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상에서 마음껏 살아간다-230화 (230/271)

〈 230화 〉 229화

* * *

볼르디아의 서쪽 성문 앞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는 곳에는 기린만큼 키가 큰 익룡 한 마리와 그것에 안장을 올린 내가 있었다.

나는 어제 사테르디아의 가축시장에서 이 익룡을 인도받았다.

루카스가 미리 대금을 지불해서 내가 따로 돈을 낼 필요는 없었고 익룡 전용 안장까지 선물 받았다.

듣자하니 이 녀석을 잡느라 3명이 다쳤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치료비도 루카스가 따로 지원해줬다고 한다.

익룡은 처음엔 굉장히 반항적이었지만 나는 날개 길들이기 스킬을 사용한 뒤에 녀석에게 충분히 시간을 들여서 나에 대한 신뢰를 쌓고 친근감을 느끼게 만들어주었다.

처음에는 사람 키만큼 기다란 부리를 가진 녀석에게 약간의 위협마저 느꼈지만 적응이 되니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리고 내 사랑들에게 의견을 물어본 끝에 ‘타바란’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타바란은 역사상 처음으로 익룡을 타고 하늘을 비행한 사람이라고 한다.

내 생애 첫 익룡에게 지어주기엔 적당한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레베카님, 정말 혼자 가셔도 괜찮으시겠어요?”

라우라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걱정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물어보았다.

익룡은 덩치에 비해 이륙하는데 있어서 무게제한이 깐깐하기 때문에 타바란처럼 큰 익룡도 성인 한 명을 태우고 약간의 짐을 싣는 게 한계다.

마침 타바란은 날개를 쫙 펼치면 경비행기와 비슷한 수준이니 1인승 경비행기를 구입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응. 걱정 마. 타바란을 타고가면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할 거리니까. 그리고 돌아올 때는 훨씬 더 빨리 돌아올 수 있어.”

“혹시나 하늘을 나는 마물과 만나시면 어쩌나 싶어서요.”

“그건 운에 맡겨야겠지. 그런데 오늘은 왠지 그런 불상사가 벌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근거는 없지만 그냥 그런 믿음이 생긴다고나 할까.”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그래. 다들 잘 놀고 있어.”

나는 내 사랑들에게 키스와 포옹을 연달아 해주면서 인사를 했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부러움과 질투를 담은 시선을 보냈다.

아, 이거 뭔가 기분이 좋은 걸?

“레베카님, 아기에게는 힘든 여행이 될 테니까 잘 돌봐주세요.”

“물론이지. 엄청나게 조심할게.”

나는 에리카에게서 아기가 누워있는 요람을 넘겨받았다.

이 요람은 평범한 요람은 아니고 마법으로 작동하는 비싼 요람이다.

아기에게 가장 쾌적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주고, 아기가 최대한 깨지 않고 잘 수 있도록 수면을 유도하고, 외부의 충격이나 격렬한 움직임으로부터 아기를 완벽하게 지켜준다.

타바란을 타면 높은 고도로 올라가기 때문에 이러한 마법요람이 없으면 갓난아기를 태우고 하늘을 나는 것 자체가 아기에게 너무나도 위험한 일이다.

“막상 헤어지려니까 엄청 아쉽네요. 안녕, 아가야. 언젠가 또 만나자.”

이리스는 투명한 요람의 덮개 너머로 보이는 아기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녀의 눈가가 촉촉해진 것을 보니 말로만 아쉬운 게 아닌 게 분명했다.

미리 단체사진이라도 찍어둬서 다행이다.

“아가야, 행복하게 지내길 바랄게. 너희 어머니도 그걸 바랄 거야.”

키아라는 이리스와 마찬가지로 눈물을 글썽이며 아기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는 마리에 대한 애증으로 인해 복잡해진 심경으로 인해 아기를 바라보는 시선도 우리와는 사뭇 달랐다.

하지만 그건 적대감이 아니라 동정심을 품은 시선이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마리의 죄로 인해 태어난 아기에 대한 동질감이 안타까움을 더욱 키우는 듯 했다.

“작별인사를 다 했으면 출발할게.”

