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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세상에서 마음껏 살아간다-224화 (224/271)

〈 224화 〉 223화

* * *

우리는 하수구에서의 일을 뒤로 하고 다시 현상금사냥꾼길드로 가서 수배자들을 모조리 넘겼다.

그리고 기분전환을 하기 위해서 공중목욕탕으로 향했다.

어느 도시나 공중목욕탕이 존재하지만 들른 적은 한 번도 없다.

내 사랑들의 몸에 새겨진 예속각인은 둘째 치고 엄한 곳에 달려있는 피어싱 때문에 눈치가 보여서 가기가 꺼려졌었다.

하지만 사테르디아의 공중목욕탕에는 귀족이나 부호를 위한 개인용 특실이 따로 있어서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볼 이유가 없었다.

우리는 공중목욕탕으로 들어가서 곧장 배정받은 특실로 향했다.

원래라면 특실에는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원들이 배정되지만 나는 그런 서비스를 모두 거절하고 마실 것과 과일만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내 사랑들보다 먼저 샤워를 한 뒤에 뜨끈뜨끈한 온천수가 나오는 욕탕에 몸을 푹 담갔다.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이렇게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편하게 쉬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여태까지 불행한 희생자들을 ‘해방’시켜주는 일을 많이 했었지만 오늘은 유독 기분이 좋지 않다.

실험체들의 기괴한 모습도 물론 거부감이 들었지만 그 실험체들의 정체를 알고 나니까 정말 불쾌하기 짝이 없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불쌍한 고아들을 그런 괴물로 만들어버린 것도 모자라서 더욱 끔찍한 죄악을 위해서 활용하다니, 마리도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 분명하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마리를 구해주질 말았어야 했는데...

나는 목숨을 걸고 마리를 구해줬던 일이 너무나도 후회되었다.

그때 마리는 진심으로 내게 고마워했었고, 나도 친절한 마리에게 호감을 느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마리를 생각하면 분노와 허탈감만 느껴졌다.

물론 내가 마리를 구해준 것과 그녀가 이미 저지른 일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앞으로 마리가 어떤 짓을 저지르는지에 따라서 나도 그녀를 구한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레베카님, 곁에 앉아도 될까요?”

“응. 이리와.”

나는 이제 막 샤워를 끝내고 내 곁으로 다가오는 키아라에게 손짓을 하며 말했다.

그러자 키아라는 욕탕 안으로 들어오더니 내 옆에 살짝 거리를 두고 앉았다.

나는 손을 뻗어서 키아라의 어깨를 잡아서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처음엔 부끄러워하던 키아라도 곧 내게 몸을 기대었다.

지금 이런 말을 하긴 좀 그렇지만 키아라의 커다란 가슴이 물에 둥둥 뜨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울적했던 기분이 싹 사라졌다.

“레베카님, 제 가슴이 그렇게 좋으신가요?”

“응! 너무 좋아. 아, 단지 그것 때문에 널 좋아하는 건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아줘.”

나는 대놓고 본심을 큰 목소리로 말했다가 약간 실망감이 느껴지는 키아라의 시선에 서둘러 해명했다.

그러자 키아라는 입을 가리며 수줍게 웃더니 내 귓가에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다른 아가씨들은 모두 피어싱을 했던데 그거 레베카님의 취향이신가요?”

“취향도 취향이지만 특별한 기능이 있어서 다들 피어싱을 하고 있는 거야.”

“그렇군요. 어떤 기능인가요?”

“평생 늙지 않고 병에 걸리지 않아.”

“그거 엄청나네요. 그래서 다들 부끄러움이나 불편함을 감수하고 착용한 거군요. 레베카님에 대한 사랑이 그만큼 커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요.”

“그래서 나도 라우라랑 이리스랑 에리카에게 고마워하고 있어. 내 음침한 취향에 기꺼이 어울려주고 있으니까.”

“저도 해야 하나요?”

“키아라, 난 목숨이 걸린 일이 아닌 이상에야 뭐든지 강요하는 법이 없어. 고작 피어싱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차별할 생각은 전혀 없고 사랑하는 사람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그 사람에 대한 애정이 식을 일은 절대로 없으니까.”

