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0화 〉 24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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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5일 동안 촉수군대를 관리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다.
엘레아노르의 부하들은 매일 밤 10시마다 적게는 서너 명, 많게는 10명 정도의 모체후보자들을 데려왔다.
나는 그중에서 기생적합도가 C급 이상인 후보자들만 모체로 만들고 나머지는 적절하게 처리했다.
그래서 번식방이 가득한 촉수번식장이 4개가 되었고, 번식방에 여유가 있는 촉수번식장은 기존에 것을 포함하여 총 3개로 늘어났다.
덕분에 악마촉수 보유한도가 4천 마리를 훌쩍 넘어섰다.
그 중에 절반가량은 최하급 악마촉수이다.
난 지금까지 최하급 악마촉수는 생산할 필요성이 없다고 여겼었다.
반쯤은 재미로 악마촉수를 만들고 있었고, 진지하게 촉수군대를 양성하지 않아서다.
그래서 중급과 상급을 주력으로 하는 소수정예 특수부대 같은 군대를 만들 궁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10만이나 되는 콜탄구트라의 군대를 상대로는 그에 상응하는 물량이 필요하고 그 물량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최하급 악마촉수이다.
제아무리 중급과 상급 악마촉수가 강력해도 포위당한 상태로 대포에 얻어맞으면 버텨낼 수가 없다.
따라서 그러한 고급생체병기들이 마음껏 전투를 할 수 있도록 받쳐줄 수 있는 병력들의 지원이 필요하다.
최하급 악마촉수는 성체의 크기가 중형견 수준이고 공격력과 호전성은 맹견 이상이기 때문에 단순한 고기방패 수준을 넘어선다.
따라서 오크군대의 총알을 낭비시키고 적진에 뛰어들어 혼란을 유발하는 식으로 상위개체들의 전투력을 최대한 보존할 수 있다.
그 다음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하급 악마촉수는 최하급 악마촉수 바로 뒤에서 따라 움직이며 호랑이에 준하는 덩치로 적진을 휘저을 수 있다.
그리고 약 10%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 중급 악마촉수는 하위 개체들이 고전하는 곳에 유동적으로 배치하여 적의 방어선을 돌파하거나 적의 주력을 파괴하는 역할이다.
마지막으로 상급 악마촉수는 단 두 마리에 불과하고 파괴되면 재생산에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평소에는 대기하고 있다가 진짜 중요한 전장에만 투입할 예정이다.
문제는 상급 악마촉수를 제외하면 모든 개체들이 철저하게 근접전만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적의 화력이 예상을 상회한다면 접근해보기도 전에 전멸할 수도 있다.
즉, 적보다 더 많은 물량이 필요한데 10만을 훌쩍 넘는 병력을 준비하려면 시간도 시간이지만 보급이 문제다.
병력이 늘어나면 그만큼 더 넓은 공간과 많은 식량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은 사냥과 채집으로 식량을 조달하고 모자라면 내가 도시의 시장에서 사오는 수준에 불과하다.
지금은 어떻게든 버틸 수는 있지만 병력이 1만 마리가 넘어서면 한계에 봉착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주변 숲에 서식하는 동물이나 식용식물들은 싹 쓸려나갔고 최하급과 하급 악마촉수들을 보다 넓은 범위로 보내서 식량조달을 이어나가고 있다.
아쿨타리 마을에서 얻은 자동화시설만 어떻게든 설치할 수 있다면 보급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텐데 아직 쓸 수 있는 방법을 모르겠다.
혹시 내가 땅을 구매하면 그때 해금되려나?
촉수동굴과 최대한 가까이에 있는 땅을 사서 시험해봐야겠다.
만약 불가능하더라도 다시 팔거나 그냥 묵혀두었다가 다른 용도로 사용하면 될 것이다.
“이제 슬슬 올 때가 됐는데...”
나는 악마촉수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촉수동굴 앞에서 엘레아노르의 부하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4인 1조에 남자로만 구성된 그 녀석들은 언제나 시간을 정확히 맞췄고, 지금도 밤 10시가 되자마자 내 시야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 녀석들이 끌고 온 우리 안에는 6명의 모체후보자가 있었고,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다들 수면제를 먹고 잠을 자고 있었다.
