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6화 〉 225화
* * *
마리는 언제나처럼 나를 향해 싱긋 웃으며 다가왔다.
하지만 더는 그녀의 미소가 순수해보이지 않았다.
“아직 시간은 많으니 하루에 한두 곳씩 천천히 관광을 할 생각이에요.”
“그렇군요. 아, 그렇지. 마침 이렇게 만났으니 다 같이 차라도 한 잔 하실래요?”
“좋아요. 그런데 제가 여기에 있는 건 어떻게 알았나요?”
“그야 아랫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금방 알 수 있지요. 다들 기꺼이 제 눈과 귀가 되어주니까요.”
마리는 웃는 얼굴로 협박에 가까운 말을 했다.
언제든지 감시를 당하고 있으니 말과 행동을 조심하라는 거겠지.
“자, 저택으로 돌아가요.”
마리는 내게 손을 내밀면서 말했고 나는 마지못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에 대한 진실을 알고 나니 그녀의 모든 게 다 의심스럽고 음모가 숨겨져있는 것만 같았다.
그래, 차를 마시면서 솔직하게 대화를 나눠보는 게 좋겠어.
저택으로 들어가니 로비나 복도에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특히 아침까지만 해도 제법 보였던 손님들은 다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설마 마리가 다 처리한 건 아니겠지?
“레베카님,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신가요?”
“그게 아니라 좀 뜬금없긴 하지만 다른 손님들이 전부 외출을 했나 싶어서요.”
“실은 오늘 갑작스럽게 가족모임이 정해져서 어쩔 수 없이 양해를 구하고 모두 따로 숙소를 구해드렸어요.”
“그러면 저도 나가야하나요?”
“아니요. 부모님께서 저를 구해주신 분을 만나고 싶다고 하셨으니 꼭 남아주셔야 해요.”
마리는 강요에 가까운 말투로 말했다.
이 시점에 갑자기 가족모임을 한다니, 굉장히 예감이 좋지 않다.
나는 마리를 따라서 응접실로 들어가서 소파에 앉았다.
날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라우라와 이리스가, 왼쪽에는 에리카와 키아라가 앉았고 맞은편은 마리의 자리다.
“그럼 제가 다과를 내올 테니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마리 아가씨,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키아라, 넌 레베카님의 노예이니 명령에도 없는 짓은 하지 마렴.”
“네...”
마리는 자신을 따라오려는 키아라를 제지하고 다시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시무룩해하는 키아라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응접실을 나섰다.
나는 이 기회에 내 사랑들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얘들아, 함정 같은 게 없는지 살펴보도록 해.’
‘음... 여기엔 그런 것이 전혀 보이지 않아요. 제 예감이지만 독살을 조심하셔야할 것 같아요.’
‘하긴 갑자기 차를 마시자고 제안하는 걸 보면 그럴 가능성이 높지. 너희들의 스킬이라면 독을 미리 알아차릴 수 있으니까 다행이네.’
나는 라우라의 손을 잡으며 텔레파시를 보냈다.
‘메이드의 섬세함’ 스킬은 대부분의 위협요소를 사전에 탐지할 수 있으니 내 사랑들과 함께 있는 동안엔 어이없이 독살을 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독저항스킬을 가지고 있으니 만약 독에 중독되더라도 대책을 찾을 때까지 버텨낼 수 있다.
물론 독이 아니더라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물질은 많으니 조심할 필요가 있겠지.
‘만에 하나 적에게 속아 넘어가더라도 한 번쯤은 죽어도 되니까 안심이죠. 레베카님, 부디 먹을 것에 주의해주세요.’
‘알았어. 그리고 난 웬만하면 너희들이 죽음을 경험하는 일이 없으면 좋겠어. 하루에 한 번 그게 허용되더라도 분명 엄청 아프고 괴로울 테니까.’
‘레베카님이 그런 일을 당하시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일이니까 걱정 마세요.’
라우라는 텔레파시를 보냄과 동시에 내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나 명령으로 스스로 피가 날 정도로 체벌했어도 어떠한 원망도 하지 않고 내게 애정을 보여주는 라우라가 너무 고맙다.
“레베카님, 많이 기다리셨죠? 자, 한 잔 드셔보세요.”
생각보다 빨리 돌아온 마리는 우리 앞에 고급스러운 찻잔을 하나씩 내려놓았다.
향을 맡아보니 에트나가 준 차와 같은 냄새가 났다.
‘독은 없어요. 하지만 다른 물질이 있을 지도 모르니 조심해주세요.’
