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9화 〉 178화
* * *
둘째 날의 아침 해가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한다.
난 오늘도 역시 일찍 일어났고 이리스는 거의 나와 동시에 눈을 떴다.
우리는 누운 상태로 잠시 서로를 끌어안고 키스를 한 뒤에 침대에서 일어났다.
“이리스, 아침은 어떤 식으로 먹고 싶니?”
“팬케이크가 먹고 싶어요. 메이플시럽 듬뿍 뿌려서요. 거기에 스크램블 에그랑 바싹 익힌 베이컨, 구운 토마토가 있으면 좋겠어요.”
“알았어. 금방 만들어서 가지고 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네, 레베카님.”
이리스는 방긋 웃더니 샤워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어제처럼 호텔의 주방으로 내려가서 이리스를 위한 아침식사를 만들었다.
어제보다는 간단한 편이었지만 똑같은 수준의 정성을 들였다.
‘레베카님, 죄송하지만 에리카가 먹을 것도 준비해주실 수 있나요?’
‘안 그래도 여유롭게 만들고 있었어. 다 만들어가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나는 이리스와의 텔레파시를 끝낸 뒤에 시간을 더 들여서 요리를 마무리 짓고 방으로 가지고 올라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에리카가 아침키스로 나를 반겨주었고, 이리스도 이제 막 머리를 다 말린 참이었다.
어제 라우라에게 해줬던 것처럼 내가 머리를 말려주려고 했었는데 뭔가 아쉽다.
나는 탁자 위에 아침식사를 차리고 따뜻한 우유를 유리잔에 따랐다.
“우와! 정말 맛있어 보여요. 레베카님, 잘 먹겠습니다.”
“응. 많이 먹어, 이리스.”
“저도 감사히 먹겠습니다.”
“그래. 맛있게 먹으렴, 에리카.”
두 사람은 순서대로 나에게 고개를 숙여가며 인사를 하고는 내가 차려준 아침식사를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라우라는 아직 자나보네.”
“네, 잠깐 깼었는데 다시 잠들었어요. 어제 무리를 했는지 많이 피곤한 모양이에요.”
“어제 온 힘을 다해서 뛰었을 테니 그럴 만도 하지.”
“제가 참가하는 경기는 몸이 힘든 종목은 아니라서 다행이에요.”
“그러게. 그래도 집중을 하는 일도 보통 피곤한 일은 아니니까 체력을 잘 보존해야 돼.”
“저도 연습하면서 그걸 신경 썼어요. 그런데 혼자서 하다 보니까 이게 제대로 되고 있는지 모르겠더라고요.”
“넌 평소 실력이 뛰어나니까 침착하게만 하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거야. 이번 경기는 휴식시간이 충분하니까 많이 긴장되면 우리에게 텔레파시를 보내도 돼.”
“신경써주셔서 고마워요. 그래도 레베카님이랑 친구들에게 너무 의지하지 않도록 노력할게요.”
“우리도 열심히 응원할게. 어제처럼 막 시끄럽게 응원을 하지는 못하겠지만.”
나는 이리스와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이리스의 손은 살짝 떨리고 있었지만 내가 그녀의 손을 잡아주자 금방 떨림이 사라졌다.
그래서 아예 그녀가 사격을 할 때 옆에서 손을 잡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리스, 너도 라우라처럼 바디슈트를 입고 가도록 해. 혹시 사고가 발생할지도 몰라.”
“네, 레베카님. 그렇지 않아도 입어도 될 지 여쭈어보려던 참이었어요.”
이리스는 라우라와 달리 바디슈트를 입고 가라는 내 말에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다.
난 소심한 성격의 이리스라면 반칙에 가까운 일을 하라는 말만 들어도 곤란해 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는데 오히려 당당하게 나와서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좀 치사할 지도 모르지만어차피 이벤트경기니까 우리의 안전을 우선시 생각하는 게 좋다고 봐.”
“실은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게다가 솔직히 말씀드려서 루카스님을 전적으로 믿어도 좋을지 모르겠어요.”
“나도 좀 그래. 대뜸 나한테 세상의 비밀 같은 걸 말해주려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어. 황제의 친구라고 자칭하는 것도 마음에 걸리고.”
