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3화 〉 2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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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세상에 온 뒤로 혐오스러운 것들을 참 많이 봤었다.
마물, 기생버섯, 촉수괴물, 언데드는 물론이고 인간의 탈을 쓰고 역겨운 짓은 골라서하는 괴물들까지 말이다.
그런데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이건... 단순히 징그럽다거나 혐오스럽다는 감정을 넘어서서 두려움마저 느껴졌다.
우리는 말 그대로 경악을 했고, 이리스와 에리카는 도저히 못 보겠다며 정찰드론과의 시야공유를 끊을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키아라는 영문도 모른 채 우리들의 격한 반응에 걱정스러운 표정을 보냈다.
“인공생명체라는 게 이런 거였구나...”
나는 세상에 존재하면 안 될 것처럼 보이는 끔찍한 생물을 보고서 식은땀마저 흘렸다.
우리가 발견한 괴물은 인간의 몸을 극단적으로 변형시키고 이어 붙여서 거미의 형태로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거미의 배에 해당되는 부위는 사람의 척추가 기형적으로 튀어나와있고 그 밑으로 터질 것처럼 뚱뚱한 사람의 배가 출렁거렸다.
그리고 거미의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은 길쭉하게 늘려놓은 사람의 팔과 다리였는데 사람의 갈비뼈를 부풀려놓고 거기에 가죽을 씌워놓은 것 같은 가슴을 중심으로 붙어있었다.
마지막으로 괴물의 머리는... 머리카락이 엄청 긴 젊은 엘프족 여성처럼 생겼지만 벌레처럼 아래턱이 양쪽으로 갈라져있고 그 안쪽으로 보다 작은 턱들이 달그락거렸으며 자기 몸처럼 기다란 혀를 날름거렸다.
괴물은 정찰드론들을 주시하다가 거기에 달려있는 마력권총을 보더니 소스라치게 놀라며 구석으로 도망쳐 여러 개의 팔과 다리로 자신의 얼굴과 몸을 가리려고 애썼다.
아마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굉장히 큰 것으로 보인다.
“레베카님, 어떻게 하시겠어요? 죽이고 끌고 가실 건가요?”
나와 같이 괴물을 관찰하고 있던 라우라가 먼저 말을 걸었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어렵사리 대답을 해주었다.
“음... 일단 대화가 가능한지 확인해보고 결정할 생각이야.”
“위험하지 않을까요? 인면어처럼 마법 같은 힘을 사용할지도 몰라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뭔가 당장 죽이면 안 될 것 같아.”
나는 분명 괴물에게 두려움마저 느끼고 있었지만 이상하리만치 죽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로테아처럼 어느 정도 제대로 된 사람의 모습이 남아있는 것도 아니고 인간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렇다면 안으로 진입할 수밖에 없겠네요. 어차피 안은 좁고 수배자들을 지켜보고 있어야할 사람도 필요하니 저랑 레베카님 둘이서만 들어가는 게 어떨까요?”
“그래, 그렇게 하자. 이리스, 에리카. 너희들 괜찮니?”
내가 두 사람에게 상태를 물어보자 둘이서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둘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뒤에 라우라와 함께 마법갑옷을 입고서 하수구 안으로 들어가 괴물과 대면할 준비를 했다.
“레베카님.”
“무슨 일이니, 키아라?”
“저도 데려가주세요.”
“충격을 많이 받을 수도 있는데 괜찮겠어?”
“왠지 제가 꼭 봐야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부탁드립니다.”
“알았어. 하지만 네 키에 맞는 마법갑옷이 없어서 다소 위험할 수도 있어.”
“걱정 마세요. 최대한 조심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너도 같이 들어가자.”
나는 키아라에게 마력권총을 쥐어주며 말했다.
괴물의 덩치는 거의 황소만하지만 인간의 피부를 가지고 있어서 방어력이라고는 형편없을 테니 마력권총만 있어도 충분히 죽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정찰드론들이 미리 다 밝혀놓은 길을 따라서 빠른 걸음으로 전진했고, 몇 분 정도 지난 뒤에 괴물과 직접 마주했다.
