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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세상에서 마음껏 살아간다-228화 (228/271)

〈 228화 〉 227화

* * *

우리는 대신전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바깥의 분위기가 워낙에 어수선하고 기사단원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은 전부 붙잡고 검문을 했다.

다행히 나는 명예기사라는 특수한 신분 덕분에 검문을 받지 않고 통과할 수 있었다.

나와 내 사랑들에게는 귀찮은 일을 면하는 정도였지만 아기에게는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마리가 이런 상황까지 내다보고 호문쿨루스 아기를 나에게 맡겼는지도 모르겠다.

“사제님. 저는 명예기사 레베카입니다. 실례지만 추기경님을 만나 뵙기로 했는데 어디에 계시는지 아시나요?”

“새턴 추기경님 말씀이십니까?”

“네, 그 분이 맡기신 일을 완수해서 보고를 드려야하거든요.”

“알겠습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나는 친절한 사제 덕분에 새턴이 있는 곳으로 바로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듣자하니 새턴은 추기경을 위해서 마련된 별채에서 머무른다고 한다.

별재는 대신전 뒤에 있는 작은 숲 속에 위치해있었다.

나는 당연히 귀족의 저택정도는 될 것이라 예상했었지만 일반적인 주택 수준이었다.

“제가 추기경님께 먼저 보고를 드릴 테니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사제는 우리를 시원한 나무그늘이 있는 벤치에 앉혀놓고 별채로 들어갔다.

그리고 몇 분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밖으로 나왔다.

“명예기사님, 추기경님께서 2층의 기도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나머지 분들은 대화를 하시는 동안 거실에서 머물러달라고 하셨습니다.”

“도와주셔서 고마워요.”

“아닙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것은 사제의 본분이니까요.”

사제는 나에게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하고는 대신전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우리는 별채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별채 내부에는 사치스러운 가구나 화려한 장식물 같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가정집처럼 느껴졌다.

“에리카, 아기는 어때?”

“잘 자고 있어요. 하지만 곧 모유를 먹여야할 텐데...”

“음...”

나는 에리카의 간절한 눈빛을 보면서 고민에 빠졌다.

생각해보니 내 사랑들은 다들 빠지지도 않는 피어싱을 해서 아기에게 모유를 먹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피어싱이 아무리 몸에 해로운 성분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더라도 연약한 아기의 입으로 젖꼭지와 금속을 함께 물으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키아라에게 부탁하자니 뭔가 미안해서 그럴 수가 없었다.

결국 내가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알았어. 내가 모유수유를 할 게.”

“무리한 부탁을 드려서 죄송해요.”

“아니야. 어떻게 보면 자업자득인데 뭘.”

나는 치트가방에서 모유가 나오는 약을 꺼내서 눈을 딱 감고 입에 털어 넣고 물과 함께 꿀꺽꿀꺽 삼켜버렸다.

약의 크기가 커서 먹기가 좀 힘들었지만 어떻게든 삼키는데 성공했다.

아직은 아무런 변화가 느껴지지 않지만 마리가 간단히 써둔 설명서에 따르면 사람에 따라서 10분에서 30분이면 모유가 나온다고 한다.

“이거 약만 먹으면 끝나는 일일까?”

“제가 다른 산모들에게 들은 건데 하루 정도는 계속 아기에게 젖을 물리거나 손으로 짜내야 제대로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아, 그리고 모유수유를 하는 동안 술은 금지에요.”

“하아, 내가 어쩌다가 나와 피도 통하지 않는 생판 모르는 아기에게 젖을 물리게 된 거지... 아하하...”

나는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내가 낳은 것도, 내 사랑들이 낳은 것도 아닌 아기를 위해서 직접 모유수유를 하기로 결심하게 될 줄이야.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뭔가 어색하고 이상해서 심란하다.

하지만 이미 약은 먹어버렸고, 아기에게 모유수유를 하겠다고 말을 해버렸으니 이제 와서 하기 싫다고 그만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는 뭔가 답답한 마음에 물을 마저 마셨다.

“레베카님, 나중에 저희들도 모유를 마셔도 될까요?

“푸으읍! 콜록, 콜록! 뭐, 뭐라고?”

나는 라우라가 뜬금없이 던지는 말에 마시던 물을 뿜어내고 말았다.

얘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가 아기를 계속 키우는 게 아니라 잠시 맡아주는 거잖아요? 입양을 보낸다고 갑자기 모유가 안 나오는 건 아닐 테고 그렇다고 나오는 걸 버리는 건 아까우니 저희들이 맛을 좀 보는 건 어떨까 싶어서요.”

“라우라, 넌 정말이지 대단한 사람이야. 난 상상도 못해본 일인데 말이지. 얘들아,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니?”

이리스와 에리카는 내가 묻는 말에 얼굴을 붉히며 수줍어했다.

나 참, 얘들도 라우라랑 생각하는 게 똑같구나.

그나마 키아라는 아직 순수한 사람인지라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흠흠.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나는 새턴을 만나고 올게.”

