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3화 〉 16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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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엘리사가 낳은 손 크기의 알을 들어서 유심히 살펴보았다.
악마촉수의 반투명 알은 형태가 새의 알처럼 뚱뚱한 유선형이었지만 재질은 개구리의 알처럼 말랑말랑했다.
알을 조명으로 비추자 안에서 꿈틀거리는 최하급 악마촉수의 그림자가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악마촉수들이 알을 찢고 나왔고, 알을 먹어치웠다.
악마촉수는 단적으로 말해서 다리근육의 힘으로 지상을 뛰어다니는 두족류처럼 생겼다.
단단한 갑각으로 둘러싸인 타원형 머리에는 8개의 크고 동그란 눈이 각 방향마다 한 쌍씩 세로로 달려있다.
눈들이 한꺼번에 움직이면서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은 좀 징그럽다.
녀석의 대가리 아래에 붙어있는 촉수는 10개이고 각각 용도가 나뉘어져 있었다.
몸을 지탱하고 달릴 때 쓰는 굵고 튼튼한 다리촉수와 끝에 칼날 같은 것이 달려있는 공격촉수가 각각 4개고 손처럼 쓸 수 있는 집게발이 달린 다용도촉수가 2개다.
다리촉수는 머리처럼 전체적으로 갑각으로 둘러싸여있고, 공격촉수는 위쪽은 갑각으로 보호되고 아래쪽은 갑각 대신에 갈고리발톱이 줄지어 돋아나있다.
그리고 다용도촉수는 갑각이 아예 없고 아래쪽에 빨판이 잔뜩 달려있다.
다리촉수는 몸체의 중심부를 떠받치고, 공격촉수는 눈이 있는 곳 아래쪽에 위치해서 공격의 사각지대가 없었다.
그리고 다용도촉수는 갯지렁이처럼 생긴 입의 양 옆에 붙어있었는데 평소에는 몸속에 대부분을 숨기고 있어서 지금은 4갈래로 갈라지는 집게발만 보였다.
나는 악마촉수의 생김새를 충분히 살펴본 뒤에 스킬창을 열었다.
촉수소환의 스킬레벨을 올리려면 기생촉수를 숙주에 감염시키고 악마촉수를 생산한 뒤에 성장한 악마촉수를 실전에 투입해야 하는 조건을 충족해야한다.
난 이미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켰으니 실전투입만 하면 된다.
엘리사의 기생적합도가 A랭크인 덕분에 최하급 악마촉수는 바로 성체로 태어났고, 성장할 시간을 기다릴 필요 없이 실전투입을 하면 된다.
문제는 실전투입의 기준인데... 일단 촉수들끼리 싸움을 붙여봐야겠다.
나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촉수 둘을 지정해서 서로 싸우도록 명령했다.
그러자 악마촉수들은 날렵하게 몸을 움직이며 서로를 맹렬하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공격촉수와 이빨로 상대를 난도질하는 모습은 굉장히 살벌했다.
작아서 얕봤었는데 맨몸으로 저런 공격을 받았다가는 중상을 입을 게 분명했다.
승부는 1분 만에 났고 승리한 최하급 악마촉수는 패배자를 먹어치운 뒤에 최대레벨인 20까지 상승했다.
즉, 최하급 악마촉수는 레벨만 봐서는 고블린급의 전투력을 가졌다는 소리다.
승리한 최하급 악마촉수는 내 무릎높이까지 자라났는데, 공격촉수의 길이는 그것보다 세배 더 길었다.
“오, 스킬레벨이 올랐네.”
나는 촉수소환스킬의 스킬레벨이 2로 올랐다는 알림을 받았다.
자기들끼리 싸우게 만드는 것도 실전으로 인정받아서 다행이다.
이제 번식촉수가 숙주를 통해서 하급 악마촉수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고, 최하급 악마촉수는 처음부터 최대레벨에 도달한 상태로 생산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기생촉수의 능력도 향상되어 숙주를 모체로 개조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개조의 성공확률이 상승했다.
나는 번식촉수에게 이제 하급 악마촉수를 생산할 것을 명령했다.
그러자 번식촉수는 엘리사의 자궁 속에 있는 최하급 악마촉수의 알을 모두 먹어치우고 새롭게 번식활동을 시작했다.
엘리사는 교성을 내뱉으며 숨을 헐떡였고, 쾌락에 젖은 표정으로 촉수를 받아들였다.
난 잠시 엘리사를 구경하다가 최하급 악마촉수들을 어떻게 처리할 지 고민했다.
