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상에서 마음껏 살아간다-240화 (240/271)

〈 240화 〉 239화

* * *

내가 사람들이 갇혀있는 우리의 자물쇠를 부수려고 할 때, 갑자기 귀가 찢어질 것만 같은 굉음과 함께 무언가 내게 세차게 부딪혔다.

상당히 큰 충격에 중량 마법갑옷을 입었는데도 몸이 휘청거렸다.

나와 부딪힌 것은 다름 아니라 피투성이가 된 키아라였다.

내 마법갑옷은 온통 키아라의 피를 뒤집어썼고, 그녀는 바닥에 엎드린 채로 더 많은 피를 토해냈다.

“키아라! 키아라! 정신 차려!”

나는 키아라의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지금까지 줄곧 강한 모습을 보여 왔던 사람이 갑자기 처참한 몰골이 된 현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당장 거기서 피하세요!”

나는 라우라의 급박한 외침에 서둘러 키아라를 안아들고서 몸을 피했다.

그리고 간발의 차로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굉음과 함께 충격파를 일으키며 바닥을 뒤엎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창살에 가까이 앉아있던 사람들의 눈알이 터졌고, 몸에 있는 모든 구멍에서 시커먼 피를 흘리며 즉사해버렸다.

조금만 대처가 늦었더라면 나도 저 사람들과 똑같은 꼴을 당했을 게 분명하다.

키아라는 보통 사람보다 훨씬 튼튼한 호문쿨루스라서 즉사를 면했던 것이고.

나는 키아라를 구석으로 데려간 뒤에 얼른 고속회복캡슐을 꺼내서 키아라에게 먹여주었고 만능수혈패치를 붙여주었다.

하지만 호문쿨루스에게도 효과가 적용되는지 확인할 여유가 없었다.

이러고 있는 동안에도 다른 사람들이 힘겹게 적의 공격에 맞서고 있으니 말이다.

“키아라, 금방 돌아올게.”

나는 힘겹게 숨을 몰아쉬는 키아라를 두고서 황급히 전투에 합류했다.

세 사람은 키아라와 달리 메이드의 섬세함 스킬 덕분인지 정체모를 공격에 적중되기 전에 아슬아슬하게 회피하면서 위쪽을 향해서 계속해서 사격했다.

사격이 가해지는 곳에는 기하학적 무늬가 새겨진 검은색 가면을 쓰고 있는 재창조교단의 구도자가 있었다.

지도창에는 엘티나라는 이름으로 표기되고, 몸의 실루엣을 보아서는 번호 자매들과 마찬가지로 큐버스족 여성으로 추정된다.

엘티나는 가면의 방어막을 믿고서 자신을 향해서 총알이 빗발치든 말든 자리를 지키고서 팔에 차고 있는 마법무기로 굉음을 동반한 강력한 공격을 계속해서 퍼부었다.

내 사랑들이 소환한 무장드론들도 공격에 가세했지만 엘티나의 공격을 버텨내지 못하고 맥없이 분해되고 말았다.

나는 내 사랑들이 엘티나와 교전을 하는 동안 기둥 뒤에 숨어서 분석스킬을 사용했고, 그녀가 사용하는 특수한 무기가 음파발사기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난 일단 풍압탄을 몇 발 쏴서 음파를 상쇄시켜보려고 했지만 엘티나의 음파공격은 고작 풍압탄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나도 구도자의 가면을 쓰고 정면에서 덤비는 수밖에.

나는 치트가방에서 엘리사가 사용했던 구도자의 가면을 꺼내 쓰고서 앞으로 나섰다.

가면의 방어막은 역시 강력해서 엘티나의 음파공격도 막아냈지만 그만큼 주변으로 음파가 퍼져나가서 부수적인 피해를 만들어냈다.

이대로라면 내 사랑들이 나와 엘티나의 교전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얘들아, 일단 뒤로 물러나서 키아라를 지켜. 저 놈은 내가 상대할게.’

‘네! 여기 흑검을 쓰세요.’

내 사랑들은 내 지시에 따라서 신속하게 후퇴했고, 라우라는 내게 흑검을 던져주었다.

나는 한 손에는 흑검을, 다른 한 손에는 마력권총을 들고서 마법추진기를 이용해 단번에 엘티나가 있는 곳까지 올라갔다.

