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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세상에서 마음껏 살아간다-182화 (182/271)

〈 182화 〉 181화

* * *

기마술경기에서 1위를 차지한 에리카가 시상대 위로 올라섰다.

에리카는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을 즐겼다.

“레베카님, 저 오늘 어땠어요?”

“정말 멋있었어. 또 한 번 너한테 반해버릴 정도로 말이야.”

“에헤헤. 오늘 최선을 다한 보람이 있네요.”

“덕분에 이렇게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는 거야. 축하해, 에리카.”

“감사합니다, 레베카님. 그럼 이제 키스해주세요.”

에리카는 양팔을 벌리며 재촉했고, 나는 기꺼이 그녀에게 키스를 선사했다.

그녀는 내게 매달리듯이 안기며 나와 애정을 충분히 주고받은 뒤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내게서 떨어졌다.

키스를 끝낸 뒤에는 라우라와 이리스가 에리카에게 꽃다발을 주면서 양쪽에서 그녀의 볼에 뽀뽀를 해주고 꼭 끌어안았다.

“다들 훌륭한 결과로 경기를 마무리 지어줘서 고맙다. 너희들 덕분에 내 사업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이 굉장히 커졌고 엄청난 투자를 약속받을 수 있었으니 말이야. 역시 너희들에 대한 내 안목은 틀리지 않았어.”

루카스는 내 사랑들을 향해 열렬하게 박수를 치며 다가왔다.

노화방지스킬을 얻을 수 있는 곳을 미끼로 내 사랑들을 이벤트경기에 끌어들여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으니 당연히 기쁘겠지.

“이제 제국 내의 검투경기장은 점진적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질 거야. 앞으론 노예들이 정정당당하게 스포츠로 대결해서 성공한 자는 부와 자유를 손에 넣게 되고, 실패하더라도 목숨을 잃지 않게 되겠지.”

“네 높으신 친구 분도 찬성하신 거야?”

“그 친구 같은 경우엔 노예는 낭비해서는 안 될 인적자원이라는 내 주장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고, 노예제폐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제법 충격적인 법안을 준비 중인 것 같더라고.”

“그게 뭔데?”

“음... 그건 자리를 옮겨서 이야기하자. 어차피 너한테는 해줄 말이 많으니까.”

루카스는 수행원들을 먼저 돌려보내고는 우리를 데리고 관중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한 경기장의 지하로 향했다.

내 사랑들은 빵을 받지 못해서 아쉬워했지만 루카스가 호화로운 만찬을 준비했다는 말에 바로 미련을 버렸다.

경기장의 지하는 복잡한 기계장치들이 가득했는데, 대부분 나무로 만들어져 있어서 그렇게 내구성이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루카스는 기계장치들을 지나쳐서 문을 몇 개를 연 끝에 우리를 텅 빈 공간으로 안내했다.

“루카스, 여긴 뭐하는 곳이야?”

“내 저택 지하실과 직통으로 연결되는 지하도로야. 그럼 재밌는 걸 보여줄게.”

루카스가 앞으로 손을 뻗자 소환진이 그려졌고, 그 위로 대형 SUV가 소환되었다.

나는 그걸 보자마자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고 내 사랑들은 엄청나게 신기해했다.

그래, 드론을 소환할 수 있는 마당에 전기자동차를 소환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이건 너무 치사하잖아! 나는 기껏해야 말이나 마차를 타고 다닌다고!

“참고로 이 소환스킬에 대해서 아는 사람 중에서 살아있는 사람은 황제랑 너희들이 전부야. 아, 오해는 하지 마. 다들 나 먼저 죽어버렸을 뿐이니까.”

“혹시 이거 저주 받은 자동차인 거야?”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네. 20년 전에 아내와 함께 드라이브를 하다가 가면쟁이들에게 공격을 받았어. 난 경상을 입었지만 아내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지.”

“미안해! 하여간 내 주둥이가 문제라니깐!”

나는 바로 허리를 숙여가며 사죄하고 나섰다.

하필이면 아내가 그런 식으로 황망하게 죽었을 줄이야...

저번에 루카스가 가족을 지키고 싶으면 가면쟁이들과 엮이지 말라고 했던 이유를 이런 식으로 알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미안해서 죽을 지경이었지만 루카스는 그냥 웃어 넘겼다.

“괜찮아. 네가 알고 그런 것도 아니고. 실은 저번에 내가 말했던 억울하게 죽었다던 동향출신이 바로 내 아내야.”

“정말 유감이야. 그런데 그 쓰레기 같은 놈들은 왜 그런 짓을 저지른 거야?”

