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상에서 마음껏 살아간다-214화 (214/271)

〈 214화 〉 213화

* * *

나는 오후 늦게 내 사랑들과 키아라를 데리고 바깥으로 나왔다.

내가 늦잠을 자고 섹스를 하는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도시의 분위기가 꽤나 살벌했다.

완전무장을 한 기사단원들이 2명씩 조를 짜서 열심히 뛰어다녔고 사람들은 기사단을 방해하지 않으려 황급히 길에서 비켜섰다.

나는 일단 지나가는 병사 한 명을 붙잡고 상황을 물어보기로 했다.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명예기사님?”

“아니요. 그게 아니라 무슨 일인가 싶어서요.”

“콜린 맥도웰 자작에 대한 체포명령이 내려졌습니다. 하지만 콜린 자작과 그 일당이 도주하는 바람에 기사단 전체가 추적 중입니다.

“베로니카 언니 아니, 부단장님은 어디에 계시죠?”

“부단장님께서는 지금 기사단 본부에 계십니다.”

“그렇군요. 바쁜데 붙잡아서 죄송해요.”

“아닙니다. 명예기사님께서 하시는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변해드리는 게 당연하지요.”

병사는 나에게 목례를 하고는 다시 어디론가 뛰어갔다.

나는 그에게 손을 흔들어준 뒤에 곧장 기사단 본부로 향했다.

베로니카 언니는 집무실이 아니라 기사단 본부의 입구 근처에서 수시로 부하들에게 보고를 받고 있었다.

언니가 중량 마법갑옷을 입고 있는 것을 봐서는 여차하면 본인도 체포 작전에 나서려는 것처럼 보였다.

“베로니카 언니!”

“레베카! 마침 잘 왔어. 네 도움이 필요하던 참이야.”

“그래?”

“응. 일단 다들 이쪽으로 와.”

우리는 베로니카 언니를 따라서 조용한 구석으로 갔다.

언니는 주변을 두리번거리고는 내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레베카, 이번에도 사람을 추적하는 일을 도와줄 수 있니?”

“당연하지. 콜린을 찾는 일을 도우면 될까?”

“역시 이미 알고 있었구나. 맞아, 그 일을 도와주면 좋겠어.”

“그런데 내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네가 준 정보를 토대로 수사를 확대해서 콜린이 프랑카에도 기생촉수를 퍼뜨릴 작정이라는 걸 알아냈고 증인과 피험자들을 확보했어. 그걸 증거로 제출해서 콜린을 체포할 수 있게 되었지. 하지만 체포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콜린은 도주했어.”

“기사단 사이에서 교전이라도 발생한 거야?”

“그런 셈이지. 하지만 콜린의 부하들은 큰 위협거리가 아니었어. 다수의 호문쿨루스들이 모든 사상사들을 발생시켰어.”

베로니카 언니는 굉장히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보기에는 그렇게 강해보이지 않는 호문쿨루스들이 기사단을 상대로 그렇게 큰 피해를 낼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언니, 내가 누구보다 빨리 콜린을 찾아낼 수 있어. 그러니까 걱정 마.”

“염치없지만 부탁할게.”

“언니를 도와주는 건 언제나 기쁜 일이니까 우리 사이에 염치없는 부탁이라는 말 같은 건 하지 말아줘. 그럼 가서 콜린을 잡아올 테니까 키아라를 맡아줘.”

나는 지금은 아무런 무기나 방어구도 없는 키아라를 위험한 곳으로 데려갈 수 없다는 생각에 그녀를 베로니카 언니에게 맡기려고 했다.

그러나 키아라는 혼자서 떨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레베카님, 저도 무기만 주시면 싸울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총구를 잘못된 곳에 조준하지 않을 테니 저를 데려가주세요.”

“키아라, 내가 널 못 믿어서 그런 게 아니야. 너한테 무기는 줄 수 있어도 여분의 마법갑옷이 없어서 널 보호해줄 수 없어서 그래.”

“그건...”

키아라는 내가 하는 말을 듣고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아무리 그녀가 강력한 힘을 가졌고 수습기사로서 전문적인 훈련을 받았다 하더라도 총알을 막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도 없다.

“내가 경량 마법갑옷을 빌려주면 괜찮지?”

“그렇다면야 문제될 것 없지.”

