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1화 〉 18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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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마지막 이벤트경기인 기마술경기가 열리는 날의 아침이 밝았다.
어제는 혼자서 자동화축사에서 훈련을 하는 에리카가 외롭지 않도록 쭉 그곳에서 그녀의 모습을 지켜봤었다.
나는 에리카에게 부담감을 주지 않기 위해서 혼자서만 자동화축사로 갔었고, 그 사이에 라우라와 이리스는 함께 외출을 하거나 호텔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지도창에 떠있는 두 사람의 이름이 침실에서 서로 유독 가까이 붙어있는 것을 봤을 땐 당장에라도 호텔로 돌아가서 그 사이에 끼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에리카의 곁에 있는 게 더 중요했고, 그녀가 훈련을 끝낼 때까지 자리를 지키다 함께 호텔로 돌아갔다.
“레베카님, 좋은 아침이에요.”
“응? 에리카, 너 언제 일어났니?”
나는 갑자기 침실 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 내미는 에리카를 보자마자 조금 놀라고 말았다.
잠에서 깨어나서 바로 일어나지 않고 침대에 누워서 약간의 여유를 부리다가 에리카가 먼저 일어났는지도 몰랐다.
“대략 1시간 전에 일어나서 말들을 돌봐주고 왔어요.”
“그렇구나. 잠깐만 기다려봐.”
나는 양옆에서 자고 있는 라우라와 이리스를 깨우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움직여 침대에서 빠져나왔고, 침실 밖으로 나가자마자 에리카와 아침키스를 했다.
에리카는 오늘 따라 더욱 적극적으로 안겨들었고, 나는 그녀의 단발머리를 정성스레 쓰다듬어주었다.
방금 샤워를 하고 나왔는지 몸에서 향긋한 냄새가 물씬 풍겼고, 체온도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대로 옷을 벗기고 그녀의 향에 취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레베카님, 오늘도 정말 사랑스러우세요.”
“그건 원래 내가 자주하는 대사잖아. 네가 뺏어버렸네. 후훗.”
“저도 한 번쯤 해보고 싶었어요.”
“앞으로도 계속 해도 돼. 자, 그럼 네가 먹고 싶은 걸 말해보렴.”
“전 어떤 종류라도 좋으니 죽이 먹고 싶어요.”
“죽이라고? 그것만 먹어도 되겠니?”
나는 다른 아침식사거리를 놔두고 굳이 죽을 고르는 에리카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에리카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리고는 바로 이유를 가르쳐주었다.
“몸을 최대한 가볍게 할 필요가 있어서요. 원래라면 그냥 물만 마시려고 했는데 그건 레베카님의 정성을 무시하는 일이라서 죽을 먹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구나. 괜히 나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어쩌지?”
“걱정 마세요. 죽을 좀 먹는다고 기량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으니까요.”
“알았어. 마침 어제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 다행이네. 버섯죽을 만들 생각인데 괜찮니?”
“네, 레베카님. 말만 들어도 기대돼요. 히힛.”
“넌 웃을 때가 제일 귀엽더라. 여기서 기다려. 최대한 빨리 만들어서 돌아올게.”
나는 에리카의 머리를 한 번 더 쓰다듬어준 뒤에 주방으로 내려가서 죽을 만들었다.
오늘을 마지막으로 더는 이 호텔의 주방을 사용할 일이 없을 것이다.
처음엔 썩 내키지 않아했던 주방장도 이제는 말없이 비싼 버섯을 슬쩍 넘겨줄 정도로 내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녀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정성을 들이는 모습을 보면서 나에 대한 태도를 바꾸었다고 한다.
그리고 주방을 빌려놓고는 엉망으로 만들어놓는 귀족들이 종종 있어서 처음엔 나를 좋게 봐주기가 힘들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제 서로 마음을 열 수 있는 상황이 되었는데 이걸로 다시는 만날 일이 없어진다니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주방장 덕분에 아주 비싼 버섯죽을 완성시킬 수 있었고, 기꺼이 귀한 식재료를 양도한 그녀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주는 걸 잊지 않았다.