“그래도 내심 제가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죠?”

“음... 솔직히 그렇긴 해. 하하하! 피어싱은 네가 날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된 뒤에 해도 충분하니까 천천히 생각해봐. 다른 애들한테도 상담을 해보고.”

“네, 레베카님.”

키아라는 나와 팔짱을 끼면서 말했고, 내 왼팔은 그녀의 풍만한 가슴 사이에 끼어버렸다.

아... 푹신푹신하고 부드러운 살결이 팔을 감싸고도는 기분이 너무 좋다.

그런데 내가 너무 기분 좋아하는 표정을 지어서 그런 걸까?

이제 막 샤워를 끝내고 욕탕으로 다가오는 내 사랑들이 약간 질투와 부러움이 섞인 시선으로 나와 키아라를 동시에 바라보았다.

특히나 에리카는 키아라의 가슴과 자신의 가슴을 번갈아보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나는 에리카처럼 빈유 슬렌더 몸매도 엄청 좋아하는데 말이다.

“얘들아, 너희들도 다 씻었으면 얼른 들어와.”

나는 키아라가 차지하지 않은 오른팔을 들어서 내 사랑들에게 손짓했고 그녀들은 미소를 지으며 욕탕으로 들어왔다.

그러더니 다들 내 곁으로 다가와서는 에리카는 내 오른팔을 차지하고 라우라와 이리스는 내 허리를 감싸면서 가슴에 머리를 기대었다.

내 주변으로 섹시한 미녀들이 4명이나 있으니 너무나도 행복하다.

나는 라우라와 이리스, 에리카에게 차례대로 진하게 키스를 해주었고 키아라와는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 내 사랑들에게 가벼운 스킨십을 하되, 애무에 가까운 자극은 주지 않으려고 주의했다.

지금은 섹스를 하고 싶은 기분이 전혀 아니었다.

내 사랑들도 내 속내를 알고 있는지 내 몸을 만지더라도 민감한 부분은 건드리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한참동안 별다른 말없이 키스와 스킨십에 몰두했다.

“레베카님, 이제 어떻게 하실 건가요?”

먼저 침묵을 깬 사람은 역시나 라우라였다.

방금 전까지 헤실헤실 웃고 있던 사람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면서 물어보니 나도 대답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리와 직접 대면해서 진실을 추궁해야겠지. 사테르디아 기사단에는 고발해봤자 영주의 딸을 함부로 조사하지 못할 거야. 그래서 마리에게 가기 전에 새턴에게 먼저 가서 대화를 할 생각이야.”

“새턴 추기경님은 우리 편이 확실한가요?”

“적어도 적은 아니라고 생각해. 세레나의 부하들이잖아.”

“세레나님이 레베카님에게 원하시는 것을 생각해보면 경우에 따라서 언제든 적으로 돌변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은 날 영웅으로 치켜세우려고 하는 중이라서 이번 사건에 한해서는 아군에 가깝다고 봐.”

“부디 레베카님의 예상이 다 맞아떨어지고 제가 괜한 걱정을 한 것이라면 좋겠네요.”

라우라는 불안감으로 가득한 눈빛을 품으며 말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꼭 끌어안고서 이마에 뽀뽀를 하거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달래주었다.

라우라는 친구들 앞에서 어린 아이처럼 다루어지는 바람에 조금 부끄러워했지만 결국엔 갸르릉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좋아했다.

정말 귀엽기도 하지.

“레베카님, 마리의 학교에도 찾아가보는 게 어떨까요? 우리가 모르는 마리에 대해서 알 수 있을 지도 몰라요.”

“마침 오늘은 학교가 아니라 다른 곳에 볼 일이 있다고 했으니 조사하기는 쉽겠다.”

나는 이리스의 제안을 듣자마자 지도창을 열어서 마리와 그녀가 일하는 학교의 위치를 확인했다.

마리는 연금술을 가르치는 사테르디아 대학교는 도시 북동쪽에 위치해있다.

그리고 마리는 도시 북쪽에 있는 영주의 저택에서 그녀와 같은 성씨를 쓰는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설마 무슨 짓을 저지르려는 건 아니겠지?