“안녕히 다녀오세요.”

나는 내 사랑들의 배웅을 받으며 타바란의 안장 위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요람을 안장에 단단히 고정하고 고삐를 잡았다.

“가자, 타바란.”

타바란은 내 명령을 받자마자 앞다리 근육의 막강한 힘으로 큰 덩치를 하늘 위로 던지듯이 땅을 박차더니 곧장 10미터에 달하는 날개를 펼쳐서 힘껏 날갯짓을 했다.

녀석의 이륙은 상당히 격렬했지만 마법요람 덕분에 아기는 평온함을 느끼고 있었다.

타바란은 계속해서 고도를 높이다가 내가 바디슈트의 헬멧을 작동시켜야할 정도로 춥고 바람이 강한 곳까지 올라갔다.

“와, 정말 높은 곳까지 올라왔네. 도시가 한 눈에 다 보여.”

나는 지상을 내려다보면서 혼잣말을 했다.

이틀 전의 일 때문에 줄곧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것만 같았다.

“내가 널 진작 인도받았어야 했는데 말이야.”

나는 타바란의 털로 덮인 목을 쓰다듬으며 말했고 녀석은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는 몰라도 특유의 울음소리를 냈다.

타바란이 비행에 집중하는 사이에 나는 지도창을 열고서 항로를 살펴보았다.

지상에서는 꾸불꾸불한 길을 따라가야 하지만 하늘에서는 그럴 필요 없이 직선으로 길이 이어지니 너무 좋았다.

나는 타바란이 마을의 상공으로 바로 진입하지 않고 마을로 들어가는 비밀입구 앞에 착륙하도록 목적지를 다시 지정했다.

타바란처럼 커다란 맹수가 갑자기 나타나면 마을사람들이 겁에 질릴 테니 말이다.

나는 타바란이 목적지로 제대로 가는 지 다시 한 번 확인한 뒤에 아기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아기는 지금은 잘 자고 있지만 한 시간 정도 지나면 젖을 물려야할 시간이다.

공중에서는 젖을 물릴 수가 없으니 지상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잠시 착륙장소들을 미리 알아두기를 잘했다.

그렇게 긴 시간의 비행과 짧은 착륙을 두 번 반복한 뒤에야 마을의 비밀입구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요람을 들고 내려서 고생한 타바란에게 충분한 양의 생선과 고기를 제공해준 뒤에 보호구역으로 돌려보냈다.

만약 지금 내 사랑들이 보호구역에 있다면 내 도착을 간접적으로 알아차렸을 것이다.

도중에 드론을 한 대씩 소환해서 배치했다면 장거리 텔레파시를 할 수 있었겠지만 오늘은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자, 그럼 들어가 볼까?”

나는 저번에 문을 여는 방법을 제대로 배웠기 때문에 여기서 하염없이 주민들이 드나들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난 테리제나를 소환하여 녀석을 타고서 어둑한 동굴을 지나서 마을로 들어섰다.

그러자 정겨운 기분이 물씬 들었다.

이 마을에서 지낸 시간은 내 인생에 비해서 굉장히 짧지만 제2의 고향처럼 느껴질 정도로 정이 들어버렸다.

평범한 사람이라고는 한 명도 살지 않는 곳이지만 그런 건 아무런 문제도 아니다.

서로 너무나도 다르게 생긴 사람들이 마을의 평화와 풍요라는 목표를 위해서 함께 뜻을 모으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본다.

마을사람들은 갑작스러운 나의 등장에도 굉장히 반가워하면서 인사를 건넸고, 나도 그 사람들에게 일일이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리고 오늘도 동네 아이들은 어김없이 나를 쫄래쫄래 따라다녔고, 나는 그 아이들에게 미리 준비한 과자를 뿌렸다.

아이들은 과자를 양손에 들고서 신나게 웃으며 어디론가 급하게 뛰어갔다.

이쯤 되면 얘들이 내가 좋아서 모인 것인지 그냥 과자를 위해서 달려드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고맙다고 고개를 숙이는 걸 보면 기본적인 예의는 있는 녀석들이다.