‘응. 너희들도 조심해.’
나는 라우라의 경고를 받으며 마리가 차를 마시기를 기다렸다.
마리는 내 의심을 받는 것을 의식하는지 몰라도 나보다 먼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나도 차를 조금 마셨다.
음... 딱히 몸에 이상이 오는 것 같지는 않지만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제 고향을 돌아보신 감상은 어떠신가요?”
“지금까지 여러 도시를 돌아보았는데 그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좋은 곳 같아요. 볼거리와 먹거리가 많고 사람들도 친절하고요.”
“제 뒤를 캐고 다니는 건 즐거웠나요?”
마리는 이미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서 다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렇다면 나도 애써 숨길 필요가 없겠지.
“상당히 불쾌하고 가슴 아픈 일이었어요. 그리고 당신이 얼마나 악한 사랑인지도 알게 되었죠. 결국 난 당신을 죽일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나는 마력권총을 빼 들어서 마리의 미간을 조준했고 내 사랑들도 각자 총기를 마리에게 겨누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마리는 전신에 총알구멍이 뚫리면서 사방에 피를 튀겼지만 죽지 않았다.
그녀의 몸은 순식간에 재생되었고, 그녀의 상처부위로 총알이 튀어나왔다.
“결국 너도구도자였던 거야?”
“맞아요. 엘카힘은 나를 멋대로 ‘카론의 아이들’에 속한 ‘엘루체’라고 부르더라고요. 하지만 전 그저 마리 디베르일뿐이랍니다. 복수에 미친 아내이자 엄마가 나를 정의하는 개념이죠. 그러니...”
우리는 마리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다시 한 번 총알을 퍼붓고 인공마핵을 파괴하려고 했지만 갑자기 다들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하아... 다들 그냥 얌전히 시간을 보내다가 갔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네요. 셋, 둘, 하나.”
마리가 숫자를 세자 갑자기 내 사랑들이 모두 줄이 끊어진 꼭두각시 인형처럼 바닥에 축 늘어졌다.
나도 정신이 멍해지고 전신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며 바닥에 쓰러졌지만 어떻게든 정신을 잃지 않고 버텨낼 수 있었다.
분명 독은 없었는데 어떻게 된 것이지?
역시 독이 아니라 다른 물질을 사용한 건가?
“레베카님! 정신 차리세요! 레베카님!”
키아라는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울먹이며 내 몸을 흔들었다.
최악의 상황이긴 하지만 적어도 키아라가 마리의 조종을 받지는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난 괜찮아. 진정해.”
“하, 하지만 다른 아가씨들이... 꺄악!”
키아라는 자신의 머리채를 잡아당기는 마리 때문에 소리를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그녀의 힘이라면 마리를 제압하는 것은 일도 아니지만 아무런 저항도 하질 못했다.
“흐음... 레베카님은 예상보다 훨씬 저항력이 강하네요. 흥미로워요.”
“처음부터 우릴 이렇게 만들 작정이었어? 네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아니요. 이 저택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먹은 물과 음식에는 모두 저만의 방식대로 제조한 신경교란물질을 함께 섭취하게 되어 있어요. 제가 특별한 비약을 추가적으로 먹이지만 않으면 전혀 해롭지 않고 하루만 지나도 모두 몸 밖으로 배출되어서 안전해요.”
“방금 우리가 마신 차에는 그 비약이라는 걸...”
“네, 치사량의 5배를 넣었죠. 그런데도 당신은 살아있고요. 기왕 죽지 않았으니 저랑 대화를 좀 해볼까요? 키아라, 내 의자가 되렴.”
키아라는 하기 싫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녀의 몸은 억지로 움직여서 마리의 의자가 되어주었다.
마리는 키아라의 등에 얌전히 앉아서는 다리를 꼬았는데, 그 과정에서 하얀색 바탕의 딸기무늬 팬티가 보였다.
나란 놈은 이런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 팬티를 볼 여유가 있구나...
“키아라가 생각했던 너는 실제와는 좀 다른 모양이네.”
“뭐, 이 녀석의 기억은 대부분 충성심과 복종심을 기르기 위해서 조작된 거니까요. 진실은 손에 꼽을 정도일 거예요.”
“넌 키아라가 불쌍하지도 않아?”
“도구는 도구일 뿐이에요. 애착이 갈 수는 있어도 사람처럼 대할 수는 없죠.”
마리가 냉정하게 하는 말에 키아라는 눈물을 뚝뚝 흘렸고 나는 이를 갈았다.
