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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세상에서 마음껏 살아간다-169화 (169/271)

〈 169화 〉 168화

* * *

나는 어젯밤에 라우라에게 약속한대로 이른 아침부터 그녀와 함께 등산을 시작했다.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절벽에는 잔도가 있는데, 우린 그 길을 이용해서 절벽 위로 올라가기로 했다.

라우라는 평지를 걸어가듯이 성큼성큼 발을 내디뎠지만 나는 절벽에 바짝 달라붙어서는 거의 억지로 앞으로 나아갔다.

“레베카님, 지금이라도 돌아갈까요?”

“아, 아니야. 괜찮아. 이 정도도 극복하지 못하면 어떻게 가면쟁이들을... 꺄악!”

나는 라우라 앞에서 허세를 부리다가 갑자기 불어오는 바람에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난 고소공포증은 별로 없지만 허접스러워 보이는 잔도 자체가 날 무섭게 만들었다.

라우라는 하루에 한 번은 죽어도 부활한다지만 나는 그런 게 없단 말이야.

“정말 계속 이 길로 올라가도 될까요?”

“그럼. 내가 이래봬도 은근히 끈질긴 구석이 있는 사람이거든. 하하하...”

“일단 여기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쉴 수 있는 곳이 나오니까 힘내세요.”

“응. 노력해볼게.”

라우라의 응원을 받으니 힘과 용기가 나는 것 같다.

나는 덕분에 어떻게든 다시 움직일 수 있었고, 10분 정도 지났을 무렵에 라우라가 말했던 휴식공간에 도착했다.

겨우 두 사람이 앉을 수 있을 정도로 좁은 공간이었지만 끽끽거리는 소리를 내며 사람을 겁주는 잔도보다야 훨씬 아늑했다.

나는 여전히 부들거리는 다리를 주무르면서 진정시키려고 애를 썼다.

그래도 여기서 바라보는 경치가 나쁘지 않아서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레베카님, 물드세요.”

“고마워.”

라우라는 내게 시원한 물이 담긴 컵을 건넸고, 나는 그걸 받아서 벌컥벌컥 마셨다.

그렇지 않아도 목이 타는 기분이었는데 물을 마시니 살 것 같았다.

“제가 먼저 가서 안전한지 확인하고 올 테니까 여기서 잠시 쉬고 계세요.”

“아니야. 네가 앞서가더라도 내가 꾸준히 움직여야 다음 약속에 맞출 수 있어.”

“하지만 레베카님이 힘들어하셔서...”

“괜찮아. 내가 겁쟁이처럼 구는 바람에 모두의 하루를 망칠 수는 없잖아.”

나는 또 한 번 허세를 부렸고, 라우라는 곤란한 표정을 짓다가 결국 내 뜻을 받아들이고 말았다.

“그럼 여기서 적당히 쉬다가 다시 출발할게요. 이제 잔도는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그 다음부터는 평범한 산길을 걸으실 수 있을 거예요.”

“그래. 그러자.”

나는 라우라에게 살짝 기대면서 그녀의 손을 살포시 잡았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라우라는 콧노래를 흥얼거렸고, 나도 그걸 어설프게나마 따라했다.

굳이 정상까지 올라가지 않고 여기서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일단 칼을 뽑았으면 뭐라도 베어야하지 않겠어?

도중에 포기하고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라우라, 이제 출발하자.”

“네, 레베카님.”

우리는 짧은 휴식을 끝내고 다시 잔도에 발을 디뎠다.

라우라는 앞장서서 걸어가며 수시로 잔도의 안전성을 확인했고, 나는 그녀의 뒤를 열심히 따라갔다.

그렇게 오로지 걷는 일에만 집중하다보니 어느새 잔도가 끝나는 지점이 보였다.

라우라는 절벽 위에서 나를 기다렸고, 나는 마지막으로 용기를 짜내서 앞으로 나아가 사랑하는 이가 내미는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나는 지긋지긋한 잔도에서 벗어나 평범한 땅에 발을 디뎠다.

“흐아아! 드디어 도착했다!”

정상에 오르지 않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성취감이 느껴졌다.

결국엔 내가 나를 이겼다는 생각에 정말 신이 나서 웃음이 나왔다.

그러자 라우라도 덩달아 웃으며 나를 끌어안고서 함께 기뻐해주었다.

“레베카님께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오신 모습을 보니까 정말 멋져요. 처음엔 제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걱정이었는데 말이에요.”

“오직 널 위해서 노력했어. 네가 그런 일로 풀이 죽은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거든.”

“그럼 우리 다음에는 더 험한 길을 가볼까요?”

“뭐, 뭐라고?”

나는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는 느낌이 들었다.

