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 어? 왜 물통이 무겁지?
* * *
동철차장의 얼굴이 붉어졌다.
사실 동철차장은 자기 사람한테는 잘 하지만, 아닌 사람에게는 호랑이였다.
군대에서도 다혈질에 무서운 선임으로 유명했다.
“지금 뭐라고 했어요? 뭐 병신?”
숏 컷에 마른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병신이라고 했다. 어쩔래? 꼰대 새끼야.”
다른 자리 사람들은 핸드폰으로 찍고 난리가 났다.
“와 싸움 붙었다.”
“제대로 팝콘각인데?”
“나는 저 숏 컷 언니한테 한 표~”
"에이 그래도 피지컬 차이가 있는데, 나는 아저씨한테 올인."
숏 컷을 한 여자는 많아봐야 20대 초반으로 보였다.
동철차장은 군대를 늦게 가서, 서른이 넘은 나이였다.
“나이도 나 보다 한 참 어린것 같은데, 어른한테 그렇게 막말을 하면 돼요?”
군대였으면 바로 쌍욕이 나왔을 거다.
사회라 많이 참는 것 같았다.
“애들한테 얘기 들어보니 그 쪽이 먼저 병신 같은 군대 얘기하면서 시비 걸었다며?”
“아니, 무슨 시비를 걸어요. 시비를. 우리가 좀 크게 얘기했고, 그 쪽에서 조용히 좀 해달라고 해서 그 이후로 쭉 조용히 얘기 했거든요.”
숏 컷을 한 여자가 자기 친구들을 바라봤다.
“저 꼰대들이 군대 애기하면서 시비 건거 맞지?”
“응, 맞아. 군대에서 축구가 어쩌고 하면서 존나 소음공해 시비.”
“꼰대 새끼들. 지겹지도 않나. 무슨 군대 갔다 온 게 자랑이라고. 저 새끼들 군대 안 갔으면 진즉에 한반도 평화 통일 됐을 걸? 저 새끼들이 취업 가산점 처먹으려고 군대 가서 아직도 우리나라가 분단국가 인거 아니야.”
이건 무슨 개 십장생 같은 논리인가?
우리가 젊은 나이에 군대 가서 목숨 걸고 대한민국 지켜서, 김정은 돼지새끼가 대한민국 땅따먹기 못하는 거거든요?
동철차장도 어이가 없는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디서 그런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펴요. 군대에 가서 고생을 안 해 봤으니 그 말이 얼마나 개소리인지 알 리가 있나.”
“뭐? 개소리? 누가 한남충 아니랄까봐 여자한테 막말하는 거 봐라. 그리고 말이 나와서 말인데, 군대 가서 고생 했다고 계속 시비 거는데. 씨발. 니들 좆 달린 새끼들이 우리 여자들의 출산의 고통을 알아? 출산의 고통에 비하면 군대 열 번도 가지.”
아니, 씨발.
시비는 지들이 걸어 놓고.
기승전 출산의 고통이 짱이야. 나왔네.
“야. 혜림아. 어디 신성한 출산과 고작 지저분한 감옥생활인 군대를 비교 하냐.”
숏 컷 머리 여자 친구가 반론했다.
“아. 미안. 지영아. 그냥 고통의 정도가 그렇다는 거지. 네 말대로 세상에서 가장 신성한 출산을 내가 깎아 내렸네. 저 병신 새끼들은 그런 것도 모르고. 하여간 능력 없고 무식한 남자새끼들이 피지컬 믿고 목소리만 크다니까.”
씨발년아.
네 목소리가 더 크거든.
그리고 네가 우리가 능력 없고 무식한 지 어떻게 알아.
아무리 봐도 너 보다는 우리가 훨씬 교양 있거든.
“뭐! 능력 없고 무식해? 진짜 보자보자 하니까!”
참을 만큼 참았는지 동철 차장이 호랑이처럼 고함을 내 질렀다.
“뭐? 그래서 뭐? 아저씨가 보자보자 안하면 어쩔 건데? 칠거야? 칠거냐고.”
동철차장이 분을 삭이지 못하고 씩씩 거렸다.
“야, 처 봐. 처 보라고. 이 병신 새끼야.”
숏 컷 머리 여자가 얼굴을 동철차장한테 들이 밀었다.
동철 차장이 눈을 크게 뜨고 죽일 듯이 노려봤다.
지금 여기서 말려들면 일이 커질 수 있다.
그런데,
퍽!
