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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세상에서 마음껏 살아간다-183화 (183/271)

〈 183화 〉 18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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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만하고도 8721년!

체감 상으론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인데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 지나버렸다니.

어차피 원래 살던 세상에 대한 미련이라곤 전혀 없었지만 그래도 뭔가 고향을 잃어버린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도 내 정체성에 대한 의심이 들지 않아서 다행이다.

사람의 의식을 서버에 업로드 했다가 다른 몸으로 다운로드할 경우에 그게 본인이 맞느냐는 철학적인 질문 같은 건 내게 있어서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

그냥 내가 나라고 생각하면 그것만으로 충분한 거잖아.

물론 내 원본이 따로 있고 내가 복제품이면 조금 자존심이 상할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난 원본이 가지지 못했던 아름다운 애인이 세 명이나 있단 말이지.

아무튼 난 루카스가 가르쳐 준 세상의 비밀이 놀랍긴 해도 심각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내게 중요한 것은 낯선 세상에서 마음껏 인생을 살아가는... 아, 이건 이미 꼬여버렸지.

어쨌든 새로운 인생을 즐기면서 사는 것이 목표이니 그런 어두운 세계관 같은 건 대충 넘기도록 하자.

“레베카님, 드레스는 고르셨나요?”

“아, 응. 이제 막 골랐어.”

나는 이리스가 부르는 말에 대충 손에 집히는 드레스를 꺼내서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이리스와 에리카는 물론이고 라우라마저도 낯뜨거워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라우라가 저럴 정도면 좀 심각한데...

“레베카님, 제가 웬만한 건 다 예쁘다고 해드리는 사람이지만 그건 진짜 아니에요.”

“맞아요. 얼른 다시 그 이상한 옷을 집어넣으세요.”

이리스와 에리카는 연달아서 내가 꺼낸 드레스에 대한 악평을 쏟아냈다.

뒤늦게 드레스의 디자인을 확인한 나는 적잖이 당혹스러웠다.

노출이 심한 건 둘째 치고 가슴이나 음부가 제대로 가려지지도 않아서 옷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정도로 파렴치했다.

매춘부에게나 어울릴 법한 노골적으로 사람을 유혹하는 복장이 왜 드레스룸에 있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반쯤 얼어붙자 결국 보다 못한 라우라가 내 손에 들려있던 드레스를 뺏어서 다시 옷걸이에 걸었다.

“이런 옷은 섹스를 할 때만 입어주세요. 레베카님이 겨우 옷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오해를 사는 걸 보고 싶지 않아요.”

“미안. 실은 딴 생각을 하다가 아무거나 골라잡았어. 다음엔 신경을 쓸 게.”

“레베카님은 옷을 고르기 힘들어하시니까 일단 저희들이 골라놓은 게 있어요. 분명 마음에 드실 거예요.”

“챙겨줘서 고마워.”

나는 라우라가 내미는 기품이 넘치는 디자인의 드레스를 받아서 바디슈트를 그것과 똑같이 변형시켰다.

그리고 거울에 서서 여러 가지 포즈를 잡으며 내 아름다운 몸매를 감상했다.

잘록한 허리, 매혹적인 골반, 풍만한 가슴, 탐스러운 엉덩이까지 어디 하나 부족한 점이 없어서 이 정도면 치트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너희들 정말 눈썰미가 좋구나. 골라주는 것마다 다 마음에 들어.”

“그야 우리는 늘 레베카님을 바라보고 있으니까요.”

“다들 언제나 고마워.”

나는 내 사랑들을 한꺼번에 끌어안고서 한 명씩 이마에 뽀뽀를 해주었다.

어쩜 이렇게 예쁜 말만 골라서 하는지 몰라.

“루카스를 너무 기다리게 할 수는 없으니까 슬슬 연회장으로 가자.”

“그전에 화장은 하고 가셔야지요. 머리도 정리하셔야 하고요.”

“화장? 아, 맞다. 깜빡했어.”

나는 나가려다 말고 내 사랑들의 손에 이끌려 화장대 앞에 앉았고, 그녀들의 손길을 얌전히 받아들였다.