괴물은 우리의 등장에 비명과 함께 울부짖기 시작했다.
마치 목에 가래가 잔뜩 낀 사람이 내는 소리처럼 듣기 거북했지만 우리를 적대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진정해. 우리는 너를 해칠 생각이 없어. 우린 적이 아니야.”
나는 과감하게 마법갑옷을 벗고 나와서 무기도 하나 손에 쥐지 않고 괴물에게 다가갔다.
바디슈트의 마법방어막은 마력권총탄도 막을 수 있으니 저런 괴물의 공격 정도는 무난하게 막아낼 수 있을 거다.
내 도박에 가까운 시도가 통했는지 괴물은 훌쩍이는 소리를 내면서 나와 눈을 마주쳤다.
지금 이런 말을 하면 좀 웃기긴 하지만 양쪽으로 갈라진 턱을 손으로 가리고 있으니 제법 예쁜 얼굴이다.
“혹시 말을 할 줄 아니?”
내 질문에 괴물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갈라진 턱을 딱 달라붙게끔 움직이더니 이제 막 말을 배운 아이 같은 말투로 대답했다.
“나는 사람이야. 괴물 아니야.”
“그래, 괴물이라고 하지 않을게. 이름은 있니?”
“엄마는 나를 실험체32라고 불렀어.”
“엄마는 누군데?”
“엄마는 엄마야.”
“아니, 그러니까 엄마의 이름말이야.”
“마리 디베르.”
후우,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마리는 자신을 엄마라고 부르는, 정신적으로는 인간에 가까운 인공생명체를 만들어서는 이런 하수구에 버린 사람인 게 거의 확실해졌다.
하지만 아직 의문점은 많다.
어떻게 인간처럼 사고하는 인공생명체를 만들었는지, 왜 죽이지 않고 하수구에 버렸는지, 인공생명체를 만든 목적은 무엇인지 알아내야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사악한 목적을 위한 것이라면 나는 마리를 죽일 수밖에 없을 거다.
“넌 실험체32가 아니라 비앙카잖아. 비앙카, 대체 너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다른 집에 입양을 갔다던 애가 왜 여기에 있어?”
갑자기 키아라가 예상치도 못한 말을 하더니 실험체32를 비앙카라는 사람다운 이름으로 부르며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비앙카는 키아라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키아라 언니! 헤헤헤.”
“비앙카... 어째서...”
키아라는 비앙카를 끌어안더니 숨죽여 울기 시작했다.
비앙카는 그저 재회를 기뻐하기만 했지만 키아라는 엄청나게 슬퍼했다.
“키아라, 너랑 아는 사이였구나?”
“네... 마리 아가씨께서는 저를 거두어주시기 전에 이미 많은 고아들을 거둔 상황이셨어요. 하지만 전 그 애들이랑 자주 얼굴을 마주칠 일이 없어서 이름도 모르고 대화도 나눈 적이 거의 없어요. 왜냐면 다들 하루나 이틀이면 다른 가정으로 입양되었거든요. 비앙카는 입양되는데 일주일정도가 걸렸고, 그동안 제가 돌봐줬어요.”
“이제 보니 마리가 생각하는 입양은 우리가 생각하는 입양과는 전혀 다른 것 같네.”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비앙카가 입양된 곳이 그런 곳일 수도... 맙소사!”
키아라는 우리 주변으로 하나둘씩 모여드는 실험체들을 보며 경악했다.
실험체들은 모두 비앙카처럼 몸이 기괴한 형태로 비틀려있었고, 마치 인간의 몸을 재료로 삼아서 다른 동물의 모습을 억지로 흉내 낸 것만 같았다.
비앙카까지 합쳐서 10마리나 되는 실험체들은 그 어떠한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고, 키아라에게 관심을 보였다.
실험체들은 키아라에게 무언가 말을 건네는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하는 것은 비앙카가 유일했다.
“엄마가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어. 엄마가 우리를 여기에 버렸어. 엄마는 언니만 사랑해서 우리와 다르게 만들었어.”