“황녀님께 한 번 여쭈어보는 건 어떨까요?”
“지금 당장은 너희들을 신경써야하니까 그럴 틈이 없어. 어차피 지금 리제르카에 있지도 않고.”
사실 나는 지난 일주일 정도 되는 시간 동안 엘리자베스와 접촉을 해보려고 했었지만 그녀는 당분간 리제르카의 공방을 비우게 되었다.
가르탱에게서 듣자하니 엘리자베스는 내가 선물한 엘리사의 흑검을 연구하기 위해서 유명한 마법학자들이 몰려있다는 일명 마법도시로 떠났다고 한다.
은근히 번거롭고 귀찮게 여겨지기도 하는 사람이 막상 늘 있던 곳에 없으니 쓸쓸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는 엘리자베스를 좋은 친구로 여기고 있는 모양이다.
“이리스, 이제 슬슬 출발해야하지 않아?”
“벌써 이렇게 시간이 흘러버렸네. 에리카, 네가 아니었으면 지각으로 실격했을지도 모르겠어. 아참, 나한테 뽀뽀해주면 안 돼?”
“뽀뽀는 갑자기 왜?”
“왜냐면 너한테서 뽀뽀를 받으면 엄청 기운이 날 것 같거든.”
“그러면 레베카님께 부탁하면 되잖아.”
“그거랑 이건 결이 달라. 자, 빨리 뽀뽀해줘!”
“어휴, 알았어! 해주면 되잖아.”
에리카는 이리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결국 발꿈치를 살짝 들어서 이리스의 볼에 뽀뽀를 해주었다.
그러자 이리스는 황홀해하는 표정을 지었고, 난 두 사람이 알콩달콩 노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레베카님, 그럼 나중에 시상식 때 봬요.”
“응. 좋은 성적 거두기를 기도할게.”
나는 키스로 이리스를 배웅했고, 어제처럼 빈 접시를 호텔의 주방으로 가져가 직접 설거지를 끝냈다.
그리고 다시 방으로 돌아와서는 인형처럼 귀여운 에리카를 품에 안고 소파에 드러누웠다.
나는 잠시 에리카를 안고만 있을 생각이었는데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하지만 에리카 덕분에 늦기 전에 잠에서 깨어났고, 라우라도 때마침 일어났다.
“라우라, 잘 잤니?”
“조금 몸이 쑤시긴 하지만 피로는 거의 다 사라졌어요. 이게 다 어제 레베카님께서 저를 잘 먹여주신 덕분이에요.”
“그렇게 말해주니 기뻐.”
나는 그 말과 함께 라우라와 아침키스를 했다.
그리고 라우라를 위해서 따로 남겨두었던 팬케이크를 그녀에게 대접했다.
우리는 라우라가 아침식사를 끝낸 뒤에 바로 외출준비를 하고 호텔에서 나갔다.
도시는 어제처럼 북새통을 이루었고, 우리는 복잡하기 짝이 없는 길을 걸어서 검투경기장으로 향했다.
경기장 근처에는 역시나 루카스의 부하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바로 귀빈실로 가서 편안하게 앉아 사치스러운 간식거리를 즐겼다.
그러다 갑자기 언제 귀빈실로 들어왔는지 모를 루카스가 내 옆에 앉아서 말을 걸었다.
“레베카, 이젠 완전히 이 장소가 익숙해진 것 같구나.”
“그렇지 않아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네가 귀빈실에 초대해주지 않았더라면 저기 시끄럽고 불편한 자리에 앉아있었겠지.”
“내가 다짜고짜 네 애인들을 경기에 출전시키자고 졸랐으니 이 정도는 해줘야지. 아, 그래. 너한테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
루카스는 귀빈실 전방의 유리창을 조작하더니 사람들의 얼굴을 찍은 사진들이 쭉 나열된 화면을 띄웠다.
거기엔 어제, 오늘 귀빈실에서 본 사람들은 물론이고 나와 루카스의 사진도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사진 옆에는 각자가 후원하는 선수들의 사진이 작게 나와 있었다.
내 경우에는 일단 어제 출전한 라우라와 오늘 출전하는 이리스의 사진이 내 사진 옆에 붙어있었고, 에리카의 사진은 아직 없었다.
