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2화 〉 251화
* * *
키아라는 내 이름을 부르면서 몸을 몇 번 흔들더니 옆에서 알짱거리던 애완촉수를 말 그대로 반으로 찢어버렸다.
애완촉수의 시뻘건 피가 내 몸을 적시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지만 아직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어서 키아라가 나를 안고서 엉엉 우는 걸 어떻게 막을 수가 없었다.
“키아라... 숨막혀...”
“죄, 죄송해요! 하지만 레베카님이 저 괴물한테...”
나는 키아라가 날 놓아주자 일단 심호흡부터 했다.
그리고 울상이 되어버린 키아라를 보면서 어렵사리 말을 걸었다.
“키아라, 이건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러니까 내가 괴물한테 습격당한 게 아니라... 그게... 애완촉수를 소환해서... 음...”
“소환해서요? 아!”
키아라는 뒤늦게 애완촉수에 대한 사실을 떠올리고는 후회 막심한 표정으로 이미 반으로 갈라져 죽어버린 녀석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녀는 내가 정액으로 범벅이 되어서 축 널브러져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이성을 잃은 모양이다.
“저번에 보여주셨는데도 흥분해서 죽여 버렸네요. 이걸 어쩌면 좋지요?”
“어쩔 수 없지. 그보다 너한테 추한 모습을 보여 버렸네. 아하하...”
나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키아라와 눈을 마주쳤다.
혼자서 할 일이 없다고 애완촉수를 소환해서 섹스나 해버리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려나.
저번에 내 사랑들에게 애완촉수의 존재와 그걸로 내가 뭘 하는지 말을 해주긴 했었지만 막상 직접 보여주고 나니 엄청 부끄러웠다.
“레베카님께 나쁜 일이 생긴 게 아니라서 다행이에요. 그보다 제가 몸을 씻겨드릴게요.”
“아니야. 내가 할 게.”
“지금 기운이 하나도 없으시잖아요. 그러니 저한테 맡겨주세요.”
“응. 고마워.”
키아라는 목용용품을 챙긴 뒤에 나를 공주님처럼 조심스레 안아들었다.
나는 키아라의 품에 기대었고, 그녀는 나를 텐트 인근의 개울가로 데려갔다.
개울물은 수돗물 수준으로 아주 깨끗하고, 수온은 언제나 적당해서 우리가 보호구역에서 머무를 때 자주 애용한다.
키아라는 내 몸을 개울물에 담갔고, 본인도 바디슈트를 해제하여 알몸이 된 뒤에 내 옆에 앉았다.
그러고는 정액과 피, 땀으로 잔뜩 얼룩진 내 몸을 정성스럽게 씻겨주었다.
질색을 할 법한 일인데도 아무런 불만도 없이 오히려 미소까지 지어가면서 나를 씻겨주다니 정말 고맙다.
“레베카님, 애완촉수랑 섹스를 하면 기분이 많이 좋으신 것 같네요?”
“부정하진 않을게.”
“섹스가 하고 싶으셨다면 에리카나 저를 부르지 그러셨어요.”
“너희 둘이서 잘 놀고 있는데 방해하고 싶지 않았어. 그런데 에리카는?”
“특수상점에서 살 게 있다고 잠시 올라갔어요.”
“그렇구나. 어? 비명소리가 들리네.”
나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리는 에리카의 비명소리에 얼른 그녀에게 텔레파시를 보내서 그녀를 안심시켰다.
‘에리카, 나는 괜찮으니까 진정해.’
‘지금 어디세요?’
‘키아라랑 같이 개울가에서 목욕하고 있어.’
‘일단 거기로 갈게요.’
에리카는 황급히 텔레파시를 끊더니 우리가 있는 곳으로 순식간에 달려왔다.
그녀는 숨을 고르면서도 내가 멀쩡한 것을 보고는 안도했다.
“아까 텐트가 피바다라서 깜짝 놀랐어요.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걱정끼쳐서 미안해. 너도 들어올래?”
“아, 네! 잠시 만요.”
