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화 〉 15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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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무너지는 신전의 천장, 떨어진 구조물에 압사당하는 사람들,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먼지.
나는 예상치 못했던 사태에 깜짝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상급마물이 커다란 날개를 펄럭거리며 신전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았다.
상급마물이 지상에 착륙하여 크게 날갯짓을 하자 먼지가 모조리 사라졌고, 피해상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압사당한 사람들의 피가 건물잔해 사이에서 흘러나왔고, 그 주변으로 부상당한 사람들이 쓰러져있었다.
누군가는 그저 비명만 지르고, 누군가는 가족이나 친구, 애인을 찾았다.
난 그 사람들을 구해주려고 당장 뛰어가려고 했지만 베로니카 언니가 내 팔을 붙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내가 언니에게 놓으라고 소리를 치려다가 곧 이어지는 사태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상급마물은 크게 포효를 한 번 내지르더니 6개의 꼬리촉수를 휘둘러 주변에서 마력총을 쏘는 모험가들을 간단하게 찢어발겼다.
사람이 뼈와 살이 분리되는 수준으로 참혹하게 죽는 모습은 정말 끔찍했다.
그걸 본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치려고 했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상급마물은 쓰러져있는 사람들을 고의로 짓밟으면서 도망치려는 사람들에게 달려갔고, 10개의 등촉수 끝에 달린 집게발로 그들을 잡아다 8갈래로 갈라지는 아가리에 쑤셔 넣었다.
속도가 워낙에 빨라서 마치 거대한 진공청소기에 사람들이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상급마물의 아가리에 던져진 사람들은 울부짖으면서 분쇄되었고, 그들의 신체를 구성하고 있던 모든 것들이 갈기갈기 찢긴 채로 바닥으로 쏟아졌다.
몇 초 되지 않는 사이에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나는 몸과 마음이 마비되었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살아남았다는 기쁨을 누리던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허무하게 죽어버리는 상황은 마치 악몽이라도 꾸는 것 같았다.
“레베카, 정신 차려! 얼른 마법갑옷을 입고 사람들을 지켜야지!”
베로니카 언니는 양손으로 내 어깨를 잡고서 세차게 흔들었고, 난 언니를 따라서 서둘러 마법갑옷을 입었다.
언니가 아니었더라면 분명 바보처럼 멍하니 보고만 있었을 것이다.
“싸울 수 있는 자는 모두 적과 맞서 싸워라! 1초라도 더 버텨서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야 한다!”
베로니카 언니는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고, 무심코 도망가려던 모험가나 기사단 병사들의 총구가 상급마물을 향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신전 바깥을 지키고 있던 기사들이 안으로 들어와서 상급마물의 뒤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레베카, 너랑 이리스는 여기서 나랑 같이 싸우고, 라우라와 에리카는 피난민들을 안전한 곳으로 유도하도록 해.”
베로니카 언니는 우리에게 적합한 지시를 내리고는 마력소총을 상급마물에게 조준하고서 방아쇠를 당겼다.
나는 언니의 옆에 나란히 서서 상급마물을 공격했고, 이리스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마력저격소총으로 상급마물의 등촉수의 집게발을 노렸다.
이리스의 정확한 사격에 집게발에 붙들려 끌려가던 사람들이 겨우 목숨을 건졌고, 라우라와 에리카가 그 사람들에게로 달려가 서둘러 피신시켰다.
순식간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학살한 상급마물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총알세례, 그 중에서도 이리스의 공격에 화가 났는지 공격대상을 피란민에서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보려고 항전하는 사람들로 바꿨다.
상급마물은 8개의 다리로 빠르게 돌진하여 가장 가까이에 있던 기사들을 대가리로 들이받아서 높이 날려버리고 그들의 뒤에 있던 모험가들에게 맹독성 생체물질을 쏘았다.
기사들은 마법갑옷 덕분에 큰 부상을 면했지만 마법방어구에 의존하는 모험가들은 시커먼 액체에 뒤범벅이 되어서는 살점이 녹아내리는 고통에 피를 토하며 죽었다.
그리고 상급마물은 꼬리촉수를 휘둘러서 뒤에 있던 기사단 병사들을 공격하여 반 토막을 내버렸고, 기둥까지 후려쳐서 주변에 있던 사람들을 건물잔해에 깔려죽게 만들었다.
“마력대포를 끌고 와라! 마력총으로는 적을 제압할 수 없다!”
누군가의 다급한 외침에, 몇몇 기사들이 마력대포를 가져오기 위해서 전선을 이탈했다.
상급마물은 그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갑자기 날아오르더니 이탈 중인 기사들을 덮쳤다.