“이건 뭐야? 우리 사진은 언제 찍었고?”
“보다시피 인기투표야. 관중들이 선수를 보는 안목이 좋은 후원자를 골라서 투표하고, 만약 자신이 투표한 사람이 1위를 하면 선물을 받을 수 있어. 그리고 너희들 사진은 어제 시상식을 할 때 내 전속 사진사들이 찍어둔 거야.”
루카스의 말대로 사진 아래로 어제 경기결과가 반영된 누적투표수가 표시되어 있었다.
1등은 루카스이고 내가 간발의 차이로 2등 그리고 어제 3위로 마감했던 선수를 후원하는 사람이 제법 큰 격차로 3등을 차지하고 있었다.
“루카스, 넌 왜 후원자 명단에 있어? 넌 주최자이지 후원자가 아니잖아.”
“어제 2위했던 선수의 후원자 기억나? 그 사람은 후원자 자격이 박탈당했고, 내가 임시로 해당 선수의 후원자가 되었어. 참고로 나는 다른 후원자들에 비해서 투표결과의 절반만 반영돼. 만약 그런 페널티가 없다면 압도적으로 내가 이겨버리거든.”
“넌 도시사람들에게 인기가 상당히 좋은가봐.”
“이래봬도 예전엔 볼르디아의 영주였거든. 지금은 내 장남이 영주야.”
“영주는 종신직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내가 제국의회에서 뜻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다 법을 바꿨어. 덕분에 50살이 되자마자 칼같이 은퇴해서 내 맘대로 인생을 즐기고 있지.”
“아들한테 미안하지도 않아?”
“자기가 원했던 일인데 뭘. 그런데 고작 한 달 만에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다시 영주가 되어달라고 부탁하더라. 푸하하하! 아무튼 우리 장남은 지난 5년 동안 고생하면서 한 사람의 어엿한 영주로 성장했어. 더는 내게 도움을 호소할 필요가 없어졌지. 대견한 녀석이야.”
루카스는 말은 장난스럽게 해도 아들을 아끼는 아버지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만약 내가 자식을 낳는다면 여기 있는 루카스나 저번에 만났던 콘라드처럼 가족을 아끼는 좋은 부모가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자, 이게 경기가 시작되니까 방해하지 않고 가줄게.”
“그냥 같이 앉아서 보는 건 어때?”
“네가 좋다면야 기꺼이 앉아줄게.”
루카스는 은근히 기뻐하는 듯한 눈빛으로 다시 자리에 앉았고, 곧 그가 미리 녹음한 목소리가 경기장 전체에 쩌렁쩌렁 울리면서 선수들이 입장했다.
선수들은 오늘의 경기에 잘 어울리는 사격복을 입고 나왔고, 그 중에서 뿔이 달린 종족은 이리스가 유일했다.
첫 번째 종목은 제자리에 서서 30초의 짧은 시간동안 최대한 많은 표적을 쏴서 높은 점수를 내는 것이 목적인 권총사격이다.
선수는 총 11명이고 순서대로 한명씩 나와서 진행하는데, 이리스는 라우라와 마찬가지로 등번호가 0번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마지막 순서였다.
곧 1번 선수가 나와서 사격을 시작했고, 경기장은 어제와 달리 소란스럽지 않았다.
집중력이 중요한 종목이다 보니 선수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다들 조심하는 것 같다.
그래도 선수가 사격을 끝내고 자리로 돌아갈 때는 큰 박수와 환호성이 나왔다.
나는 다른 선수들의 성적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서 대충 상황을 보다가 이리스의 차례가 되자 똑바로 앉아서 두 손을 모았다.
라우라와 에리카 역시 나처럼 긴장한 기색을 보였는데 라우라는 겉으로는 그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고, 에리카는 불안한 나머지 내 팔을 꼭 잡았다.
이리스는 마치 서부영화에 나오는 보안관처럼 언제든지 마력권총을 권총집에서 뽑아서 쏠 준비를 했다.
그리고 종이 울리자, 그녀는 눈 깜짝할 사이에 마력권총을 뽑아서 6개의 표적을 맞췄고, 모두 정중앙에 구멍이 뚫렸다.