에리카는 재빨리 바디슈트를 완전히 해제한 뒤에 개울로 들어와 내 곁에 앉았다.
그러고는 키아라가 하던 일의 일부를 넘겨받아서 내 몸을 구석구석 씻어주었다.
음... 그나저나 보지에서 정액이 계속 흘러나오는 건 좀 부끄럽네.
“얘들아, 잠시만 따로 있자. 그... 말하기 어려운 일이 있어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서 몸속에 남아있는 정액을 빼냈다.
내 사랑들에게 등을 돌리고 앉아있어도 두 사람의 시선이 내 몸을 훤히 들여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난 얼른 일을 마무리한 뒤에 다시 내 사랑들의 곁으로 돌아와서 두 사람 사이에 앉았다.
“레베카님, 얼마나 격하게 섹스를 했으면 애완촉수가 그렇게 죽어버리나요?”
“그게 아니라 키아라가 죽였어. 너무 놀라서 그랬다고 하더라.”
“이리스가 보면 슬퍼하겠네요. 귀엽다고 좋아했었는데...”
에리카는 이리스를 언급했지만 실상은 본인이 아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평소에 애완촉수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니 당연한 반응이겠지.
“걱정 마. 또 소환할 수 있으니까.”
“정말요? 다행이다. 아, 아니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에요. 헤헤헤.”
“나는 아무 말도 안했는데 왜 그러니? 혹시 애완촉수와의 섹스를 경험할 기회가 날아가지 않아서 안심했니?”
에리카는 내가 던지는 짓궂은 질문에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시선을 피했다.
아, 이거 정답이네.
에리카의 얼굴이 빨개지는 걸 넘어서서 유두와 클리토리스가 조금씩 커지는 모습을 보면 확실하다.
하지만 지금은 애완촉수에게 당한 직후인지라 그녀와 섹스를 할 기운이 없었다.
“에리카, 다음에 기회가 되면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줄 테니 걱정 마렴.”
나는 에리카를 뒤에서 끌어안으며 그녀의 목덜미에 몇 번 정도 입을 맞추었다.
그러나 에리카는 얕은 신음소리를 흘리며 몸을 배배꼬았다.
입으로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도 속내는 그렇지 않으니 아무런 말도 하질 못하고 얌전히 내 품에 안겨있었다.
“저기... 레베카님?”
“응?”
“제가 이상하지 않나요?”
“어째서? 전혀 이상하지 않은데.”
“그치만 좀... 변태 같잖아요. 고통 받는 걸 쾌락으로 느끼고 남들 같으면 끔찍하게 여길 촉수랑 하고 싶어 하는 건 이상하잖아요.”
에리카는 내게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고, 그녀의 몸은 부끄러움 탓에 점점 더 뜨거워졌다.
나는 그녀의 빨개진 귀를 살짝 깨물고는 귓가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에리카는 몸을 파르르 떨면서 귀엽게 꺅하는 소리를 냈다.
“에리카,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실은 나도 적절한 고통을 받으면 더 많은 흥분감과 쾌감을 느끼곤 해. 그래서 라우라랑 섹스를 할 때는 주도권을 내어주는 일이 많지. 그리고 애완촉수에 대해서는 내가 더한 사람이고.”
“레베카님과 이런 식으로라도 공통점이 있다는 게 왜 이리도 좋은지 모르겠어요. 남들에게 말하기 부끄러운 일인데도 말이에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나는 에리카의 고개를 돌려서 진하게 키스를 해주었다.
에리카는 내가 지친 것을 알아서 그런지 얌전히 내 키스를 받아줄 뿐, 적극적으로 몸을 비비거나 애무를 하려들지는 않았다.
덕분에 나는 마음 편히 그녀의 볼과 목을 어루만지며 키스를 이어나갔다.
달콤한 키스를 끝낸 뒤에도 에리카의 이마, 볼, 목덜미에 쪽쪽거리면서 입을 맞추며 여운을 느꼈다.
“사랑해, 에리카.”