나는 시끌벅적한 아이들을 뒤로 하고 도로테아의 집으로 향했고, 마당에서 감자를 깎고 있는 도로테아와 마르코를 발견했다.

두 사람은 내 인기척을 느꼈는지 곧장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들은 나를 보자마자 놀라움으로 눈이 휘둥그레지고 반가움으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레베카 씨! 만나서 반가워요. 이렇게 빨리 다시 뵙게 될 줄은 몰랐어요.”

“나도 그래. 잘 지냈니?”

“네, 덕분에 아주 잘 지내고 있어요. 그런데 이건 뭔가요?”

도로테아는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달려와 나를 포옹하려다가 내가 들고 있는 요람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보다시피 요람이야.”

“요람이라면 혹시 안에 아기도 있나요? 보여주실 수 있나요?”

“응. 잠시만 기다려.”

나는 요람의 덮개를 치우고 안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는 아기를 도로테아에게 보여주었다.

그러자 도로테아는 푸근한 미소를 지었고, 뒷정리를 하고 온 마르코도 아기를 보자마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두 사람은 아기가 평범한 사람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 이 아이도 저와 같은 경우인가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아이라서 너랑은 경우가 달라. 보다시피 평범하지 않아서 어떻게 하면 좋을 지 고민하다가 어쩔 수 없이 너희들을 찾아왔어. 사전에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와서 미안해.”

“아니에요. 저희들은 레베카 씨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니까요. 실례가 아니라면 아기를 안아 봐도 될까요?”

“물론이지.”

도로테아는 내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조심스럽게 아기를 안아들었다.

다행히 아기는 잠에서 깨긴 했지만 울지 않았고 도로테아의 품에서 얌전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갓난아기들은 시력이 굉장히 좋지 않다고 들었지만 이 아이는 호문쿨루스이니 벌써부터 눈이 잘 보이는 걸지도 모르겠다.

“정말 귀엽네요. 너무 사랑스러워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여보, 당신도 안아볼래요?”

도로테아의 제안에 마르코는 새의 울음소리를 내면서 난색을 표했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분위기만 봐서는 아기를 다치게 할까봐 겁나는 모양이다.

결국 도로테아가 새소리를 내면서 마르코를 설득한 끝에 그도 아기를 안아보았다.

처음에는 어쩔 줄 몰라 하던 마르코는 아기와 눈을 마주치고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마르코는 그 상태로 도로테아와 길게 대화를 주고받다가 다시 그녀에게 아기를 넘겨주었고, 도로테아는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서 아기를 바라보았다.

“레베카 씨, 이 아이가 갈 곳이 없다면 저희 부부가 입양하면 안 될까요?”

도로테아는 고맙게도 내가 꺼내려던 말을 대신해주었다.

솔직히 다짜고짜 찾아와서 대뜸 남의 아이를 입양해달라고 부탁하기 어려웠는데 말이다.

“정말 그래도 괜찮겠어?”

“네, 방금 남편과 대화를 나누면서 이 아이를 입양하기로 결정했어요. 저희 부부는 항상 아이를 가지고 싶었지만 제가 불임이라서 그럴 수가 없었잖아요. 그래서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기로 했어요. 게다가 저희 마을이라면 외형 때문에 차별을 받을 일도 없고요.”

“그 아이를 받아줘서 고마워. 너희들이 아니었다면 정말 난감했을 거야.”

“아니에요. 오히려 저희 부부에게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해요. 이 아이의 이름은 뭔가요?”

“입양한 사람들에게 양보하려고 짓지 않고 있었어.”

“그렇군요. 아가야, 너에게는 어떤 이름이 좋을까? 후훗.”

도로테아는 아기에게 말을 걸면서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그녀와 마르코는 함께 재잘거리는 새소리를 내면서 의견을 나누다가 겨우 결론을 내렸다.

“아가야, 오늘부터 너는 카르멘이란다. 부디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

도로테아는 아기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그토록 가지고 싶었지만 가질 수 없었던 아이를 이런 식으로라도 가지게 되어서 엄청나게 기뻐했다.