“여기 판결문입니다.”
나는 가면쟁이 하나가 내미는 서류뭉치를 들고 찬찬히 내용을 들여다보았다.
모두 계획살인, 무장강도, 납치, 불법인신매매 등등 흉악범죄를 저지른 것들이었다.
이 세상은 재판을 할 때 사람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기 때문에 모든 재판은 단심제이고 판결문도 간단하게 작성되기 때문에 다 읽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늘 끌려온 모체후보자들은 모두 기생적합도가 B, C등급이라서 따로 처분할 필요가 없었다.
A등급 이상의 기생적합도를 가진 모체후보자를 보내주면 좋겠는데, 역시 찾기 어렵겠지.
나는 지나가는 하급 악마촉수에게 명령해서 모체후보자들을 촉수번식장들이 모여 있는 산란장으로 옮기도록 했다.
“다들 오느라 수고했어. 이제 볼 일 끝났으니 가보도록 해.”
나는 가면쟁이들을 얼른 돌려보냈다.
녀석들이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내심 다 죽여 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다.
지금은 질서의 추종자 놈들과 척을 져서 좋을 게 없으니 빨리 내 눈앞에서 치워버리는 게 최선이다.
그리고 나는 하루하루 촉수번식장으로 채워지고 있는, 촉수동굴에서 가장 중요한 산란장으로 들어왔다.
산란장에서는 모체가 된 젊은 여자들의 교성이 들리고 곳곳에서 막 산란된 악마촉수의 알들이 최하급 악마촉수들에 의해서 바로 옆의 육성장으로 옮겨졌다.
처음에는 산란장에서 유체나 아성체인 악마촉수들을 자라게 했지만 갈수록 자리가 좁아져서 따로 육성장을 만들었다.
“그럼 또 일을 해볼까나.”
나는 촉수번식장의 비어있는 번식방에 기생적합도에 따라서 한 명씩 집어넣었다.
그리고 남는 한명에게는 새롭게 기생촉수를 심었다.
수면제에 취해있어서 비명을 지르거나 울부짖는 일이 없어서 좋았다.
처음에 엘리사나 엘티나를 모체로 만들 때는 꼴린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걸 보면서 자위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엘레아노르로부터 모체를 공급받기 시작한 뒤로는 그냥 업무라는 생각이 들어서 아무런 성적자극이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도 내 앞에서 기생촉수에 감염되어 모체로 개조되고 있는 사람을 보아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내가 길게 하품을 하면서 빨리 숙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려는 찰나에 갑자기 내 관심을 끄는 일이 생겼다.
“이 알림창은 또 뭐야? 이중감염?”
나는 이중감염이라는 게 무엇인지 궁금해서 이어지는 설명을 자세히 읽어보았다.
일단 내가 방금 기생촉수로 감염시킨 숙주가 이미 악마기생충에 감염된 상태라고 한다.
아니, 검역을 제대로 해서 보내야할 거 아니야!
난 이어지는 설명이 없었다면 즉시 폐기처분하고 소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중감염은 나쁜 게 아니었다.
오히려 악마기생충으로부터 마물의 유전정보를 얻어서 새로운 형태의 악마촉수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특정한 동물을 숙주로 삼은 마물을 처치하여 유전정보를 획득하면 그만큼 악마촉수를 만들어낼 때 개조할 수 있는 범위가 늘어난다.
예를 들어서 와이번을 숙주로 만들어진 상급 마물의 유전정보를 얻으면 그만큼 크고 비행이 가능한 악마촉수를 만들어낼 수 있다.
물론 지금은 이제 막 새로운 기능이 해금된 상태라 가장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한정된 유전정보만 사용할 수 있다.
나는 새롭게 등장한 촉수제작창을 열어서 견본으로 나열된 악마촉수들 중에서 현재 유일하게 이용이 가능한 최하급 악마촉수의 정보를 불러왔다.
그리고 나는 초기화를 한 뒤에 정해진 개조포인트 내에서 새로운 악마촉수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래봤자 이용 가능한 유전정보는 정해져있으니 고민할 것도 없었다.