난 아직 스스로 화장을 할 줄을 모르니 필요할 때면 언제나 이렇게 내 사랑들의 도움을 받았다.

내 생각에는 굳이 화장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만 내 사랑들은 날 더욱 예쁘게 만들어주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결국 나는 한참을 화장대 앞에 앉아 있다가 겨우 풀려났다.

거울 속 내 모습은 한층 더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고, 왠지 모르게 내 사랑들의 특징이 조화롭게 섞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내 사랑들이 정성스럽게 빗어준 윤기가 흐르는 머리카락은 더욱 더 찰랑거렸다.

“자, 레베카님. 그럼 이제 다른 사람들에게 레베카님의 우월한 미모를 뽐내도록 해요.”

“좋아. 어디 한 번 가보자.”

나는 하이힐로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내 사랑들과 함께 연회장으로 향했다.

루카스의 저택에 마련된 호화로운 연회장에는 많은 수의 귀족과 부호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대화를 나눴고, 노예들과 하인들이 열심히 돌아다니며 그들의 수발을 들고 있었다.

사람들은 우리들의 등장에 하던 일을 멈추고 시선을 집중했다.

인기투표에서 막판 역전으로 1등을 거머쥔 나는 물론이고 이벤트경기에서 각각 모두 1위를 차지했던 내 사랑들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

내 사랑들의 말대로 화장을 하고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회장에 있는 남자들은 저마다 뭐라고 수군거리며 내 외모와 몸매를 품평을 하는 듯했고, 여자들은 부러움이나 동경 혹은 질투어린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나는 그런 시선을 즐기면서 연회장을 천천히 걸어 나갔고, 연회의 주최자인 루카스와 마주했다.

“루카스, 많이 기다렸지?”

“원래 주인공은 늦게 등장하는 법이니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었지. 연회장의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네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기다린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아.”

“뭐야? 나한테 작업 거는 거야?”

“설마. 있는 그대로의 감상을 말한 것뿐이야. 내가 사랑하는 이는 어디까지나...”

“나도 알아. 그냥 농담한 거라고.”

“하하하. 이럴 줄 알았으면 서로 반말하자고 제안하질 말 걸 그랬어.”

“이제라도 아저씨라고 불러줄까?”

“아니! 난 내 장남보다도 마음이 젊은 사람이라고.”

루카스는 아저씨라는 말에 아주 질색을 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하긴 노화방지스킬을 가진 사람에게 아저씨라는 말을 하면 별로 어울리진 않지.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자기 아들보다도 마음이 젊다고 우기는 모습은 뭔가 웃기긴 하다.

“아버지, 그 말씀 진심으로 하시는 건가요?”

“응? 마니우스, 언제 왔니?”

루카스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의 뒤에는 루카스를 닮아 키가 훤칠하고 인물이 출중하면서 그와 달리 체격이 크고 근육질에 가까운 젊은 휴먼족 남자가 서있었다.

마니우스라는 이름의 남자는 루카스와 눈을 마주치마자마 그에게 목례를 했다.

“방금 도착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제가 한 지방의 영주인데 마중은 나와 주셔야하는 거 아닙니까?”

“미안하구나. 내가 오늘은 굉장히 들떠서 말이다.”

“원하시는 바는 이루셨는지요?”

“물론이지. 이 친구들 덕분에 아주 좋은 성과를 거두었단다. 자, 인사하렴. 명예기사 레베카란다. 레베카, 내 장남인 마니우스야.”

루카스는 나와 마니우스에게 서로를 소개시켜주었다.

나는 이제는 익숙해진 예법에 따라서 영주인 마니우스에게 인사했고, 내 사랑들도 나를 따라서 예를 차렸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명예기사 레베카 카론입니다. 루카스님 덕분에 훌륭한 경기에 임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난 마니우스 볼르디아 시르카예프 백작일세. 자네도 들었다시피 볼르디아 지방을 다스리는 영주라네. 리제르카의 영웅이자 제르디아와 카르디아에서 활약한 유명한 명예기사를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어.”