“좋아. 키아라, 따라오렴.”

베로니카 언니는 키아라를 어디론가 데려갔고 잠시 후에 키아라 혼자서 경량 마법갑옷을 입고 나타났다.

나보다 키가 커서 그런지 몰라도 정말 듬직하게 느껴졌다.

“키아라, 너 정말 잘 어울린다. 역시 기사였던 사람은 다르네.”

“그, 그런가요? 전 정식기사도 아니었는데...”

“뭐, 그런 세세한 건 따지지 말자. 아무튼 무기는 이걸 쓰도록 해.”

나는 키아라에게 평소에 쓰지 않고 보관해두었던 평범한 총기세트를 제공했다.

그러자 키아라는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총기의 상태를 확인했다.

항상 겁을 먹거나 소심한 태도를 보이던 키아라가 총기를 접하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자, 그럼 지도창에서 콜린을 찾아봐야겠다. 다들 잠시만 기다려.”

나는 지도창을 열어서 사람만 나오도록 필터를 설정했고 혼자서 도시의 북서쪽으로 열심히 도망가고 있는 콜린을 발견했다.

그리고 콜린의 뒤로 기사단 병력들이 추적을 하고 있었는데 호문쿨루스들이 튀어나와서 그들을 공격했다.

그것들의 움직임은 워낙에 빨라서 빨간 점들이 순간이동을 하면서 공격을 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나는 지도창에 콜린을 마킹하고 무장드론들을 소환하여 그쪽으로 날려 보냈다.

“콜린을 찾았어. 옷 갈아입고 바로 출발하자.”

나는 치트가방에서 마법갑옷들을 모두 꺼냈고 내 사랑들과 함께 그것을 착용했다.

그리고 최대 출력으로 콜린을 향해서 빠르게 달려갔다.

콜린과 가까워질수록 곳곳에서 총성과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호문쿨루스들이 내 무장드론들을 신경 쓰느라 바쁜 틈을 타서 콜린에게 가까이 접근했다.

내 사랑들의 무장드론들이 먼저 경고사격을 하면서 콜린을 포위했고, 우리는 여유롭게 그를 향해 다가갔다.

“콜린, 얌전히 체포당하도록 해.”

나는 콜린에게 말을 걸었지만 로브를 푹 눌러쓰고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는 나와 눈을 마주칠 생각도, 대답을 할 생각도 없는 듯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다 갑자기 기분 나쁘게 씩 웃더니 고개를 들면서 로브를 벗어던졌다.

“보기 좋게 속았구나, 애송아!”

지금 내 앞에서 얼굴을 드러낸 사람은 분명히 콜린이었지만 목소리는 엘카힘이었다.

분명 지도창에는 콜린이라고 이름이 표기된 사람이 어째서 엘카힘의 목소리를 내는 건지 모르겠다.

일종의 마법이나 특수한 스킬인 것 같은데...

내가 잠시 고민하는 사이에 호문쿨루스들이 우리를 포위했다.

나의 무장드론들과 싸우고 있는 것들과는 별개의 개체들이었고 수도 몇 배는 더 많았다.

중량 마법갑옷을 입은 기사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생체병기들에게 포위를 당했다는 건 썩 좋은 일이 아니다.

“함정이었을 줄이야.”

“네 잘난 지도창은 이제 우리에겐 아무런 걸림돌도 되지 않아. 오히려 널 이렇게 끌어들이는 용도로 쓸 수 있지.”

“그런 말은 네 장난감들이 우릴 쓰러뜨린 뒤에나 지껄이라고. 콜린은 어디에 있지?”

“이미 도시를 떠났지. 곧 군대를 끌고서 프랑카를 공격하면 네가 소중히 여기는 부단장도 죽을 때까지 겁탈을 당하겠지.”

“아, 이거 아무래도 나만 함정에 빠진 게 아닌 것 같은데.”

“뭐라고?”

“콜린의 군대라는 거 말이야. 내가 밤새도록 쓸어버렸거든. 남아있는 주둔지도 이미 내가 다 장악했고.”

“네가 그걸 어떻게...”

“콜린이 부리는 악마촉수는 내 입장에선 장난감에 지나지 않아. 너희들 딴에는 나를 죽이고 프랑카를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는 좋은 계획이라고 생각했었겠지만 완전히 오산이었단 말이지.”