“그게 무슨 말이야? 마리 아가씨가 왜 너희들 엄마야? 나만 다르게 만들었다는 건 또 무슨 소리고?”
“우리를 직접 만들었으니까 엄마야. 엄마는 언니를 유일한 성공작이라고 했어. 그래서 엄마는 우릴 버렸어. 하지만 엄마는 우릴 여전히 사랑해서 죽이지 않고 먹을 것을 줬어. 하지만 우린 죽고 싶어. 죽고 싶지만 엄마는 우릴 아직도 사랑해서 죽지 못하게 해.”
비앙카는 말투는 어린 아이 같아도 그 말에 담겨있는 감정은 증오와 절망 그 자체였다.
그나마 키아라를 원망하는 마음이 있어도 그녀를 전적으로 미워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나저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실험체들은 완전한 인공생명체가 아니라 사람을 기반으로 인위적인 개조를 거쳐서 다른 존재로 재탄생시킨 것이라고 봐야할 것 같다.
“비앙카, 네 말대로라면 마리는 키아라를 성공작으로 만들기 위해서 너희들로 먼저 실험을 했다는 거야?”
“응. 이름 모르는 언니.”
“난 레베카야. 소개가 늦어서 미안해, 비앙카.”
“레베카 언니, 우리 엄마는 키아라 언니를 사랑하지만 나쁜 일에 이용할 거야. 그리고 우리처럼 이상하게 변하면 여기에 버릴 거야. 레베카 언니는 키아라 언니 좋아해?”
“그럼. 엄청 좋아하지.”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키아라의 떨리는 손을 꼭 잡았다.
그러자 키아라는 거의 쓰러지듯 나에게 기대더니 다시 울기 시작했다.
“레베카 언니, 엄마가 키아라 언니를 괴롭히지 않게 지켜줘. 키아라 언니가 우리처럼 이상하게 변하지 않게 막아줘.”
비앙카는 많은 손으로 키아라를 토닥여주면서 말했다.
그리고 다른 실험체들도 키아라에게 위로의 손길을 건넸다.
비록 모습은 괴물처럼 변했어도 마음씨는 여전히 사람이었다.
“얘들아, 내가 너희들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을까?”
“딱 하나만 있어. 레베카 언니.”
“그게 뭔데?”
“우릴 죽여줘.”
비앙카는 어린 아이 같은 말투를 버리고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아까 전에 정찰드론의 총구를 보고서 엄청나게 두려워했던 사람이 맞나 싶었다.
차라리 대화를 하지 않았더라면 몰라도 이제 와서 죽여 달라니 너무 어려운 부탁이다.
그러나 죽음을 원하는 이유 자체는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았다.
괴물처럼 변한 몸으로 이런 곳에서 살아가느니 차라리 죽음을 통해 해방되는 것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목숨을 뺏는 일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니 확실하게 의사를 확인해봐야겠다.
“죽고 싶은 특별한 이유라도 있어?”
“엄마는 우리를 이용해서 사람들에게 기생촉수라는 것을 퍼뜨리고 있어.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우리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기생촉수가 퍼져. 배고프면 먹고, 먹으면 싸고, 싸면 기생촉수가 밖으로 나와. 그래서 우린 기회가 닿는다면 죽어야해.”
콜린이 기생촉수를 슬럼가에 대량으로 감염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마리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막시안에게 기술을 전수받았다고 주장했지만 실상은 마리가 막시안의 기술을 연구해서 콜린이 쓰기 쉽도록 만들어준 것뿐이었다.
즉, 콜린이 자신의 계획이라고 떠벌렸던 것은 결국 마리의 계획 중 일부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너희들 몸속에 있는 악마촉수를 제거하면 죽을 필요가 없지 않을까?”
“우리 몸은 기생촉수를 만드는 도구야. 엄마가 그렇게 말했어. 그래서 우리가 살아있으면 계속 기생촉수가 퍼져.”
“제기랄... 미치겠네.”
나는 화가 치밀어서 이를 갈았다.
오로지 죽음만이 이 불행한 사람들을 해방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니 이건 너무하잖아.