나는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내 가슴을 바라보는 내 사랑들의 시선이 뭔가 무서웠기 때문이다.

삐걱거리는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가자 여러 개의 방이 눈에 보였다.

나는 그 중에서 기도실이라고 적혀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거기엔 작은 신상이 하나있었고, 새턴은 그것을 열심히 닦고 있었다.

새턴은 나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아주 반가워하면서 하던 일을 멈추고 쫄래쫄래 다가왔다.

세레나와 똑같이 생긴 그녀의 미소는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어째서 세레나는 나를 직접 만나러오지 않는 걸까?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는 게 아니라면 굉장히 섭섭할 것 같다.

“안녕, 새턴.”

“레베카님, 다시 만나 뵙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예의상하는 말이야? 아니면 진심이야?”

“당연히 진심이랍니다. 저희 자매들은 모두 레베카님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새턴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하지만 나는 이제 하렘멤버를 더 들일 생각이 없는데다 한꺼번에 8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건 너무 부담스러웠다.

“난 이미 애인들이 많아서 너희들의 사랑을 받아주긴 힘들 것 같은데.”

“괜찮습니다. 저희들의 사랑은 연인 사이의 사랑과는 결이 다르니까요.”

“그래? 뭐, 어떤 이유든 나를 좋아해준다니 고맙네.”

나는 멋쩍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자 새턴은 활짝 웃으면서 기뻐했다.

늘 기계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자 보기 좋았다.

생각해보니 세레나도 처음에는 감정표현이 굉장히 서툴렀었지.

그땐 그냥 수줍음을 많이 탄다고 여겼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생체컴퓨터였으니까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레베카님, 지정의뢰는 어떻게 되었나요?”

“안 그래도 결과를 보고하려고 찾아왔어. 인공생명체는 호문쿨루스로 개조된 불쌍한 아이들이었어. 그리고 그걸 만든 장본인은 바로 마리 디베르였지. 마리는 복수를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대략 1시간 전에 디베르 가문을 전멸시키고 본인은 자결했어.”

“디베르 가문에 변고가 생겼다는 정보는 이미 접했지만 영주를 포함한 모든 디베르 가문 사람들이 죽었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가족모임이라고는 해도 그 많은 귀족들이 농장으로 모이는데 수행원이 하나도 없는 건 좀 이상했어. 다른 음모가 숨겨져 있는 걸까?”

“농장에서 가족모임을 할 때는 수행원이나 손님을 대동하지 않는 게 디베르 가문의 전통입니다. 따라서 마리 디베르가 그 전통을 악용한 것 같습니다.”

“그렇구나. 그럼 지정의뢰는 이걸로 종료된 거지?”

“결과적으로는 그렇습니다만 후작영주가문이 전멸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으니 레베카님께서는 최대한 빨리 사테르디아를 떠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괜히 연루되어서 조사받고 싶지 않거든. 지켜야할 아기도 있고.”

“아기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새턴은 내가 하는 말을 듣자마자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아, 이거 혹시 말실수를 한 건가?

하지만 여기서 약하게 나오면 아기가 위험해질 수 있으니 물러나지 말자.

“마리가 죽기 전에 갓난아기를 거두어달라고 부탁했어. 호문쿨루스이고 생긴 것도 평범하지 않지만 그래도 버릴 수는 없어.”

“아, 그런 것이군요. 저는 또 레베카님께서 남들 몰래 낳으신 아기라고 착각을 해서...”

“내 아이라면 문제될 것이라도 있니?”

“착각 때문에 조금 놀랐을 뿐입니다. 레베카님께서는 그 아기를 키우실 겁니까?”

“아니. 입양을 보낼 곳을 찾을 때까지만 돌봐줄 생각이야.”

“평범하지 않게 생겼다면 마리아가 만든 마을의 주민들에게 맡기시는 게 어떨까요?”

“너도 그걸 알고 있었어?”

“마리아와 저희 자매는 오랜 협력관계를 구축하여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마을을 만들 때 약간의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래? 친하다니 다행이네. 아무튼 덕분에 아기를 맡길 곳을 찾았어. 고마워.”

“아, 아닙니다. 전 아무런 도움도 되어드리질 못했는데...”

“방금 좋은 제안을 해줬잖아. 그러면 충분히 도움을 준 것이지.”

나는 무심코 손을 들어서 새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실수를 했다 싶었지만 새턴은 싫어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눈까지 감아가면서 내 손길을 즐겼다.

“새턴, 의뢰를 달성한 보상은 언제 받을 수 있을까?”

“황제가 행정적인 절차를 마무리 지어야하기 때문에 시간이 제법 걸릴 것으로 사료됩니다. 대신 금전적인 보상은 바로 지급해드리겠습니다.”

새턴은 직접 돈을 주는 대신에 내 동전주머니에 바로 입금을 해주었다.

전 재산에 비하면 별로 많은 돈은 아니지만 평민들이 평생 먹고 살 수 있을 수준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번 의뢰가 이런 식으로 마무리되어도 괜찮은 걸까?”

“무슨 말씀이신지요?”