엘티나는 내게 자신의 공격이 통하지 않자 당황한 기색을 보였지만 멍청하게 제자리에 있지 않고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그러고는 바로 내 앞에 음파를 쏴서 난간을 무너뜨려 나를 다시 떨어뜨리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즉시 마법추진기를 작동시켜 무너지지 않은 곳으로 올라가 엘티나를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엘티나는 계속해서 내 앞을 쏴서 길을 없애버리거나 천장의 구조물을 떨어뜨리면서 도망칠 시간을 벌려고 했다.

나는 길이 무너지면 마법추진기로 점프하고 로켓펀치로 떨어지는 구조물을 날려버리는 식으로 간단하게 대처하며 전진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엘티나는 날 견제하는 걸 포기하고 온 힘을 다해서 다른 구역으로 통하는 문으로 달려갔다.

저기로 도망치게 놔두면 우리가 여기에 갇힐지도 모르니 얼른 막아야한다.

나는 연막탄을 쏴서 엘티나의 시야를 가리고 무장드론에 탑재된 마력대포를 쏴서 통로를 완전히 무너뜨려 문을 잔해 속에 파묻어버렸다.

엘티나는 무너진 통로에 음파공격을 했지만 길을 내는 데는 역부족이었고 화풀이라도 하려는 듯 마력대포를 쏜 무장드론을 격추했다.

“이제 항복하는 게 어때?”

“엘카힘님의 심복인 나보고 겨우 너 따위 년에게 항복을 하라고? 웃기지 마라!”

앙칼진 목소리로 스스로를 엘카힘의 심복이라고 밝힌 엘티나는 내 위로 음파를 쏴서 천장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나는 피하지 않고 그대로 돌진하여 흑검을 내질러 엘티나의 배를 찔러서 꼬챙이처럼 만들어버렸고 그대로 무너지는 난간과 함께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다행히 흑검을 손에서 놓지는 않았지만 자욱한 먼지 때문에 엘티나가 보이질 않았다.

나는 정찰드론을 소환하여 열화상기능으로 엘티나의 위치를 찾아냈는데, 하필이면 키아라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이 새끼가!’

난 전속력으로 엘티나를 향해서 뛰어갔지만 한 발 늦고 말았다.

엘티나는 자신의 앞을 막아서는 내 사랑들을 음파공격으로 날려버린 뒤에 키아라를 인질로 잡았다.

다행히 내 사랑들은 마법갑옷을 입은 채로 빗맞은 덕에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엘티나가 키아라의 머리에 음파발사기를 조준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진작 이럴 걸 그랬네. 괜히 적성에도 맞지 않는 싸움을 한다고 시간만 낭비했어.”

“당장 물러나.”

“내가 왜? 그나저나 엘루체가 만든 호문쿨루스는 역시나 튼튼하네. 내 공격을 고스란히 얻어맞고도 죽지를 않다니 말이야.”

엘티나는 마리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애초에 마리가 엘카힘과 함께 호문쿨루스를 연구했고, 엘티나는 엘카힘의 심복이라고 하니 모를 리가 없겠지.

“키아라에게 허튼 짓을 했다가는 태어난 걸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이미 다 죽어 가는데 내가 그걸 좀 앞당긴다고 달라질 게 있겠어? 당장 무기를 내려놓고 마법갑옷을 벗어. 아, 아니지. 그냥 다 벗고 바닥에 엎드려.”

엘티나는 흔해 빠진 요구를 하면서 음파발생기를 키아라의 머리에 바짝 가져다대었다.

그녀는 내게 집중하느라 키아라가 눈을 슬쩍 뜨는 걸 발견하지 못했다.

키아라는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씩 웃었다.

나는 그녀가 눈빛으로 전하는 말이 무엇인지 깨닫고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뭐야? 왜 웃어? 내가 지금 장난하는 걸로 보여?”

“네 요구를 들어줄 생각이 전혀 없으니까 그렇지. 난 너처럼 쓰레기 같은 것들하고는 절대로 협상하지 않아.”

“그럼 이 녀석의 머리가 터지는 결과를... 헉!”

엘티나는 갑자기 키아라가 벌떡 일어나며 맨손으로 음파발사기를 박살내자 화들짝 놀라며 아래를 내려다보더니 반대쪽 음파발사기를 쏘려고 했다.