“그 당시의 우리 부부는 가면쟁이들의 집요한 포섭시도에 애를 먹었었어. 우린 놈들의 미친 짓에 어울려주기 싫어서 계속 칼같이 거절했었는데 결국 보복을 불러오고 말았지. 놈들은 아내를 죽인 뒤로도 자식들의 목숨을 빌미로 협박을 계속했었어.”

“공격을 당했을 때는 영주가 아니었던 거야?”

“놈들은 마음만 먹으면 백작영주 정도는 박살낼 수 있는 힘이 있어. 어쭙잖은 권력으로는 대적하기 힘들어. 내가 저번에 권력을 잡은 뒤로 놈들이 잠잠해졌다고 했었지? 황제의 친구 정도는 되어야 놈들의 지랄 맞은 짓거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야.”

“그랬구나... 루카스, 나랑 같이 손잡고 아내의 복수를 할 생각은 없어?”

나는 한껏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루카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루카스는 양 손을 앞으로 내밀고 고개를 저으며 거절하고 말았다.

분명 지금 타이밍이면 내 제안을 받아들일 줄 알았는데 아쉽다.

“지금은 아내의 유지를 이어나가는 일이 제일 중요해. 다른 건 생각할 겨를이 없어.”

“그 사람은 생전에 뭘 하고 싶어 했었는데?”

“검투경기장을 스포츠경기장으로 바꿔서 노예가 죽지 않게 해주는 게 아내의 꿈이었어. 그래서 난 최대한 빨리 은퇴를 하고 아내의 뜻을 이루는데 열중해왔어. 처음엔 징징거리던 장남이 입 다물고 열심히 일을 하게 된 것도 내가 그 내막을 말해줬기 때문이고.”

“넌 지금까지 명성이 목적이라고 하더니 순 거짓말이었네. 난 거짓말하는 사람 별로 안 좋아하는데 말이지.”

“하하하, 미안하다. 대외적으로는 그렇게 알리는 게 훨씬 더 투자를 받기 좋거든. 투자자들은 그런 말랑말랑한 이유로 사업을 추진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

“노예를 자원으로만 본다는 네 견해도 투자유치를 위한 거짓말이었어?”

“그래. 그것만큼 좋은 설득거리는 없었거든. 이 세상은 아직 인권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으니 노예의 생명도 중요하다는 말을 해봤자 투자자들에겐 씨알도 안 먹히지. 따라서 노예의 생명권이니 뭐니 하는 말보다 노예를 낭비하기 아까운 자원으로 여기도록 인식을 전환하는 게 더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인 셈이지. 결과적으로 성공했고.”

루카스는 자신의 계획이 세상에 잘 먹혀들어가서 여간 기쁜 게 아닌 모양이었다.

그의 조금 재수 없는 표정에서 자신감, 기쁨, 우월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럼 노예에 대한 네 진짜 견해는 어떤데?”

“솔직히 말해서 난 귀족이니 노예를 동등하게 여기기 어려워. 하지만 아내는 너처럼 노예를 동등한 인간으로 여겼고, 아예 노예제폐지운동까지 했었어. 난 그런 아내가 과도한 이상주의자라고 비판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저 아내의 순수함이 부러웠던 것 같아.”

루카스는 사뭇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는 여전히 아내를 뼈에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듯 했고, 아내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면서 고통을 달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언젠가 아내의 꿈을 완성하고 난 뒤에는, 그땐 그가 계속 이 세상에서 살아갈 힘을 낼 수 있을 지가 걱정이다.

“그럼 이제 차에 타자. 만찬에 너무 늦어도 곤란하니까.”

루카스는 직접 차문을 열어주었고, 나는 조수석에, 내 사랑들은 뒷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 곧 자동차가 길을 따라서 달리기 시작했다.

정말 오랜만에 타는 자동차는 말과 마차에 비해서 너무 안락해서 눈을 감으면 바로 잠이 들어버릴 것만 같았다.

“이거 충전은 어떻게 하는 거야?”

“내 특수상점 지하에 자동화관리시설이 있어. 소환을 해제하면 자동으로 그쪽으로 보내져서 차량에 필요한 조치를 알아서 처리해주는 방식이라 딱히 신경 쓸 필요 없어.”

“나 같은 경우엔 자동화축사가 있긴 한데... 아마도 난 이 세상에선 기계를 타고 다닐 운명은 아닌 것 같아.”

“운 좋게 스킬을 얻는다면야 얼마든지 가능하겠지. 하지만 이건 내가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스킬이라서 어떻게 해줄 방법이 없네.”

“어차피 조만간에 와이번을 타고 하늘을 날아다닐 예정이라 크게 아쉬울 건 없어.”

“그래? 나중에 나도 태워줄래?”

