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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세상에서 마음껏 살아간다-174화 (174/271)

〈 174화 〉 173화

* * *

나는 창문을 통해서 루카스가 호텔에서 멀어지는 것을 보자마자 벨쿠레를 소환하여 그를 따라가게 했다.

낮에는 세르자에게 루카스의 부하들을 미행하라고 시키긴 했었지만 특별한 성과를 얻지 못했었다.

솔직히 말해서 내 사랑들과 논다고 바빠서 시야공유를 가끔씩 썼으니 세르자를 탓할 것도 없었다.

그래도 지금은 시간이 많으니 계속 벨쿠레와 시야를 공유하면서 루카스에게 수상한 점은 없는지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벨쿠레는 소음이 나질 않는 날갯짓으로 우아하게 밤하늘을 날면서 루카스가 탄 마차를 추적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뒤에, 마차는 어느 5층짜리 건물 앞에 멈춰 섰다.

마차에서 내린 루카스는 곧바로 해당 건물로 들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꼭대기 층에 있는 큰 방에 불이 켜지면서 그의 모습이 다시 보였다.

루카스는 상의를 옷걸이에 걸더니 책상 앞에 앉아서 문서를 훑어보며 일을 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제법 늦었는데도 집에 돌아가지 않고 일을 하다니 좀 피곤한 성격인 것 같다.

그는 오직 일에만 열중했고, 수상한 행동을 보이거나 미심쩍은 사람과 만나는 일은 전혀 없었다.

이렇게 봐서는 그저 자신이 목표로 하는 일을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으로 밖에 보이질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계속 루카스를 관찰했다.

난 거의 2시간 가까이 그를 감시했지만 아무런 정황도 포착하지 못했다.

결국엔 극도의 피로가 느껴져서 시야공유를 그만뒀고, 벨쿠레를 역소환하여 자동화축사로 돌려보냈다.

오늘은 많이 걸어서 그런지 몰라도 시간이 자정에 가까워진 것만으로도 엄청 졸렸다.

결국 나는 내 사랑들보다 먼저 침대에 누웠고, 눈을 감자마자 잠이 들고 말았다.

그리고 내가 달콤한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이미 시침이 오전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젠장, 너무 늦게 일어났네.

나는 뻣뻣하게 굳은 몸으로 스트레칭을 한 뒤에 내 사랑들이 모여 있는 거실로 나갔다.

세 사람은 언제나처럼 차례대로 나에게 아침키스를 해주었고, 나는 정성을 다해서 키스를 받아주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침키스를 받아서 정말로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레베카님, 어제는 많이 피곤하셨나보네요. 코를 골면서 주무시더라고요.”

“내가 코를 골았다고? 많이 시끄러웠어?”

“아니요. 귀여울 정도였어요. 그렇지, 얘들아?”

라우라가 묻는 말에 이리스와 에리카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엄청 늦게 일어난 것도 모자라 코를 골았다니?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엄청나게 피곤했던 모양이다.

많이 걸어서 몸이 지쳤을 뿐만 아니라 루카스와의 대화 자체가 내 정신을 지치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영상으로 찍어뒀는데 보실래요?”

“아니. 그냥 지워주면 안 될까?”

“아쉽지만 어쩔 수 없네요. 우리끼리 한 번만 더 보고 지워드릴게요.”

라우라는 이리스, 에리카와 함께 스마트폰으로 내가 코고는 모습을 찍은 영상을 감상하면서 자기들끼리 키득거렸다.

생각보다 코고는 소리가 요란하지는 않았지만 영상 속에서 나보고 귀엽다는 말을 연발하는 내 사랑들의 목소리가 날 엄청 부끄럽게 만들었다.

라우라는 약속한 대로 영상을 다 보자마자 지워주었다.

“레베카님, 이쪽으로 오세요.”

“아, 응.”

나는 라우라와 이리스의 사이에 앉아서 에리카가 가져다주는 시원한 물을 마셨다.

후우, 덕분에 정신이 좀 드는 것 같다.

내가 소파에 등을 기대자 라우라와 이리스는 동시에 내 팔을 끌어안았고, 에리카는 내 허벅지 위에 걸터앉아서 내게 의지했다.