겨우 탈출한 잔도보다 더 험한 길은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히힛, 농담이랍니다. 만약 또 등산할 일이 생기면 더 쉬운 곳으로 고를 거예요. 이번엔 너무 제 기준으로만 생각했으니 그 부분은 철저하게 반성해야겠어요.”

“휴우, 다행이다. 그럼 계속 가볼까?”

“쉬지 않으셔도 괜찮으시겠어요?”

“휴식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 그냥 정상에 가서 쉴래.”

“네, 레베카님. 자, 제 손 잡으세요.”

“응.”

나는 라우라와 함께 손을 잡고서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포슬포슬한 흙길을 걸어갔다.

등산을 시작한 이래로 쭉 라우라의 등을 보고 걸었지만 지금은 손을 잡고 있어서 그런지 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이런 말을 하면 이리스와 에리카가 좀 섭섭해 하겠지만 라우라는 내게 있어서 가장 각별하게 느껴지는 사람이다.

나는 이 세상으로 넘어온 뒤로 라우라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고, 그녀는 사랑에 서툰 내가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다.

치사하게 성노예로 구입해서는 멋대로 굴었던 나를 사랑으로 품어주고, 하렘을 꾸릴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등을 밀어주고,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도록 항상 냉정한 선택지를 제시해주었다.

라우라는 내게 있어서 단순한 애인이 아니라 선생님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녀가 이 세상에서의 생활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려주었기에 내가 문제없이 이 사회에 녹아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라우라, 항상 고마워.”

“갑작스럽지만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동적이에요.”

“그 정도야? 내가 고맙다는 말은 나름 자주하는 편인 것 같은데.”

“이번엔 평소에 하시던 고맙다는 말보다 훨씬 더 진지하게 들렸거든요. 그런데 어떤 게 고맙게 느껴지시는 건가요?”

“너에 대한 모든 것과 내가 나에게 해주는 모든 것에 감사하고 있어.”

“뭔가 부끄러울 정도지만 저도 레베카님께 같은 생각을 품고 있어요. 저는 레베카님 덕분에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라우라는 뒤를 돌아보더니 세상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였고, 그녀의 뒤로 후광마저 비추니 정말이지 아름다웠다.

나는 그 모습을 그냥 지나치지 아쉬워서 사진으로 거룩한 기록을 남겼다.

앞으로도 뭔가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한 번씩 찾아볼 것 같다.

“사진 다 찍으셨으면 계속 갈까요?”

“응.”

우리는 다시 부지런히 산길을 걸었고, 약간 숨이 차기 시작할 때쯤에 목적지인 정상에 도착했다.

출발할 때는 막 떠오르기 시작했던 태양이 이제는 세상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고즈넉한 마을의 전경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뿐만 아니라 인근에 넓게 펼쳐진 숲과 산, 저 멀리 보이는 마을과 도시, 하늘을 수놓는 구름과 새들이 한데 어우러지며 내 가슴을 벅차오르게 만들었다.

“레베카님, 소감이 어떠세요?”

“정말이지... 최고야! 너를 따라서 등산을 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레베카님이 기뻐하시니까 제 기분도 더 좋아지네요.”

“이리와, 라우라.”

나는 라우라를 끌어안고서 그녀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담아서 진하게 키스했다.

그러자 라우라는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적극적으로 내 애정표현에 어울려주었다.

산꼭대기에서 맛보는 라우라의 입술은 참으로 각별해서 살짝 지쳤던 내 몸이 활기를 되찾았다.

나는 무엇과도 비교하기 힘든 황홀감마저 느끼며 라우라를 탐닉했고, 라우라 역시 계속해서 나를 강하게 갈구했다.

우리는 오랜 시간동안 서로에 대한 사랑을 아끼지 않고 표현한 뒤에야 겨우 입술을 떼어냈다.

우린 서로 새빨개진 얼굴을 보면서 씩 웃었고, 동시에 서로를 포옹하면서 키스의 여운을 달랬다.

누가 보면 우리가 키스를 하기 위해서 등산을 한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레베카님, 사랑해요.”

라우라는 꼬리로 내 손목을 감으면서 애정 어린 목소리로 내게 속삭였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귀를 만져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뒤에 나란히 앉아서 도시락을 먹으며 주변의 경치를 만끽했다.

우리는 도시락을 다 먹은 뒤에도 한참동안 서로에게 기댄 채로 시간을 보냈다.

이대로 시간이 멈추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행복했다.

“레베카님, 이제 그만 내려가요. 이리스를 기다리게 하면 안 되잖아요.”

“내 입으로 약속시간을 지켜야한다고 해놓고는 너무 여유를 부렸네. 너랑 같이 있는 게 엄청 좋아서 그랬나봐.”