아무리 중량 마법갑옷이라도 몸길이가 20미터에 달하는 거체가 가하는 충격을 버텨내지 못했고, 결국 등촉수에 잡혀서 사지가 뽑혀버렸다.
나는 상급마물의 행동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지도창을 펼쳐서 주변을 살펴보았고, 신전 밖에 엘리사라는 이름이 빠르게 접근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엘리사가 지나가는 길에 있는 아군은 모두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고, 누구도 그녀를 막을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
“언니! 엘리사가 신전으로 접근하고 있어! 아마 녀석이 상급마물을 조종하고 있을 거야.”
“그렇다면 엘카힘을 상대할 때처럼 녀석을 제압하면 상급마물을 멈출 수 있겠네. 난 여기서 시간을 벌고 있을 테니 너희들은 가서 엘리사를 제압해.”
베로니카 언니는 내 등을 떠밀면서 말했고, 난 내 사랑들과 함께 서둘러 신전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엘리사가 신전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녀의 등장에 상급마물은 갑자기 얌전해졌고, 아군도 사격을 멈추고 재정비를 위해서 바쁘게 움직였다.
베로니카 언니는 모험가들과 부상자들에게 모두 대피할 것을 명령했고, 지금 이 자리에는 우리 일행과 기사들만 남아서 괴물들과 대치했다.
“하하하하! 약해 빠진 것들이 살려고 발버둥치는 꼴만큼 재밌는 것도 없지. 베로니카,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엘리사는 역시나 베로니카 언니가 알고 있는 그 엘리사가 맞았다.
베로니카 언니를 죽이려다 실패하고, 행방불명되었던 바로 그 엘리사가 가면쟁이가 되어 다시 나타난 것이다.
기하학적 무늬가 새겨진 하얀 가면을 쓴 엘리사는 키가 크고 늘씬한 다크엘프족이었다.
엘리사는 양손에 장검을 한 자루씩 쥐고서 요염한 자태로 걸어 들어왔고, 그녀가 골반을 좌우로 움직일 때마다 기다란 금속꼬리도 살랑살랑 흔들렸다.
그녀가 입고 있는 바디슈트 같은 옷은 온통 피로 물들어 있었고, 그녀의 무기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분위기만 봐서는 지금까지 만난 가면쟁이들 중에서 가장 개인의 전투력이 강해보였다.
나는 구도자의 등장에 잔뜩 긴장했지만 베로니카 언니는 당당했다.
“엘리사! 나에게 불만이 있다면 나만 죽여라! 무고한 사람들은 건드리지 말고!”
“하아, 이젠 널 죽이는 일에 별로 관심 없어. 엘레아노르 언니가 되살아났거든. 좀 차갑긴 하지만 말이야.”
“그럼 학살을 벌이는 이유가 무엇이냐? 대체 왜?”
“내게 새로운 삶의 길을 제시해주신 위대한 지도자께서 이 도시를 쓸어버리기를 원하셔. 겸사겸사 새로운 방식으로 만든 마물의 실전 테스트도 하고 있지.”
“이 정도면 충분하잖아! 도시의 주민들이 모두 다른 도시로 이주하면 너희들 목적이...”
“도시를 쓸어버린다는 건 단순히 건물을 무너뜨리고 불을 지르는 게 아니라 거기에 사는 사람들을 모두 죽인다는 뜻이야. 그리고 난 그게 너무 즐거워!”
“그렇다면 널 죽여야 이 사태가 끝나겠군.”
“푸하하하하! 네가 날 죽인 다고? 언니를 죽여 봤으니 동생은 어렵지 않다고 생각하나보네. 넌 날 죽일 수 없어. 내가 너보다 훨씬 강하거든. 언니를 생각해서 널 살려주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생각을 바꿔야겠다.”
엘리사가 말을 끝내자마자 상급마물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기사들은 상급마물을 상대로 교전을 개시했다.
마력대포가 없어서 승리할 가망이 없는데도 저렇게 용감하게 싸우다니 정말 대단했다.
“베로니카, 죽기 전에 남길 말은 없어?”
“엘레아노르는 네가 하는 일에 찬성하는 거냐?”
“아니. 언니는 다른 파벌이라서 사사건건 반대해. 하지만 안심하지는 마. 어쨌든 구도자이고 네가 생각하는 고리타분한 정의와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으니까.”
“엘레아노르는 그럴 사람이 아니야.”
“네가 언니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래? 언니의 마음을 짓밟고! 언니를 죽게 만들고! 언니를 언데드로 만들어버린 주제에!”
엘리사는 살벌하게 소리치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베로니카 언니에게 달려들었다.
