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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세상에서 마음껏 살아간다-161화 (161/271)

〈 161화 〉 160화

* * *

엘리사는 몸을 낮추더니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고 들어왔다.

나는 쿨타임이 지난 무장드론을 다시 소환하여 조명탄과 연막탄을 연달아 쏘면서 엘리사의 시야를 이중으로 차단했다.

엘리사는 이번에도 소리에 의존하여 무장드론을 공격하려고 했지만 나는 무장드론의 고도를 순간적으로 올리면서 앞으로 뛰어가 엘리사의 아래에서 마력산탄총을 쐈다.

“크윽!”

배에 마력산탄을 잔뜩 얻어맞은 엘리사는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내면서 낙법을 쓰며 착지했다.

그러더니 현란한 스텝으로 우리가 쏘는 총알들을 모두 피하거나 검으로 쳐내면서 베로니카 언니를 향해서 달려갔다.

나는 무장드론으로 엘리사의 뒤를 잡았고, 녀석의 뒤통수에 화염탄을 난사했다.

하지만 엘리사는 몸에 불이 붙어도 개의치 않았다.

불이 금방 꺼지는 것을 봐서는 엘리사가 입고 있는 바디슈트가 방염복처럼 화염을 막아내는 게 분명했다.

“하하핫! 죽어라!”

엘리사는 내 무의미한 대응을 비웃는 듯한 웃음소리를 내면서 베로니카 언니에게 검을 휘둘러 마법갑옷의 허리를 베어냈다.

나는 두 동강이 나버린 마법갑옷을 보자마자 몸이 굳어버렸지만 이상하게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았다.

“뭐야? 어디로... 아아악!”

엘리사 역시 당혹감을 느끼며 베로니카 언니의 행방을 찾다가 갑자기 측면에서 가해지는 여러 발의 총격에 옆구리를 부여잡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베로니카 언니는 마법갑옷을 미끼로 삼아서 엘리사를 속인 것이다.

워낙에 연막이 자욱하고, 언니가 미끼로 놔둔 마법갑옷의 자세가 감쪽같아서 나도 속아버렸다.

“엘리사, 넌 여전히 실력보다 도구에 크게 의존하는 구나? 그런 허접한 속임수도 간파하지 못하다니 말이야. 분명 지난 10년 동안 자기보다 훨씬 약한 사람들만 죽이고 다니면서 자기가 강하다고 착각했겠지.”

베로니카 언니는 알몸인데도 당당하게 서서 마력소총을 재장전했다.

난 그 모습이 뭔가 멋있어 보여서 사진을 찍어두고 싶을 정도였다.

“흥! 운 좋게 한발 맞춰놓고는 잘난 척이 심하네. 이 정도로는 날 쓰러뜨릴 수 없어!”

엘리사는 구도자답게 금방 상처가 재생되었고, 이젠 진짜로 무방비상태인 베로니카 언니에게 달려갔다.

베로니카 언니는 결정적인 순간에 민첩하게 몸을 날려서 공격을 피했고, 우리는 언니가 도망칠 수 있도록 엄호사격을 했다.

엘리사는 그녀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에서 가해지는 사격에 부상을 입었지만 치명상을 입지는 않았는지 계속해서 움직였다.

“언니, 이쪽으로 와!”

나는 베로니카 언니와 엘리사 사이에 연막탄을 쏜 뒤에 말로는 언니를 부르면서 손으로는 정반대 쪽을 지시했다.

베로니카 언니는 내 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움직였고, 엘리사는 나의 의도대로 내 쪽으로 향했다.

난폭한 맹수처럼 달려드는 엘리사는 꽤나 무섭게 느껴졌지만 나는 베로니카 언니처럼 당당하게 맞섰다.

엘리사는 나를 마법갑옷 째로 베어버리려고 했지만 나는 가까스로 공격을 피해냈다.

일반적인 마법갑옷보다 출력이 더 높아서 보다 더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베로니카 언니와 달리 마법갑옷에 손상을 입지 않고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나는 어떻게든 엘리사의 뒤를 잡아보려고 했지만 그녀의 움직임이 워낙에 민첩하고, 인간에겐 어울리지 않는 동물적인 움직임까지 곁들여서 종잡을 수가 없었다.

전혀 예상지도 못한 각도로 검이 휘둘러질 때는 정말 아찔했지만 그것도 칼날이 갑옷표면을 스쳐지나가는 수준으로 겨우 피해냈다.