나는 라우라에게 가볍게 키스를 해주었고, 내가 입술을 떼어내자 라우라가 내 얼굴에 볼을 비비며 애교를 부렸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일으켜 세웠다.

“지금 출발하면 여유롭게 약속시간을 지키실 수 있어요.”

“그래? 난 좀 빠듯할 것 같은데. 일단 가보자.”

우리는 왔던 길을 따라서 정상에서 내려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 숙적으로 등극한 잔도가 다시 나타났다.

올라올 때도 힘들었지만 여길 내려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죽을 맛이다.

그렇다고 뛰어내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라우라를 따라서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다시 올바른 땅 위에 발을 디딘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라우라와 손을 잡고서 도로테아의 집으로 돌아갔다.

마을사람들은 바쁘게 농사일을 하는 와중에도 우리에게 인사를 하거나 손을 흔들어주었고, 아이들은 오늘도 열심히 뛰어놀았다.

난 그 평화로운 모습을 눈에 담으며 길을 걸어서 도로테아의 집 마당으로 들어갔다.

마당의 평상 위에서는 이리스와 마르코가 함께 낚싯대를 손질하고 있었고, 에리카와 도로테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리스는 우리를 보자마자 하던 일을 멈추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어머, 시간 딱 맞춰서 오셨네요. 등산은 어떠셨나요?”

“조금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정말 좋았어. 아마 너도 같이 갔으면 분명 크게 만족했을 거야. 아, 그렇지. 사진으로 보여줄게.”

나는 이리스에게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들을 하나씩 찬찬히 보여주었다.

이리스는 풍경사진을 넘겨보다가 후광을 받고 있는 라우라의 사진을 보더니 멈칫했다.

그러더니 바로 옆에 있는 라우라와 사진 속 라우라를 번갈아보더니 씩 웃었다.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라우라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니 놀리는 건가보다.

“그런데 에리카는 어디 갔니?”

“도로테아 씨랑 같이 방목장에 갔어요. 저도 가고 싶긴 했는데 레베카님과의 약속이 있으니 꾹 참았어요.”

“그랬구나. 내가 너한테 보상을 해줘야겠는 걸.”

나는 이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그녀는 눈을 감고서 몸을 살랑살랑 흔들면서 내 손길을 만끽했다.

그리고는 마르코에게서 낚싯대를 받아들고는 나와 팔짱을 꼈다.

“라우라, 우리 다녀올게.”

“물에 빠지지 않게 조심해.”

“응! 너도 푹 쉬어.”

“레베카님,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라우라는 나와 이리스의 볼에 연달아 뽀뽀를 해주고는 손을 흔들며 우리를 배웅해줬다.

그리곤 하품을 하면서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레베카님은 낚시를 해본 적 있으세요?”

“어렸을 때 아버지와 함께 바다낚시를 몇 번 했었어.”

“저랑 레베카님의 공통점이네요.”

“그러게 말이야. 그런데 어디서 낚시를 할 거니?”

“마을 남쪽에 있는 개울에 송어가 많이 산다고 해요. 아, 그리고 마르코 씨가 그러는데 한 명에 한 마리씩은 먹어도 된다고 했어요.”

“그래? 잘됐네. 예전부터 낚시로 잡은 물고기를 모닥불에 구워서 먹어보고 싶었거든.”

“그럼 제가 구워드릴게요.”

“부탁할게.”

우리는 각자 낚싯대를 하나씩 들고서 팔짱을 낀 채로 개울가로 향했다.

개울가에는 이미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우린 그들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약간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자리를 잡았다.

낚싯대는 대나무로 만들어진 간단한 구조라서 그냥 미끼를 끼우고 던지면 끝이었다.

미끼는 지렁이였는데, 녀석들이 한데 뭉쳐서 꿈틀거리는 모습은 영 별로였다.

“레베카님, 제가 미끼를 달아드릴까요?”

“아니야. 내가 할게.”

나는 과감하게 지렁이를 한 마리 잡아다가 낚싯바늘에 쑥 끼웠고, 송어가 몰려다니는 곳으로 던졌다.

워낙에 물이 맑아서 녀석들이 뭘 하는지 훤히 들여다보였다.

처음에는 놀라서 도망갔던 녀석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미끼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경계심이 많아서 입질만 몇 번 할 뿐, 좀처럼 덥석 물지를 않았다.

“얘들 좀 약았네. 이리스, 넌... 벌써 잡았어?”

“네, 작은 녀석이라서 그냥 놓아주려고요.”

이리스는 송어의 주둥이에서 바늘을 떼어내고 그대로 물에 풀어주었다.