천국이 어디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여기가 천국인 것만 같다.

“레베카님, 어제는 어떤 대화를 나누셨나요? 루카스님이 돌아간 뒤로는 계속 심각한 표정을 짓고 계셔서 차마 물어볼 수가 없었어요.”

“걱정 마, 이리스. 위험하거나 기분 나쁜 일은 아니야. 그냥 좀 고민이 될 뿐이지.”

“어떤 고민이신가요?”

“이리스, 너 어제 경기에 관심을 가졌었지?”

“네, 그랬었죠. 그때도 말씀드렸다시피 검투경기장이 싫어서 참가하고 싶지는 않아요.”

“실은 루카스가 너희들 모두가 자기가 주최하는 이벤트경기에 참가하기를 바라고 있어. 그 대가로 내게 유용한 정보를 준다면서 말이야. 하지만 난 개인적인 이득을 위해서 너희들을 강제로 동원하고 싶지 않아.”

내 말들 들은 라우라와 이리스, 에리카는 저마다 다른 표정을 지었다.

라우라는 얼마든지 덤벼보라는 듯한 눈빛으로 자신감을 드러냈고, 이리스는 본인의 입으로 말했듯이 거부감이 커보였다.

그리고 에리카는 두 사람의 눈치를 살피며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나에게 질문을 했다.

“어떤 정보를 얻을 수 있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이 세상의 비밀과 내가 새로운 능력을 얻을 수 있는 방법 그리고... 아, 그게 전부야.”

나는 예속퀘스트와 관련된 말을 꺼내려다가 말았다.

뭐라고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고, 괜히 말을 꺼내봤자 내 사랑들을 혼란스럽게만 만들 것 같아서다.

너희들이 날 맹목적으로 사랑하게 만들기 위해서 엄한 곳에 피어싱까지 끼우게 만들었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어?

난 내게 숨겨진 추악한 본심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고 싶지 않다.

내 사랑들은 내가 말꼬리를 흐리는 부분에서 조금 의아애하는 눈치를 보내기는 했지만 다행히도 날 추궁하려고 드는 사람은 없었다.

대신 다른 주제에 관심을 가졌다.

“세상의 비밀이요?”

“그래, 에리카. 세상의 비밀. 그게 무엇이냐에 따라서 세상을 바라보는 내 시야가 많이 달라질 가능성이 높아.”

“저희들에 대한 인식도 달라질까요?”

“아니, 다른 건 몰라도 너희들에 대한 내 사랑은 무슨 일이 있어도 변함이 없어. 그건 내 모든 것을 걸고 너희들에게 하는 맹세야.”

“감사합니다, 레베카님.”

에리카는 나에게 살포시 입을 맞추며 고마워하는 마음을 드러냈고, 라우라와 이리스도 각자 내 양쪽 볼에 입을 맞추면서 미소 지었다.

기분 좋기는 하지만 왠지 죄책감이 함께 느껴졌다.

“새로운 능력은 어떤 건가요?”

“그건 아직 나도 모르겠어. 정말 유용한 능력일 수도 있고 쓸데없는 능력일 수도 있어.”

“결국 루카스님은 레베카님께 불확실성을 띈 약속을 빌미로 우리를 이벤트경기에 참가시키고 싶어 하는 것뿐이네요.”

에리카는 나보다 더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보통 이런 건 라우라의 역할인데 오늘은 라우라가 경기에 참가하고 싶어 하는 바람에 에리카가 그 역할을 대신한 것이다.

나는 그런 에리카가 뭔가 기특하게 느껴져서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맞아. 그래서 난 너희들이 싫다고 하면 바로 없던 일로 하고 도로테아의 마을로 돌아갈 거야.”

“레베카님, 제 생각엔 일단 보상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물어본 뒤에 결정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쪽에서 요구하는 건 단순히 이벤트경기에 저희들이 참가해달라는 것뿐이니 무조건 거부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라우라는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면서 말했지만 그녀의 눈빛은 경기에 참가하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그녀가 왜 이렇게까지 경기에 나가고 싶어 하는 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승부욕 때문일 것 같다.

