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0화 〉 26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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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꼬박 하루 만에 완성된 협상문에 콜탄구트라와 함께 서명을 했다.
이로서 내 촉수군대는 콜탄구트라의 영토에서 물러났고, 사타카람은 안전해졌다.
하지만 겉으로만 그렇게 보일 뿐, 실상은 그렇지 않다.
협상을 한 지 사흘이 지난 지금도 악마촉수들은 땅굴을 통해서 사타카람과 인근 지역의 자하공간을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있다.
또한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여 사타카람의 지하에서 발견된 고대도시를 점거했던 언데드를 모두 쓸어버리고 거기다 두 번째 악마촉수 군락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생산시설이 한군데 몰려있는 게 효율적이긴 하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어느 정도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
그래서 새로운 군락지가 완성되는 대로 기존의 촉수동굴에 있던 촉수번식장의 절반가량을 그곳으로 옮기기로 했다.
하지만 생체건물의 경우엔 광합성을 할 필요가 있어서 지하에 위치한 고대도시에 새로 건설하기엔 적합하지 않았다.
따라서 제2군락지로 통하는 보급로를 보다 튼튼하게 건설하여 촉수번식장과 각종 악마촉수들이 굶주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새로운 군락지를 건설할 수 있는 후보지를 추가적으로 물색해서 코르셰핑 지방 곳곳에 크고 작은 군락지를 확보하고, 가능하다면 다른 지방까지 넘볼 계획이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모체후보자를 내 스스로 확보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엘리자베스를 돌려받고, 평화협정이 체결된 직후로 질서의 추종자들은 나와의 협력관계를 일방적으로 단절했다.
불쾌한 일이었지만 저번에 엘레아노르가 말했던 내부여론을 생각하면 여태까지 묵묵히 협조해준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긴 하다.
이미 잠재적으로 30만의 대군을 보유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모체를 확보해서 당장 급할 것은 없다.
하지만 인류연합제국이 적국이 될 경우를 가정한다면 최소한 50만의 병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이건 내가 질서의 추종자들의 도움을 받기 전에 생각했던 대로 직접 발품을 파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질서의 추종자들이 나와의 협력관계를 종료하면서 생긴 또 다른 문제는 바로 노예해방을 감시하는 기관의 설립이다.
부하라고 해봤자 전부 괴물들이라서 구체적인 실무능력이 필요한 일에는 전혀 적합하지 않았다.
다행히 엘리자베스가 그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엘리자베스는 제0기사단에 직접 명령하여 사타카람에서 인간노예가 제대로 해방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장기임무를 맡기기로 했다.
제0기사단은 황제에게 귀환명령을 받은 뒤로도 몇몇을 코르셰핑에 몰래 남겨두는 소심한 항명을 했었다.
덕분에 엘리자베스가 그들과 바로 접촉하여 자신의 귀환을 알리고 새로운 명령을 하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수도에 있는 제0기사단의 기사단장인 멜리나의 귀까지 엘리자베스의 명령이 닿으려면 시간이 제법 걸릴 테니 여유롭게 기다려야겠다.
머릿속을 정리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지금 내가 머무르고 있는 곳은 보호구역이 아니라 코르셰핑에서 가장 좋은 호텔의 가장 크고 비싼 객실이다.
객실은 호텔의 꼭대기층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크고 야외수영장과 노천탕이 딸려있다.
덕분에 내 사랑들이 섹시한 수영복을 입고서 물놀이를 즐기는 모습을 여유롭게 구경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내 사랑들이 입고 있는 수영복은 특수상점에서 각자 원하는 것을 구매한 것을 바디슈트로 스캔하여 변형시킨 것이다.
라우라는 하얀색 탱크탑 비키니를 입고 있었는데, 상의에 고양이 얼굴모양 구멍이 뚫려있어서 가슴골이 들여다보였다.
그리고 새하얀 피부 위로 선명하게 드러나는 잘 단련된 11자 복근과 골반으로 이어지는 늘씬한 허리라인이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바로 옆에 있는 이리스에게 물을 뿌리면서 즐거워했다.