검으로 중량 마법갑옷을 입은 사람을 공격하는 건 미친 짓이나 다름없지만 엘리사의 장검은 표면에 검은색 빛 같은 것이 둘러지더니 두부를 자르듯 간단하게 대형 마법방패를 베어냈다.
베로니카 언니는 뒤로 물러나면서 마력산탄총을 쐈지만 역시나 가면의 방어막에 가로막혔고, 엘리사는 다시 거리를 좁혀 들어서 장검을 빠르게 휘둘렀다.
마력산탄총은 물론이고 갑옷의 곳곳이 잘려나가서 언니의 몸이 보이기 시작했다.
언니는 다른 무기를 꺼내서 대응하려고 했지만 꺼내자마자 모두 베어졌고, 결국 언니는 주먹으로라도 대항하려고 했다.
그러자 엘리사는 춤을 추듯이 몸을 뱅그르르 돌리더니 꼬리로 베로니카 언니를 후려쳐서 벽으로 날려버렸다.
고작 10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만에 베로니카 언니는 제압되고 말았다.
중급마물을 상대로는 쉽게 승리를 따내던 사람이 저렇게 쉽게 당해버리다니...
“아, 너무 시시하네. 그럼 저건 나중에 처리하고 다른 녀석에게 관심을 줘야겠는 걸?”
엘리사는 베로니카 언니의 숨통을 끊는 대신에 나를 향해서 다가왔다.
나는 내 사랑들에게 텔레파시를 보내서 뒤로 멀찍이 떨어져서 엄호할 것을 명령했고, 겉으로는 태연하게 엘리사를 맞이했다.
“왜 베로니카 언니를 죽이지 않았지?”
“그야 언제든지 죽일 수 있으니까. 너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너희들 대장은 날 죽이는 걸 싫어하지.”
“맞아. 엘카힘은 널 보면 그냥 죽여 버리라고 했지만 난 위대한 지도자님 눈치가 보여서 그렇게는 못하겠어.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널 죽이고 싶지 않아.”
“왜지?”
“그야 넌 엘레아노르 언니랑 닮았거든. 그래서 베로니카가 널 끼고 돌았던 걸지도 모르겠네. 킥킥킥.”
엘리사는 기분 나쁘게 웃으면서 내게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녀의 이복언니에 대한 감정은 애정이 아니라 집착인 것처럼 보인다.
엘레아노르가 엘리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은 반응을 보였던 이유를 알겠다.
“네가 굳이 여기로 찾아온 목적이 뭐야? 사람들을 더 죽이려고?”
“널 데려가기 위해서지. 겸사겸사 베로니카를 때려눕혔을 뿐이고.”
“아, 그래? 날 데려가고 싶으면 죽여서 데려가. 난 너희들의 미친 짓에 어울리고 싶지 않으니까.”
“흐음... 아무래도 좀 맞아야 정신을 차릴 성격인 것 같네.”
엘리사는 갑자기 몸을 돌리더니 꼬리로 날 후려쳤다.
나는 가면의 방어막 덕분에 아무런 타격도 입지 않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고 들어온 엘리사의 검이 코앞에서 휘둘러졌기 때문이다.
그녀의 장검은 구도자의 가면에서 나오는 마법방어막 마저도 베어냈다.
나는 마법갑옷의 출력을 최대로 올리며 서둘러 회피했고, 어차피 공격을 막지도 못하는 거추장스러운 방패를 치트가방에 집어넣었다.
“보다시피 가면이 만능은 아니야. 내 꼬리는 막을 수 있어도 검은 절대로 막을 수 없어. 아, 제기랄. 날 귀찮게 하는 하루살이들이 많네.”
엘리사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엄호사격을 하는 내 사랑들에게 달려들려고 했지만 내가 무장드론을 소환하여 그녀의 뒤통수를 노리자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나는 그 사이에 무장드론을 추가로 소환해서 내 사랑들에게 배정했고, 엘리사는 일대일의 상황에서 다대일의 상황으로 바뀌자 무작정 달려들지 않고 거리를 유지하며 상황을 살펴보았다.
엘리사는 우리보다는 하늘을 떠다니며 뒤를 잡으려고 드는 무장드론들의 현란한 움직임에 신경 쓰고 있었다.
무장드론들은 엘리사에게 제압탄을 마구 퍼부었지만 그녀는 검을 휘둘러서 제압탄에서 쏟아지는 돌덩이를 가볍게 베어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높이 뛰어오르더니 빠른 속도로 기동하고 있는 무장드론 하나를 베어버리고 근처에 있던 무장드론을 꼬리로 쳐서 박살냈다.