보드게임으로 예를 들면 이리스와 에리카는 패배하면 그걸로 끝인 사람이지만 라우라는 한 번이라도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니 말이다.

“그럼 루카스를 다시 만나봐야겠다. 바쁜 사람이겠지만 나랑 5분 정도는 대화해줄 수 있겠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외출준비를 했다.

준비라고 해봤자 씻고, 바디슈트의 외형을 적당히 변형시키는 게 전부지만 말이다.

나는 방에서 나가기 전에 세르자를 소환했고, 녀석의 발에 루카스에게 보내는 편지를 묶어서 밖으로 날려 보냈다.

다짜고짜 찾아가는 것보다는 이런 식으로 미리 허락을 구하는 게 더 나을 거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 세르자가 돌아왔고, 나는 녀석의 발에 묶여있는 답장을 풀어서 읽어보았다.

내용은 간단하게도 오전에는 일 때문에 바쁘니 오후 3시에 만나자는 것이었다.

“아직 약속시간이 한참 나았네. 기왕 차려입었으니까 밖에 나갈까?”

“어제는 관광지를 열심히 돌아다녔으니 오늘은 여유롭게 도시를 돌아보는 게 어떨까요?”

“좋은 제안이야, 이리스. 그렇지 않아도 배가 고파서 뭐라도 먹고 싶던 참이었어.”

“아침에 조깅을 하다가 호텔직원에게서 유명한 스테이크하우스가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거기로 가실래요?”

“첫 끼가 고기라니, 정말 훌륭한 제안이야. 얼른 가보자.”

나는 기대감에 들뜬 나머지 앞장서서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그러자 내 사랑들은 웃음소리를 내면서 내 뒤를 따라왔다.

우리는 호텔의 카운터에서 스테이크하우스의 위치를 정확히 물어본 뒤에 밖으로 나왔다.

호텔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한 그곳은 사람들이 입구 앞에 줄을 서있었는데, 나는 명예기사 신분 덕분에 그냥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는 2층으로 올라가 바깥이 내다보이는 곳으로 자리를 배정받았고, 각자 원하는 종류의 스테이크를 시켰다.

사방에서 풍기는 고소한 스테이크 냄새에 배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수시로 났고, 입에서 군침이 돌았다.

내가 멍하니 스테이크 냄새에 빠져드는 것을 맞은편에서 지켜보던 이리스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작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레베카님.”

“응?”

“아까 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루카스님은 어떻게 세상의 비밀 같은 거창한 것을 알고 있다는 걸까요? 혹시 허세가 아닐까요?”

이리사가 속삭이듯 하는 질문에 라우라와 에리카도 동의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내 사랑들의 호기심어린 눈빛을 한 몸에 받으며 고민을 거듭하다가 입을 열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야. 루카스와 마찬가지로 지구라는 이름을 가진 전혀 다른 세상에 온 사람이지. 그래서 그가 하는 말을 허세라고 생각하기 어려워.”

내가 속닥거리면서 하는 말에 다들 조금 놀라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호들갑을 떨거나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하지 않았다.

평소에 내 사랑들에게 보여줬던 여러 가지 말이나 행동들이 내가 하는 말을 그럴싸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다.

“내가 살던 세상에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가상현실을 만들어서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가 있었어. 쉽게 말하면 소설이나 동화책 속 세상으로 잠깐 들어갔다가 나오는 식이야. 아무튼 난 그걸 써서 가상현실을 체험하려다가 갑자기 아르카디아로 넘어오게 된 거야.”

“그러니까 가짜라고 생각하고 들어왔던 세상이 알고 보니 진짜 세상이었고, 더는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된 건가요?”

“응. 네 말이 맞아, 라우라. 처음엔 다른 사람들을 사람이 아니라 가상의 존재로 여겼었어. 잠시 돌아가지 못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었거든. 하지만 처음 전투를 경험하고 나서는 바로 여기가 또 다른 현실이라고 인정하기 시작했어.”

“그렇다면 루카스님이 말해주시려는 세상의 비밀이라는 건 결국 이 세상이 현실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레베카님이 이 세상으로 넘어오게 된 경위에 대한 것이겠군요.”