이리스는 검은색 모노키니를 입고 있었다.
그래서 라우라만큼은 아니라도 충분히 선명한 11자 복근이 잘 보이지 않아서 아쉬웠지만 그만큼 허리라인이 강조되어서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이리스는 라우라가 물을 뿌리자 반격을 하다가 밀리니까 바로 에리카 뒤로 숨어버렸다.
그래서 에리카는 가만히 있다가 물을 얻어맞고 말았고, 자연스레 이리스와 합심하여 라우라에게 반격했다.
에리카는 프릴이 달린 귀여운 디자인의 분홍색 비키니를 입고 있어서 정말 잘 어울렸다.
프릴은 에리카의 작은 가슴을 가려주었지만 섹시한 골반라인은 가려주질 않아서 그녀가 허리를 이리저리 움직일 때마다 가슴이 설레었다.
에리카는 복근은 없어도 몸 자체는 탄탄하게 단련되어 있어서 정말 건강해보였다.
그녀는 라우라에게 조금 과하게 대응하다가 제풀에 넘어져서 물에 푹 빠져버렸다.
그러자 근처에서 관망하고 있던 키아라가 얼른 양손을 뻗어서 에리카를 건져주었다.
에리카는 콜록거리는 와중에도 키아라가 너무 번쩍 들어 올리는 바람에 공중에 붕 떠버린 것이 부끄러워서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나는 그 모습이 마치 언니의 손에 들려있는 나이 어린 동생처럼 보여서 너무 귀여운 나머지 에리카 몰래 사진을 찍었다.
키아라는 가장 전형적인 디자인의 파란색 비키니를 입고 있었는데 가슴과 엉덩이가 커서 그런지 마이크로 비키니처럼 보였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크게 출렁이는 커다란 가슴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수명이 늘어나는 기분이다.
키아라는 독보적으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어도 겉보기에는 근육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날씬해 보일 정도이지 라우라나 이리스처럼 복근이 보이지는 않았다.
키아라는 에리카의 부탁을 듣고는 라우라에게 물을 뿌렸는데 순간적으로 힘을 주체하지 못한 나머지 라우라는 거의 파도에 가까운 물벼락을 얻어맞고는 뒤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그러자 키아라는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라우라에게 다가갔다.
라우라는 물에 둥둥 뜬 채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키아라가 가까이 다가와서 괜찮으냐고 물어보자 크게 웃으며 그녀를 기습했다.
하지만 키아라는 꿈쩍도 하질 않았고, 오히려 라우라를 안아들었다가 그대로 물에 집어넣어버렸다.
그러고는 열심히 도망을 쳤고, 물에서 나온 라우라가 키아라의 뒤를 바짝 쫓았다.
지금까지 가장 어색했던 둘 사이가 저렇게 짓궂은 장난을 서슴없이 칠 정도로 가까워지니 기분이 좋다.
아무튼 내 사랑들이 내 앞에서 꺅꺅거리면서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정말 행복하다.
그동안 마음고생을 했던 보상을 제대로 받는 것 같다.
“레베카, 넌 휴가라면서 왜 같이 놀지 않는 거야?”
갑자기 내 시야를 막아선 사람은 다름 아닌 엘리자베스였다.
나는 방해가 달갑지 않았지만 곧 그런 부정적인 생각이 싹 사라졌다.
엘리자베스가 무려 슬링샷을 입고서 내 앞에서 섹시한 포즈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난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혀버렸고, 열심히 눈알을 움직여서 엘리자베스의 폭력적인 섹시함을 한 눈에 담았다.
키아라보다는 크지 않아도 나보다는 큰 가슴이 코앞에서 흔들리는 모습에 넋을 빼앗길 지경이었다.
“어머, 내 가슴이 그렇게 마음에 들어?”
“솔직히 그래. 자연이 빚어낸 예술이지.”
“지금 네 눈빛이 엄청 변태 같은 거 알고는 있니?”