‘얘들아, 내가 미끼가 될 테니까 자리를 옮겨서 엘리사의 뒤를 공격해. 이리스, 가능하다면 엘리사의 오른손을 쏴서 무기를 떨어뜨려.’

‘네, 레베카님. 조금만 더 버텨주세요.’

나는 내 사랑들에게 텔레파시를 보내는 와중에도 계속되는 공격을 전력을 다해서 피했다.

이대로 계속 엘리사의 시선을 묶어둘 수만 있다면 분명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너 지금 날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응? 웃기지마!”

엘리사는 갑자기 소리를 지르더니 더욱 맹렬하게 나를 공격했고, 그녀의 꼬리 끝이 벌어지더니 시뻘건 빔이 내 사랑들을 향해서 발사되었다.

엘카렌의 드론들이 사용했던 빔포에 비해서 구경은 훨씬 작았지만 그 위력은 경량 마법갑옷을 관통할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에리카의 가슴이 빔에 뚫려버리는 모습을 보자마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에리카는 그 자리에서 풀썩 쓰러졌고, 라우라와 이리스는 그녀를 확보하려고 했지만 계속되는 빔 공격에 그럴 수가 없었다.

“어때?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버리는 기분은?”

“닥쳐!”

“아직 두 년이나 더 남았네? 그렇다면 그 고통을 두 번 더 느끼게 만들어줄게.”

엘리사는 살벌한 목소리를 내더니 뒤로 멀찍이 뛰어올라 공중제비를 돌았다.

그러더니 꼬리로 이리스의 급소를 찌르고 라우라에게는 검을 휘둘렀다.

이리스는 어떻게든 버티면서 엘리사를 쏘려고 했지만 결국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고꾸라졌다.

하지만 라우라는 내가 던져줬던 검을 꼭 쥐고서 엘리사의 공격을 막아냈다.

“오호라, 이것 봐라?”

엘리사는 라우라의 반격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흥미를 느끼는 듯 했다.

그녀는 라우라를 상대로 마구잡이로 검을 휘두르면서 기술이 아니라 힘으로 찍어 누르려고 들었다.

난 라우라가 애써 시간을 끌어주는 사이에 서둘러 이리스와 에리카를 확보하여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

그리고 엘리사의 뒤에다 이리스의 마력저격소총을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엘리사는 오른쪽 허벅지에 총알을 맞았고, 그 충격에 허벅지의 근육이 터지고 뼈가 부러져 옆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라우라는 그 순간 엘리사의 목을 베어버리려고 했고, 나도 그녀의 몸에 총구멍을 더 뚫어주려고 했다.

하지만 엘리사는 꼬리를 이용해서 벌떡 일어나더니 그것을 지지대로 삼아서 왼발로 라우라를 걷어찼다.

순식간에 반격을 가한 엘리사는 자신의 강력한 발차기를 맞고 앞으로 넘어진 라우라의 목을 검으로 찔러버렸다.

라우라는 잠시 꿈틀거리다가 움직임을 멈췄다.

“하하하하! 고작 이런 실력으로 날 이겨보려고 했던 거야? 이봐, 레베카. 이 녀석의 시체라도 건지고 싶다면 내 가랑이 사이라도 기어가는 게 좋을 거다.”

엘리사는 식어가는 라우라의 몸을 짓밟으면서 나를 도발했다.

하지만 난 그녀의 싸구려 도발에 어울려줄 생각이 없었다.

지금은 침착하게 엘리사를 상대하면서 비장의 수를 들키지 않도록 시선을 끌어야한다.

“고작 전투노예들을 좀 죽였다고 허세를 부리다니, 네 수준도 참 하찮네.”

“뭐?”

“사생아들 수준이 다 그런 거 아니겠어? 근본도 없는 천한 것의 배에서 태어났으니 인간도 아닌 소모품들을 죽였다고 강한 척을 하고 그러지.”

나는 역으로 엘리사를 도발하고 나섰다.

평소에는 남들을 상대로 입에 담지도 않을 말을 서슴없이 뱉어냈다.

특히 노예를 물건처럼 취급하는 건 절대로 내 본심이 아니다.

하지만 내 연기실력은 그럭저럭 괜찮았는지, 엘리사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위대한 지도자님께는 정말 죄송스럽지만 네 년의 사지를 모두 잘라서 굼벵이처럼 만들어서 데려가야겠어.”