정성을 들여서 만든 죽을 가지고 방으로 올라가자 그 사이에 일어난 라우라와 이리스가 연달아 아침키스를 해주었다.
혹시 몰라 죽을 넉넉하게 만들어서 다행이다.
나는 탁자 가운데에 죽이 담긴 냄비를 올리고 내 사랑들에게 한 그릇씩 퍼주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죽을 바라보는 내 사랑들의 표정에는 기대가 담겨있었다.
“레베카님, 사흘 연속으로 혼자 아침을 만드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저희들 모두 레베카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있답니다.”
“오늘 꼭 좋은 성적을 거두어서 보답해드릴게요.”
나는 라우라와 이리스, 에리카가 연달아서 내게 해주는 말에 감동을 받고 말았다.
내 사랑들이 조금만 칭찬을 해줘도 쉽게 감동을 받는 나도 참 단순한 사람인 것 같다.
우리는 아직 뜨거운 죽을 호호 불어가면서 천천히 음미했고, 몸에 좋다는 온갖 종류의 버섯을 맛보면서 아침식사를 즐겼다.
이러고 있으니 예전에 가족과 함께 식사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한 때는 상실감만 느꼈던 쓰라린 기억이 이제는 내 사랑들 덕분에 다시 좋은 추억으로 여겨졌다.
나는 바보처럼 실실 웃었고, 내 사랑들은 그걸 보고도 나를 향해 애정이 담긴 눈빛을 보내주었다.
“레베카님, 잘 먹었습니다.”
“더 안 먹어도 돼?”
“네, 이 정도만 먹으면 충분할 것 같아요.”
에리카는 딱 한 그릇만 먹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별로 많이 먹은 것 같지도 않은데 식사를 끝내다니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슬슬 나갈 시간이 다 되어서 에리카를 붙잡을 수도 없었다.
우리는 죽을 먹다 말고 에리카를 배웅해주기 위해서 현관으로 향했다.
“에리카, 바디슈트는 입었니?”
“레베카님께서 주방에 가신 동안 입었어요. 안전을 위한 거니까 꼭 입어야죠.”
“그래, 말에서 떨어지거나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다른 일은 몰라도 말에서 떨어지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에리카는 웃으면서 자신감을 드러냈다.
하긴 그녀가 말에서 떨어진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긴 하다.
“레베카님, 나중에 저한테 금메달을 목에 걸어주세요.”
“응. 기대할게.”
나는 에리카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고, 그녀는 내 가슴에 얼굴을 한 번 파묻고 도리도리하더니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우리는 잠시 가벼운 발걸음으로 걷는 에리카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다시 탁자로 돌아와서 마저 식사를 했다.
내 예상보다 죽의 양이 제법 많기는 했지만 라우라가 워낙에 잘 먹어서 냄비가 깔끔하게 비었다.
난 다시 주방으로 내려가 마지막 설거지를 했고,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바쁜 와중에 자리를 빌려줘서 고맙다는 말을 해준 뒤에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라우라와 이리스는 소파 위에서 서로 기대어 앉아 있었는데, 보기가 좋았다.
“얘들아, 너희들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뭔데요?”
“너희들 어제 방에서 뭐하고 놀았니?”
“음... 그게...”
이리스는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라우라를 팔꿈치로 툭툭 치며 대신 대답해달라는 듯 눈치를 줬다.
그러자 라우라는 씩 웃더니 내게 가까이 다가와 몸을 기대었다.
“서로 키스만 하려다가 그만 분위기를 타서 섹스를 하고 말았어요.”
나는 라우라가 내 허벅지를 꼬리로 감으면서 야릇하게 내뱉는 말에 순간적으로 애액이 찔끔 흘러나왔다.
둘이서 종종 키스를 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었지만 이젠 나 없는 동안 섹스를 하는 단계까지 올라가다니 상상만으로도 잔뜩 흥분되었다.
보통 이런 상황이면 화를 내지 않을까싶지만 나는 화가 나기는커녕 오히려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으으... 죄송해요. 저희들 멋대로 몸을 섞어서.”