“레베카님, 어떻게 하시겠어요? 직접 하기 힘드시면 저에게 명령만 내리세요.”
라우라는 흑검을 뽑아들면서 말했다.
마치 처형인과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그녀를 본 나는 무심코 그녀를 와락 껴안고 말았다.
“난 너한테만 그런 일을 맡기고 싶지 않아. 아무리 힘들어도 너한테 다 떠넘기고 도망치고 싶지 않아.”
“레베카님, 모든 걸 혼자 짊어지려고 하지 마세요. 우린 가족이잖아요.”
“맞아. 가족이지.”
나는 그 말과 함께 마력권총을 빼들었다.
더 이상은 약한 모습을 보이며 망설일 수는 없었다.
죽음만이 유일한 해법이라면 최대한 고통 없이 보내주는 수밖에 없다.
실험체들은 내 결심을 눈치 채고는 차례대로 줄을 섰다.
나는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서 죽음을 질서 있게 기다리는 모습에 울컥하고 말았다.
“레베카님, 저도 도와드리겠습니다.”
“키아라, 넌 그래도 아는 애들이잖아...”
“그러니까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요. 다들 저 때문에 고통을 받은 거니까요.”
“이건 절대로 네 탓이 아니야. 마리가 잘못한 거지. 넌 죄책감을 가질 필요 없어.”
“하지만 저를 성공작으로 만들겠다고 이런 짓을...”
“그래, 마리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사람이라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질렀어. 그러니 네 탓을 하지는 마. 알았지? 너도 피해자일 뿐이야.”
나는 키아라가 자책하지 않도록 위로를 해주었다.
부디 내 말이 그녀에게 효과가 있기를 바란다.
“레베카님의 말씀을 새겨듣도록 하겠습니다. 그래도 이번에는 레베카님와 라우라 아가씨에게만 맡기고 싶지 않아요. 부탁드립니다.”
“그래, 함께하자.”
나는 키아라의 간곡한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마력권총을 장전하고서 줄을 선 채 눈을 감고 있는 실험체들의 미간에 조준했다.
다들 죽음을 앞두고 있으면서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도리어 기쁨으로 가득한 표정을 지으면서 평온한 분위기를 냈다.
총성이 한발씩 울릴 때마다 한 명씩 쓰러졌고, 실린더의 총알을 다 비우기도 전에 모든 실험체가 숨을 거두었다.
실험체들이 모두 죽자 그들의 몸속에 있던 기생촉수들이 한꺼번에 튀어나와서 난장판을 만들었다.
나는 군체의식을 통해서 그 기생촉수들을 모두 통제하여 자멸하게끔 만들었다.
그리고 하는 김에 슬럼가 전체에 퍼져있는 기생촉수도 통제해서 모두 죽였다.
콜린의 짓이라고만 생각해서 천천히 해결하려고 했었는데 배후에 마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더는 방치할 수가 없었다.
“이 ‘사람’들의 시신은 마리의 죄를 밝혀낼 중요한 증거이니 장례는 조금 뒤로 미루도록 하자. 마리에게 시신을 직접 보여주면 발뺌을 할 수 없을 거야.”
나는 치트가방에서 적당한 크기의 상자들을 꺼내서 거기에 실험체의 시신을 넣었다.
실험체들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이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세레나, 넌 이런 상황을 그저 방치할 생각이야?
네가 하기 싫다면 나에게라도 그런 능력을 주면 안 될까?
하아... 괜히 세레나 탓을 하고 있네.
“레베카님, 마리 아가씨는 정말 나쁜 사람이 맞지요? 제가 알던 마리 아가씨는 가면에 불과했던 게 맞겠지요?”
“지금으로서는 그렇게 볼 수밖에 없어. 하지만 이 모든 게 가면쟁이가 꾸민 함정일 수도 있으니까 신중하게 접근할 거야.”
“이기적인 말이지만 저는 마리 아가씨가 무고하면 좋겠어요.”
키아라는 굉장히 슬퍼 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그런 키아라를 포옹하고서 토닥여주는 것 말고는 지금으로선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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