따라서 나는 몸체를 풍뎅이처럼 만들고 6개의 다리를 더 굵게 만든 뒤에 대가리는 마물 특유의 형태로, 등에는 악마촉수답게 공격촉수다발을 달아주었다.
이렇게 개조한 굳이 다용도촉수나 보행촉수를 추가할 필요가 없으니 개조포인트를 아낄 수 있고, 남는 개조포인트로는 덩치를 키우고 각종 신체능력을 향상시켰다.
새롭게 만든 악마촉수는 견본으로 불러온 최하급 악마촉수에 비해서 훨씬 튼튼하고 강력하며 마물수준으로 질긴 생명력을 가졌으며 크기도 표범 수준으로 커졌다.
나는 새로운 악마촉수의 색을 전체적으로 어둡게 만든 뒤에 보병급이라는 간단한 이름을 지은 뒤에 개조를 확정지었다.
그러자 생산 가능한 악마촉수의 목록에 보병급이 새로 추가되었다.
보병급은 유체에서 번데기를 거쳐서 성체로 자라나고, 아성체 시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유체는 풍뎅이의 유충처럼 생겼고, 번데기는 성체와 비슷한 생김새를 가졌다.
이러한 성장과정은 내가 건드릴 수 없는 부분이다.
보병급은 하급 악마촉수보다 전반적인 능력치가 뛰어나지만 최하급 악마촉수를 기반으로 개조했기 때문에 더 빨리 태어나고, 식량만 충분하면 성장속도도 더 빠르다.
그리고 최하급 악마촉수와 보유한도를 공유하기 때문에 더 많은 보병급을 보유하려면 그만큼 최하급 악마촉수의 개체수를 줄여야한다.
나는 최하급 악마촉수의 생산을 멈추고 대신 보병급을 생산하도록 명령했다.
그리고 보병급이 태어나면 최하급 악마촉수를 하나씩 먹이로 주는 방식으로 점차적으로 최하급 악마촉수를 보병급으로 대체하도록 했다.
“좋아. 병력을 강화할 방법이 생겨서 마음에 드는 걸. 그럼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갈 방법을 찾아봐야겠네.”
나는 다시 촉수제작창을 열어서 추가적인 견본을 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았다.
방법은 간단했다.
더 많은 모체후보자를 촉수번식장에 흡수시키면 하나씩 잠금이 풀리는 방식이었다.
이때 모체부호자의 기생적합도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고 오직 숫자만 영향을 끼친다.
지금까지는 C급도 안 되는 것들은 모두 악마촉수의 식량으로 만들었는데, 이제부터는 촉수번식장에 흡수를 시켜야겠다.
나는 새로운 기능을 확인한 뒤에 촉수번식장의 상태와 내게 새로운 기능을 해금하는 기회를 제공해준 모체의 상태를 점검하고는 촉수동굴에서 나왔다
“후우... 이거 솔직히 사람이 할 짓이 아니네.”
나는 이제 와서 후회를 했다.
구도자를 모체로 만들 때는 아무런 죄책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흉악범 출신 노예들을 모체로 만들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보유하고 있는 모체가 점점 늘어나고 그것들을 관리하다보니 뭔가 내 인간성이 점점 깎여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특히 모체로써는 쓸모가 없다고 사람을 곧바로 촉수를 위한 자원으로 만들어 버리는 건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짓거리다.
하지만 엘카힘과 콜탄구트라의 손에서 엘리자베스를 구하려면 어쩔 수 없다.
보기 좋은 방법을 쓰고 싶어도 그럴 시간도, 능력도 없다.
누군가 그런 방법으로 엘리자베스를 구해주길 바라는 건 사실상 그녀를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결국 내가 할 수밖에 없다.
내 사랑들이 내 곁에 남아주는 이상, 엘리자베스를 구하는 과정에서 마왕이라고 손가락질을 당해도 상관없다.
하지만 만약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버림을 받게 된다면, 그땐 정말 밑도 끝도 없이 타락해서 세레나가 원하는 대로 진짜 마왕이 되어버릴지도 모르겠다.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하자. 내가 무고한 사람을 해치지 않는 이상에야 다들 날 버리지 않을 거라고.”