이리스는 당당한 라우라와 달리 내 눈치를 엄청나게 봤다.
내 허락도 받지 않고 자기들끼리 섹스를 해버리는 바람에 무척 미안한 모양이었다.
“괜찮아. 나 몰래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섹스일 뿐인 걸.”
“네? 정말 괜찮으세요? 화나지 않으셨어요?”
“전혀 열 받지 않았으니까 걱정 마. 그냥 내가 그 사이에 끼어들지 못해서 아쉬울 뿐이야. 아, 그렇지. 다음엔 내가 보는 앞에서 너희 둘이서 섹스를 해볼래?”
“그, 그건... 그러니까... 부끄러워서 대답 못하겠어요!”
이리스는 아예 품에 안고 있던 쿠션에 얼굴을 파묻어버렸다.
나는 그녀의 새빨간 귀를 살짝 깨물었고, 그녀는 귀여운 교성을 내면서 몸을 움찔거렸다.
“레베카님, 어차피 제가 주도하면 이리스가 따라오게 되어 있으니까 다음에 제대로 보여드릴게요. 우리한테도 레베카님처럼 훌륭한 물건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더 재밌을 텐데 아쉽네요.”
“너 지금 나한테 박을 생각하고 있는 거 맞지? 그렇지?”
“후후후. 과연 레베카님뿐일까요?”
라우라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나와 이리스를 번갈아보았다.
만약 이 자리에 에리카가 있었더라면 그녀 역시 라우라가 입맛을 다시는 대상중 하나가 되었을 테지.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고 우리도 슬슬 나갈 준비하자. 막내의 활약을 지켜봐야지.”
나는 라우라의 볼을 양손으로 잡고 조몰락거리며 분위기를 바꿨다.
이대로 라우라가 분위기를 휘어잡으면 내가 그 밑으로 들어가는 그림이 그려질 것 같아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었다.
난 라우라와 이리스가 외출준비를 하는 동안 발코니에서 바깥을 내려다보았다.
도시는 역시나 들뜬 분위기로 가득했고, 광대들이 킬킬거리며 재롱을 피우고 있었다.
저 광대들은 과연 겉모습만큼이나 내면도 유쾌하게 살아가는 걸까?
그런 사람들도 있겠지만 속으론 울고 있는 사람도 분명 많을 것이다.
서비스직이라는 건 늘 정신적으로 고통스럽기 마련이니까.
뭐, 내가 일방적으로 단정 지을 일은 아니긴 하다.
“레베카님, 저희들 준비 다 끝났어요.”
“알았어, 바로 갈게.”
나는 광대구경은 그만두고 내 사랑들과 함께 방에서 나갔다.
어제까지는 에리카가 중심에 서있었는데 오늘은 라우라와 이리스가 양옆에 서서 나와 팔짱을 끼거나 내 손을 맞잡았다.
오늘은 어제까지와는 달리 도시 곳곳에 열기구와 거대한 풍선들이 떠다녔고, 인기투표의 현황을 알려주거나 그것을 독려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까지는 루카스가 선두인데 내가 그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그런데 인기투표에서 1등을 하면 특별한 거라도 있는 건가?
나중에 루카스에게 직접 물어보면 되겠지만 오늘은 그 사람에게 들을 말이 많아서 깜빡할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경기장 주변에 도착하자마자 루카스의 부하들과 만났고, 그들을 따라서 귀빈실로 향했다.
귀빈실에는 오늘따라 더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만큼 출전하는 선수들이 많다는 뜻일 것이다.
나는 혼자서 분위기를 잡고 칵테일을 마시고 있는 루카스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루카스, 오늘 나한테 질 준비는 하고 왔어?”
“각오는 하고 있지만 결국엔 내가 인기투표에서 1등할 가능성이 높아.”
“자신감이 넘치네. 나한테 약속했던 것들은 다 기억하고 있겠지?”
“물론이지. 난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야. 애초에 내 무서운 친구 녀석이 부탁한 일이기도 하고.”
“역시 배후가 있을 줄 알았어.”