마리가 영주가 되기 위해서 방해되는 혈육들을 모두 죽이려고 든다는 말을 들은 뒤라서 그런지 굉장히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의심되는 정황을 모두 사테르디아의 영주에게 고발하면 차라리 일이 쉽게 풀릴지도 몰라.

하지만 영주가 이성적인 판단을 우선시하는 사람이라는 보장은 없고 아직 프랑카에서 있었던 일과 재판결과를 담은 공문 같은 것들이 사테르디아에 도착하려면 멀었다.

따라서 내가 나서서 말해봤자 뜬금없이 나타나서 헛소리를 하는 사람 취급을 받을 게 분명하다.

그렇다고 프랑카에서 공문이 도착하기를 기다리자니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린다.

결국 마리와 최대한 빨리 담판을 짓고 영주조차도 어찌할 수 없게끔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본다.

“조금만 더 놀다 가면 되겠지.”

“마리가 언제 학교로 갈 지 모르니 지금 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이리스는 정신적 피곤함을 핑계로 게으름을 피우려는 나를 일깨워주었다.

마리가 지금은 영주의 저택에 있고, 오늘 수업이 없다고는 해도 학교에 아예 오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말이다.

“이리스, 네 말이 맞아. 뭐든지 생각난 김에 바로 해치우는 게 좋겠지. 벌써 1시간이 지나가버리기도 했고. 얘들아, 아쉽지만 이제 나가도록 하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고, 내 사랑들과 키아라도 나를 따라서 일어났다.

우리는 적당히 몸을 헹구고 몸과 머리카락을 말린 뒤에 바디슈트를 입고서 공중목욕탕에서 나왔다.

그리고 곧장 빠른 걸음으로 사테르디아 대학교로 향했다.

이 세상으로 와서 대학교를 방문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프랑카에도 대학교는 있었지만 거기에 갈 일은 전혀 없었다.

나는 예전 세상에서 대학교를 다니긴 했었지만 별로 추억거리는 없다.

친구도 별로 없고 그냥 시간에 맞춰서 강의실과 자취방을 오가고 남은 시간은 게임이나 하는 게 일상이었다.

지금처럼 엄연한 현실에서 날 사랑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캠퍼스 안으로 발을 디뎌본다는 건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기껏해야 가상현실에서 NPC들과 허구의 캠퍼스라이프를 즐기는 게 전부였다.

하아... 예전 생각은 그만 해야지. 무슨 노인네도 아니고.

사테르디아 대학교는 부지가 별로 넓지 않고 건물들이 가까이 붙어있어서 이동거리가 짧았다.

얼핏 보기에는 대학교인지 그냥 사무건물들이 모여 있는 곳인지 분간하기 어려웠지만 오가는 사람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두꺼운 책이 들려있었다.

이 세상은 귀족이나 돈이 많은 사람만 고급교육을 받을 수 있으니 지금 주변에 보이는 학생들도 장학생이 아니고서야 전부 특권층 자제들이다.

“레베카님, 저 왠지 대학교로 오니까 긴장돼요.”

누구보다도 열심히 주변을 둘러보던 에리카는 내 손을 꼭 잡으면서 말했다.

학생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선망과 부러움이 가득했다.

“그래? 긴장할 필요 없어. 그냥 교육기관일 뿐이야.”

“그치만 대학교 안에 들어오는 건 꿈에서나 생각했던 일인 걸요. 그래서 입학을 한 것도 아닌데 뭔가 들뜬 기분이에요.”

“아하, 그래서 긴장된다고 한 거구나. 에리카, 이번 여행이 끝나면 공부를 시켜줄까?”

“그것도 좋지만 그래도 레베카님과 친구들이랑 같이 있는 게 더 좋아요.”

에리카는 그렇게 말하더니 내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나중에 정착하게 되면 가정교사라도 고용해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게 해줘야겠다.

그게 아니더라도 여행을 하면서 들르는 도시에서 단기교육 같은 건 받을 수 있겠지.

뭐, 난 아마 앞으로 쭉 공부를 하고 싶지 않을 것 같지만 말이다.