“아무래도 사건이 엄청 커져버렸잖아. 그래서...”

“정치적인 것은 귀족들에게 맡기시고 레베카님께서는 다음 목적지로 떠나시면 됩니다. 만약 이번 일로 번거로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신다면 저희 자매들이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추기경이라는 신분은 장식이 아니니 말입니다.”

새턴은 자신감을 보이면서 말했다.

하긴 추기경은 사제들 중에서 아주 높은 신분이고 8명의 추기경이 내 편을 들어주면 황제도 쉽사리 날 건드리지 못할 거다.

예상치도 못했던 든든한 뒷배가 생기니 정말 좋다.

“고마워. 아참, 내 애인들과 만나보지 않을래?”

“좋은 제안을 해주셔서 감사하지만 다음 기회에 만나도록 하겠습니다.”

“어째서?”

“레베카님께서는 서둘러 사테르디아를 떠나셔야하는 입장이고 저도 도시의 혼란을 잠재울 의무가 있는 사람인지라...”

“알았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그럼 나는 가볼게.”

“다음에 또 만나 뵙기를 고대하겠습니다. 부디 몸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응. 너도 잘 지내. 세레나에게도 안부 전해주고.”

나는 새턴을 한 번 포옹해주고는 그녀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기도실에서 나왔다.

새턴은 못내 아쉬워하면서 손을 앞으로 살짝 뻗으려다가 말았다.

나도 아쉽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1층으로 내려온 나는 거실에 있는 내 사랑들을 불렀다.

그러고는 다함께 서둘러 특수상점으로 향했다.

나는 특수상점으로 들어가자마자 혹시나 싶어서 육아용품을 찾아보았지만 역시나 그런 건 하나도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아이를 키우는 일만큼은 쉽게 해결해주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레베카님! 이제 슬슬 젖을 물려야할 것 같아요.”

에리카는 아기가 칭얼거리기 시작하자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나는 서둘러 아기에게로 다가가서는 바디슈트를 조작하여 오른쪽 유방을 노출시켰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아기를 받아 들어서 젖을 물렸다.

처음엔 너무 자세가 어설퍼서 나와 아기 둘 다 힘든 상황에 직면했지만 다행히 에리카가 자세를 똑바로 잡아주었다.

“이거 젖이 나오기나 하는 걸까?”

“아기의 입가를 보니까 나오는 것 같기는 해요.”

“이렇게 하다보면 나중엔 충분히 나오겠지. 아얏!”

“그러고 보니 처음에 모유수유를 하면 한동안 아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안 나오던 게 갑자기 나와서 그런가보네. 아기를 봐서 참아야겠다.”

나는 열심히 내 젖꼭지를 빨고 있는 아기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내와 피한방울 섞이지 않고 평범하게 생기지도 않은 아이가 왜 이렇게 사랑스러워 보이는지 모르겠다.

생애 첫 모유수유를 해주는 것만으로도 일종의 모성애가 생겨버린 것일까?

뭐, 깊게 생각하지 말자.

“레베카님, 그러고 계시니까 정말 엄마 같아요.”

“그래? 뭔가 부끄럽네. 헤헤.”

“저도 언젠가는 제 딸이나 아들에게 이렇게 해주고 싶어요.”

이리스는 내 곁에 앉아서는 부러움이 가득한 시선을 보내왔다.

언제나 나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가지고 싶어 하니 내가 생판 남의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것조차도 부러운 모양이다.

“그냥 우리가 키울까요?”

“여행을 하는 입장에서 아기를 키우는 건 무척 힘든 일이잖아. 게다가 언제든지 위험해지는 여행길에 치명적인 약점을 만들고 싶지도 않고.”

“역시 그렇겠죠? 억지를 부려서 죄송해요.”

“그럴 수도 있지. 언젠가 우리 사이에 아이를 낳으면 그때 잘 키워주자.”

“네, 레베카님.”

이리스는 기약도 없는 내 약속에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평생 이루어줄 수 없는 소원이 될 수 있는데도 말이다.

“레베카님, 아기는 어디로 입양시키실 건가요?”

“도로테아의 마을에 맡기려고 해.”

“아하! 생각해보니 거기 말고는 맡길 곳도 없네요.”

“그렇지. 다른 곳에서는 분명 괴물이라면서 살해당할 거야. 그러니 그 마을이 유일한 희망이야.”

나는 마을 사람들 중에서도 도로테아와 마르코 부부에게 아기를 맡길 생각이다.

분명 두 사람이라면 아기를 잘 키워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물론 둘이 거부를 한다면 마을사람들을 모두 돌아보면서 키워줄 사람을 찾아야할 것이다.

“일단 오늘은 보호구역으로 내려가서 쉬도록 하자. 하루 만에 너무 많은 일이 있었잖아. 그리고 내일은 내가 부탁했던 익룡을 인수한 뒤에 전송실을 써서 볼르디아로 떠나자.”

나는 앞으로의 방침을 통보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승강기로 향했다.

그리고 내 사랑들과 함께 승강기를 타고 내려가 보호구역으로 들어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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