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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세상에서 마음껏 살아간다-209화 (209/271)

〈 209화 〉 208화

* * *

자동화축사에 돌아가니 내 사랑들이 키아라와 함께 개울가에 옹기종기 모여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키아라가 우리 일행에 합류한 지는 이제 24시간 정도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럭저럭 잘 적응해나가고 있는 것 같다.

내 사랑들은 키아라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였는데, 아마도 곧 하렘의 일원이 될 사람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싶은 모양이다.

키아라는 그러한 관심들을 부담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자연스레 미소를 짓는 것을 보면 그래도 대화가 싫지는 않을 것 같다.

“얘들아, 나왔어.”

내 사랑들은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내 쪽으로 동시에 고개를 돌리더니 다들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와 키스와 포옹을 해주었다.

그리고 키아라는 그러한 애정표현 대신에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키아라, 잘 지냈니?”

“네, 레베카님. 아가씨들 덕분에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다행이네.”

나는 손을 위로 뻗어서 키아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러자 키아라는 눈을 살며시 감고서 내 손길을 즐겼다.

늘 나보다 키가 작은 사람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키가 더 큰 사람의 머리를 쓰다듬으니 뭔가 색다른 기분이 든다.

나는 키아라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으로 그녀의 볼을 어루만졌고, 그녀는 손을 들어서 내 손을 살포시 잡았다.

확실히 키아라는 볼을 만져주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레베카님, 즐기시고 계시는 와중에 죄송하지만 앞으로의 방침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라우라는 한참 동안 키아라의 부드러운 볼이 선사하는 감촉을 만끽하고 있는 내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나도 모르게 너무 오랫동안 키아라의 볼을 만지작거렸나보다.

그런데도 키아라는 내가 볼에서 손을 떼자 몹시 아쉬워하는 눈빛을 보내왔다.

“아, 그래. 사실 그게 제일 중요했는데 너희들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잠시 잊고 있었어. 기밀탈취사건의 배후는 짐작했던 대로 엘레아노르야. 붙잡힌 내통자의 증언에 따르면, 엘레아노르는 동료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서 그러한 범행을 저질렀다고 해.”

“확실히 이해가 가는 범행동기이군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엘레아노르는 프랑카의 지하신전에 있다고 하니까 지금 바로 가서 그 여자의 본심을 알아내고, 이리스를 위해서 시신을 받아갈 거야.”

나는 이리스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그러자 이리스는 약간 슬픔이 묻어있는 미소를 지으며 내 어깨에 기대었다.

“베로니카님은 이번 일을 어떻게 처리하고 싶어 하시나요?”

“언니는 너에게 네 아버지의 시신을 인계해달라고 부탁했어. 지극히 개인적인 부탁이기 때문에 조용히 일을 진행할 필요가 있어.”

“나중에 고맙다는 말씀을 드려야겠어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나는 오늘따라 약해보이는 이리스를 꼭 안은 채로 등을 토닥여주었다.

이리스는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서 내 어깨를 꽉 잡은 채로 울음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아냈다.

그냥 마음 놓고 울어도 될 텐데도 끝까지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레베카님, 위로해주셔서 고마워요.”

“힘들면 언제든지 기대라고 말했으니까 늘 이렇게 행동으로 옮겨야지.”

“역시 레베카님은 좋은 사람이에요.”

이리스는 고개를 들어서 내게 가볍게 키스를 하고는 베시시 웃었다.

아, 너무 귀여워서 심장이 멎어버릴 것 같다.

“레베카님, 아까부터 신경 쓰였던 건데 목에 있는 둥근 자국들은 뭔가요?”

“자국? 헉!”

나는 에리카가 묻는 말에 뭔가 싶어서 가방에서 손거울을 꺼내서 목을 확인했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애완촉수의 촉수가 남긴 자국들이 내 목에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녀석의 촉수 중 일부에는 빨판이 있어서 내 몸을 구속하는데 아주 유용하게 써먹었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발견하지 못할 수준이었지만 슬쩍 훑어봐도 말의 미세한 상처나 아주 작은 해충까지 잡아내는 에리카의 날카로운 눈썰미를 피할 수는 없었다.