내가 에리카를 공부시킬 방법에 대해서 모색하는 동안 어느 나이 지긋한 큐버스족 여성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이미 나이가 많고 기혼자라서 그런지 노출이 없는 평범한 옷을 입고 있었고 이리스를 향해서는 ‘나도 한 때 저런 적이 있었지.’라는 생각이 담긴 듯한 시선을 보냈다.

“우리 학교는 외부인 출입금지랍니다.”

“저희가 외부인인 걸 어떻게 아셨죠?”

“그야 신입생을 받은 시기도 아닌데 캠퍼스를 열심히 두리번거리는 사람이 존재할 리는 없으니까요.”

큐버스족 여성의 말에 에리카는 자신의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내 눈치를 살폈다.

“에리카, 이건 네 탓이 아니라 그냥 우리가 규정도 모르고 들어와서 그런 거야.”

“그래도 죄송해서요.”

“괜찮아. 일단 나가서 출입허가를 받으면 되는 일이니까.”

나는 에리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자기 탓도 아닌데 지레 겁을 먹고 내게 매달리는 에리카가 너무 귀엽다.

“악의는 없는 것 같으니 안심이군요. 저는 연금술학과장인 에트나 미루타젠입니다. 무슨 일로 우리 학교를 찾아오셨나요?”

“학과장님이셨군요! 저는 명예기사 레베카이고 이 사람들은 모두 제 애인들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 학교의 교수인 마리 씨에 대한 조사를 하고 있던 참입니다.”

“명예기사님이 조사를 하고 있다는 건 범죄와 관련된 것인가요?”

“아직은 확정적으로 말씀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부디 양해해주세요.”

“그렇군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학과장실에서 대화를 할 수 있을까요?”

“네, 물론입니다. 그런데 저희는 무단침입자인데 괜찮을까요?”

“그건 제가 책임을 질 테니 걱정 마세요. 자, 이쪽으로 오시지요.”

우리는 에트나를 따라서 캠퍼스를 가로질러 작은 온실이 붙어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학과장실은 적당히 넓은 편이었지만 우리가 소파에 둘러앉으니 꽉 차는 느낌이었다.

에트나는 우리를 위해서 손수 차를 대접해주었다.

“차는 입에 맞으시나요?”

“네, 정말 향이 좋네요. 지금까지 차를 제법 많이 마셔봤지만 이건 각별하군요.”

“세계적으로 희귀한 품종을 제 온실에서 소량 키워서 만들었답니다. 마리 교수 덕분에 차나무를 죽이지 않고 키울 수 있었지요.”

“마리 씨는 평소에 어떤 사람인가요?”

“과장이나 편견 없이 말씀드리자면 연금술에 열정이 넘치는 사람입니다.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연구를 거듭하고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치는 성실한 사람이지요. 18살에 교수가 되었을 정도로 아주 똑똑한 사람이기도 하고요. 거기다 영주님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늘 친절하고 공명정대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마리 씨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인공생명체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합니다. 연금술은 일상생활과 의료, 산업에 도움이 되는 물질을 개발하는 학문이지 인공생명체 같은 위험하고 가련한 존재를 만드는 게 목적이아닙니다. 그러나 마리 교수는 인공생명체 연구에 온 힘을 쏟고 있지요.”

“학과장님은 호문쿨루스에 대해서 알고 계시나요?”

“물론입니다. 호문쿨루스는 마리 교수가 만든 개념입니다. 아직 학계에는 보고가 되지 않았지만요. 하지만 저를 포함하여 연금술학과의 모든 교수들이 반대를 하고 나서서 연구를 포기했습니다. 그 반동으로 인공생명체에 더욱 집착하게 되었고요.”

“유감스럽게도 마리 씨는 호문쿨루스 연구를 포기하지 않았어요. 바로 여기 있는 키아라가 그 증거입니다.”

“뭐라고요? 세상에, 어떻게 그럴 수가! 잠깐, 이제 보니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에트나는 화들짝 놀라서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하지만 키아라과 눈을 마주치고는 놀라다가 말고 그녀의 얼굴을 주시했다.

“너... 넌 분명히 마리 교수의 죽은 딸이잖아! 설마, 설마? 맙소사, 신이시여...”

에트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목소리와 몸을 벌벌 떨었다.

아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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