끔찍한 방식으로 딸을 잃었다는 마리에 대한 동정심이 싹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어떻게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에게 저런 반응을 보일 수가 있지?
“레베카님, 하수구에서 만난 실험체들은 어땠나요? 정말 역겨웠지요? 사실 그것들은 실패작이 아니에요.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죠.
“어떻게 부모 없는 불쌍한 아이들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었던 거야?”
“그야 내 딸을 죽이는데 일조했던 쓰레기들의 역겨운 종자들이니까요! 나처럼 자식을 잃고 절망하다가 괴물이 된 자식을 보고 미쳐버리는 게 얼마나 통쾌하던지! 꺄하하하하!”
마리는 광기에 찬 표정을 지으며 크게 웃어재꼈다.
내가 실패작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이라니 마리에 대한 적개심만 커졌다.
잘못한 놈들만 죽여야지 왜 무고한 아이들을 희생시킨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난 매정한 사람은 아니라서 미친 부모를 기생촉수의 둥지로 개조해서 괴물이 된 아이와 한 몸으로 만들어주었지요.”
“미친 년...”
“아! 최고의 칭찬이에요. 고마워요. 지금까지 정상적인 사람처럼 취급받으며 사느라 정말 힘들었어요. 난 이미 딸을 잃고 미쳐버렸는데 가족들도, 다른 사람들도 모두 내가 원래대로 돌아왔다고 생각하지 뭐예요. 평생 그럴 수가 없는데 말이죠.”
“그 사람들을 괴물로 만든 것으로도 네 복수는 끝나지 않았나보지?”
내 질문에 마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환희에 찬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내 볼을 차가운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정신 나간 사람 같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요. 아직 죽일 사람은 많아요. 중간에 콜린이 딴 생각을 품는 바람에 일이 틀어지긴 했지만 레베카님, 당신 덕분에 마무리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답니다. 당신은 제 생명의 은인이자 복수의 은인이에요. 이 얼마나 운명적인 만남인 걸까요? 후후후.”
“난 널 처음 만났을 땐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어. 널 구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었어. 친구도 되고 싶었고. 하지만 이젠 그 모든 게 너무나도 후회가 돼. 그때 널 죽도록 내버려두었더라면 네 미친 짓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복수가 왜 미친 짓이죠? 당한 만큼 갚아주는 건 상식이라고요! 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그냥 사랑하는 남편과 딸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었는데! 가족과 친척이라는 것들이 남편과 딸을 죽였어요! 산채로 사람을 찢고 용광로에 던졌다고요! 그런데도 복수가 미친 짓이라고요?”
마리는 내 멱살을 잡고 흔들면서 소리를 질렀다.
항상 평화로워보였던 마리의 눈동자에는 증오만이 가득했다.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었더라면 난 이미 몇 번이고 죽었을 거다.
“복수하려는 내 심정은 충분히 이해해. 하지만 넌 무고한 사람까지 비참하게 만들었어. 네가 잘못한 사람만 죽일 작정이었다면 나도 도와줬을 거라고. 그런데 넌 이미 선을 한참 넘어버렸지.”
“레베카님, 당신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에요. 상대를 가려가면서 복수할 수 있을 거라고 믿을 정도로 말이죠. 잘 들어요. 복수라는 건 온갖 악하고 더러운 짓은 다 저질러야 깔끔하게 끝나는 법이에요. 어설프게 자비를 베풀면 결국 나를 향해서 이빨을 드러내기 마련이죠. 그러니 모두 죽여서 반항의 싹을 뽑아버리는 것이죠. 그 애새끼들을 살려줘 봤자 결국엔 나에게 부모의 복수를 하겠다고 덤벼들 거라고요. 그러니 부모와 한 몸으로 만들어버리는 게 훨씬 낫지요.”
마리는 빠르게 말을 쏟아 붓더니 내 멱살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아주었다.
그러고는 갑자기 나에게 정체모를 주사를 놓았다.
난 이제 아예 말도 할 수 없게 되었지만 정신만큼은 생생했다.
“자, 그럼 제 복수를 감상해주세요. 마침 무대가 완성되었답니다. 키아라, 레베카님을 업고 따라오렴.
키아라는 마리의 명령에 따라 나를 등에 업었다.
그러고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나를 반드시 구해주겠다는 말을 해줬다.
내 믿음대로 키아라는 날 배신하지 않았다.
“키아라, 얼른 따라오렴. 허튼 짓을 할 생각은 하지 말고.”
“네, 마리 아가씨.”
