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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세상에서 마음껏 살아간다-155화 (155/271)

〈 155화 〉 154화

* * *

우리는 전송실을 통해서 카르디아에서 리제르카로 넘어왔다.

아이리스는 워프기능이 너무 신기했는지 감탄사를 남발하며 좋아했다.

물론 그녀가 성인용품 코너를 보더니 저것들이 뭐냐고 물어볼 때는 정말 곤욕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맛있는 과자를 그녀의 입에 반강제로 물려서 입을 틀어막은 뒤에 서둘러 특수상점 밖으로 나왔다.

오랜만에 찾은 리제르카는 막바지로 피어오른 봄꽃과 파릇파릇한 나뭇잎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전경을 본 아이리스는 꺄르륵 웃으면서 도로를 뛰어다녔다.

“우와! 나 이렇게 많은 꽃을 보는 건 처음이야. 나 여기서 살고 싶어!”

“그건 일단 내 지인이랑 대화를 나눈 뒤에 결정될 일이니까 너무 앞서가지는 마.”

“응. 그 지인이라는 사람이 차기 영주님이라고 했었지?”

“맞아. 나보다 훨씬 신분이 높은 사람이지만 나름 친분이 있어.”

“너 정말 대단해! 그런데 엘레나는 나랑 친구가 되어주려고 할까?”

“엘레나는 착한 사람이니까 걱정 마.”

나는 아이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안심시켰다.

내 생각에 엘레나는 아이리스가 친구가 되어달라고 그러면 냉큼 받아줄 사람이다.

그렇지 않아도 또래친구가 없는 엘레나와 모든 게 낯선 아이리스는 서로에게 큰 힘이 되어줄 것이라고 본다.

뭐, 일단 알리시아가 내 부탁을 들어줘야 가능한 일이겠지.

“너희들은 어떻게 할래? 주변에서 놀고 있을래?”

“그게 좋을 것 같아요. 어차피 저택에는 들어가지 못하니까요.”

“알았어. 너무 멀리 가지는 말고.”

“네, 레베카님. 아이리스,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랄게.”

라우라는 아이리스를 포옹하면서 말했고, 이리스와 에리카가 그 뒤를 이었다.

아마도 다들 아이리스가 알리시아에게 맡겨질 게 분명하다고 예상하는 듯 했다.

물론 나도 그렇게 기대하고는 있다.

알리시아는 보기보다 내 부탁을 쉽게 거절하지 못하니 말이다.

“아이리스, 그럼 출발하자.”

“응!”

나는 아이리스의 손을 잡고서 이제는 완전히 익숙해진 길을 걸어갔다.

저택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서 들어선 각종 상점들은 아이리스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래서 난 아이리스를 위해 종종 멈춰 서서 그녀가 충분히 구경할 시간을 주었다.

“갖고 싶은 거 있어?”

“아니. 그냥 신기해서 그래.”

“구경 다 했으면 옷 사러가자.”

“옷? 아, 네가 사준다고 했었지. 얼른 가보자.”

우리는 함께 근처에 있는 옷가게로 들어갔다.

부족의 전통복장만 입고 살았던 아이리스는 세련된 디자인의 옷들을 보더니 정신을 차리질 못했다.

마치 놀이공원에 온 아이처럼 눈을 둘 곳을 좀처럼 찾기 어려워했다.

나는 솔직히 패션센스가 부족하니 점원에게 아이리스를 맡겼다.

점원은 적극적으로 아이리스를 코디해줬고, 나는 아이리스의 패션쇼를 구경했다.

아이리스는 귀여운 얼굴상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밝은 색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20벌이 넘는 옷과 10켤레의 신발 그리고 각종 모자나 핸드백 같은 것들을 구매했고, 그 중에서 가장 잘 어울려 보이는 옷으로 아이리스를 갈아입혔다.

“레베카, 날 위해서 이렇게 좋은 옷을 많이 사줘서 정말 고마워.”

“약속했으니까 당연히 해줘야지. 배는 안 고파?”

“조금 고프긴 한데...”

“그럼 이번엔 식당으로 가자. 내가 좋은 곳을 알고 있어.”

나는 예전에 엘레나와 처음 함께 식사를 했던 고급 레스토랑으로 아이리스를 데려갔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흠잡을 곳이 하나도 없이 훌륭한 요리는 그것들을 처음 맛보는 아이리스의 입맛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난 그 와중에 아이리스에게 식사예절을 가르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포크와 나이프를 올바르게 쥐는 법이나 음식을 깔끔하게 먹는 방법, 신분이 높은 사람 앞에서의 행동요령 같은 것들 말이다.