음... 데리고 다니기는 좀 부담스러우니 하급 악마촉수가 태어나면 먹이로 던져줘야겠다.
엘리사가 새로 알을 낳으려면 또 1시간을 기다려야하니 다시 의자에 앉아서 잠을 청했다.
카르디아에서의 전투가 생각보다 날 엄청 피곤하게 만들어버린 것 같다.
그렇게 내가 다시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3마리의 하급 악마촉수가 알에서 나온 직후였다.
역시나 성체로 태어난 녀석들은 최하급 악마촉수와 생긴 것은 다르지 않았지만 크기가 대략 두 배이고 레벨은 처음부터 20이었다.
나는 하급 악마촉수 하나에게 다른 악마촉수들을 모두 먹어치울 것을 명령했고, 녀석은 저항을 하지 않는 동족들을 가차 없이 죽이고 잡아먹었다.
덕분에 녀석은 최고레벨인 40까지 올랐고, 덩치도 조금 더 커져서 내 허리높이까지 자라났다.
이쯤 되니 좀 무섭게 느껴지는 걸.
나는 하급 악마촉수를 적당히 살펴본 뒤에 촉수소환의 스킬레벨을 3으로 올릴 수 있는 조건을 살펴보았다.
이번에도 3가지 조건을 채워야 스킬레벨을 상승시킬 수 있었다.
조건은 기생적합도 D등급 이상의 숙주로 하급 악마촉수를 10마리 생산하여 성체로 키워낼 것, 하급 악마촉수로 누적 살해 수 100마리 또는 20명을 달성할 것 그리고 하급 악마촉수 한 마리가 최대레벨에 도달할 것이다.
첫 번째 조건은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고 두 번째 스킬은 첫 번째 조건을 달성한 이후에 도전해야겠다.
그리고 세 번째 조건은 이미 달성되었으니 신경 쓸 것 없다.
여기서 10마리가 태어나는 것을 기다리는 것은 시간 낭비이니 이제 슬슬 내 사랑들에게 돌아가야겠다.
물론 그 전에 확인할 것들이 아직 남아있었다.
첫 번째로 확인할 것은 번식촉수가 뭘 먹어서 영양액을 만들어내느냐다.
숙주는 번식촉수가 제공하는 영양액만 먹으면 아무런 문제도 없이 생명활동을 유지할 수 있으니 신경 쓸 건 없다.
군체의식통제(촉수) 스킬을 통해 볼 수 있는 UI가 제공하는 정보에 따르면 깨끗한 물을 포함하여 채소, 과일, 고기 등등 사람이 먹을 법한 식료품들이 필요하다.
깨끗한 물이야 동굴에 풍부하니 걱정할 것이 없었지만 나머지가 고민이다.
악마촉수에게 수집과 사냥을 명령할 수는 있지만 이 동굴은 기사단본부와 너무 가깝다.
아무리 등잔 밑이 어둡다 하더라도 어린 애들만큼 키가 큰 촉수괴물이 거리를 뛰어다닌 다는 목격담이 퍼지는 건 시간문제다.
일단은 지금은 내가 치트가방에 보관하고 있는 식료품들을 충분히 놓고 간 뒤에 최대한 빨리 다른 장소를 알아봐야겠다.
그리고 자동화 시설 설계도를 사용할 수 있는 방법도 얼른 찾아내야겠다.
두 번째로 확인할 것은 악마촉수의 먹이다.
확인해본 결과, 아성체와 성체 악마촉수에게는 번식촉수에게 필요한 것과 동등한 종류의 먹이가 필요했다.
그리고 유체는 번식촉수가 착유한 숙주의 모유만을 먹이로 삼기 때문에 숙주와 번식촉수를 잘 관리해주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확인할 것은 내가 자리를 비워도 자원만 충분하면 알아서 잘 굴러가는 지다.
일단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내가 실시간으로 촉수의 군체의식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촉수들이 멋대로 날 뛰는 일은 없다.
만약 내가 잠을 자고 있는 사이에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일단 내가 미리 내렸던 명령이나 본능적으로 대응에 나서고, 상황이 더 악화되면 나를 깨운다고 한다.
나는 다른 장소를 찾기 전까지는 주변의 시선을 끄는 일을 최대한으로 줄이고자 했다.
그래서 그 어떤 촉수도 동굴 밖으로 나가지 말 것을 명령했고, 번식촉수에게는 엘리사가 9개의 알을 낳은 뒤에는 번식활동을 중지하고 숙주의 생명활동을 유지하는 데만 신경 쓰도록 했다.