엘리자베스는 도발적인 수영복을 입고서 내게 보여줄 건 다 보여줘 놓고는 이제 와서 부끄러워했다.
하지만 손으로 가린다고 다 가려지지 않는 수영복인데다 오히려 가슴살이 팔에 눌려서 옆으로 삐져나오는 모습이 더 야릇하게 느껴졌다.
“넌 내가 변태라는 걸 알면서도 그런 수영복을 입었잖아. 세상에 일국의 황녀가 이런 발칙한 수영복을 입어도 되는 거야?”
“그야... 너한테 상을 주고 싶었으니깐.”
“고마워, 최고의 상이야.”
나는 여전히 부끄러워서 얼굴을 붉히고 있는 엘리자베스를 안아들고서 옆에 있는 일명 선베드에 눕혔다.
시원한 파라솔 그늘 아래에 누워있는 엘리자베스의 풍만한 가슴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손이 뻗어졌다.
마음 내키는 대로 내 사랑들의 가슴을 주물렀던 습관이 엘리자베스에게도 마수를 뻗치려고 들었다.
“만지고 싶으면 만져도 돼.”
엘리자베스는 내 손을 덥석 잡더니 자신의 가슴 위에 올려버렸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부드럽고 폭신폭신한 감촉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손을 주물럭거리기 시작했다.
역시 여자의 가슴이라는 건 언제 어떤 식으로 만져도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존재다.
아! 한 번 주무를 때마다 수명이 10분씩 늘어나는 것만 같다.
오늘은 여러모로 수명을 늘리기 좋은 날인 것 같다.
슬링샷 너머로 엘리자베스의 유두가 솟아오르는 것이 보였고, 이대로 슬링샷을 옆으로 젖혀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어때? 마음에 들어?”
“응! 너무 좋아. 앗!”
나는 눈치도 없이 큰 소리로 말했다가 내 사랑들의 따가운 눈초리가 내 등 뒤로 무자비하게 꽂히고 말았다.
앞으로 하렘에 들일 생각이 아니라면 다른 사람에게 애정표현을 하지 말라는 익숙한 압박에 나는 얼른 엘리자베스의 가슴을 손에서 놓아버렸다.
그러자 엘리자베스는 킥킥거리면서 웃기 시작했다.
“너 정말 웃긴다. 눈치를 보는 모습도 귀엽네.”
“네가 내 입장이면 그런 말 못할 걸. 쟤들이 평소에 순종적이라 그렇지 화나면 무서워.”
“후훗. 만약에 나도 저기에 합류하면 똑같이 행동하려나?”
엘리자베스는 심상찮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내 손에 깍지를 끼면서 말했다.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런 건 아니겠지?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만약이라고 했잖아. 왜 그렇게 겁을 내? 아하! 내 신분이 부담스럽나보네.”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지. 어쨌든 넌 황제의 딸이잖아.”
나는 엘리자베스를 처음 본 뒤로 종종 느껴왔던 압박감을 털어놓았다.
친구로 지내는 건 어떻게든 감당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의 관계로 발전하는 건 목숨이 걸린 문제다.
차라리 내가 명망 있는 귀족가문의 셋째 딸쯤 되었더라면 엘리자베스와 연인사이가 되어도 별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평민 출신 명예기사에 불과해서 엘리자베스와 사귀었다가는 무슨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엘리자베스에 대한 과도한 관심을 가지는 걸 자제했었다.
이렇게 장황하게 걱정을 하는 주제에 실컷 가슴을 만지긴 했지만...
“황제에게 버림받고, 불임인 황녀는 더는 신분이 의미가 없는 존재야. 겁먹을 필요 없어. 그리고... 널 독점하지 못하는 하렘에는 딱히 들어가고 싶지 않아.”
엘리자베스는 갑자기 슬픈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방금 전까지는 실없이 웃던 사람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니 좀 어색하다.
내가 대놓고 거부감을 드러내서 마음이 상한 걸까?
“엘리자베스, 너에게 있어서 나는 어떤 사람이야?”
