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 피자 배달걸 (한예슬)
* * *
19
피자 배달걸 한예슬
하아.
긴장된다.
제발!
믿지도 않는 신께 애원해본다.
제발 붙게 해주세요!
띠링!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아! 신이시여!
기다리던 메일이다.
딸칵!
클릭했다.
[최종오디션에서 불합격하셨습니다.]
아.......
으으으.......
의식의 흐름이 멀어져 간다.
이번에는 진짜 느낌 있었는데.
하우~
눈물이 날 것 같다.
아니야.
여자가 오디션 좀 떨어졌다고 울면 안 돼지.
마음 약하고 눈물 많은 남자도 아니고.
마음을 추슬렀다.
“예슬아! 배달 갔다 와.”
"네, 언니.”
하아, 토요일 밤이라 그런지 바쁘네.
피자를 챙겨서 오토바이에 실었다.
이번엔 진짜 자신 있었는데.......
아쉬움이 남았다.
미령이 언니한테 전화 한 번 해볼까.
미령이 언니라면 적어도 왜 떨어졌는지 이유는 말해주겠지.
연락처에서 미령언니 번호를 찾아 꾹 눌렀다.
따르르릉! 따르르릉! 딸칵.
“어, 예슬아.”
“언니, 방금 최종오디션 결과 봤어요.”
“어, 그랬구나. 실망 많이 했지?”
“아니에요. 언니. 제가 오디션에서 떨어지는 게 한 두 번도 아닌데요. 그런데 언니.”
“응. 예슬아.”
“저, 왜 떨어졌는지 좀 알려주시면 안 돼요?”
언니가 머뭇거렸다.
심사위원 중에 한 명으로서 사실 불합격 사유를 알려주는 건 공정성에 어긋났다.
“언니, 진짜. 저 이번에 억울해서 그래요. 진짜 붙을 줄 알았거든요. 이번에는.”
“하아. 그래. 알겠어. 말해줄게.”
긴장 됐다.
꿀꺽.
“예슬이 예쁜 거야, 뭐 말 안 해도 이 바닥에서 유명하니까. 얼굴이 탈락 이유가 아닌 건 예슬이도 알 거고.”
사실 그랬다.
얼굴은 자신 있었다.
급식 때 초콜릿을 들고 학교 앞에서 나를 보기 위해 수많은 남자애들이 기다렸다.
유명한 매니저들로 부터 수 없이 명함을 받았다.
작지만 팬클럽도 있었다.
심지어 여자들에게도 데이트 신청을 끊임없이 받았다.
그런데.
“휴우.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키 때문 인거 사실 너도 알잖아.”
아, 씨발.
그놈의 키.
역시 그놈의 키가 문제구나.
진짜 내 인생의 단 하나의 오점이다.
내 키는 162cm.
중학교 3학년 때 키 그대로다.
여자의 평균키가 175cm인 세상이다.
나는 그야 말로 호빗이다.
여자 걸 그룹 아이돌이 되기 위해 YJ에서 3년간 피나게 트레이닝 했다.
하지만 키가 걸림돌이었다.
다른 연습생들은 트레이닝 기간 동안 보통 10cm씩 자랐다.
나만 그대로다.
그 이유로 3년간 준비한 걸 그룹 판도라가 데뷔 전에 나만 강제 탈퇴 당했다.
그리고 지금은 보시다시피.
공개오디션이나 보러 다니는 피자 배달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벌써 2년이나 흘렀다.
마음이 조급하다.
답답하다.
이대로 피자 배달걸로 살다가 인생 종치는 건 아닐까?
예쁜 얼굴 하나로 살아남기에는 대한민국이 호락치 않다.
차라리 내가 남자였다면.
잘생긴 얼굴 하나로 모든 걸 이룰 수 있었겠지.
존잘은 트윈치 TV에 얼굴만 보여줘도 돈이 산더미 같이 굴러 들어온다.
거기다 섹시춤이라도 추면, 후원자들이 돈 폭탄을 마구 쏜다.
트윈치 존잘로 유명한 서진은 꿀렁꿀렁 대충 트월킹 댄스 한 번 추고 그날 하루 수입이 2,000만원이다.