아이리스는 내가 하는 말을 곧잘 알아듣고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이 정도라면 식사예절이 엉망이라고 지적을 받지는 않겠지.

식사를 끝낸 우리는 잠시 커피와 차를 마시며 휴식시간을 가지며 수다를 떨다가 밖으로 나왔다.

거리에는 워낙에 인파가 많아서 아이리스의 손을 꼭 잡을 수밖에 없었는데, 아이리스는 그 단순한 행동을 참 좋아했다.

“레베카, 네가 손을 잡아주니까 꼭 언니 같아서 좋아.”

“그야 내가 너보다 나이가 훨씬 많으니까.”

“그럼 이제부터 언니라고 불러줄까?”

“지금 뭐라고 했니?”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아이리스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러자 아이리스는 부담스러웠는지 고개를 돌리고 머리를 긁적였다.

“레베카 언니라고 불러줄까 싶어서. 설마 싫어?”

“아니! 너무 좋아! 히히히.”

나는 아이리스를 껴안고서 뽀뽀를 퍼부었다.

여태까지 내심 바래왔던 일이 현실로 이루어지니 너무 기뻤다.

남들이 쳐다보든 말든 나는 내 감정에 솔직하게 굴었다.

“세상에 언니라는 말 하나로 이렇게까지 좋아하는 사람은 레베카 언니뿐일 거야.”

“그치만 너무 기분이 좋은 걸 어떡해. 아유, 귀여운 내 동생.”

나는 아이리스의 이마에 입을 맞춘 뒤에 다시 길을 걸었다.

이번엔 아이리스가 먼저 내 손을 잡았고, 나는 그녀와 미소를 주고받았다.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언제 봐도 으리으리한 알리시아의 저택부지에 도착했다.

문지기들은 나를 보자마자 반갑게 인사하면서 문을 열어주었고, 나는 곧장 정원을 가로질러 저택의 정문으로 향했다.

나는 알리시아를 상대로 사전에 약속을 잡지 않아도 되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방문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원래는 일정한 절차를 밟아야하고 몇 주를 기다렸다가 겨우 몇 분 정도만 만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가 저택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젊은 하녀가 환영인사를 건넸고, 우린 그녀의 안내를 받아서 응접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하녀에게서 알리시아가 손님을 맞이하고 있으니 여기서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다과를 대접받았다.

나는 이틈을 타서 아이리스에게 필요한 예법을 간단하게 가르쳐주었다.

그러자 아이리스는 내 말에 귀를 기울였고, 식사예절을 가르칠 때처럼 곧 바로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이런 적극적인 학습태도라면 깐깐한 알리시아를 만족시킬 수 있을 거다.

“아이리스, 적당한 긴장을 유지하도록 해. 너무 긴장을 많이 해도 안 되지만 너무 느슨해져도 실수를 하게 되거든.”

“응. 주의할게. 언니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 것 같네?”

“비슷한 경험이 많거든.”

나는 예전 세상에서 수많은 면접을 봤던 떠올리며 쓴 웃음을 지었다.

푼돈이나 주면서 수시로 야근이니 특근이니 부려먹기만 하는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서 그렇게 노력했었다니, 지금 생각하면 허무하기 짝이 없었다.

내가 잠시 지나간 날을 떠올리는 사이에 알리시아가 응접실로 들어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고, 아이리스는 나에게 배운 대로 예를 차렸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알리시아님. 그동안 평안하셨는지요?”

“언제나처럼 여러 가지 문제로 골치를 썩고 있지만 나쁘지 않다네. 자네는 잘 지냈는가?”

“저 역시 언제나처럼 몇몇 문제에 휘말리긴 했지만 그럭저럭 만족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니 다행일세.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로 날 찾아왔는가?”

“다름이 아니라 이 아이의 교육을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흐음... 자네가 노예가 아닌 사람을 데리고 다니는 건 처음 보는 군.”

알리시아는 내게 여러 가지 의미가 담긴 눈빛을 보내더니 아이리스에게로 눈을 돌렸다.

아이리스는 내가 말한 대로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알리시아와 대면했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아이리스라고 합니다.”

“나이는?”

“16살입니다.”

“마침 엘레나와 비슷하군. 공부를 하고자하는 목적은?”

“고향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입니다.”