“나만의 것으로 만들고 싶지만 불가능한 사람. 왜냐면 넌 날 애인으로 받아들일 생각이 없고, 난 네 하렘에 들어가지 않을 거니까.”
“내가 생각을 바꾼다면, 그땐 어떻게 할 거야?”
“그건...”
엘리자베스는 내가 묻는 말에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로 내게서 시선을 피하더니 주제를 돌렸다.
“그건 다음에 말해줄게. 지금은 때가 아니야. 그보다 아까도 물어봤었지만 넌 기껏 수영복까지 입어놓고는 왜 애인들이랑 같이 안 놀아?”
엘리자베스는 내 빨간색 마이크로 비키니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입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남이 관심을 보이니 엄청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그게 잠깐 확인할 게 있어서 그랬지.”
“나도 너한테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
내가 웃으면서 하는 말에 엘리자베스는 얼굴을 살짝 붉히더니 내 손을 슬쩍 잡았다.
보아하니 나에게 뭔가 원하는 게 있는 모양이다.
“저기... 갑작스러워서 미안하지만 나 계속 너랑 같이 지내면 안 돼?”
“뭐? 그래도 괜찮은 거야?”
“응. 어차피 아버지는 날 버렸잖아.”
“그래도 너한테는 제국의 안전을 위해서 연구개발을 한다는 사명 같은 게 있잖아.”
“내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긴 해도 나 한 사람 빠진다고 해서 제국군의 기술적 우위가 무너지는 것도 아니야. 그리고 너 같으면 날 버린 사람의 나라를 위해서 일하고 싶겠어?”
“하지만 기존에 네가 해오던 연구나 관련된 시설 같은 건...”
“그 얘기는 그만해!”
엘리자베스는 내 팔을 찰싹찰싹 때리더니 노골적으로 울먹이기 시작했다.
나는 무척이나 당혹스러웠고, 놀고 있던 내 사랑들도 우리 대화에 집중했다.
“레베카, 넌 내가 여기에 있는 게 싫어?”
“아니. 전혀 그렇지 않아.”
“내가 네 곁에 쭉 있는 게 민폐라고 생각해?”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넌 내 친구인 걸.”
“그럼 왜 자꾸 날 억지로 설득해서 돌려보내려고 하는 건데? 왜?”
“미안해. 널 불안하게 만들 생각은 없었어.”
나는 쓸데없는 핑계를 궁리하는 대신에 엘리자베스를 꼭 안아주었다.
그러자 엘리자베스는 처음에는 날 밀쳐내다가 결국엔 내 품에 얼굴을 파묻고서 엉엉 울기 시작했다.
종종 바닥을 신경질적으로 탁탁 내리치는 그녀의 비늘 덮인 꼬리에서 그녀에게 내재된 불안감이 느껴지는 듯 했다.
“난 그냥 계속 네 곁에서 지내고 싶어. 내가 어떻게든 밥값은 할 테니까, 노예가 되어도 좋으니까 제발 날 버리지 말아줘. 부탁이야.”
엘리자베스는 용처럼 세로로 찢어진 동공을 지닌 황금빛 눈으로 나를 애절하게 바라보면서 불안감에 몸을 떨며 말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떨리는 손을 꼭 잡아주고, 이마에 뽀뽀를 해주며 그녀를 진정시켜 주었다.
“엘리자베스, 내가 왜 널 버리겠어? 널 구하기 위해서 그토록 노력한 사람이 나인데 널 버릴 리가 없잖아. 그러니 진정하도록 해.”
“정말? 너는 아버지처럼 날 버리지 않을 거야?”
“당연하지. 무슨 일이 있어도 난 너를 배신하지 않아. 약속할게.”
“역시 난 네가 너무 좋아.”
엘리자베스는 여전히 눈물을 흘리는 와중에도 귀엽게 미소를 지으며 내게 기대었다.
나는 엘리자베스에게 이런 유약한 면모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다소 제멋대로에 자존심이 세고 자기 잘난 맛에 살던 사람이 내게 이토록 의존적이고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다니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
나는 이대로 엘리자베스를 평생 책임져야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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