나와 이리스는 사격과 관련된 스킬레벨이 분명 동등하지만 난 저렇게 빨리 쏘고 장전할 수가 없다.
스킬레벨과 별개로 개인의 재능이나 노력여하에 따라서 결과가 많이 달라지는 것 같다.
이리스는 누구보다 빠르게 장전을 하더니 다시 순식간에 6개의 표적 정중앙을 꿰뚫었다.
그렇게 이리스는 정확하고 빠른 사격과 신속한 재장전을 반복했고, 30초가 다 지나기도 전에 총 120개나 준비된 표적을 모두 명중시켰다.
압도적인 성적을 낸 이리스는 권총을 뱅글뱅글 돌리다 권총집에 착 집어넣었고, 지금까지 나온 것 중에서 가장 큰 박수와 환호성이 경기장을 뒤흔들었다.
“1등이다! 1등! 이리스, 진짜 대단해!”
에리카는 어제처럼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고, 나도 그녀와 동참해서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방금 전까지 자신이 후원하는 선수가 1등을 할 것이라 확신했던 루카스는 멋쩍은 표정을 지어보이다가 그냥 웃고 말았다.
“역시 이리스는 사격에 있어서는 우리를 실망시키는 법이 없어요.”
라우라는 우리와 달리 차분하게 박수를 쳤지만 얼굴에서는 웃음꽃이 마구 피어올랐다.
어쩌면 부끄러워서 박수만 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와 에리카는 라우라를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고, 함께 제자리에서 뛰거나 뱅글뱅글 돌면서 1라운드를 평정한 이리스를 축하하며 기쁨을 나누었다.
‘레베카님, 방금 다 보셨어요? 저 잘했죠?’
‘응! 진짜 대단했어. 그런데 이리스, 너 긴장할까봐 걱정하더니 방금 멋지게 폼을 잡더라.’
‘아... 그건 뭐랄까 저도 모르게 막 자신감에 차서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니 좀 부끄럽네요. 히히히.’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 정말 멋있었으니까. 다음 경기도 힘내.’
‘네! 레베카님.’
내가 이리스와 텔레파시를 나누는 동안, 경기장 한복판에 산탄총사격을 위한 실내코스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작은 저택 정도의 크기에 지붕이 없어서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가건물은 미로 정도는 아니어도 길이 복잡하게 느껴졌고, 곳곳에 표적이 튀어나올 법한 장소가 마련되어 있었다.
내가 이동식 본부로 만들어줬던 연습장은 정말 초라한 수준에 불과했던 것이다.
부디 그게 조금이라도 이리스에게 도움이 되었더라면 좋을 텐데, 지금 봐서는 큰 의미가 없었던 같다.
두 번째 경기 역시 이리스는 마지막 순서였고, 나는 다른 선수들이 실내코스를 도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면서 그녀에게 이것저것 조언을 해주었다.
표적은 단순히 동그란 나무판자가 아니라 민간인, 무법자, 마족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표적을 놓치거나 민간인 표적을 쏘면 감점을 당했다.
그냥 보기에는 구분하기 쉬웠지만 다들 갑자기 튀어나오는 식이라서 무심코 쏘면 안 되는 표적을 쏘는 선수들이 종종 있었다.
실내코스를 한 바퀴 도는 데는 제법 시간이 많이 걸렸고, 여러 가지 준비과정까지 필요해서 한 명에 1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래서 거의 2시간이 지난 뒤에야 이리스의 차례가 돌아왔다.
이리스는 마력산탄총을 들고서 실내코스의 입구에 섰고, 당장에라도 달려 나갈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종이 울리기 무섭게 실내코스로 진입해서 가장 먼저 반겨주는 무법자 표적을 날려버리면서 계속 뛰어갔다.
초반에는 전부 쏴도 되는 표적만 나와서 여태까지 도전했던 선수들 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코스를 통과했다.
하지만 무법자와 민간인이 겹쳐서 나온 표적을 실수로 쏘는 바람에 사격점수에서 대량의 감점을 당하고 말았다.
놓치는 것보다 민간인 표적 사격의 감점 폭이 더 크기 때문에 방금 그 실수로 사격점수가 4위로 뚝 떨어졌다.