“저도 레베카님을 너무너무 사랑해요.”
에리카는 내게 등을 기대면서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덕분에 나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키아라는 본인에게도 관심을 달라는 듯 나를 뒤에서 껴안았다.
나는 고개를 들어서 그녀의 볼에 입맞춤을 했다.
그러자 키아라는 씩 웃으며 볼을 쓰다듬더니 내 볼에도 입을 맞추어주었다.
“레베카님, 촉수랑 섹스를 하는 게 사람이랑 하는 것보다 더 기분이 좋나요?”
“음... 서로 방향성이 달라서 뭐가 더 좋다고 하긴 어렵다고 봐. 촉수랑 섹스를 하는 건 단순한 쾌락추구이지만 너희들과 섹스를 하는 건 쾌락보다 서로를 사랑하는 감정을 나누는중요한 의식이라고 생각하거든.”
“저는 레베카님이 촉수랑 하는 게 더 기분이 좋아서 저희들 몰래 하시는 줄 알았어요.”
“그건 단순히 부끄러워서 그래. 혼자 심심하기도 했었고.”
“레베카님은 스스로도 자위를 금지하시나요?”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자위보단 애완촉수와 즐기는 게 더 기분 좋아서... 으으... 이 주제는 부끄러우니까 그만하자.”
나는 황급히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여기서 애완촉수에 대한 이야기를 더 나누었다가는 내 변태적인 본성이 모두 까발려질 것 같아서다.
다행히 키아라는 딱히 아쉬워하지 않았다.
“저는 언제 레베카님과 또 섹스를 할 수 있을까요?”
“미안하지만 오늘은 힘드니까 다음에 하자. 혹시 급하니?”
“아니요. 그런 건 아니지만 저번에 레베카님께서 제 처녀를 가져가신 뒤로 자꾸만 그 날의 쾌락을 다시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칫하면 자위금지명령을 어길 뻔 했어요. 그래도 전 레베카님께서 저를 안아주실 때까지 꾹 참을 거예요.”
키아라는 낯부끄러운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했던가? 아니, 날 새는 줄 모른다고 했던가?
아무튼 키아라는 현시점에선 내 사랑들 중에서 가장 섹스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오늘은 힘들어도 당장 내일이라도 키아라와 섹스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마침 음란도도 올려야하고.
조만간에 키아라에게 피어싱을 달아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흥분된다.
“네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까지 방치하지는 않을 테니 안심해.”
나는 키아라에게도 진한 키스를 해주었다.
키아라는 적극적으로 입술과 혀를 움직여서 내게 애정공세를 퍼주었다.
그래서 나는 키스를 해주는 입장에서 당하는 받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나는 숨을 쉬기 어려운 지경이 되어서도 키아라가 해주는 키스가 너무 기분이 좋아서 그만둘 수가 없었다.
우리는 키스를 끝낸 뒤에 몸을 마저 씻고 개울가에 있는 평평하고 널찍한 바위 위에 앉아서 물기를 말렸다.
나는 키아라의 허벅지를 베고서 누워있었는데, 시야의 대부분을 키아라의 크고 아름다운 가슴이 차지했다.
아! 이 얼마나 훌륭한 광경이란 말인가?
가슴을 만지거나 빨지 않고 그저 바라만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안식이 찾아왔다.
“레베카님, 전 먼저 가서 텐트를 정리할게요.”
“에리카, 그러지 말고 같이 가자.”
“괜찮아요. 혼자 할 수 있으니까 여기서 편히 쉬고 계세요.”
에리카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나를 강제로 눕혀놓고 내가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빠른 걸음으로 텐트로 돌아갔다.
일은 내가 저질렀는데 정작 치우는 사람은 따로 있으니 좀 미안했다.
“제가 죽인 애완촉수를 치우는 건 좀 힘들 것 같은데도 혼자 한다니 대단하네요.”
“그러게 말이야. 정말 고맙네.”