숏 컷 머리 여자가 손을 들어서 동철 차장의 뒤통수를 제대로 갈겼다.
“좆밥 새끼가 진짜. 치지도 못 할 거면서 어디서 눈을 부라려. 야!”
퍽!
숏 컷 머리 여자가 또 손을 들어 동철차장의 머리를 때렸다.
나와 성현대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못하면 분을 참지 못한 동철차장이 진짜 큰일을 내 것 같았다.
“쫄았냐? 아저씨 쫄았어? 시발 새끼야, 아까는 그렇게 당당하게 소리 지르더니. 쫄았냐고. 이 병신 새끼야.”
동철 차장이 입술을 꾹 깨물며 안간힘을 다해 참고 있었다.
숏 컷 머리가 기세등등해서 동철 차장의 머리를 한 대 더 치려 했다.
아, 씨발. 이 건 진짜 아니지.
내가 손을 들어서 그 년의 손목을 잡았다.
“그만 하시죠. 저희도 많이 참았는데.”
숏 컷 머리 여자가 나를 같잖은 새끼 보듯이 내려 봤다.
그러더니 잡힌 손목을 바라보며 말했다.
“야. 빨리 찍어. 이 새끼가 성추행 한다.”
숏 컷 머리 미친년의 말에 그녀의 친구들이 핸드폰을 들고 나와 미친년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해서 얼른 숏 컷 미친년의 손목을 놓았다.
그 년이 졸라 아프다는 제스처를 취하면 손목을 감싸 쥐었다.
“아, 오빠. 왜 이러세요. 때리지 말고 말로해요. 말로........”
와! 씨발년! 연기 쩌네. 순식간에 말투와 표정이 변했다.
씨발년아 오스카 나가면 윤이정 여사님이 아니라, 네가 여우조연상이다.
나는 어안이 없어서, 뭘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그 년은 계속 연기 했다.
“오빠들, 우리 오빠들이랑 안 나간 다니까요. 왜 강제로 그래요.”
지금 뭐 영화 찍는 거야?
“아, 저기요. 아가씨들. 잠시 저 좀 봐요.”
성현대리가 나대신 나섰다.
“왜 그래요. 오빠. 무섭게.”
“잠깐 뒤로 가서 나랑 얘기 좀 해요. 알겠으니까. 서로 깔끔하게 끝냅시다.”
성현 대리의 말에 숏 컷 머리여자가 친구 한 명에게 손 짓 했다.
그리고 그 친구와 성현대리가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잠시 후.
“야, 혜림아.”
“어, 얘기 잘 끝났어?”
“응, 저 아저씨는 말이 좀 통하더라. 아저씨 잘 쓸게.”
성현 대리가 분해서 울먹이는 동철차장과 나를 데리고 술집에서 나왔다.
“대리님, 저 미친년들이랑 무슨 얘기 한 거예요?”
“얘기는 무슨. 그냥 용돈 좀 줘서 보냈지.”
하, 씨발년들 진짜.
역시 저 년들이 돈을 노리고 일부러 시비를 건 거다.
“얼마나 주셨어요? 대리님.”
“아, 됐어. 가서 편의점 앞에서 한 잔 더하자.”
“아, 형! 진짜 이러기에요. 나 형 이러면 다음 주부터 회사 안 나간다.”
“아, 진짜. 그냥 조금 줬어.”
말이 조금이지, 그 미친년들 기세로 봐서는 결코 작은 돈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얼마요?”
“8장.”
“성현이 형! 진짜 이러기야?”
“아, 새끼. 그래. 80줬다. 80. 됐냐?”
씨발년들 진짜.
뜯어먹어도 불쌍한 우리 같은 중소기업 다니는 사람들을 뜯어먹냐.
동철차장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 됐어. 저런 미친년들, 시비 받아 준 다, 내 잘못이지. 내가 이따 성현이한테 계좌이체 할게.”
“동철이형이 무슨 돈이 있다고. 그래요. 제가 그 미친년 손목 잡아서 일이 커진 거니까, 저도 낼게요.”
“아, 됐다니까 그러네. 동철이형 새파랗게 어린년한테 뒤통수 맞는데도 가만히 있던 내 잘못이 가장 커. 그냥 둬. 내가 알아서 할게.”
“성현이 형. 그러다 형, 형수님한테 뒤통수 깨져요.”
성현대리가 움찔했다.
형수님한테 잔소리들을 생각하니 등골이 서늘한 거다.