그러자 마르코도 눈물을 훔치며 도로테아와 카르멘을 동시에 안아주었다.

앞으로 카르멘이 좋은 양부모님 밑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나는 부부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치트가방에서 각종 육아용품을 잔뜩 꺼내서 창고에 넣어주었다.

이 정도 양이면 아마도 1년 정도는 쓸 수 있을 것 같다.

“레베카 씨, 설마 이것들을 전부 주시는 건가요?”

“응. 난 이제 더는 쓸 일이 없으니까 부담가지지 말고 모두 받아줘. 그리고 이건 모유가 나오게 하는 약이야. 이거라면 아기를 굶기거나 젖동냥을 다닐 필요가 없어.”

“정말 감사합니다. 항상 레베카 씨에게 은혜를 입기만 해서 큰일이네요.”

“이번엔 오히려 내가 은혜를 입었지. 너희들이 카르멘을 받아주지 않았더라면 정말 힘들었을 거야.”

“저희 입장에선 레베카 씨가 이번 일로 저희를 먼저 생각해주셔서 고마운 걸요. 그나저나 잠깐 맡아줄 아기를 위해서 직접 모유가 나오는 약까지 드시다니 정말 대단하세요.”

“그게... 나 말고는 할 사람이 없었거든. 그럼 난 이만 가볼게. 카르멘을 잘 부탁해.”

나는 할 일을 끝냈으니 미련 없이 떠나고자 했다.

괜히 뜸을 들이면 카르멘과 헤어지는 게 너무 괴로워질 것 같아서다.

고작 이틀을 돌봐줬을 뿐인데도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픈지 모르겠다.

“먼 길 오셨는데 식사는 하고 가세요.”

“난 괜찮아.”

“저희들이 안 괜찮아요. 간식이라도 좋으니까 뭐라고 드시고 가세요. 게다가 조금 있으면 해가 질 텐데 아예 자고 가시는 것도...”

“알았어. 알았으니까 진정해. 자고 가는 건 어렵지만 저녁은 먹고 갈게.”

내가 밥을 먹고 간다고 하니까 도로테아의 얼굴이 환해졌다.

하여간 사람이 너무 친절하다니깐.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곧 준비해드릴게요.”

“그동안 카르멘은 내가 돌보고 있을게. 마침 모유수유를 할 시간이기도 하고.”

“네, 레베카 씨.”

나는 도로테아에게서 카르멘을 넘겨받은 뒤에 방으로 들어가 젖을 먹였다.

이게 마지막 모유수유라고 생각하니 짠한 기분이 들었다.

복수에 미친 한 사람의 광기로 인해 태어난 아이라는 사실을 알아서 그런지 카르멘에게 좋은 양부모가 생겨서 감격스러울 정도였다.

앞으로 카르멘이 어떻게 성장할지는 모르겠지만 도로테아와 마르코의 밑에서 자란다면 분명 올바른 사람이 될 것이다.

내가 모유수유를 끝내고 카르멘의 등을 두드리는 사이에 식사가 준비되었다.

나는 마침 트림을 한 카르멘을 요람에 눕히고 부부와 함께 약간 이른 저녁식사를 즐겼다.

그리고 후식으로 차를 마시면서 도로테아에게 동전주머니 하나를 건넸다.

“이건 양육비야. 많은 양은 아니지만 몇 년 정도는 쓸 수 있을 거야.”

“육아용품도 그렇게 많이 주셨는데 돈까지 많이 주시면...”

“아기를 키우는 일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잖아. 그리고 처음에는 내가 거둔 아이이니 이런 식으로라도 책임을 지고 싶어.”

“감사합니다. 후회하거나 실망하시는 일이 없도록 카르멘을 잘 키울게요.”

“응. 그거면 난 충분히 보상을 받는 거야. 카르멘, 언제 다시 만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렴.”

내가 카르멘에게 작별인사를 건네자 갑자기 카르멘이 울기 시작했다.

아직 사람 말을 알아듣지 못할 시기이니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나를 울컥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나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서둘러 도로테아와 마르코에게 작별인사를 건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카르멘을 만날 날을 기약하면서 마을을 떠났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