마리는 연회장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연회장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북적거렸는데, 거의 다 엘프족인 것을 봐서는 마리의 가족과 친척들이 모인 것이 분명했다.
모두 화려한 복장을 하고서 고급스러운 와인과 음식을 즐기면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다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여러분! 이 자리에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리의 외침에 연회장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한꺼번에 고개를 들어서 그녀를 올려다보더니 박수를 쳤다.
그러자 마리는 살벌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드디어 여러분에게 제 마음을 담은 보답을 해드릴 수 있어서 너무 기쁩니다! 당신들이 모두 염치라곤 찾아볼 수 없는 쓰레기가 아니었더라면 이렇게 다들 모이지도 않았겠죠.”
마리의 외침에 연회장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놀라거나 화가 난 표정으로 마리를 올려다보았다.
그들은 다들 뭐라고 한 마디씩 던졌지만 마리는 주눅이 들지 않고 오히려 기뻐하는 표정을 지었다.
“좋아, 좋은 반응이야! 너희들은 죄 없는 내 남편을 죽이고 내 딸을 죽였어! 가문의 명예? 체면? 좆까라지! 너희들은 그냥 날 괴롭히고 싶었을 뿐이었어! 남편과 딸을 죽여서 즐거움을 얻으려고 했을 뿐이라고! 그래서 나도 너희들을 가지고 놀기로 했어. 사랑하는 사람끼리 하나가 되어서 평생 행복하게 살라고! 으하하하하! 아하하하하!”
마리는 완전히 맛이 가버린 웃음소리를 내면서 품속에서 마법수정구를 꺼내서 조작했다.
그러자 연회장 바닥을 희뿌연 가스가 가득 채웠고, 수백 명의 사람들이 콜록거리면서 한꺼번에 쓰러졌다.
기침소리는 곧 고통에 탄 비명소리로 바뀌었고, 가래가 끊는 소리는 울면서 피를 토하는 소리로 바뀌었다.
그리고 몸이 억지로 꺾이고, 터지고, 뒤틀리는 소리가 들리며 사람들의 몸이 기괴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내가 하수구에서 봤던 불쌍한 실험체들보다 더욱 추악하고 끔찍한 모습을 바뀐 사람들은 단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무작위로 합쳐지면서 더욱 더 흉측하게 변했다.
성별과 나이를 가리지 않고 괴물로 변해서 뭉쳐진 사람들은 미친 듯이 절규를 내질렀고 연회장을 흐느적거리며 기어 다녔다.
이거 남극기지가 나오는 고전영화에서 본 장면 같은데... 정말 역겨워 죽겠다.
“난 오직 이 순간만을 위해서 살아왔어. 말콤, 당신을 죽인 내 가족들을... 달리아, 우리 딸을 죽인 내 친척들을... 전부 괴물로 만들었어. 그러니까 날 칭찬해줘. 내 곁에 있어줘. 날 그곳으로 데려가줘. 으흐흑!”
마리는 자리에 주저앉아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복수의 기쁨도 잠시, 밀려드는 허탈감에 견디기 힘들어하는 듯 했다.
“레베카님, 어떤가요? 제 복수가 끝난 순간 말이에요. 정말 허무하지요? 하지만 기분은 좋네요. 당신에게 방해를 받지 않고 끝낼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그러니 다시 말을 할 수 있게 해드릴게요.”
갑자기 울음을 멈추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마리는 다시 나에게 정체모를 주사를 놓았고, 나는 턱과 혀의 마비가 풀리는 게 느껴졌다.
“이걸로 만족해?”
“그럭저럭요. 그나저나 당신은 실패했네요. 저를 막지 못 했잖아요.”
“난 인공생명체를 조사하고 배후를 제거하는 게 목적이었지 네 복수를 막는 게 목적이 아니었어. 즉, 지금이라도 널 죽이면 내 일은 성공적으로 끝나.”
“아, 그런가요? 유감스럽게도 그건 불가능하답니다.”
“하긴 지금 네가 내 목을 그어버리면 난 그냥 죽어버리겠지.”
“후훗, 걱정 마세요. 원래라면 죽이려고 했지만 아직도 살아있는 당신을 보니 생각이 바뀌었어요. 평생 실험체로 써드릴게요. 키아라, 레베카님의 팔과 다리를 뽑아드리렴.”
마리는 키아라에게 살벌한 명령을 내렸고, 키아라는 업고 있던 나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팔을 잡고서 힘껏 뽑아버렸다.
엄청난 양의 피가 흩뿌려지는 게 내 눈에 보였고, 자지러지는 비명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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