하아.
그 남자도 나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큰 실례를 범 했는데도 용서해 주었다.
그리고
[그 피자배달하기에는 너무 예쁜데.]
그 말 한마디가 가슴 속 깊이 박혔다.
그 남자도 나한테 마음이 있을 거야.
그런데 왜 연락이 안 오지?
하아. 미칠 것 같다.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내가 먼저 연락 해 볼까.
으!
미쳤어. 미쳤어. 진짜!
YJ에서도 차도녀로 유명했던 나 한예슬인데.
다른 판도라 팀원들이 남자 아이돌 꼬셔서 술 마시고 떡 칠 때도 나는 순결을 지켰다.
하아.
머리가 어떻게 돼 버린 것 같다.
정신이 나가 버릴 것 같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이대로 놓치고 싶지 않다.
배딸의민족 앱을 켰다.
관리자 메뉴로 들어갔다.
손님이 배달시킨 카통 아이디를 찾았다.
YSH1004
카통 아이디도 천사구나.
하긴 천사같이 귀엽게 생겼으니까.
생각만 해도 미소가 지어진다.
카통 아이디를 추가했다.
프로필 사진이 없다.
진짜 인싸들은 카통 프로필 사진 신경 안 쓴다더니.
그 말이 맞나 보다.
뭐라고 보내지.
아, YJ면접 볼 때도 이렇게 떨리지 않았는데.
심장이 쉴 새 없이 빨리 뛴다.
두근! 두근! 두근!
“예슬아. 뭐해? 이제 퇴근해야지.”
“언니, 잠깐만.”
에이 모르겠다.
[나: 안녕하세요. 아까 피자 배달했던 피자배달걸이에요]
보, 보냈다.
사고 쳤다!
하아...... 하응......
제바알!
바쁜가?
아직 안 읽었다.
그래 그냥 이렇게 보내면 이상하겠지.
고작 피자배달걸이 따로 연락 할 일이 뭐가 있겠어.
심혈을 기울여서 문장을 작성했다.
최대한 예의바르게.
[나: 죄송해요. 피자 주문주신 번호로 카통 등록했어요. 다름이 아니라 오늘 제가 너무 실례를 범해서요. 제발 만회할 기회를 주세요. 시간 되실 때 연락주세요. 제가 정말 맛있게 하는 스파게티집 알아요. 오늘 당황 많이 하셨을 텐데, 정말 죄송합니다. 편하실 때 꼭 연락주세요. 꼭이요!]
아으.......
이정도면 될라나?
만약 피자 배달원 남자가 나한테 이렇게 메시지를 보냈다면?
하아......
아마도 나는 연락 안 했을 거다.
기대하지 말자.....
기대 하지....
어!
읽었다!
메시지 옆에 떠 있던 숫자 1이 사라졌다.
답장을 기다렸다.
그 남자가 뭐라고 답장을 보낼까?
사실 자랑은 아니지만 내가 보낸 카통을 읽씹한 남자는 없었다.
3분..
5분....
10분.....
“예슬아! 퇴근 안 해? 너 도대체 오늘 무슨 일이니. 가게 문 닫기 30분 전부터 집에 가고 싶다고 지랄하던 년이. 평소랑 너무 다르게.”
“언니. 먼저 가요. 나 지금 기다리는 게 있어서 그래.”
“에휴, 알겠다. 오늘 얘가 뭘 잘 못 처먹었나. 시키지도 않은 야근을 하네. 집에 갈 때 문 잘 잠그고 가. 나 먼저 간다.”
“알겠어. 언니~”
덜커텅 탁!
언니가 갔다.
메시지 답장을 기다린다.
30분.....
40분........
이상하게 눈에 눈물이 고인다.
이런 적은 처음인데.
나 한예슬이 고작 남자 때문에 눈물을 흘리다니.
고작......
남자한테.......
하아....
닭똥같이 굵은 눈물이 뚝뚝 흘러 내렸다.