“아마도. 그리고 엄연히 현실에 존재하는 세상이 어째서 내가 구상했던 세상과 거의 일치하는지도 알 수 있으면 좋겠어.”

“그럼 경우에 따라서는 레베카님께서 창조신일 수도 있겠네요.”

“에이, 설마. 난 그런 거창한 존재가 될 수 없어. 그냥 인간보다 똑똑한 기계에 전적으로 의존했을 뿐이거든. 그리고 신이라면 이렇게 배고파서 애를 먹지도 않겠지.”

나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실제로 내 설정에 따라서 가상현실을 만들어준 것은 인공지능이니 말이다.

우리는 곧 식탁 위에 차려지는 각자의 스테이크에 정신이 팔려서 더는 그 주제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식사에 집중했다.

그런데 내가 마지막 고기조각을 입에 넣었을 때, 갑자기 2층 전체에 적막감이 흐르더니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1층으로 내려갔다.

내가 무슨 일인가 싶어서 창문 밖을 내다보니 1층에 있던 사람들과 밖에서 줄을 서있던 사람들까지 모두 식당을 떠나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곧 익숙한 디자인의 마차 한 대가 식당 앞에 서더니 루카스 혼자서 내렸고, 그는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오후 3시에 보자던 사람이 벌써 찾아온 이유가 뭐야?”

“갑자기 중요한 약속이 미뤄져서 짧게나마 널 만날 시간이 생겼거든.”

루카스는 옆 테이블에서 의자를 가져다가 우리와 합석했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움직임에 처음부터 그가 우리와 함께 식사를 했던 것만 같았다.

“이번엔 결계를 치지 않는구나?”

“네가 경솔하게도 Y.W.S에 대해서 네 애인들에게 말해주는 바람에 그럴 필요가 없어졌어. 너 뿐만 아니라 네 애인들도 앞으로 감시상태에 놓이게 될 거야.”

“누가 우릴 감시하는데?”

“그건 세상의 비밀을 알려줄 때 같이 설명해줄게. 아직은 일러. 대신 네가 얻을 스킬 정도는 미리 알려줄게. 어차피 그게 네가 가장 궁금해 했던 거잖아.”

“알았으니까 빨리 말해봐.”

“너한테 습득위치를 알려줄 스킬은 유사기능통합, 노화방지, 물건복제 이렇게 3개야. 내가 파악한 스킬들 중에서 마지막까지 남은 것들이지.”

“넌 왜 그것들을 방치했던 거야?”

“레베카 카론이라는 사람만이 얻을 수 있게 지정된 던전의 최종보상이니까 어쩔 수 없었지. 던전은 싹 청소된 상태니까 넌 가서 봉인만 풀면 간단하게 스킬을 얻을 수 있어.”

“만약에 한 명만 네 이벤트경기에 참가하면 어떻게 할 거야?”

“모두 참가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알려줄 수 없어. 더 물어볼 게 없다면 이만 가볼게. 다음 일정에 참석해야하거든. 난 정말 너무 바쁜 사람이라니깐. 하하하!”

루카스는 앉은 지 얼마나 됐다고 벌서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원래 자리로 돌려놓았다.

나는 그의 단호한 태도에 협상의 여지를 전혀 느낄 수 없었고, 그가 웃으면서 던지는 인사를 받아주며 그를 떠나보냈다.

“레베카님! 레베카님! 저 경기에 참가할게요!”

“너 엄청 싫어했었잖아.”

“레베카님께서 저희들처럼 평생 늙지 않는 방법을 얻을 수 있는데 당연히 참가해야지요. 다른 비밀이나 능력보다 그게 제일 중요해요!”

나는 이리스가 갑자기 어마어마한 의욕을 보이는 모습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그건 이리스만의 생각변화가 아니었다.

“저도 참가할래요. 이리스의 말처럼 레베카님을 위해서라면 물러날 수 없어요!”

에리카도 이리스 못지않은 의욕을 보이면서 말했다.

그러자 처음부터 참가하고 싶어 했던 라우라는 두 사람을 보며 만족스러워했다.

결국 내 사랑들은 나의 젊음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이벤트경기에 참가하게 되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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