그러나 키아라의 움직임이 더 빨라서 가뿐하게 조준에서 벗어났다.

엘티나가 쏜 음파는 엉뚱한 곳을 타격했고, 키아라는 엘티나의 옆에 사뿐히 내려앉아 남아있는 음파발사기를 손날로 내려쳤다.

그러자 음파발사기가 파괴되는 건 물론이고 엘티나의 팔까지 분질러졌다.

“아아악! 이 괴물!”

사색이 된 엘티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죽어라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애초에 검은색 가면은 전투와 거리가 먼 연구원들이니 무기가 박살나면 도망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난 엘티나가 도망치는 걸 방치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나는 마법추진기를 작동시켜서 엘티나와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혔고 그대로 흑검으로 그녀의 가슴팍을 관통해버렸다.

“으으윽! 엘리사, 이 병신... 커억!”

엘티나는 엘리사를 탓하다가 내가 바닥에 패대기를 치자 고통 속에서 부들거렸다.

우두둑하는 소리가 들린 걸 보면 아마도 갈비뼈 몇 개 정도는 부러졌을 거다.

“네 말처럼 엘리사 덕분에 너희들을 상대하는 일이 아주 편해졌어. 이 검만 있으면 가면의 방어막 따윈 종잇장이나 다름없더라.”

나는 흑검을 요리조리 휘두르며 엘티나에게 겁을 주다가 그녀의 가면을 벗겼다.

가면 너머에는 큐버스족답게 아름답고 젊은 여성의 얼굴이 숨겨져 있었다.

하지만 난 그녀의 얼굴을 보고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아무리 예뻐도 가면쟁이인 이상, 호의적인 감정 따윈 전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얘들아, 잠시 저쪽에 가서 쉬고 있을래?”

나는 내 사랑들에게 자리를 비울 것을 명령했고, 다들 조용히 내 뜻에 따라주었다.

덕분에 나는 엘티나와 둘이서 오붓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얼른 죽여!”

“일단 좀 닥치고 있어봐.”

나는 엘티나의 입에 흑검을 꽂아서 말을 못하게 한 뒤에 그녀의 기생적합도를 확인했다.

오호라, 엘리사처럼 A등급이네.

이거 정말 기쁜 걸? 나처럼 지구출신이 아니면 좋겠네.

스킬을 얻는 것도 좋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양질의 모체를 얻고 싶거든.

감히 나와 내 사랑들을 모체로 만든다는 망발을 했으니 똑같이 갚아줘야지.

“보아하니 넌 정말 쓸 만한 년이야. 그러니 죽이지 않고 잘 써줄게.”

나는 엘티나의 입에 꽂은 흑검을 뽑으며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엘티나의 상처가 재생되었고 그러자마자 그녀는 소리를 질렀다.

“그냥 죽이라고! 제발 죽여줘!”

“왜? 평소에 자살충동이 많이 들었어? 하긴 엘카힘 같은 년 밑에서 일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

“닥쳐! 그 분을 모욕하지마라!”

“지랄하네.”

나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엘티나의 무릎을 밟아서 완전히 으스러뜨렸다.

당연히 엘티나는 시끄럽게 비명을 질렀고, 나는 그녀가 조용해질 때까지 구경했다.

“엘카힘은 지금 어디에 있지?”

“나도 몰라. 알고 있어도 말해줄 수 없어.”

“너희 족속들은 왜 항상 말에 제약이 걸려있는 건데?”

“규정이 그런데 나보고 어쩌라고? 아악!”

엘티나는 내가 화풀이로 손을 밟아버리자 다시 요란하게 소리를 질러댔다.

죽여 달라고 아우성을 치던 녀석이 고통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며 울상을 짓는 게 너무 웃긴다.

“그럼 다른 질문. 이 시설은 네가 관리하는 거냐?”

“그래. 전적으로 내 관리 하에 있지.”

엘티나는 계속되는 내 폭력적인 행동에 겁을 먹어버렸는지 순종적인 태도를 보였다.

가면쟁이를 굴복시킬 때는 항상 기분이 좋단 말이지.

“그럼 여기서 일어난 일은 전부 네 책임이겠네. 그렇지? 그런데 왜 번거롭게 던전을 만든 거야? 그냥 노예를 사면되잖아.”