나는 방금 전까지 심하게 잘난 척을 하던 엘카힘이 당황하는 모습이 너무 즐거웠다.

하지만 엘카힘은 곧 살벌한 태도를 보이며 이를 갈았다.

“일단 지금 이 상황에서 살아남은 뒤에나 큰 소리를 치시지.”

엘카힘은 그 말과 함께 자기가 쓰고 있던 몸을 버렸는지 콜린의 얼굴을 한 사람의 몸이 앞으로 맥없이 고꾸라졌다.

일종의 원거리 조종 같은 것으로 이 껍데기만 있는 호문쿨루스를 통제했던 것 같다.

“큰 소리는 실컷 쳐놓고는 나와 직접 대면할 용기는 없나보지? 좋아, 계속 그렇게 도망이나 다니라고. 언젠가 잡아서 산채로 얼굴 가죽을 벗겨줄 테니까!”

나는 쓰러진 호문쿨루스를 발로 뻥 차서 날려버린 뒤에 우릴 포위한 호문쿨루스들의 공격에 맞섰다.

어린 소녀의 형상을 한 호문쿨루스들은 눈을 쫓아가기 어려운 속도로 움직이면서 칼날로 변한 팔을 휘둘렀다.

하지만 총기와 관련된 스킬과 함께 바이저가 제공하는 조준선이나 기타 도움이 되는 기능 덕분에 재빠르게 움직이는 호문쿨루스들을 어렵지 않게 포착해서 사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마력산탄을 명중시켜 몸을 너덜너덜하게 만들어도 금방 재생해서 다시 덤벼든다는 것이다.

재생력만 따지면 구도자보다도 더 뛰어난 것 같다.

나는 가까이 달려드는 호문쿨루스를 방패로 쳐내고 다른 호문쿨루스를 마력산탄으로 날려버렸다.

재장전하는 와중에 공격을 받으면 발로 걷어차거나 로켓펀치를 날려서 박살을 내버렸다.

하지만 몸이 산산조각이 나도 계속 재생되어서 사람을 귀찮게 만들었다.

기사들이 호문쿨루스들에게 살해당한 이유는 이것들이 엄청나게 강해서가 아니라 아무리 죽여도 죽지를 않아서 지쳐버려서 그런 것 같다.

사람이 지치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그렇게 되면 빈틈을 찔러드는 공격에 보다 더 쉽게 노출되기 마련이다.

나도 만약에 관절부위의 빈틈에 칼날이 들어오면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질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완전히 난도질을 당해서 죽겠지.

하지만 우리에게는 무장드론들이 있어서 그런 식으로 빈틈을 공격당할 일은 거의 없다.

내가 소환한 4대의 무장드론과 내 사랑들이 각각 하나씩 소환한 무장드론들은 하늘을 누비며 호문쿨루스들에게 총알을 마구 퍼부었다.

마력저격소총탄의 위력은 호문쿨루스를 간단하게 무력화시키고 그것이 재생하지 못하도록 빙결탄이나 화염탄을 쏴버렸다.

그리고 내 사랑들과 키아라는 무장드론들의 적극적인 호위를 받으며 각자의 방식대로 호문쿨루스들을 상대했다.

라우라는 한 손에는 마력권총, 다른 한 손에는 흑검을 들고서 호문쿨루스들 사이에서 춤을 추듯이 공격을 퍼부었다.

그녀에게 달려드는 호문쿨루스는 마력권총에서 발사되는 풍압탄을 맞고 날려가거나 팔에 달린 칼날보다 더 빠르게 휘둘러지는 흑검에 간단하게 잘려나갔다.

그리고 이리스와 에리카는 서로 등을 맞대고서 호문쿨루스들이 근처에 다가오지 못하도록 총알을 정확하게 사격을 하면서 서로를 지켜주었다.

한 때는 마력권총을 겨우 다루던 에리카가 이제는 이리스를 도와서 같이 싸울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해서 정말 대견하다.

그리고 키아라는... 쏘라고 준 총은 어디로 갔는지 몰라도 호문쿨루스들을 손으로 찢어버리거나 발차기로 머리통을 날려버리면서 위험하기 짝이 없는 근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마법갑옷을 완전히 피로 물들인 상태에서도 계속해서 호문쿨루스들을 때리고 걷어차서 죽이고 또 죽였다.