남아있는 무장드론들은 빙결탄과 연막탄을 쏘아서 엘리사의 움직임과 시야를 차단하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엘리사는 빙판에서도 전혀 미끄러지지 않았고, 연막 속에서도 거침없이 움직여서 나머지 무장드론들도 순식간에 파괴했다.
드론이야 또 소환하면 그만이지만 아직 쿨타임이 다 돌지 않아서 당분간은 쓸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엘리사는 연막을 뚫고 나와서 이리스를 향해 돌진했고, 나는 그녀를 막기 위해서 전속력으로 뛰어갔다.
하지만 나와 엘리사의 움직임보다 이리스의 사격이 훨씬 더 빨랐다.
이리스는 천장에 붙어있는 커다란 장식물을 고정시키는 장치를 쐈고, 그것은 즉시 엘리사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워낙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서 엘리사는 피할 틈이 없어보였지만 그녀는 꼬리로 장식물을 올려치고 검으로 베어버렸다.
그렇게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지만 연기가 자욱하게 일어났고, 우리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연막탄을 쏘고, 화력을 집중했다.
방금은 연막을 쳐도 드론의 소리를 듣고 움직일 수 있었다면 지금은 사방에서 총알이 쏟아지고 있으니 소리만으로는 방향을 잡기 힘들 것이다.
그러자 엘리사는 아예 위로 뛰어올랐고, 꼬리로 기둥을 잡더니 한 바퀴 돌면서 만들어지는 반동을 이용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에리카를 향해 발차기를 날렸다.
에리카는 재빨리 도망쳤지만 그녀가 있던 자리가 움푹 파이면서 튀어나간 파편이 그녀의 머리를 가격하여 고꾸라뜨리고 말았다.
나는 에리카를 지키기 위해서 서둘러 그녀에게 달려갔다.
라우라와 이리스는 엘리사가 에리카를 죽이지 못하도록 연막탄을 쏴서 시야를 차단하거나 화염탄으로 길을 막고 제압탄으로 성가시게 만들었다.
덕분에 난 수월하게 에리카를 피신시킬 수 있었고, 다행히 그녀의 부상정도가 심각하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에리카를 더 안전한 곳으로 보내고 싶었지만 엘리사는 그럴 시간을 주질 않았다.
그녀는 내 뒤에서 꼬리를 휘둘러서 나를 옆으로 날려버렸다.
“끄아악!”
이건 내 입에서 나오는 비명이 아니다.
난 혹시나 에리카의 입에서 나왔을까 싶어서 엄청나게 무서웠다.
급히 고개를 들어서 확인을 해보니 다행히도 비명을 지른 사람은 에리카가 아니라 엘리사였다.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는 에리카의 왼손은 총에 맞았는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고, 왼손에 들려있던 장검은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내 앞에 뚝 떨어졌다.
나는 검을 주워서 라우라에게 던져주었고, 라우라가 검을 손에 쥐자 푸른색 빛이 났다.
사용자마다 빛의 색이 다른 걸 보면 마력 같은 걸로 작동하는 게 아닐까 싶다.
“너무 아파! 하지만 그게 기분 좋아! 으히히히. 아아... 누가 내 손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산채로 가죽을 벗겨버려야지. 큭큭큭.”
에리카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웃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가해자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는 금방 가해자를 찾아냈다. 바로 너덜너덜한 마법갑옷을 입고 있는 베로니카 언니였다.
“내가 분명히 너한테 무슨 일이 있어도 적의 숨통을 확실하게 끊어야 한다는 상식을 가르쳐줬는데 말이야.”
베로니카 언니는 한껏 여유를 부리면서 말했다.
언니는 우리와 싸우고 있는 엘리사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에서 마력소총을 쏴서 그녀의 왼손을 맞춘 모양이다.
“그래, 그랬었지. 내가 너무 오랜만에 널 만나서 감을 좀 잃은 모양이야. 네가 가르쳐준 대로 이번에는 널 확실하게 죽여줄게.”
엘리사는 박살난 왼손을 재생시키며 흉흉한 살기를 내뿜었다.
마치 지금까지는 놀아준 것뿐이라며 경고하는 것만 같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레베카, 기죽을 필요 없어. 엘리사의 화력은 절반으로 감소했고, 상급마물은 여전히 기사들과 싸우느라 바빠. 우리 5명이서 힘을 합치면 분명 빈틈을 찾아낼 수 있을 거야.”
베로니카 언니는 고맙게도 겁을 먹은 나를 격려해주었다.
덕분에 나는 보다 진지하게 엘리사를 마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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