씨발, 진짜 졸라 불공평한 세상이다.
여캠은 하루 종일 병신 짓하고 웃겨줘도 하루 5만원 벌기 힘들다.
그나마 유명한 여캠이 한 달에 300만원 번다.
하긴 누가 여캠 따위를 보겠냐.
거리에도 보이는 건 여자 밖에 없는데.
“하아. 알겠어요. 언니. 역시 키 때문이었네.”
“힘내. 예슬아. 그래도 예슬이는 얼굴은 최상위 티어잖아. 몸매나 비율도 좋고. 다음엔 좋은 결과 있을 거야.”
“고마워요. 언니. 저 배달이 있어서요. 다음에 전화 드릴게요.”
“응, 그래~ 배달 할 때 차 조심하고.”
딸칵!
하아. 그나마 YJ에서 만난 인맥이 오디션때는 도움이 됐다.
미령이 언니도 YJ 연습생 시절 때, 트레이너와 연습생으로 알게 된 사이다.
아니지, 3년을 그 개고생 하며 허비 했는데.
인맥 좀 남겼다고, 도움이 되었다고 해야 하나?
나는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헬멧을 쓰고 시동을 걸었다.
부르르릉!
라이터를 켰다.
딸칵!
눈이 부시다.
내 인생은 암흑인데.
위이이이잉!
그래도 여름 도시의 밤거리는 아름답다.
끼이익!
배달 주소에 도착했다.
주문을 확인했다.
오늘 피자를 배달시킨 집은 잠실 화신아파트 1203호.
하와이안피자 1개.
민트초코피자 1개?
콜라 1.5L 한 병.
민트초코 피자? 식성도 특이하네.
뭐 요즘 들어 가끔 팔리기는 한다.
민트초코피자.
띵!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1203호.
버튼을 눌렀다.
오래된 아파트라 그런지 지저분하다.
엘리베이터에도 낙서가 있다.
하, 우울하네.
토요일 밤에 오래된 아파트에 피자배달이나 하고 있고.
같이 연습생 생활 했던 녀석들은 해외투어 하고 있겠지.
요즘 해외에서도 판도라 잘 나가니까.
얼마 전엔 판도라 신곡이 빌보드 싱글 100위 안에도 들었다.
처음 연습생 준비할 때만 해도 내가 얼굴마담이었는데.
키 하나 때문에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질 줄이야.
휴우.
오늘 따라 피자가 무거웠다.
늦게 배달 왔다고 지랄하기 전에 빨리 가자.
12..
1203....
찾았다.
띵똥!
“피자 배달 왔어요.”
“아, 으... 잠깐만요.”
남자 목소리였다.
꽤 귀여운 목소리다.
“배달이 밀려서 빨리 좀 나오세요.”
“네, 가요. 가.”
남자가 문을 빼곰 열고 손을 내밀었다.
“주세요.”
“아, 피자 쏟아져요. 답답하게 진짜.”
나는 1203호의 문을 잡고 활짝 열었다.
그리고.
마치 천국의 문이 열린 것처럼 안에서 광채가 쏟아져 나왔다.
뭐, 뭐야. 이건!
왜 천사가 이 오래된 아파트에 살고 있는 건데!
1
천사는 숨을 헐떡이며 상기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운동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풀어헤친 하얀 셔츠 위로 하얗고 탄탄한 가슴골이 살짝 보였다.
섹시하다.
나도 모르게 식은땀이 흘렀다.
천사가 당장이라도 별이 쏟아져 내릴 것 같은 아름다운 눈으로 나를 응시한다.
살짝 헝클어진 검은 머리와 하얀 얼굴의 조화가 신비롭다.
조각칼로 얼굴을 다듬었나?
날카로운 브이라인이 완벽하다.
하얀 셔츠위로 비치는 손은 터프했다.
투명한 피부위로 파란 힘줄이 선명하다.
트레이너와 잘 만든 잔 근육이 분명했다.
어깨는 넓은데 얼굴은 작다.
비율 또한 완벽하다.
살짝 풀어진 단추위로 복근이 보인다.
남자의 복근이 저렇게 섹시할 수도 있구나.
여자들에게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복근이다.