짐을 챙겨서 가게에서 나왔다.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가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고백하기도 전에 차였네.
나한테 고백했던 남자들도 이런 기분이었구나.
그래 나는 싸가지 없게 남자들 차버린 죄를 지금 받고 있는 거야.
침대에 누워 불을 껐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그 남자의 웃는 얼굴과 했던 말만 계속해서 떠오른다.
[그 피자배달하기에는 너무 예쁜데........]
나쁜 새끼.
그 말만 안 했어도.
그렇게 멍뭉이처럼 귀엽게 미소 짓지만 않았어도.
내가 이렇게 힘들진 않았을 텐데.
*
일어났다.
눈이 퉁퉁 부었다.
평생 흘릴 눈물을 어젯밤에 다 흘린 것 같다.
처음으로 남자에게 마음을 열었다.
그리고 고백하기도 전에 차였다.
하아........
원래 모든지 처음이 힘들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첫사랑.
나는 지금 혼자 하는 첫사랑 중이다.
자고 일어나면 나을 줄 알았는데.
역시나 그 남자 생각만 난다.
힘이 없다.
알바가야 하는데.
띠리링 띠리링!
전화가 온다.
Z드래곤 오빠다.
이 시간에?
요즘 투어 다니느라 바쁠 텐데.
Z드래곤 같이 바쁜 오빠가 그냥 전화 할 사람은 아니다.
일단 받자.
“여보세요.”
“어, 예슬이니?”
“네. 오빠.”
“무슨 일 있어? 목소리가 안 좋네?”
억지로 힘을 내 본다.
“아니에요. 오빠. 아무 일 없어요.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 하셨어요?”
“예슬이, 오빠 서운한데? 전화 받자마자 본론부터 말하라고 하네? 다른 여자애들은 내가 전화하면 안 끊으려고 하던데.”
“오빠가 바쁜 사람이니까 그렇죠. 제가 시간 잡아먹으면 안 되잖아요.”
“말 돌리기는. 치. 실은 이번에 우리 YJ에서 새 걸 그룹 오디션 있거든. 블랙블루라고. 회사에서도 크게 키울 생각이야. 내가 특채로 예슬이 추천 좀 하려고. 어때? 생각 있어?”
“오빠. 말은 고마운데. 오빠도 알잖아요. 저 키 때문에 합격하기 힘든 거.”
“왜? 우리 예슬이 키가 어때서? 나는 아담하고 좋던데. 나랑 비슷한 게. 하여간 잔 말 말고 오늘 오후 2시까지 YJ로 와. 오빠 투자자한테도 잘 얘기해 놨어. 투자자도 예슬이 밀어준다고 했으니까. 준비만 열심히 해 와. 끊는다. 2시까지 무조건 와!”
“오, 오빠!”
딸칵!
하아. Z드래곤 오빠는 항상 이런 식이다.
자기 할 말만 하고 끊어버리지.
치.
그래도 오빠가 만들어 준 소중한 기회인데, 날리면 안 되지.
샤워를 하고 차가운 숟가락으로 눈덩이를 꾹 눌렀다.
부었던 눈이 좀 가라앉았다.
카통을 켰다.
오후 오디션 때문에 오늘 오후 근무는 빼달라고 해야 하니까.
언니에게 카통을 보내야 했다.
카통을 키자 그 남자의 카통이 보였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보내보자.......
이번에도 답장이 안 오면 인연이 아닌 거야.
[나: 그. 어제는 운동하시더니 일찍 주무셨나 봐요. 읽으셨는데 답장이 없으셔서. 아침 일찍부터 카통 보내서 죄송합니다. ㅜ.ㅜ]
역시나 답장이 안 온다.
정신 차리자. 한예슬.
걸그룹 아이돌이 되려면 갈 길이 천릿길인데.
잊자.
그래 잊는 거야.
할 수 있어. 한예슬.
그런데, 그때.
기적처럼 카통이 왔다.
카통! 카통!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