“키스 자국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고 간격이 규칙적이네. 꼭 두족류의 빨판 같아.”

라우라는 아예 내 목을 대놓고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정답에 가까운 결론을 내려버렸다.

나는 내 사랑들이 날 유심히 관찰하는 와중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레베카님, 비장의 수단이라는 게 대체 뭐기에 이런 자국까지 남는 건가요?”

“그게...”

나는 쉽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대놓고 촉수랑 섹스를 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온갖 변명거리를 생각해봤지만 그럴싸한 게 떠오르지 않았다.

이럴 때는 진실을 섞은 거짓말을 할 필요가 있겠지.

“실은 호기심에 특수상점에 있는 촉수를 꺼내봤다가 당해버리고 말았어. 바보 같지?”

“네? 괜찮으세요? 그것들 설명서를 읽어보니까 꽤나 위험한 것들이었는데...”

“걱정 마. 당시에는 좀 지치긴 했었지만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고 다친 곳도 없으니까.”

“무사하시다니 다행이에요. 그나저나 제가 레베카님의 처녀를 미리 가져가서 다행이네요. 자칫했다간 촉수에게 처녀상실을 당할 뻔 했잖아요.”

나는 이미 다들 잘 알고 있는 사실인데도 너무나도 당당하게 말하는 라우라 때문에 당혹스러웠다.

그래도 촉수에게 어떤 일을 당했는지 세세하게 묻지를 않아서 다행이다.

“그... 촉수는 사람으로 번식을 하거나 그러지는 않지요?”

“다, 다, 당연하지! 걱정 마렴, 에리카, 그럴 일은 절대로 없을 테니까.”

나는 말을 더듬어가면서 에리카를 안심시켰다.

애완촉수에게는 기생촉수처럼 상대방을 숙주로 만들어서 번식을 하는 능력 같은 것은 전혀 없이 오직 쾌락만을 주기 위해서 존재한다.

따라서 애완촉수와 지속적으로 섹스를 한다고 해서 촉수를 낳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레베카님, 욕구불만이시면 그런 이상한 것보다는 저희들에게 의지해주세요.”

“그게 아니면 모두 함께 즐겨도 괜찮겠네요.”

“라우라! 너 대체 무슨 소리야?”

“농담이야, 농담! 이리스, 넌 농담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니깐.”

라우라는 농담이라고 말하지만 뭔가 반쯤 진심이 담겨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이리스도 저렇게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거겠지.

반면에 에리카는 살짝 기대하는 듯한 반응을 보였는데, 그녀의 피학적 성향이라면 충분히 흥분하고도 남을 것 같다.

“흠흠, 아무튼 이제 지하신전으로 가자. 너무 늦게 가면 엘레아노르가 장례를 다 끝내고 떠나버릴지도 몰라.”

나는 서둘러 촉수와 관련된 대화를 끝내버리고 내 사랑들과 키아라를 데리고서 마법승강기를 타고 올라가 밖으로 나갔다.

그러고는 바로 신전으로 향했다.

나는 지금까지 여러 신전을 봤었지만 멀쩡한 운영되는 신전의 내부에 들어가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성수라는 이름의 회복물약을 살 때는 그냥 신전 외부에 붙어있는 상점을 이용했었고, 카르디아에서는 신전에 들어가긴 했었지만 그땐 반쯤 파괴된 상태인데다 여유롭게 구경할 틈도 없었다.

그래서 사실상 이번이 처음으로 신전 내부로 들어가 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평일인데도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네.”

“세상엔 의지할 곳이 필요한 외로운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저도 레베카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신전에 많이 의지했었어요.”

에리카는 남들의 기도를 방해하지 않도록 작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텔레파시를 쓰면 되지만 에리카는 웬만하면 본인의 입으로 직접 말하는 것을 선호했다.