그리고 내가 잠시 그쪽으로 한눈을 파는 사이에 내 낚싯바늘 근처에 있던 송어가 미끼만 먹고 도망쳐버렸다.

나는 순간적으로 욱해서 마력권총을 꺼내서 쏠 뻔 했지만 꾹 참았다.

내가 낚시를 하러왔지 총질을 하러 온 건 아니니까.

그렇게 미끼를 끼우고, 던지고, 털리기를 몇 차례 반복하고 나니 다시 권총집에 손이 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레베카님, 그림자가 낚싯바늘을 가리지 않도록 자리를 옮겨보세요.”

“이렇게?”

“네, 물고기가 바보처럼 보여도 눈치는 빠르거든요. 그래서 사람의 그림자가 있으면 잘 물지를 않아요.”

나는 이리스의 조언에 따라서 움직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입질이 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갑자기 송어가 낚싯바늘을 제대로 물고서 힘차게 잡아당겼다.

낚싯대가 확 휘어버리고 사방으로 물방울이 튀었다.

나는 낚싯대를 놓치지 않으려고 손에 힘을 주면서도 낚싯줄이 끊어지지 않도록 완급조절을 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낚싯대를 힘껏 들어 올리자 지친 송어가 딸려왔다.

“야호! 잡았다! 이리스, 나 송어를 잡았어! 이것 좀 봐! 하하핫!”

나는 호들갑을 떨면서 이리스에게 송어를 자랑했다.

이 정도 크기면 분명 먹어도 되겠지? 벌써부터 군침이 돈다.

“축하드려요! 저보다 더 큰 걸 잡으셨네요. 제가 손질해서 구워드릴 테니까 계속 낚시를 즐겨주세요.”

“응! 이번엔 더 큰 걸 잡을 거야.”

나는 승리감에 취한 나머지 자신감이 마구 샘솟았다.

지금 기분으로는 이 낚싯대로 고래도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한 번 내게 즐거움을 줬던 현실은 더는 호락호락하게 굴지 않았다.

이리스가 모닥불을 피우고 손질한 송어로 직화구이를 만드는 그 순간까지 한 놈도 내게 잡혀주질 않았다.

나는 씩씩거리며 제압탄을 마력권총에 장전하다가 이리스가 부르는 소리에 곧바로 그쪽으로 갔다.

“레베카님, 이제 다 구워졌어요. 한 번 드셔보세요.”

“음... 냄새 좋다. 노릇노릇한 게 보기만 해도 맛있는 것 같아. 잘 먹을게.”

나는 이리스가 내미는 생선꼬지를 받았고, 즉시 한입 베어 물었다.

소금과 후추로 간이 된 생선살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육즙이 촉촉하게 배어나오는 것이 일품이었다.

그리고 이리스가 일일이 생선뼈를 다 발라내서 편하게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어떠세요?”

“너무 맛있어서 한 10개 정도는 더 먹고 싶을 정도야.”

“그 정도인가요? 그냥 평범한 생선구이일 뿐인 걸요.”

“평범하다니? 사랑하는 이리스가 날 위해서 정성스럽게 구워 줬는걸. 고마워.”

“아직 몇 개 더 남았으니까 천천히 즐겨주세요.”

나는 이리스가 주는 꼬지를 넙죽 받아먹으면서도 그녀에게도 먹여주는 걸 잊지 않았다.

그저 생선을 구워먹는 것에 불과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어느 호화스러운 만찬도 부럽지 않았다.

“정말 잘 드시네요. 제가 한 마리 더 잡아드릴게요.”

“나도 또 도전해봐야겠어. 한 마리로 만족할 수는 없지.”

“그럼 우리 내기할까요? 먼저 잡는 사람의 소원 들어주기로요.”

“좋아! 기꺼이 받아줄게.”

우리는 다시 낚싯대를 개울에 던졌고, 난 내기를 이기기 위해서 신경을 바짝 썼다.

하지만 나는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이리스에게 완패하고 말았다.

그녀는 내가 잡은 것보다 더 큰 송어를 잡아서 내게 떡하니 내밀면서 으스댔다.

정작 내 손에는 손바닥 크기의 새끼 송어가 잡혀있을 뿐인데 말이다.

“후훗, 제가 이겨버렸네요. 제 소원은 별 거 아니에요. 그냥 레베카님께서 오래오래 저희들이랑 같이 행복하게 사는 거예요. 들어주실 수 있지요?”

“물론이지!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소원은 이루어줄 거야.”

나는 그 말과 함께 자연스럽게 이리스에게 키스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송어가 펄떡거리며 날 마구 때리는 바람에 그만 김이 새버렸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마지막 훼방이라도 놓는 녀석의 용기가 가상해서 서둘러 생선구이로 만들어주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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