“물론이지. 그런데 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너 처음에는 황제가 이 일과 관련이 없다고 했었다가 갑자기 오늘은 황제의 부탁으로 일을 저질렀다고 한 이유가 뭐야?”

내가 묻는 말에 루카스는 갑자기 한숨을 쉬었다.

뭔가 곤란한 사정이라도 있는 걸까?

“후우, 그건 다 황제가 도중에 참견을 해서 그래. 내 사업을 위해서 너희들을 이용한 건 전적으로 나 혼자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던 일이야. 그런데 갑자기 그 친구가 개입해서는 널 유명하게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하면서 세상의 비밀에 대해서도 알려주라고 했었지.”

“설마 인기투표가...”

“맞아. 그 친구 때문에 급조한 이벤트야. 선수들이 주축이 되어야할 경기에 갑자기 후원자들이 튀어나오게 되는 바람에 걱정하긴 했었지만 그게 투자자들에게는 더 좋은 인상을 심어줬으니 아이러니하지.”

“네 사업에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둘째 치고 황제가 이 세상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건 그 사람도 지구 출신인 거야?”

“아니. 네 애인들처럼 순수하게 이 행성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야. 나도 그 친구가 어떻게 세상의 비밀에 대해서 알았는지 모르겠어. 아, 그리고 그 친구는 가면쟁이를 다루는 일에 널 이용하고 싶어 해. 황제에게 이용당하기 싫다면 조용히 숨어살아.”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자, 그럼 황제도 알고 있다는 세상의 비밀에 대해서 말 좀 해봐. 뜸을 들일 필요는 없잖아.”

나는 루카스에게 강한 어조로 요구했고, 그는 아예 차를 세우더니 나를 향해 돌아앉았다.

그의 표정은 세상 진지해서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좋아. 넌 어떤 식으로 이 세상으로 넘어왔는지 기억하고 있어?”

“Y.W.S로 세계관 설정하고 접속했는데 그 길로 이 세상에서 살게 되었어.”

“그 게임이 어디서 만들었는지는 알고 있고?”

“그야 아르카디아 퓨처 네트워크에서 만들었잖아.”

아르카디아 퓨처 네트워크 즉, AFN는 인공지능, 우주항공, 바이오, 방위산업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군림했던 글로벌 대기업이다.

AFN의 창업자는 인류를 우주 전체로 퍼뜨려야 한다는 독특한 신념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는데, 그가 죽은 뒤로도 AFN의 경영자들은 창업자의 뜻을 이어가고 있었다.

“AFN에서 금성으로 보낸 탐사대가 사고를 당했던 일 기억해?”

“음... 아! 마지막 교신영상 때문에 시끌시끌했었지. 외계생물이 실존한다고 난리도 아니었잖아. 그런데 그게 왜?”

나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 마지막 교신영상을 생방송으로 봤었다.

기하학적 도형의 집합체처럼 생긴 거대한 괴물이 우주선을 파괴하고 탐사대원들을 죽이는 모습은 두려울 정도였다.

그런데 공식발표가 사고영상에 해커가 악의적인 합성을 했다는 식으로 대충 넘어가는 바람에 온갖 음모론자들이 활개를 치고 다녔었다.

“AFN에서는 그 괴물들의 위험성을 숨긴 채 자기들 멋대로 방주 프로젝트를 발족시켜서 Y.W.S에 접속하는 사람들의 의식을 뽑아다 개발 중이던 신형 인공지능인 리디머에게 전송했어. 그리고 괴물들의 침공이 시작되자마자 리디머를 우주선에 실어서 날려 보냈지.”

“뭐? 그럼 난 대체 얼마 만에 깨어난 거야?”

“145만 8721년 만이야.”

“맙소사... 그게 대체 무슨...”

난 루카스가 하는 말이 너무나도 당혹스러워서 머리가 마비되는 느낌이었다.

내가 Y.W.S에 접속하자마자 의식을 빼앗긴 것도 모자라서 145만 8721년 동안 인공지능에게 붙잡혀 있다가 풀려났다고?

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루카스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진지하기 짝이 없었다.

“내가 복제품이든 뭐든 간에 의식만 우주로 날려 보내졌다고 치자. 아무리 우연이 겹쳐도 내가 설정한 것과 거의 비슷한 세상이 존재할 수가 있냔 말이야.”