“아, 진짜 사나이 가오 떨어지게. 그러면 시현이 네가 막내니까, 20. 나랑 동철이형이 30. 더 이상 말하지 마.”
다들 아무 말이 없었다.
사실 혼자서 80은 부담스럽지.
“그런데 아까 동철이형 운거 맞죠?”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 일부로 동철차장을 놀렸다.
“뭐 임마?”
“에이, 동철이 형 운거 맞네. 아직도 눈물자국 보이는데요. 다음 기수 모임 때, 얘깃거리 하나 생겼네. 호랑이 동철 병장님이 20대 여자한테 맞고 펑펑 울었다고.”
“야이, 뺀질이 새기야. 너 진짜 죽는다. 오냐! 내가 10만원 줄 테니까. 오늘 딱 백 대만 맞자. 한 대에 1,000원씩.”
“아 동철이형. 형이 때리면 나 뒤통수 구멍 나요. 형 막 특전사 애들이랑 맞다이 까고 그랬잖아요.”
동철이 형, 풀 죽었던 기가 좀 살아났다.
“그 새끼들 진짜. 좆도 아니라니까. 내가 왕년에는 UDT 애들이랑 특전사 애들 2대1로도 가볍게.......”
형. 그런 애들이랑 붙으면 형 열 명 있어도 죽어요.
하여간 기가 살아난 동철이형의 허풍을 들으면 편의점에서 소주를 빨았다.
몇 병을 빨았는지 기억이 안날 정도로.
“아, 죽겠다. 죽겠어. 진짜 좆같은 년들...........”
옷을 그대로 입은 체 넥타이를 풀며 침대에 고꾸라졌다.
“아, 씨바알! 보지 같은 세상! 나도 여자로 태어날 걸~! 어무이 왜 날 좆 달린 남자로 나으셨어요. 보지달린 여자로 나으시지,,,,,,,”
술주정을 하며 침대에서 뒹굴었다.
“아, 씨발........ 무, 물.”
일단 침대에 눕자 냉장고가 너무 멀었다.
주머니를 뒤졌다.
병이 하나 잡혔다.
벌컥 벌컥!
“아, 씨발 내가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샀었나? 아, 몰랑.”
나는 그렇게 “바껴쓰”를 원 샷 하고 침대에서 기절했다.
뭐 씨발 죽기야 하겠어.
1
꿈을 꿨다.
아니, 꿈인가?
똑! 똑! 똑!
비몽사몽이었다.
창문을 열었다.
“어?”
“안녕, 총각.”
“지하철에서 본 할머니?????”
“아직 기억하네.”
휘잉!
여름인데 바람이 찼다.
“할머니 들어오세요. 찬바람 들어와요.”
“들어가도 돼?”
“아, 그럼요. 빨리요. 감기 걸려요.”
“고마워, 총각. 허락을 받아야지만 들어갈 수 있거든.”
“그것보다 이 야심함 시각에 저희 집은 어떻게 아시고.”
“응? 총각. 내 얘기 잘 들어.”
“네?”
“원래는 내가 해야 하는 일인데. 총각이 더 잘할 것 같아서 내 짐을 좀 떠맡겼어.”
“짐이요?”
“응. 별건 아니고, 내일이 되면 다 알거야. 딱 한가지 만 기억해.”
“네? 한가지요?”
“응, 자. 따라 해봐. 보지~~창!”
“보? 보지창?”
이게 뭔 야밤에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야?
“할머니?”
할머니는 어느 사이엔가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기억했다.
우리 집은 13층이었다.
씨발, 별 개꿈을 다 꾸네.
2
“아이고, 머리야.”
어제 잠결에 마신 “바껴쓰” 때문인지 머리가 깨질듯이 아팠다.
이딴 걸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영양제라고 속여서 팔다니.하여간 돌팔이 약장사 새끼들 진짜, 양심 없네.
거실로 가서 냉장고를 열고 물통을 꺼냈다.
찬 물을 들이켰다.
꿀꺽, 꿀꺽!
흐아~ 이제 좀 살 것 같다.
창문으로 햇살이 들어왔다.
부모님은 집에 안 계셨다.
워낙 금술이 좋아 주말에는 등산데이트를 가신다.
“아, 요즘 운동 너무 안 했나. 이제 물통도 무겁네.”
물통이 무거웠다.
어제 화분이랑 정수기 물통을 옮기느라 무리 했다.
근육통이라도 왔나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