“이제 와서 이런 말하면 좀 웃기긴 하지만 그 친구가 너한테 원하는 게 뭔지 모르겠어. 단순히 자기 부하로 만드는 게 목적은 아니란 말이지.”
“가면쟁이들 때문이겠지. 그것 말고는 다른 이유는 없을 거야.”
“그 녀석들이 언급된 김에 하는 말인데 이제부터라도 엮이지 않도록 노력해봐. 여태까진 승리했어도 결국엔 피를 보게 될 거다.”
“내가 가는 곳마다 앞에서 깽판을 치는데 어쩌겠어. 더는 그 쓰레기 같은 놈들을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는 수준이 됐어.”
“네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얼른 손절해. 그게 너와 네 가족들을 위한 길이야.”
루카스는 새삼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마치 어린 아이를 걱정하는 어른의 눈빛을 품으면서 말이다.
“기회가 된다면 말이지. 경기 시작하니까 같이 구경하자고.”
나는 일행과 함께 어제 앉았던 자리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 무리의 야생마들과 유목민들이 입을 법한 복장을 한 선수들이 따로 경기장으로 들어왔다.
선수들은 대부분 에리카처럼 뱀파이어족이라서 복장이 잘 어울렸는데, 그들은 관중들의 환호성보다는 야생마 무리에 훨씬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그나저나 주최 측에서 제공한다는 말이 설마 야생마일 줄은 몰랐었다.
분명 사전에 그런 언급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경기가 시작되자 선수들은 야생마들이 있는 우리로 들어가서 자신들이 탈 말을 길들이기 시작했다.
거칠게 말을 대하며 기세로 억누르려는 사람들과 역으로 말에게 기가 질린 사람들로 나뉘어서 혼란스러웠다.
그 와중에 에리카는 혼자서 고고하게 머리를 높이 쳐들고 있는 백마에게 다가갔다.
에리카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굉장히 평온해보였고, 처음엔 경계를 하면서 앞발을 들어보이던 백마가 그녀의 우호적인 분위기에 감화를 받았는지 다소 얌전해졌다.
그녀는 백마에게 조심스레 손을 내밀어 녀석의 목을 쓰다듬으며 진정시켰고, 녀석이 머리를 숙이자 그대로 포옹해주었다.
제일 빠르지는 않아도 그 누구보다도 조용하고 평화롭게 야생마를 길들이는 에리카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에리카는 준비된 안장을 백마에게 씌우고, 고삐를 채운 뒤에 녀석의 등에 훌쩍 올라타서 정해진 코스로 몰고 갔다.
그리고 심사위원들이 에리카의 길들이기 점수를 10점 만점에 9점을 주었다는 방송이 경기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일단 지금으로서는 1위를 선점할 수 있는 점수를 받아냈다.
이어지는 종목은 말을 타고 경기장을 돌면서 평보, 속보, 전력질주를 통해 선수의 기본적인 기량을 확인하는 경기다.
올림픽을 할 때 이것과 비슷한 경기를 하는 걸 얼핏 본적이 있지만 자세히 기억이 나지는 않았다.
에리카는 7번째 차례라서 기다리는 동안 자신이 길들인 말과의 교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자신의 차례가 되자 자신 있게 백마를 몰고서 코스로 들어갔다.
백마는 에리카의 지시에 맞춰서 천천히 움직였고, 평보 구간이 끝나고 속보 구간으로 접어들자 바로 적당히 빠른 속도를 냈다.
마지막으로 전력질주 구간이 시작되자 말 그대로 온 힘을 다해서 달음박질치기 시작했다.
에리카는 몸을 백마에 바짝 붙여서 떨어지지 않도록 자세를 잡았고, 녀석이 경기장을 빠르게 한 바퀴 도는 동안 자세가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녀가 받은 점수는 8.5점으로 앞선 선수들에 비해서는 살짝 낮은 편이었지만 그녀는 전혀 실망하는 기색 없이 말에게 물을 먹이고 주최 측에서 준 사탕무를 급여하며 녀석을 돌보는 일만 집중했다.