“소문이 정말 빠르군요.”

“리제르카를 구한 명예기사에 대한 이야기는 아마도 제국 전체에 다 퍼져있을 걸세. 제르디아와 카르디아에서의 활약상은 최근에 퍼지기 시작했고. 이제 곧 그대의 노예들이 볼르디아에서 명성을 떨쳤다는 소문도 퍼지겠지. 인기투표는 덤이고.”

마니우스가 리제르카 뿐만 아니라 제르디아와 카르디아에서의 일까지 알고 있다니 조금 놀라웠다.

누군가 일부러 소문을 퍼뜨리게 있는 게 분명한데, 아마도 황제 쪽이겠지.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난 아무래도 황제의 용사 만들기 프로젝트에 휘말린 것 같다.

난 용사처럼 거창한 짓을 한 뒤에 버려지는 역할은 하고 싶지 않단 말이야!

어쩌면 루카스 말대로 당분간 숨어사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그게 아니면 내 촉수군대를 더 키워서 황제의 목을 따는 방법도 있겠지.

“마니우스, 레베카는 내 친구이니 어디 이용할 생각은 하지 마라.”

“걱정 마시지요. 아버지께서 어머니의 유지를 이어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사람을 이용할 정도로 타락하지는 않았습니다.”

“요즘 네 주변의 소문이 별로 좋지 않아서 하는 말이야.”

“아, 그거라면 문제될 것 없습니다. 곧 해결될 일입니다.”

마니우스는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루카스에게 답하더니 다시 날 향해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내게 손을 내밀면서 자세를 낮췄다.

“한 곡 부탁해도 되겠는가?”

“제 춤 실력이 부족하여 영주님께 누를 끼칠까 걱정입니다.”

“걱정 말게나. 어떤 상황이든 내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니.”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계속 영주를 허리 숙이게 만들 수는 없으니 그가 내미는 손을 잡고 무대로 향했다.

내 사랑들은 꽤나 살벌한 눈빛을 품었지만 다행히 나를 향한 것은 아니었다.

서로 텔레파시를 통해서 마니우스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는 게 너무 귀엽다.

“아버지께서 그대에게 실례를 저지르지는 않았는가?”

“오히려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니 다행일세. 아버지께서는 제멋대로인 분이신지라 종종 다른 사람과 갈등을 빚는 경우가 있다네. 하지만 가족과 친구에게는 정말 따뜻하신 분이시니 앞으로도 아버지를 잘 부탁함세.”

마니우스는 방금 전에는 루카스의 걱정을 일축한 주제에 이제 와서는 걱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루카스가 성격 나쁜 사람도 아니고 그냥 솔직하게 감정을 다 드러내면 좋을 텐데 말이다.

“영주님께서는 루카스님을 많이 아끼시는 군요.”

“내 아버지이시니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서 헌신하시는 분이시니 항상 존경하고 있다네. 가끔 사고를 치셔서 내가 뒷수습을 해야 하는 날을 제외하면 말일세. 하하하.”

마니우스는 루카스를 쏙 빼닮은 웃음소리를 냈다.

그는 말 그대로 노래가 한 곡이 끝날 때까지 나와 사교춤을 추다가 나를 에스코트하며 무대에서 내려왔다.

“너희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빌려줘서 고맙다. 이제 돌려주도록 하지.”

마니우스는 내 사랑들에게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더니 잡고 있던 내 손을 라우라에게 인계해주었다.

그는 내가 말을 하지는 않아도 누가 첫째인지 척 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는 모양이다.

“레베카경, 나와 어울려줘서 고맙네. 기회가 닿는다면 내 저택에도 그대를 초대하도록 하겠네. 그리고 프랑카로 돌아가거든 베로니카 부단장에게 내 안부를 전해주게나. 친구는 잘 지내고 있다고 말이야.”

“기꺼이 전달해드리겠습니다. 영주님과 함께 무대에 올라 영광이었습니다.”

“나야말로 영웅과 함께 춤을 출 수 있어 영광이었다네. 그럼 남은 시간 즐겁게 보내게.”