이제 알아볼 건 다 알아봤으니 동굴에서 나가도될 것 같다.
“엘리사, 앞으로도 잘 부탁해. 킥킥킥.”
“살려줘...”
“너 때문에 죽고 다친 사람이 몇 명인데 염치가 없네. 넌 여기서 죽을 때까지 알을 낳으면서 고통 받아도 부족한 년이야.”
나는 건방지게 목숨을 구걸하는 엘리사의 뺨을 힘껏 후려치고 동굴에서 나왔다.
난 그게 참 속 시원했지만 한편으로는 잔혹하고 변태적인 일을 저질러 놓고는 입으로는 정의를 입에 담는 내 스스로가 역겨울 정도로 위선적이라고 느껴지기도 했다.
앞으로도 난 이런 짓을 몇 번이고 더 반복하면서 나만의 군대를 만들어내겠지.
언젠가 사람들에게 마왕이라고 불릴지도 모르겠다.
나는 실컷 즐겨놓고는 뒤늦게 찝찝한 기분을 느끼며 특수상점으로 향했다.
내가 숙소를 구하지도 않고 다시 특수상점으로 돌아가는 이유는 바디슈트가 판매를 시작했다는 알림 때문이다.
보아하니 엘리사의 인생을 끝장내버린 것에 대한 보상인 것으로 보인다.
굳이 죽이지 않아도 이런 식으로 보상을 얻을 수 있다니 참 좋은 것 같다.
나는 서둘러 특수상점으로 돌아가서 바디슈트를 팔고 있는 코너로 향했다.
바디슈트의 디자인은 엘리사가 입고 있던 것과 비슷했지만 금속꼬리는 달려있지 않았다.
난 분석스킬을 쓰기 전에 일단 직접 입어보기로 했다.
내가 고른 바디슈트는 내 머리카락처럼 검은색 바탕에 내 눈처럼 황금색 줄이 곳곳에 그어진 것이다.
처음에는 옷이 좀 크고 헐렁헐렁하게 느껴졌는데, 목덜미에 있는 버튼을 누르자 천천히 내 몸에 딱 맞는 크기로 맞춰졌다.
내 예상과는 달리 바디슈트는 옷을 입은 기분이 들지 않을 정도로 가볍고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거울 앞에 서자 나의 완벽에 가까운 아름다운 몸매라인이 고스란히 다 드러나서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나는 온갖 섹시한 폼을 잡아가면서 자기애를 드러내다가 왠지 부끄러워져서 그만두었다.
이러다 나르시스트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난 잡생각을 빨리 잊기 위해서 바디슈트에 분석스킬을 사용하고 성능을 살펴보았다.
바디슈트는 기본적으로 S등급 품질을 가진 마법방어구와 동일한 수준의 마법방어막이 표면에 둘러져있다.
그리고 마법방어구와 달리 공격으로 인지되지 않는 위협까지 막아줄 수 있고, 인간의 공격은 마력권총탄까지 방어가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내가 치트가방에 보관하고 있던 보온병에서 뜨거운 물을 부어버리자 바로 마법방어막이 작동해서 날 보호해주었다.
엘리사는 몸에 불이 붙은 상태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뛰어다녔으니 뜨거운 물은 애들 장난 수준인 모양이다.
나는 바디슈트의 기능을 좀 더 살펴보았다.
바디슈트는 체온과 습도를 쾌적하게 유지할 뿐만 아니라 노폐물이나 배설물도 모두 마법적인 방법으로 처리해준다.
더는 마법갑옷을 입을 때처럼 불쾌한 경험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또한 목에 있는 버튼을 조작해서 헬멧을 쓰니 바이저에 FPS게임처럼 조준선과 적의 방향, 소환수의 현황, 장전된 총알처럼 전투에 필요한 정보가 담긴 UI가 나타났다.
너무 편리한 기능에 난 그저 감격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세르자와 드론을 소환한 뒤에 마력소총을 손에 들고서 이곳저곳 조준하거나 재장전을 하며 UI의 기능을 몸소 체험해보았다.
그리고 바디슈트를 입은 채로 마법갑옷을 착용해보았는데, 배설물 처리장치가 갈 길을 잃고 방황했던 것을 제외하면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살펴본 바디슈트의 기능은 바로 다른 옷으로 형태를 바꾸는 변형기능이다.