자기 입으로 겁쟁이라고 습관처럼 말하고 자주 소심하고 순진한 태도를 보였던 사람이 갑자기 광전사처럼 날뛰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좀 무섭다는 생각도 든다.

그녀의 주먹질 한 방에 호문쿨루스가 멀찍이 떨어진 벽에 부딪혀 터지고 발차기 한 방에 호문쿨루스의 뼈와 살이 분리되어 하늘 높이 날아갔다.

‘키아라랑 섹스를 할 때는 정말 조심해야겠다. 자칫하면 죽어버릴 지도 모르겠어.’

나는 지금은 아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슬슬 재생력이 느려지기 시작한 호문쿨루스들에게 마력탄을 정성스럽게 박아 넣었다.

호문쿨루스들은 결국 뛰어난 재생능력을 상실했고, 차례대로 우리의 공격에 죽어나갔다.

우리의 마법갑옷은 온통 피투성이였고, 바닥이나 주변의 건물들에 수많은 탄흔이 새겨져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그리고 우리는 마지막 남은 호문쿨루스를 죽이지 않고 제압탄으로 가두어버렸다.

“다들 수고했어. 다친 사람 없니?”

내 질문에 내 사랑들과 키아라 모두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보아하니 아무도 상처를 입지 않고 끝난 것 같다.

“무장드론들 덕분에 위기상황 자체가 발생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호문쿨루스들의 전투력이 생각보다 강하지는 않더라고요.”

“라우라, 네 말대로 흉흉한 분위기에 비해서는 약했지.”

나는 급하면 상급 악마촉수를 소환할 작정이었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 정도 전투는 라우라와 이리스의 실력을 녹슬지 않게 해주고 에리카에게 추가적인 실전경험을 줄 수 있으니 해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키아라의 전투력을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키아라는 마법갑옷을 말 그대로 방어구로만 사용했고 모두 순수하게 자신의 힘으로만 호문쿨루스들을 상대했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총알보다 그녀의 주먹질이나 발차기가 더 강한 것 같다.

“키아라, 너 정말 대단하다. 총도 없이 몸으로만 싸우다니 말이야.”

“그, 그게... 실은 재장전할 틈을 놓쳐서 계속 그렇게 싸우게 되었어요.”

“그렇구나. 어쨌든 대단한 건 사실이잖아. 앞으로 네 전용 마법갑옷이 생기면 이런 걸 달아두면 좋을 것 같아.”

나는 키아라에게 내 로켓펀치를 보여주면서 말했다.

그러자 키아라는 추진장치가 달린 오른팔 장갑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레베카님, 계속 콜린을 추적하실 건가요?”

“일단 저 호문쿨루스를 프랑카 기사단에 넘겨주고 계속 추적... 아, 그럴 필요 없겠다. 내가 미리 파둔 함정에 완전히 걸려들었거든.”

나는 라우라에게 말을 하는 와중에 촉수관리창을 통해서 들어온 알림을 읽은 뒤에 씩 웃으면서 말했다.

진짜 콜린 일당이 내 휘하로 들어온 악마촉수들이 주둔하고 있는 버려진 요새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나는 하급 악마촉수들에게 놈들을 산채로 잡아두라는 명령을 내렸다.

“함정이요? 아, 간밤에 콜린의 악마촉수들을 제거하면서 설치했다고 하셨지요?”

“맞아. 지금쯤 엄청 놀라고 있을 거야. 급할 것 없으니 천천히 가도록 하자.”

“네, 레베카님. 그런데 엘카힘이 이번에도 직접 나타나지 않아서 무척 아쉬워요. 대체 언제쯤이면 복수를 할 수 있을 까요?”

“머지않아 네 복수를 이룰 수 있을 거야. 엘카힘은 우리 때문에 일이 다 꼬였으니 언젠가 신중함을 잃고 덤벼드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해.”

“그런 날이 빨리 오면 좋겠네요.”

라우라는 흑검을 쓰다듬으며 자신의 마음속에 숨겨둔 어둠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나는 그런 라우라를 뒤에서 안아주었다.

부디 라우라가 복수심에 미쳐서 내가 모르는 사람이 되질 않기를 바라면서.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