하지만 아직 시간점수는 좋으니까 실망하기는 일렀다.
한 번 실수를 한 이리스는 정신을 차리고 쏴도 되는 표적만 딱딱 골라서 쏘고 민간인 표적이 맞을 상황에서는 점수기록의 감점을 감수하고서 시간점수를 챙겼다.
이리스는 7분 34초로 가장 빠른 속도로 실내코스를 통과하여 제일 높은 시간점수를 받았지만 사격점수는 민간인 표적을 맞춰서 받은 감점을 만회하기 어려웠는지 3위로 끝났다.
그래서 시간점수와 사격점수를 합산한 이리스의 순위는 2위로 마감되었다.
우리는 이리스가 1위가 아니더라도 아까처럼 뛸 듯이 기뻐하며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내가 어제도 말했지만 2위도 엄청나게 대단한 것이다!
‘이리스, 이번 경기도 수고했어.’
‘감점만 당하지 않았으면 이번에도 1등 할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아쉬워요.’
‘내가 좀 더 좋은 연습장을 만들어줬으면 좋았을 텐데...’
‘아니에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어요. 감점은 순전히 제 실수로 일어난 일이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그리고 다음 종목에서는 1등을 차지할 테니까 기대해주세요.’
‘그래. 시상식에 금메달을 걸어줄 준비를 하고 있을게.’
이리스와의 짧은 텔레파시를 끝내고, 야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 실내코스가 사라지고 공중에 직사각형 표적들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표적은 방패연이었는데 거기에 뭘 달아놨는지는 몰라도 시시각각으로 방향을 휙휙 바꾸면서 빠르게 움직여 사람을 정신없게 만들었다.
바닥에 붙어있는 거리표지판을 보니 200m에서부터 400m, 600m, 800m, 1000m로 거리가 나뉘어져 있다.
경기가 시작되면 200m 표적부터 점점 멀리 있는 표적을 쏘게 되는데 당연히 가장 멀리 있는 표적이 제일 큰 점수를 준다.
그리고 사격지점에는 바리케이트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한 번 사격을 할 때마다 무작위로 지정되는 장소로 달려가서 다시 사격을 하는 식이다.
또한 마력탄은 딱 6발만 주어지기 때문에 실수가 딱 한 번만 용납된다.
따라서 1분의 시간이 결코 넉넉하지 않고 집중력이 조금만 흐트러져도 대량의 실점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이번에도 이리스의 차례가 올 때까지 얌전히 기다렸고, 드디어 그녀의 차례가 다가오자 함께 손을 잡았다.
이리스는 경기가 시작되지 무섭게 바로 200m 표적을 명중시켰고, 지정된 장소로 빠르게 달려가서 자리를 잡자마자 바로 400m 표적을 맞췄다.
다음 장소는 꽤나 멀리 있었지만 이리스는 침착하게 최단거리로 움직여서 600m 표적도 간단하게 맞췄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다른 선수들이 맞추기 어려워했던 800m와 1000m를 사격해야한다.
800m 표적을 맞춘 선수는 몇 명 정도 있었지만 1000m 표적을 맞춘 선수는 아직까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리스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800m 표적도 무난하게 명중시켰고 이제 남은 시간은 20초였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지정된 장소까지 가느라 3초를 썼고, 5초 동안 조준해서 방아쇠를 당겼지만 그만 빗나가고 말았다.
우리는 물론이고 귀빈실과 관중석에서도 아쉬워하는 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이리스에게는 아직 총알이 한 발 더 남아있었고, 남은 12초의 시간 중에서 10초를 조준하는데 사용했다.
그리고 모두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방아쇠를 당겼고, 1000m 표적에 총알이 명중함과 동시에 표적에서 폭죽이 터지고 경기장에 미리 준비된 폭죽들이 하늘로 치솟았다.
이리스는 이번에도 압도적인 1위를 거머쥐었고, 종합성적 역시 1위로 우뚝 섰다.
그녀는 세상 기쁜 표정을 지으며 마력소총을 높이 치켜들었고, 모두의 찬사가 쏟아졌다.
우리 역시 이리스의 우승을 기뻐하면서 서로를 부둥켜안고서 자축의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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