엘리사는 라우라에게 뺏겼던 장검을 다시 손에 넣고는 양손으로 현란하게 검을 휘두르며 폼을 잡았다.

그리고는 꼬리로 라우라의 목을 잡더니 내게 힘껏 던졌다.

이건 분명 눈속임이다.

내가 라우라를 받으려고 달려가면 엘리사에게 당해버릴 가능성이 높다.

라우라에게는 미안하지만 지금은 그녀를 받아줄 수가 없다.

나는 라우라의 몸이 날아드는 반대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엘리사는 그런 내 움직임을 보자마자 순간적으로 방향을 바꾸더니 나를 향해서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나는 무장드론으로 연막탄을 쏴서 또 다시 시야를 가리고, 마법추진기를 써서 천장까지 떠올랐다.

엘리사는 마법추진기의 소리를 듣고서 위로 힘껏 뛰어올랐고, 나는 무장드론을 그녀의 뒤로 보내서 풍압탄을 계속해서 쏘아댔다.

순간적으로 생성된 강풍에 엘리사의 몸이 공중에서 균형을 잃었고, 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마법추진기의 추력방향을 조작하여 그녀를 향해 돌진했다.

엘리사가 내 움직임을 알아차린 것은 이미 내 로켓펀치가 그녀의 복부를 강타한 뒤였다.

가공할 위력의 펀치에 얻어맞은 엘리사는 빠른 속도로 지면에 처박혔고, 나는 부들거리면서 일어나는 엘리사의 위로 돌진하여 깔아뭉갰다.

제법 큰 충격과 함께 바닥재의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었고,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발에 살덩어리가 밟힌 감각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실망감을 느끼며 엘리사를 찾았고, 구석에서 깨진 가면을 쓴 채로 터진 배에서 짓이겨진 내장을 줄줄 흘리고 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난 엘리사의 가면까지 재생되기 전에 서둘러 마력산탄총을 들고서 그녀를 향해 방아쇠를 계속해서 당겼고, 무장드론도 내 공격에 합세했다.

엘리사의 몸은 걸레짝처럼 너덜너덜해졌고, 인조마핵이 겉으로 드러났다.

그걸 본 나는 승리를 확신했지만 갑작스레 묵직한 충격을 받고서 멀리 날려가다 못해 벽을 뚫고 신전 밖으로 튕겨져 나가버렸다.

나는 서둘러 일어나서 신전 안으로 다시 들어갔고, 상급마물이 엘리사를 지키고 있는 모습과 마주했다.

놈은 여전히 자신을 공격하고 있는 기사들은 신경 쓰지 않고 엘리사를 보호하는 일에만 열중하는 것처럼 보였다.

“씨발!”

나는 절로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마력대포만 있었더라면 저 괴물을 끝장내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닐 텐데...

“발사!”

나는 베로니카 언니의 외침에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동안 보이지 않는다 싶었던 베로니카 언니는 어느새 마력대포부대를 끌고 왔고, 3문의 마력대포에서 발사된 기둥과도 같은 발사체가 상급마물의 몸을 꿰뚫었다.

상급마물은 고통스럽게 몸을 부들부들 떨었지만 어떻게든 버텨냈다.

그러나 이어지는 포격에 결국은 숨통이 끊어져 엘리사를 깔아뭉개고 말았다.

“해치웠나? 아차!”

나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마법주문을 무심코 내뱉었다가 서둘러 입을 닫았다.

하지만 그 저주받을 마법은 아주 잘 작동했고, 상급마물의 몸에 구멍이 뚫리더니 완전히 회복된 엘리사가 튀어나왔다.

하여튼 이 빌어먹을 주둥이가 문제다!

“엘리사, 이제 그만 포기해라. 이제 넌 한 명이고 우리는 충분히 많다.”

“개소리하지 집어치워! 내가 너한테 굽히고 글어갈 것 같아? 내가 너 따위 인간에게 꼬리를 말고 도망갈 것 같으냐고! 다른 새끼들은 몰라도 너만큼은 꼭 죽이고 말거다.”

엘리사는 지금까지 보았던 움직임 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베로니카 언니에게 달려갔다.

그 앞을 여러 명의 기사들이 막아섰지만 모두 간단하게 베어 넘겨졌다.