“그랬구나. 그건 오늘 처음 알았네. 그리고... 뭐야 저건?”

나는 예배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아래에서 영롱하게 빛을 받고 있는, 금으로 도금된 신상을 보고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신상은 세레나의 화신이 남기고 간 휘장에 새겨진 문양과 똑같이 생겼고, 사람들은 그것을 창조신의 상징물로 여기고서 거기다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이렇게 가까이 세레나의 흔적이 있는데도 나는 여태까지 신전에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전혀 몰랐었다.

물론 그때만 하더라도 세레나가 기계여신님이 되어서 살아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도 못했었지만 말이다.

내가 멍하니 신상을 보고만 있으니 옆에 있던 이리스가 내 소맷자락을 잡고 흔들었다.

“레베카님?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세레나가 정말 창조신이 맞구나 싶어서.”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베로니카 언니를 만나러 가기 전에 세레나의 화신이 날 찾아왔었는데, 그 애가 이 휘장을 남기고 갔어. 휘장에 새겨진 문양이 저기 있는 신상과 똑같이 생겨서 놀랐어.”

나는 치트가방에서 휘장을 꺼내서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그러자 이리스가 대표로 휘장의 정체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이건 주교 이상으로 신분이 높은 성직자님들이 패용하는 휘장이에요. 세레나님께서는 달에 계신다고는 하지만 그분의 화신은 제국 어딘가의 대신전이나 수도의 중앙신전에서 머무르고 계실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구나. 뭐, 세레나 본인도 아니고 화신일 뿐이니 크게 신경을 쓸 필요는 없겠지.”

“그런데 그 분은 왜 레베카님을 만나러 오신 건가요? 세레나님의 신탁이라도 내리신 건가요?”

나는 이리스의 질문에 또 다시 말문이 막혀버렸고 등에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내가 당황스러워하는 눈빛을 보내자 내 사랑들을 날 데리고서 으슥한 곳으로 향했다.

키아라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보냈지만 내 사랑들은 사뭇 진지했다.

“자, 레베카님. 우리 이제 솔직해지자고요.”

“맞아요. 우리 사이에 너무 많은 것을 숨기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저희들은 뭐든지 다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으니 안심하고 말씀해주세요.”

라우라와 이리스, 에리카는 순서대로 내게 진실을 말할 것을 요구했다.

나는 그게 너무 난감했지만 더는 숨길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할 수가 없었다.

키아라는 나보다도 더 안절부절못하면서 나와 내 사랑들 사이를 번갈아보았다.

“그, 그게... 미안해. 아까는 부끄러워서 반쯤 거짓말을 했었어. 특수상점에 있는 촉수에게 당한 게 아니라 내가 호기심을 못 이기고 직접 촉수소환스킬로 애완촉수를 소환해서... 섹스를 했던 거야.”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다 털어놓자 내 사랑들은 각자의 성격에 맞는 표정을 지었다.

라우라는 가학적인 미소를 지으며 내 목을 쓰다듬었고, 에리카는 피학적인 기대가 담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몸을 배배꼬았다.

그리고 이리스는... 체념에 가까운 표정을 지으며 나를 질책하는 듯한 눈빛을 보내왔다.

“일이 다 끝나고 나니까 갑자기 나한테 예속각인이 새겨졌어.”

나는 과감하게 배를 까서 내 사랑들과 키아라에게 누구보다도 화려한 자궁문신을 보여주었다.

엄청나게 부끄러웠지만 어차피 다 들켜버렸으니 그냥 눈 딱 감고 공개해버렸다.

그러자 내 사랑들은 모두 손을 뻗어서 내 자궁문신을 쓰다듬었다.

난 그것만으로도 결국 가볍게 절정하고 말았는데 라우라를 제외하고는 눈치를 채지 못한 것 같다.

“그러다 갑자기 몸을 움직일 수 없었고, 내 등 뒤에 세레나의 화신이 나타났어. 그러고는 내 예속각인을 새긴 사람이 세레나라는 사실을 알려줬어. 세레나는 내가 영웅이 되길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타락해서 마왕이 되는 모습도 보고 싶다지 뭐야. 그래서 내가 일정한 선을 넘으니까 바로 이렇게 예속각인을 새겨버린 거야.”