“고작 그게 전부더냐?”

“네?”

“난 개인적인 야망도 없이 남에게만 헌신적인 사람에겐 관심 없다. 내 밑에서 먹고 자면서 공부를 하고 싶다면 목적을 다시 생각하는 게 보아라.”

알리시아가 하는 말에 아이리스는 조금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나에게 의존하는 태도를 보이는 대신에 대답을 요구하는 알리시아와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러더니 침을 한 번 꿀꺽 삼킨 뒤에 다시 입을 열어 대답했다.

“저는 고향사람들을 대표해서 그들을 보다 나은 길로 이끌고, 보호해주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어야하고, 그러한 능력은 충분히 배워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너는 고향사람들 모두의 위에 서겠다는 것이냐?”

“네! 단순한 봉사활동을 원하는 게 아니라 모두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자격을 원합니다.”

“내 조카보다 더 지도자의 자리에 어울리는 친구로군. 내가 오늘의 선택을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도록 해라.”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이리스는 알리시아의 인정을 받자마자 뛸 듯이 기뻐하며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러자 알리시아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리스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그리고는 다시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레베카, 지금부터 이 아이를 내 슬하에 거두어 엘레나와 함께 교육시키겠다. 허나, 후견인은 어디까지나 자네이니 그에 따른 책임을 충분히 져야할 것이야.”

“네, 알리시아님.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자네가 아이리스를 엘레나에게 소개시켜주게나. 방을 준비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테니 오늘 하루는 엘레나와 함께 자는 게 좋겠지.”

“정말 그래도 되겠습니까?”

“뭐가 문제인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네가 데려온 총명한 아이인데. 그러니 그 아이에 대해서 내게 부탁할 게 더 있다면 부담가지지 말고 말해보게나.”

“아이리스에게 신분증을 새로 발급해주시기 바랍니다.”

“그건 쉬운 일이지. 바로 조치를 취해주겠네.”

“다짜고짜 찾아와서 염치없이 드린 부탁을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스러운 조카와 백성들을 살려준 대가는 충분히 치러야하지 않겠는가? 나는 원한만큼이나 은혜를 잊지 않고 갚아주는 사람이라네. 더는 용건이 없다면 이만 가보겠네. 엘레나에게도 그 아이를 직접 소개해주게나.”

알리시아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는 응접실에서 먼저 나가버렸다.

저렇게 원한을 강조하는 사람과는 사이가 틀어지지 않도록 하는 게 좋겠지.

“휴우, 내가 땀이 다 나네. 아이리스, 기분이 어때?”

“아직 실감이 잘 나지 않지만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해. 다 언니 덕분이야.”

“내 덕이 아니라 아이리스, 네가 대답을 잘해서 그런 거야. 조금만 여기서 쉬다가 엘레나에게 가보자.”

“응. 그렇지 않아도 좀 쉬고 싶었어.”

나는 아이리스와 함께 조금 식은 차를 마시면서 달콤한 푸딩으로 기운을 보충했다.

뭔가 자식을 데리고 귀족사립학교에 면접을 보는 기분이 다 들었다.

“언니, 엘레나는 어떤 사람이야?”

“음... 조금 제멋대로에 가끔 무서운 귀족 아가씨이지만 가련하고 귀여운 소녀지.”

“언니는 엘레나를 좋아하나보다? 부러워라.”

“너도 그만큼 좋아하고 있으니 걱정 마.”

“진짜로?”

“그래. 내가 언제 그런 걸로 거짓말하는 거 봤니?”

“헤헤헤, 나도 언니가 좋아.”

아이리스는 헤실헤실 웃으면서 나를 꼭 끌어안았고,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응접실의 문이 활짝 열리고 엘레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레베카! 정말 오랜만... 그, 그 애는 누구야? 빨리 말해봐! 세상에, 이젠 아예 어린아이까지 건드릴 줄이야!”

엘레나는 내가 아이리스를 귀여워해주는 모습을 보자마자 살벌한 눈빛을 보내왔다.

마치 불륜현장을 목격한 아내처럼 나를 잡아먹을 기세였다.

그녀는 아이리스의 키가 작아서 나이보다 훨씬 어리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엘레나의 외침에 화들짝 놀란 아이리스는 황급히 내 곁에서 떨어져 다소곳이 앉았고 나 또한 그러했다.

잠깐, 난 그럴 필요가 전혀 없잖아? 난 당당하다고!