하지만 베로니카 언니는 꼼짝도 하질 않았다.

대체 뭘 믿고 그러나 싶었는데, 베로니카 언니는 결정적인 순간에 몸을 옆으로 피했고 언니의 바로 뒤에 가려져있던 마력대포가 엘리사를 향해 마력포탄을 발포했다.

엘리사의 마법방어막은 마력포탄의 충격량을 모두 흡수하질 못했고, 그녀는 포탄과 함께 저 멀리에 있는 벽에 꼴사납게 처박혔다.

그녀가 들고 있던 장검들은 주변으로 흩어졌고, 그녀의 금속꼬리도 절반가량이 끊어져서 바닥에 떨어졌다.

“우웩! 쿨럭, 쿨럭! 제기랄!”

엘리사는 입에서 피를 토하며 마력포탄을 옆으로 치워버렸다.

아직 힘이 제법 남아있는 듯 보였지만 회복속도는 더뎌졌고, 부서진 가면이 재생되는 속도도 마찬가지로 느려졌다.

‘얘들아, 부활했니?’

‘네, 레베카님.’

내 질문에 라우라와 이리스, 에리카 모두 동시에 생존신고를 했다.

하루 한 번 즉사를 면할 수 있는 치트스킬 덕분에 나는 내 사랑들이 죽어나가도 정신이 무너지지 않았다.

물론 그런 스킬을 써야하는 상황 자체가 끔찍했지만 그래도 완전히 죽어버리는 것보다야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세 사람은 일부러 죽은 척을 하고 있었는데, 내가 예전에 즉사면역스킬을 쓰는 일이 생기면 일단 계속 죽은 척을 하라는 명령을 내린 적이 있기 때문이다.

‘라우라, 에리카. 너희들 앞에 엘리사의 검이 떨어져있어. 내가 신호하면 그걸 들고 달려가서 엘리사를 공격해. 그리고 이리스, 네 마력저격소총은 지금 내가 들고 있으니까 다른 총기를 쓰도록 해.’

나는 내 사랑들에게 텔레파시로 명령을 내리고 엘리사에게 다가갔다.

엘리사는 다크엘프족 특유의 주황색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지만 무기를 상실하고 지친 상태라 그런지 바로 덤벼들지는 못했다.

“남들이 다 총을 들고 다니는 시대에 혼자 검으로 날뛰니까 그렇게 되는 거야. 어떻게 혼자 덤빌 생각을 다 했나 모르겠네.”

“빨리 날 죽여! 어차피 넌 우리들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잘 알고 있잖아.”

“아니. 난 널 죽이지 않을 거야.”

“더러운 수작 부리지 말고 얼른 죽여!”

엘리사는 의심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다급하게 외쳤다.

하지만 내가 구체적으로 무슨 짓을 하려는 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을 거다.

“싫어. 넌 차라리 죽는 게 나은 꼴을 당할 거야. 기대해도 좋아.”

나는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하다고 보고 내 사랑들에게 텔레파시로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이리스가 마력권총으로 엘리사의 무릎과 팔꿈치를 쏴서 자세를 완전히 무너뜨렸고, 라우라와 에리카가 검을 쥐고 달려왔다.

에리카는 심장을 찔렀고, 라우라는 깔끔하게 목을 베어버렸다.

엘리사는 목이 베어지는 순간까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긴 자기가 죽였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갑자기 살아나서 자신을 공격하면 정말 기분이 이상할 거다.

엘리사의 몸뚱이는 머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바닥으로 쓰러졌고, 주변에서는 환호성이 들렸다.

베로니카 언니는 우리에게 달려와서 한 명씩 안아주었다.

“다들 정말 고생 많았어. 시간을 많이 벌어줘서 고마워. 이제 엘리사를 구속...”

“내가 처리할게. 언니는 가서 쉬어.”

“하지만 법적으로는... 알았어. 전적으로 너한테 맡길게.”

베로니카 언니는 복잡한 심경이 담긴 표정으로 목과 몸이 다시 붙기 시작하는 엘리사를 내려다보다가 결국 그녀에 대한 미련을 버렸는지 자리를 떠나버렸다.

덕분에 나는 여유롭게 엘리사를 밧줄로 묶었고, 그녀의 가면을 벗겨서 가방에 넣었다.

이제 엘리사는 내가 멋대로 취급할 수 있는 전리품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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