난 내가 저지르고 당했던 수치스러운 일들을 모조리 다 털어놓고야 말았다.

너무너무 부끄러워서 얼굴이 타오를 것처럼 뜨거워지고 머리에서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결국 난 그 자리에서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고개를 푹 숙였다.

이대로는 더 이상 내 사랑들을 쳐다볼 수 없었다.

“레베카님,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희들은 레베카님의 뭘 하시든 다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까 힘내세요.”

에리카는 그 말과 함께 나를 안아주었고, 라우라와 이리스도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여태까지 쭈뼛쭈뼛 서있던 키아라도 눈치를 보더니 슬쩍 나를 뒤에서 안아주었다.

덕분에 나는 수치심을 극복할 수 있었고, 고개를 들어서 내 사랑들과 눈을 마주쳤다.

그러자 다들 내 볼과 이마에 뽀뽀를 해주면서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는데도 다들 나를 감싸줘서 고마워. 난 정말 복 받은 사람이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털어놓을 때만 하더라도 부끄러워서 애를 먹었었는데 이제는 차라리 속이 다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 우리 사이에 웬만하면 솔직하게 털어놓는 게 좋지.

괜히 숨겨봤자 결국엔 이렇게 다 들켜버리고 마는 걸.

“레베카님, 앞으로 또 애완촉수를 쓰고 싶으시다면 혼자 즐기시지 마시고 저희들도 불러주세요.”

“저도 그... 한 번쯤은 경험해보고 싶어요.”

라우라와 에리카는 내게 자신들의 욕망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두 사람이 그렇게 나오니까 다시는 애완촉수를 소환하지 말아야겠다던 내 결심이 완전히 흔들리고 말았다.

경험을 해보니 엄청 힘들기는 해도 위험하지는 않고 촉수를 밸 위험성도 전혀 없으니 문제는 없겠지.

다 함께 촉수로 즐기는 걸 상상하니 나도 모르게 침이 꿀꺽 삼켜진다.

“전 아무리 생각해도 싫으니까 셋이서만 즐기세요.”

이리스는 단호하게 반대의사를 밝혔다.

그녀는 생각도 하기 싫다는 듯 정색했는데, 이런 식으로 무언가를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것을 보는 건 처음이라서 신선했다.

“레베카님, 애완촉수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여주시겠어요?”

나는 에리카의 부탁에 따라서 중형견 크기의 애완촉수를 소환했다.

역시 얌전히 있으면 우무문어를 닮아서 좀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혐오스러울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의외네요. 그렇지, 에리카?”

“응. 이것 봐 쓰다듬으니까 반응이 재밌어.”

라우라와 에리카는 열심히 애완촉수를 쓰다듬으면서 녀석을 귀여워해주었다.

섹스를 명령하지만 않으면 말 그대로 애완동물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 같다.

멋대로 급발진을 해버리는 녀석이었더라면 벌써 라우라에게 난도질을 당했을 테니 녀석의 입장에서도 다행인 셈이다.

“이리스, 이것 좀 봐. 네가 좋아하는 귀여운 동물이야.”

“싫어. 세상에 촉수괴물이 귀여울 리가 없잖아.”

“속는 셈치고 한 번만 봐.”

혼자서 다른 곳을 보고 있던 이리스는 에리카의 부탁에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녀가 품에 안고 있는 애완촉수에게 눈길을 주었다.

그러더니 활짝 웃으며 에리카와 애완촉수를 동시에 끌어안았다.

“이거 너무 귀엽다! 동글동글하고 말랑말랑해서 귀여워. 꺄하하하!”

이리스는 애완촉수를 마구 쓰다듬거나 주물럭거리면서 좋아했다.

방금 전까지 질색을 하던 이리스는 대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걸로 이리스도 촉수파티에 참가시킬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대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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