나는 자기합리화를 하면서 타바란을 소환하여 녀석의 등에 탑승했다.
그리고 촉수동굴의 상공을 한 바퀴 돌아본 뒤에 코르셰핑을 향해 날아갔다.
나는 코르셰핑에 도착하자마자 어두운 골목길을 빠르게 걸어가서 코르셰핑 기사단본부와 가까운 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함께 잠입 작전을 펼치고 있는 라우라와 이리스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얘들아, 일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니?’
‘전 지금 기사단장의 집무실에 숨어있어요.’
나는 라우라가 보낸 텔레파시에 서둘러 지도창을 열어보았다.
그러자 라우라와 루덴돌프라는 사람의 이름이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루덴돌프가 라우라 주변을 이리저리 오가는 모습을 보니 내가 다 식은땀이 흘렀다.
‘라우라, 위험한 상황 아니니?’
‘걱정 마세요. 전 천장에 숨어있고, 루덴돌프는 불안해서 집무실을 왔다 갔다 하는 중이거든요.’
라우라는 상당히 여유로운 태도를 보였다.
하긴 라우라의 잠입실력이라면 웬만하면 들킬 일이 없긴 하다.
‘그리고 제가 집무실을 마안으로 보면서 언제든지 저격할 준비를 하고 있어요.’
‘이리스, 거기서 특이사항은 보이지 않니?’
‘정찰드론도 함께 띄우고 있는데 지금은 딱히 이상한 게 없어요.’
‘다행이네.’
나는 지도창으로 이리스가 자리 잡고 있는 탑 주변을 살펴보았는데, 거기엔 이리스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었다.
탑에서 집무실까지의 거리는 500미터 정도이니 이리스의 저격실력이라면 간단하게 목표를 제거할 수 있겠지.
내가 두 사람에게 코르셰핑 기사단 본부를 대상으로 잠입작전을 펼치라고 한 이유는 그들의 이상하리만치 비협조적인 태도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그 이유를 알아내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다.
‘라우라, 알아낸 것 있니?’
‘일단 코르셰핑 기사단은 급하게 새로 창설되어서 단원들에 대한 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그 상태로 10년이 지나버렸으니 부패가 상당히 진행되었고요. 예를 들어 어느 부단장은 범죄조직과 결탁하고 있고 어느 기사들은 불법도박장과 창관을 운영하고 있어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기사단장은 엘카힘과 손을 잡았어요.’
‘역시 구린 구석이 있었네. 증거는 확보했니?’
‘아쉽게도 기사단장과 엘카힘 사이에 이루어진 거래에 대한 물증은 전혀 남아있지 않아요. 그 어떤 것도 문서로 남기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제가 기사단장과 엘카힘의 부하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우연히 포착하지 않았다면 아무 것도 모르고 넘어갔을 거예요.’
‘그렇구나. 얘들아, 너희들은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니?’
내 질문에 라우라와 이리스는 일단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 이리스가 먼저 의견을 내놓았다.
‘저는 물증을 잡을 때까지는 함부로 나서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귀족이니 암살을 해버리면 도시가 엄청나게 혼란해져서 사소한 행동도 의심을 받을 지도 몰라요.’
‘라우라, 넌 어때?’
‘지금 당장 머리를 날려버리는 게 좋다고 봐요. 엘카힘의 협력자가 이 도시에 있다면 레베카님이 하시는 일에 지장이 생길 가능성이 높을 테니까요. 그리고 갑자기 기사단장이 죽어버리면 그를 추종하면서 엘카힘의 파벌을 돕는 놈들에게 아주 좋은 경고를 줄 수 있을 거예요.’
‘흐음... 지금은 라우라의 말대로 하는 게 좋겠어. 이리스, 기사단장을 저격하도록 해. 라우라는 목표가 죽었는지 확인한 뒤에 바로 빠져나오고.’
‘네, 레베카님.’
이리스는 내 명령에 군말 없이 바로 복종했다.
곧 총성이 울렸고, 지도창에서 루덴돌프라는 이름이 사라졌다.
얼굴도 모르는 놈이지만 엘카힘과 협력하는 이상, 죽일 수밖에 없다.
나는 라우라와 이리스가 내 곁으로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숙소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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