“맞아요. 에리카는 항상 저한테 친절하고 뭐든지 챙겨주려고 해서 너무 좋아요. 그래서 저도 잘해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너희들이 그렇게 서로 챙겨주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행복해지더라.”
“레베카님을 기쁘게 해드렸다니 기분이 좋아요. 그런데 라우라 아가씨와 이리스는 어디로 갔나요? 아까부터 보이질 않네요.”
키아라는 아쉬움이 담긴 눈빛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라우라와 이리스도 에리카와 방식은 조금씩 달라도 키아라에게 잘해주고 있다.
덕분에 키아라는 세 사람과 두루두루 친해져서 예전보다 더 활발하게 어울려 놀았다.
앞으로 키아라가 노예 신분에서 벗어난다면 어떠한 제약 없이 더 친하게 지낼 수 있겠지.
“내가 내린 명령을 수행하러 갔어. 너도 알다시피 라우라는 은신에 능숙하고, 이리스는 장거리저격의 달인이니까 둘이서 힘을 합치면 적을 처리하는 일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지. 널 만나기 전까지도 두 사람의 능력 덕분에 많은 이득을 봤었지.”
“저도 언젠가 두 사람처럼 레베카님께 도움이 되어드릴 수 있을 날이 오면 좋겠어요.”
“지금 이렇게 나를 돌봐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그러니까 그런 일로 부담감을 가지지 않도록 해. 솔직히 라우라와 이리스에게도 그런 일을 시키고 싶지 않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잖아요.”
“그렇긴 하지. 빨리 엘리자베스를 구해내고 이 도시를 떠나고 싶어.”
“분명 황녀님을 무사히 구출할 수 있을 거예요.”
“나도 그렇게 믿고 있어.”
나는 키아라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기분 좋은 감각을 만끽하면서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러자 눈앞에서 엘리자베스의 모습이 어른거리는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 만나서 대화를 나눠본 적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지만 그래도 나는 엘리자베스를 소중한 친구라고 생각한다.
서로 만난 시간을 따질 것 같으면 내 사랑들과도 알고 지낸지가 짧으면 한 달 남짓, 길어도 반년이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하다.
중요한 건 알고 지낸 시간이 아니라 서로의 인연이 얼마나 깊게 채워졌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엘리자베스와는 충분한 깊이의 인연을 채웠다고 생각한다.
“레베카님! 연락이 왔어요!”
내가 잠시 엘리자베스에 대한 생각을 하는 동안 에리카가 나를 향해 뛰어오면서 크게 소리쳤다.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귀걸이처럼 생긴 통신기였다.
아차! 항상 곁에 지니고 있으라는 말을 깜빡하고 말았네.
나는 얼른 요란한 알림이 울리는 통신기를 받아서 그것을 작동시켰다.
“이봐, 왜 이렇게 늦게 받는 거야?”
“미안해. 씻고 있엇어.”
“그래? 다음에는 그럴 때도 곁에 두고 있도록 해. 언제 어떤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엘레아노르는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지만 딱히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알았어. 주의할게. 그런데 무슨 일이야?”
“지금 코르셰핑 기사단 놈들이 픽픽 죽어나가는데 이거 네 애인들 작품이지?”
“그래. 내가 명령한 일이야.”
“원래 우리 쪽에서 하려던 일을 가로채다니 대단하네. 그것도 정확하게 목표만 골라서 죽이고 있어. 네 애인들 실력은 우리가 상정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나.”
“당연하지. 누구 애인들인데.”
“영주 쪽에서도 엘카힘과 연관된 놈들이 있는데 네 쪽에서 대신 처리해줄 수 있어?”
“너희들이 제공하는 정보가 확실하다면 그렇게 해줄게.”
“고마워! 덕분에 우리 파벌도 여유가 생기겠어. 그럼 다음에 또 연락할게.”
엘레아노르는 기쁜 목소리로 말하며 통신을 종료했다.
이거 아무래도 라우라와 이리스에게 제대로 된 보상을 준비해야할 것 같다.
힘든 일을 많이 시켰으면 그에 합당한 보상과 보너스를 주는 건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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