다음 종목은 장애물을 극복하는 경기다.
정해진 코스에 각종 장애물이 설치되어 있고 말과 함께 그것을 뛰어넘거나 요리조리 피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에리카는 자신의 차례가 되자마자 바로 코스 안으로 말을 몰고 들어갔고, 조금의 지체도 없이 백마가 장애물을 뛰어넘거나 피해서 움직이도록 만들었다.
특히 다른 선수들이 위험성 때문에 감점을 감수하고 넘어갔던 높이가 높은 장애물에 도전하여 깔끔하게 넘어섰을 때는 나도 모르게 환호성이 나오고 말았다.
그리고 방금 그 장애물 다음으로 선수들이 기피했던 웅덩이도 아무런 문제없이 건넌 뒤에 다시 높은 장애물을 넘고 이어서 다른 장애물을 연속으로 뛰어넘었다.
에리카가 코스 내에 있는 장애물을 모두 극복하고 나오자 심사위원들은 그녀에게 9.5점을 주었다.
다른 선수들 중에서 가장 높은 점수였고 덕분에 종합 1위 자리를 차지했다.
마지막 경기는 에리카가 그토록 연습했던 마상묘기를 선보이는 경기다.
선수들은 지금까지 사용했던 달리기코스와 장애물코스를 모두 이용해서 묘기를 선보일 수 있고, 떨어지면 바로 실격이라고 한다.
에리카는 점수 때문에 가장 마지막 순서가 되었고, 그녀는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꾸준히 백마와 교감을 나누거나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었다.
그녀는 자신의 차례가 되자 백마를 몰고 달리기코스로 들어가더니 처음엔 고삐를 잡지 않고 박차만으로 말을 제어하는 모습을 보였고, 그대로 뒤로 몸을 돌린 채로 달렸다.
그러다 왼쪽 등자와 고삐에 의존한 채로 몸을 옆으로 45도 정도 기울였다가 제자리로 돌아갔고, 반대쪽으로도 똑같은 묘기를 선보였다.
그리고 다시 똑바로 말을 타고 가다가 이번에는 말의 등 위에서 벌떡 일어나는 묘기를 선보이는 것도 모자라 그대로 물구나무를 서는 기염을 토해냈다.
지금까지 말의 등 위에서 일어나는 선수는 있었어도 바로 물구나무를 서는 사람은 선수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관중석에서 감탄사와 함께 큰 박수가 나왔다.
에리카는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어준 뒤에 바로 장애물코스로 진입했다.
그녀는 빠르게 말을 몰고 가더니 선수가 몸을 숙여야 하는 장애물이 나오자 계속 머리를 들고 있다가 부딪히기 직전에 말의 옆구리에 착 달라붙어서 피하는 모을 선보였다.
그러고는 다시 말을 돌려서 똑같은 장애물을 향해 돌진했는데, 이번에는 말의 등 위에 서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제자리에서 점프하여 장애물을 뛰어넘고 다시 말 위에 착지했다.
관중들은 그걸 보자마자 이제 승부가 났다고 생각하고 박수와 환호성을 아낌없이 보냈지만 아직 끝이 아니었다.
에리카는 마지막으로 가장 높은 장애물을 향해서 말을 몰고 갔고, 녀석이 힘껏 점프를 할 때 몸을 붕 띄우더니 공중에서 물구나무를 섰다가 말이 착지를 할 때쯤에는 한 바퀴 돌아서 앞이 아니라 뒤를 보는 자세로 앉았다.
나는 직접 보고도 믿을 수 없는 묘기에 박수를 치는 것도 잊어버렸고, 심사위원들이 만장일치로 에리카에게 10점 만점을 줬다는 방송을 듣고서야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자신의 우승을 확신한 에리카는 말 위에 올라선 채로 폭죽이 터지고 꽃잎이 쏟아지는 경기장을 한 바퀴 돌면서 자신에게 찬사를 보내는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난 그 모습을 보며 너무 감격을 받은 나머지 그만 눈물을 왈칵 쏟아내고 말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1위를 차지해서 너무나도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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