“리디머는 오랜 시간에 거쳐서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했고, 결국 지구와 비슷한 크기와 중력, 자기장을 가진 행성을 발견하자마자 테라포밍을 실시할 수 있을 정도의 성능을 가지게 되었어. 리디머는 테라포밍을 할 때 지구의 생태계뿐만 아니라 게이머들의 세계관 설정을 참고했는데, 아마도 그 중에서 네가 만든 세계관의 정보손실이 제일 적어서 네가 아는 세상에 최대한 가깝게 만들어졌겠지.”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나는 게임을 하려다가 그 미친 회사 때문에 의식이 뽑혀나갔고, 145만 8721년 동안 봉인되었어. 그러는 동안에 인공지능은 하필이면 내가 만든 설정을 중심으로 게임 속 세상을 실제로 구현하는 짓을 벌인 뒤에 서버에 저장되어 있던 사람들을 아무 것도 모르는 창조물들 사이에 풀어놓았단 말이지?”

“그래. 나도 처음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충격적이라서 쉽게 믿지 못했어. 리디머가 사람의 의식을 인조인간의 몸에 집어넣어서 현실에 부활시켰다는 말을 들었을 땐 그냥 포기하고 받아들이는 게 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내가 지금 그런 기분이야. 그런데 넌 어떻게 이렇게 민감한 사실을 알았어?”

“아내가 가르쳐줬어. 아내는 방주 프로젝트에 깊이 관여했던 사람이고 1천년에 한 번 깨어나서 우주선과 리디머를 관리했거든. 그러니 내막을 알고 있었던 거야.”

“그렇단 말이지...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걸 내가 안다고 해서 앞으로의 삶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네. 네가 가르쳐 준 세상의 비밀은 거창하기는 하지만 실속은 없어. 차라리 그런 것보다는 스킬이 발동하는 원리를 아는 게 더 도움이 될 것 같아.”

나는 태연한 척, 여유로운 척을 했지만 목소리가 떨리는 걸 숨길 수는 없었다.

내 몸이 인공적으로 만들어졌다거나 의식이 옮겨졌다는 말 자체는 두려울 게 없었다.

하지만 내가 만든 설정이 다른 사람들의 설정과 뒤섞인 채로 현실화되어 이 세상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영 편치가 않았다.

예전에 라우라의 품에서 엉엉 울었을 때의 감정이 다시 느껴지는 기분이다.

“스킬은 리디머가 우리들이 이 세상을 즐길 수 있도록 제공하는 콘텐츠의 일종이야. 예를 들어 노화방지스킬을 얻으면 체내의 나노머신이 활성화 되어서 늙지 않도록 만들어주는 식이고, 소환스킬은 실질적으로 사용자가 아니라 리디머가 대신 사용해주는 식이지. 물질전송이 가능한 건 원래 이 행성에 존재했던 마나 덕분이고. 자세한 과학적인 원리는 몰라.”

“나도 원리 같은 건 알고 싶지 않아. 그냥 인공지능이 너무 대단해서 마법을 만들어서 쓴다고 생각하는 게 편하니까.”

“깊이 알려고 하지 않는 건 현명한 자세야. 리디머가 불쾌하게 생각하거든.”

“그 녀석 감정도 있어?”

“우리처럼 풍부해. 정말이지 인격신이라는 건 참 무서운 존재야. 기분 나쁘면 예전에 테라포밍할 때 썼던 로봇, 그러니까 천사를 동원해서 천벌을 내리거든. 그러니 너도 적당히 사리면서 살아.”

“언젠가 그 녀석을 만나면 남의 흑역사를 현실로 구현한 이유가 뭔지 따져봐야겠어.”

“하아, 넌 정말이지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사람이야. 네가 선택한 삶이니 나중에 후회하지나 마라.”

“알았어. 그런데 겨우 그게 다야? 더 대단한 비밀 같은 건 없어?”

“여기가 지구가 아니고, 게임에 접속했다가 145만 8721년 만에 새로운 몸에 의식이 옮겨진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그야 네가 알려준 사실이 세상을 뒤바꾼다거나 내 삶을 뒤흔들 정도는 아니니까. 아까 내가 말했듯이 실속이 없어. 뭐, 내가 세상을 구할 유일한 희망이라면 충분하다 못해 넘쳤겠지만 말이야.”

“하하하하! 난 이걸 알고서 일주일은 기분이 더러웠었는데 너란 녀석은 잠깐 놀란 게 끝이라니 괜히 억울해지네.”

“다음에는 진짜 충격적인 비밀을 가져오라고. 알고 보니 여기가 미래의 지구였고 유인원들이 지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바닷가에 쓰러진 자유의 여인상이 있다는 식으로 말이야.”

“그래, 노력해볼게.”

루카스는 조금 삐친 표정을 짓더니 다시 차를 몰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복제된 존재인가, 아니면 원본인가에 대한 철학적 고민 같은 건 하지 않고 호화로운 만찬에 대한 기대감만 키웠다.

그리고 룸미러 너머로 생전 처음 듣는 말 때문에 머리가 복잡해진 내 사랑들의 재밌는 반응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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