즉, 굳이 옷을 따로 살 필요가 없이 옷가게를 쓱 훑어보면서 디자인을 저장한 뒤에 마음에 드는 조합을 선택해서 슈트를 변형시키면 된다.
이 기능을 사용한다면 단체로 바디슈트를 입고 다녀도 이상한 집단으로 취급받을 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변형된 상태에서는 헬멧을 쓸 수 없기 때문에 전투가 발생하면 원상태로 복구시킬 필요가 있다.
‘레베카님!’
‘무슨 일이니, 라우라?’
‘어디에 계세요?’
‘특수상점에 있어. 너희들은?’
‘저희들도 이제 막 특수상점으로 가려고 했어요.’
‘잘 됐네. 조심해서 와.’
‘네, 레베카님.’
나는 라우라와의 텔레파시를 끝내고, 마법갑옷을 벗었다.
아참! 생각해보니 내가 엘리자베스한테 수리를 맡긴다고 해놓고는 그냥 와버렸네.
뭐, 그걸로 따질 사람은 없으니 나중에 맡기면 되겠지.
나는 지도창을 통해 내 사랑들의 움직임을 보면서 얼른 내 곁으로 오기만을 기다렸다.
내 사랑들은 생각보다 빨리 특수상점에 도착했고, 모두의 양손에는 쇼핑백이 잔뜩 들려있었다.
보아하니 실컷 쇼핑을 즐기면서 스트레스를 푼 것 같다.
“레베카님, 그 옷 엄청 섹시하네요. 그런데 엘리사가 입었던 옷이랑 비슷해 보여요.”
“그 녀석을 쓰러뜨린 대가야. 너희들도 하나씩 골라.”
나는 내 사랑들을 데리고서 바디슈트를 팔고 있는 코너로 향했고, 바디슈트의 기능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그러자 다들 적극적으로 바디슈트를 고르기 시작했다.
라우라는 하얀색 바탕에 파란색 선, 이리스는 검은색 바탕에 빨간색 선, 에리카는 하얀색 바탕에 황금색 선이 있는 바디슈트를 골랐다.
어차피 디자인은 다 똑같으니 색으로 개성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내 사랑들이 바디슈트로 옷을 갈아입자 정말 보기 좋았다.
모두의 예술적인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날 뿐만 아니라 자궁문신의 빛이 희미하게 새어나왔다.
어차피 환영마법으로 덧씌울 거니까 문제는 없을 것 같다.
세 사람은 다함께 거울 앞에 서서 다양한 포즈를 잡아가며 바디슈트를 입은 자신의 모습을 충분히 즐겼다.
그리고 나는 내 사랑들과 함께 단체로 사진을 찍어서 모두의 섹시한 모습을 남겼다.
나는 바디슈트를 평소에 입는 옷처럼 보이게끔 변형기능을 작동시켰고, 내 사랑들은 오늘 새로 산 옷들의 디자인으로 바디슈트의 형태를 바꿨다.
정말 감쪽같아서 바디슈트를 입었다는 사실을 전혀 알 수 없을 정도였고 재질이나 촉감도 감쪽같았다.
게다가 속옷까지 재현해주니 여러모로 안심이 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옷을 안 살 걸 그랬어요.”
“평생 바디슈트만 입을 것도 아니니까 괜찮아. 어차피 돈은 충분히 많잖아.”
“아무리 돈이 많아도 낭비는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어... 그래. 네 말이 맞아.”
나는 에리카가 진지하게 하는 말에 바로 수긍했다.
따지고 보면 지금 내가 보관하고 있는 재산의 대부분은 에리카의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레베카님, 엘리사는 어떻게 처리하셨나요?”
“완전히 끝장을 내버렸지.”
나는 이리스의 질문에 구체적으로 답변하지는 않았다.
사람을 촉수괴물의 모체로 만들었다고 대놓고 이야기를 하면 나를 향한 내 사랑들의 눈빛이 심각해질 게 분명하니 말이다.
하지만 언젠가 내가 저지르는 일들이 우리 모두를 지키는데 큰 공헌을 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 여자는 죽어도 싼 사람이었어요. 아쿨타리 마을에서도, 카르디아에서도 엘리사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요.”
“그래. 너무 많이 죽었지. 내일 다시 카르디아로 돌아가서 콘라드 씨 가족을 챙겨주고 다음 여행지로 떠나자.”
나는 순간 울적해진 내 사랑들에게 순서대로 키스를 해준 뒤에 특수상점을 나섰다.
부디 다음 여행지에서는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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