“노예보다는 적당히 단련된 신체가 실험체에 훨씬 더 적합하니까. 그래서 던전을 개조하고 모험가들을 끌어들여서 미로에 집어넣었다.”

“섹스를 하지 않으면 나오지 못하는 방도 네 작품이냐?”

“무슨 소리야? 난 그런 함정을 만든 적이 없다. 던전에 들어오면 바로 미로로 통하게끔 길을 만들었다. 넌 내가 쓰지 않는 엉뚱한 입구로 들어왔겠지.”

“거짓말이면...”

“아, 씨발! 내가 그딴 해괴한 방에 대해서 거짓말을 해봤자 뭐하겠어?”

엘티나는 욕을 하긴 해도 두려움에 떠는 게 훤히 보였다.

내가 발을 살짝 드는 것만으로도 움찔거리는 모습이 내 가학심을 자극했다.

“그럼 어떤 새끼가 그런 짓을 한 거지... 아무튼 미로에 돌아다니던 것들은 전부 네 작품이지?”

“그래. 남자로 호문쿨루스 개조에 대한 거부반응이 너무 커서 자꾸 괴물로만 만들어졌지만 여자를 개조하는 일은 쉬워서 이리저리 써먹었지.”

“저 사람들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어?”

나는 우리에 갇혀있는 불쌍한 남자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엘티나는 재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글쎄? 이미 뇌가 적절하게 손상되어서 불가능하겠지. 여자들도 하루만 괴물과 교미를 하지 않으면 죽는 몸으로 만들었고. 넌 절대로 실험체들을 구할 수 없어.”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았다.”

“넌 거짓말이 서툰 년이구나! 뻔히 마음 아파하는 게 눈에 다보인단 말이다!”

나는 엘티나가 도발하자 욱하는 마음에 그녀의 머리를 몇 번이고 짓밟아서 곤죽으로 만들어버렸다.

희생자들을 아무도 구할 수 없다니 너무 답답해서 화가 난다.

이번에는 엘티나가 재생되는 시간이 많이 걸려서 나는 차가운 물을 벌컥벌컥 마시면서 답답한 속을 달래었다.

“그냥 좀 죽여...”

“시끄러워. 고작 그런 일로 엄살부리지마. 너한테는 더욱 끔찍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닥치고 있어.”

“뭐? 무슨 짓을 하려고?”

“네가 나한테 하려던 짓.”

“설마... 안 돼! 싫어!”

“하여간 너 같은 악당들은 남들에게는 거리낌 없이 악행을 저지르면서 자기가 당하는 건 질색을 한다니까. 이봐, 원래 나쁜 짓을 할 때는 자기도 당할 각오를 해야 하는 법이야. 걱정 마. 고통은 잠시 뿐이고 영원한 쾌락이 널 지배할 거야. 후후후.”

“싫어! 싫어! 넌 여기서 나랑 같이 죽어야해!”

엘티나는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다가 갑자기 품속에 손을 넣더니 작은 수정구를 조작했다.

그러자 시설 전체에 사이렌이 울리고 수정구에서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아, 이거 전에 한 번 경험한 적이 있는 일 같은데...

“설마 또 자폭이냐?”

“그래! 크하하하하!”

엘티나는 정말 이상한 년이다.

고통을 받는 건 엄청 무서워하면서 정작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니 말이다.

하긴 가면쟁이들 중에서 정신이 멀쩡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어.

“어차피 더 물어볼 것도 없으니 일단 여기서 나가야겠네.”

“뭐야? 너 왜 겁을 먹지 않지? 너무 무서워서 정신줄을 놓은 거냐?”

“아니. 간단하게 나갈 수 있거든.”

나는 엘티나의 목을 흑검으로 베어서 입을 다물게 만들고 내 사랑들에게 텔레파시를 보내서 다시 내 쪽으로 불러들였다.

지금 내게 여기서 탈출할 방법은 단 하나, 바로 촉수동굴로 워프하는 것이다.

내 사랑들에게 내 비밀을 들켜버릴 지도 모르지만 지금으로선 이게 최선이다.

곧 밝은 빛이 우리를 감쌌고, 우리는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게 던전에서 빠져나왔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