하지만 유약해서 운동이 힘든 남자들에게는 복근이 대부분 없다.
집중적인 트레이닝은 받지 않고서는 어림도 없다.
천사같이 아름다운 얼굴과 잘 다듬어진 몸.
아이돌을 준비하는 연습생이거나 배우지망생이 틀림없다.
하지만 단연코 말할 수 있다.
대한민국 NO.1 매니지먼트 YJ에서도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천사보다 더 아름다운 남자는 본 적이 없다.
잘생긴 남자라면 연습생 때 질리게 봤다.
하지만 지금처럼 외모로 내 심장이 일순간 멎어버릴 정도의 남자는 처음이다.
거기다가 천사에게서 향기가 났다.
태어나 처음 맡아보는 향기였다.
마치 밤........
밤꽃 냄새 같았다.
향기에 취해 계속 이 찐득한 냄새를 맡고 싶었다.
“아. 으.... 저, 피자 좀.”
그제야 나는 내 실수를 눈치 챘다.
나는 고작 피자배달걸일 뿐인데.
저 천사의 아름다움에 놀라 직무를 유기했다.
천사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 하긴.
이런 야심한 밤에 외간 여자가 한 참 동안 말도 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신고 당해도 할 말이 없다.
피자를 건네주고 고개를 90도로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잘생긴 남자를 너무 오랜만에 봐서 흥분했었나 봐요. 다시는 이런 음흉스러운 눈빛으로 보지 않겠습니다.”
아, 사과가 좀 이상하다.
충분히 변태로 오해받을 수 있는 사과다.
고개를 천천히 들어 천사의 눈치를 살피려 했다.
그런데
어.
어어어!
하어어어어억!
천천히 고개를 들자 봐서는 안 될 것이 보였다.
천사의 곧게 잘 뻗은 하얀 다리와.
탄탄한 허벅지.
그 섹시한 허벅지 위로 보이는 섹시한 켈빈클로인 검은색 사각 팬티.
가운데 부분만 하얀 게 더 매력 있다.
한정판인가?
그리고 그 안에 잠들어 있는 묵직한.......
남성의 자지.
비록 팬티가 자지를 덮고 있었지만, 상상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얼마나 굵고 아름다운 자지인지.
식은땀이 흘렀다.
처음부터 인지를 했어야 했다.
분명 남자는 문을 살짝 열고 피자만 받아가려 했다.
그런데 내가 문을 활짝 열어버렸다.
남자가 얼마나 놀랐을까.
보아하니 집에 혼자밖에 없는 것 같은데.
당장 성추행 범으로 경찰에게 잡혀가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천사의 묵직한 자지를 계속 보고 싶었지만 눈을 감았다.
내 욕망이 가득한 저질스러운 눈으로 천사를 더럽힐 수 없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무슨 처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얼마나 놀랐을까.
아무 말도 없었다.
내 스스로가 원망스럽다.
무언가 뒤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천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 이거.......”
눈을 떠서 천사를 바라봤다.
심장이 여름날의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버릴 것 같다.
천사가 싱긋 웃으며 나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통신사 할인 10% 되죠?”
“네... 네?”
당황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다.
감히 피자 값을 받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당장 경찰에게 끌려가도 죄를 달게 받을 생각이었다.
보상을 해달라면 통장에 있는 잔고를 다 털어서라도 보상해 줄 생각이었다.
당황해서 말이 없자 천사가 카드를 집어넣었다.
“아. 이세계에서는 안 되는 구나. 저기 여기 20,000원이요. 잔돈은 됐어요. 그... 아, 더러운 냄새... 맡게 해 드려서 죄송해요. 잘 가요. 그 피자배달하기에는 너무 예쁜데.”
남자가 문을 조심스레 닫았다.
그냥 이렇게 끝난다고?
경찰에 신고도 없이.
정당한 보상요구도 없이?
그리고 더러운 냄새라니........
내가 맡은 건 천사에게서 나던 신비스러운 밤꽃 향기 밖에 없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방금 전 1203호와 함께 한 3분이 마치 일 년처럼 느껴졌다.
아직도 심장의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아니 오늘 밤 새 이 두근거림은 멈추지 않을 것 같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