마니우스는 내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더니 대기하고 있던 수행원들과 함께 빠른 발걸음으로 연회장에서 빠져나갔다.

물론 나가기 전에 루카스에게 인사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루카스는 아들이 금방 떠나버리자 몹시 섭섭해 했지만 본인이 영주자리를 떠넘기다시피 하는 바람에 바빠진 아들을 놀자고 붙잡지는 않았다.

“얘들아, 너희들도 나랑 같이 한 곡씩 추지 않을래? 우선 라우라 너부터.”

“잘 부탁드려요. 후훗.”

내 제안에 라우라는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녀의 손등에 입을 맞춘 뒤에 함께 무대 위로 올라갔다.

노예가 무대에 올라와서 불쾌해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우린 그딴 하찮은 불평 따위는 그냥 무시하고 춤에 열중했다.

나는 라우라에 이어서 이리스, 에리카와도 사교춤을 추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에리카는 사교춤에 익숙하지 않지만 춤을 배운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금방 따라잡은 것도 모자라 나보다 더 실력이 좋아졌다.

음... 이거 연습을 좀 해야 할 거 같기도 하고.

나는 연달아 4번이나 사교춤을 추고난 뒤에 인적이 드문 구석자리에 앉아서 쉬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말을 걸거나 아는 척을 하는 게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아예 내 사랑들을 데리고서 저택 밖의 정원으로 나갔다.

거기도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나처럼 연회장에서의 스트레스를 피해서 온 사람들인지 눈길도 주지 않았다.

“휴우, 여기라면 편하게 쉴 수 있겠네.”

나는 벤치에 기대어 앉았고 라우라와 이리스가 내 양 옆에, 에리카가 내 앞에 앉았다.

라우라와 이리스는 나에게 뽀뽀를 하면서 스킨십을 이어나갔고, 나는 에리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가 서로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동안, 어느새 루카스가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연회가 네 체질에는 맞지 않는 모양이구나.”

“사람들이 귀찮더라고.”

“그럴 만도 하지. 유명한 사람만 보면 일단 연줄을 만들어보려는 게 귀족들의 본성이니까. 휴식 중에 방해해서 미안하지만 너한테 약속을 이행하기 좋은 시점이니 양해해주면 좋겠어.”

루카스는 그 말과 함께 허공에 지도창을 띄우더니 나에게 뭔가를 넘기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내 지도창에 마커가 3개 나타나며 물음표 지역들을 가리켰다.

“스킬들이 있는 장소야. 물건복제를 제외하면 네가 들렀던 도시와 가까이에 있으니 금방 얻을 수 있겠지. 그리고 이건 페널티 없이 노예를 해방하는 승급스킬이니 받아둬.”

루카스는 다시 한 번 뭔가를 넘기는 시늉을 했고, 내 스킬창에 노예전용 승급스킬이 등록되었다.

설명을 읽어보니 예속퀘스트를 달성한 노예를 대상으로 사용하면 신분은 평민으로 바뀌고, 직업은 특이하게도 전투메이드로 고정되는 스킬이다.

다시 말해서 특수스킬이나 예속각인, 피어싱 등의 특수기능 잃지 않고 내 사랑들을 노예에서 해방시켜줄 수 있기 때문에 내 입장에선 굉장히 유용한 스킬이다.

지금까지 노예라는 이유로 제한을 많이 받아왔던 내 사랑들에겐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내가 그 스킬의 소유권을 포기하면서까지 급하게 너한테 넘긴 이유는 조만간에 황제가 노예국유화법을 제정할 예정이기 때문이야. 그러니 빨리 사용하고 관공서에 신분갱신을 하도록 해.”

“고마워, 그렇지 않아도 꼭 필요했던 스킬이야.”

“너희들이 날 위해서 뛰어준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야.”

“그래? 추가보상을 기대해도 돼?”

“물론이지. 그럼 난 손님들 상대를 해야 하니 실례하지.”

루카스는 손목시계를 보더니 급한 발걸음으로 다시 연회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우리는 남은 시간을 정원에서 여유롭게 보내며 승급스킬에 대한 논의를 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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