“진정해, 엘레나.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뭐? 새로운 노예가 아니야?”

“그래. 이 친구는 평민이고 앞으로 너랑 함께 알리시아님의 저택에서 지내면서 공부를 하게 된 아이리스라고 해. 너보다 한 살 더 많아.”

나는 아이리스를 엘레나에게 소개시켜주었고, 아이리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예의바르게 인사했다.

그러자 엘레나는 방금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워졌는지 빨개진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나,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미안해.”

“괜찮아. 내가 오해를 받을 만한 사람이긴 하니까. 들어와서 앉아.”

내가 웃으면서 손짓을 하자 엘레나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내 곁에 앉았다.

그리고는 나한테 바짝 붙어서 팔짱을 꼈다.

“레베카, 정말이지 네가 보고 싶었어. 너도 내가 보고 싶었어?”

“물론이지. 넌 내 소중한 동생인 걸.”

엘레나는 소중한 동생이라는 말에 순간 기뻐하다가도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 자신이 나에게 연애대상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실망한 것 같다.

괜히 토라진 엘레나는 아이리스에게로 관심을 돌렸다.

“아이리스, 어쩌다가 레베카를 만나게 되었니?”

“레베카 언니는 제 고향마을을 구해줬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세상을 알아갈 기회를 주기 위해서 알리시아님께 도움을 청하셨습니다.”

“잠깐만! 어, 어, 언니라고? 언니?”

“네, 오늘부터 그렇게 부르기로 했습니다.”

“나도 아직 언니라고는 하지 않는데... 흠흠, 아무튼 우리 이제부터 함께 지낼 친구니까 말 편하게 해.”

“으, 응. 고마워.”

아이리스는 어렵사리 말을 낮추며 엘레나가 웃으면서 내미는 손을 잡았다.

다행히 엘레나는 갑작스럽게 새로 생긴 친구가 마음에 든 것 같다.

“레베카, 오늘은 저택에서 자고 갈 거야?”

“아니. 아직 할 일이 남아서 그럴 여유가 없어.”

“그럴 줄 알았어. 대체 언제쯤이면 나랑 놀아줄 수 있는 건데?”

엘레나는 굉장히 실망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다며 체념하는 듯한 분위기도 느껴졌다.

조만간에 시간을 내서 엘레나와 일주일 정도는 제대로 놀아줘야할 것 같다.

“미안해. 뭔가 세상이 날 가만두질 않아서 말이야.”

“흥! 나라서 참아주는 거야. 다른 사람들 같으면 벌써 헤어지자고 했을 거라고.”

“대체 그게 무슨 말이야?”

“농담이야. 농담.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

엘레나는 누가 들으면 크게 오해할 말을 대뜸 뱉어버렸다.

나는 깜짝 놀라서는 미니맵을 보면서 주변에 누가 듣지나않았나 살펴보았다.

다행히 소리를 들을 법한 범위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엘레나, 제발 그런 위험한 말은 하질 말아줘. 내 심장이 버티기가 힘들어.”

“알았어. 그렇게 무서워할 줄은 몰랐네.”

“그리고... 내가 없는 동안 아이리스를 잘 부탁해. 평생 고립된 마을에서 살아서 모르는 게 많으니 조금 실수를 하더라도 이해해주면 좋겠어.”

“걱정 마. 상대방에게 아량을 베푸는 건 귀족으로서의 기본적인 자세 중 하나니까. 그리고 모처럼 친구가 생겼는데 당연히 잘해줘야지.”

엘레나는 약간 으스대면서 자신이 배운 덕목에 대해서 말했다.

나는 솔직히 그 모습이 조금 웃겼지만 겉으로 감정이 드러나지 않도록 꾹 참았다.

괜히 웃었다가 안 그래도 섭섭해 하는 엘레나가 삐치기라도 하면 골치가 아프니까.

“아이리스, 뭐든지 열심히 하면서 지내도록 해. 귀족의 저택이니 항상 인사를 잘하고 겸손하도록 해. 네가 해야 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잘 구분하도록 하고. 알았지?”

“응! 언니도 다음에 볼 때까지 조심해야 돼.”

“알았어. 걱정해줘서 고마워.”

나는 떠나기 전에 아이리스와 엘레나를 연달아 안아주고, 이마에 뽀뽀를 해준 뒤에 쉽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복도로 나와서 응접실 문을 닫고도 한참을 거기에 서 있던 나는 엘레나와 아이리스가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소리를 듣고는 겨우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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