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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세상에서 마음껏 살아간다-147화 (147/271)

〈 147화 〉 146화

* * *

인간마물의 습격 이후, 우리는 아쿨타리 부족의 생존자들을 돕기 위해서 당분간 마을을 떠나지 않기로 했다.

금방 끝날 일이 아니니 제법 오랫동안 지하마을에서 체류하게 될 것 같다.

엘리사가 훔쳐간 신성한 그릇이 계속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당장 내 눈앞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만큼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그리고 황제의 의중이 담긴 모험가길드 승급시험은 어차피 별로 내키지 않았던 일이니 그냥 반쯤 포기해버렸다.

요즘 내게 있어서 모험가길드의 가치는 까놓고 말해서 지도제공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모험가길드에서 지도를 보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긴 하지만 명예기사가 된 이상, 관공서에서 일정한 절차만 걸치면 아예 지도를 빌릴 수도 있다.

그래서 얼굴도 모르는 황제 때문에 모험가길드에서 쫓겨난다고 하더라도 아쉬울 건 없다.

물론 마을사람들을 돕는 일은 절대 쉽지가 않았다.

단순하게 힘이 필요한 일이야 마법갑옷을 쓰면 간단하게 처리되었지만, 온전치 못한 시신을 수습하는 건 고역이었다.

라우라는 아무런 문제없이 일을 척척 진행했지만 나와 이리스, 에리카는 주기적으로 쉬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우리가 마을사람들과 함께 수습한 시신들은 살아남은 소수의 무녀들이 일정한 장례의식을 거친 이후에 집단으로 화장되었다.

거의 1천명에 가까운 사람이 살던 마을이 지금은 2백 명 정도만 남았고, 그 중에서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어른은 소수였고 사지가 멀쩡한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가볍게는 손을 잃었고 심하게는 팔다리를 모두 잃었을 정도로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

그 결과 절대적으로 일손이 부족한 나머지 아이들의 힘까지 빌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신을 수습하는 일만큼은 누구도 맡기려들지 않았다.

다들 그건 어디까지나 어른이 맡아서 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이들이 먼저 시신수습을 돕겠다고 나서도 받아들이는 어른은 한 명도 없었다.

“얘들아, 이제 점심시간이니까 쉬었다가 일하자.”

나는 시간을 확인한 뒤에 내 사랑들을 데리고 일종의 대피소로 운영되고 있는 사원으로 향했다.

경비대 본부는 사람들을 먹이고 재울 공간이 부족하고, 족장의 저택은 전소되어서 사원이 최적의 대피소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족장의 저택에 있던 상급마물을 엘레아노르가 데려갔다는 것이다.

만약 놈이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있었더라면 난 당장 마을을 버려야한다고 사람들을 설득했었겠지.

엘레아노르와 그녀의 파벌인 질서의 추종자가 마을사람을 도왔던 건 날 위해서가 아니다.

그저 타이밍이 맞아 떨어졌을 뿐이니, 다음에 만나면 서로 전투를 벌일지도 모른다.

그녀가 베로니카 언니가 그리워하는 죽은 친구일지라도, 난 가면쟁이들의 사고방식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게 온건파는 과격파든 간에 하는 짓거리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특히 과격파에 속한 놈들은 대화고 나발이고 모조리 죽이는 것이 내가 만든 세상을 평화롭게 만드는 길일 것이다.

‘그나저나 가면쟁이 대장은 왜 나한테 그렇게 관심을 많이 가지는 걸까? 단순히 이세계인이라서 그런 건 아닐 거다. 분명 뭔가 더 기가 막힌 이유가 있을 게 분명하다. 예를 들자면 자기 하렘에 나를 추가하는 일이라든가...’

나는 쓸모없는 생각이나 하면서 계단을 올랐고, 사원이 가까워지자 사람들의 목소리가 간간히 들리기 시작했다.

본당 앞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분위기는 정말이지 우울하기 짝이 없었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잃고, 자신들의 몸도 성한 곳이 없으니 웃음이 나올 수가 없겠지.

난 아쿨타리 부족 사람들의 심정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지만 그들에게 함부로 힘내라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것만큼 무책임한 위로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묵묵히 그들에게 필요한 일을 해주는 것뿐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다들 힘들고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서로를 돕고 있다는 것이다.

팔이 멀쩡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의 손이 되어주었고, 다리가 멀쩡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기꺼이 발이 되어주었다.

난 그 모습을 보면서 이 마을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레베카! 마침 잘 왔어. 이쪽으로 와서 앉아.”

아마 생존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밝은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리스가 나를 향해서 손을 흔들며 반겨주었다.

보기에는 눈치가 없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다.

우리 모두 저 아이가 진짜로 아무 생각이 없어서 웃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아이리스 역시 남들처럼 슬픔과 고통으로 괴로울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은 사람들의 우울한 기분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서 억지로 활기차게 행동하며 미소를 지었다.

모두가 절망하는 대신에 한 사람이라도 내일의 희망을 노래하면 결국 모두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남은 인생을 열심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아, 이건 내가 지어낸 말이 아니라 에리카가 나에게 해준 말이다.

난 남들의 우울한 기분에 물들고 싶지 않아서 불필요한 대화를 피했던 사람이다.

“차린 건 별로 없지만 많이들 먹고 힘내.”

“고마워, 아이리스.”

우리는 마법갑옷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뒤에야 간이식탁 앞에 앉았다.

사람들이 많이 죽고, 주거건물들이 많은 손상을 입었지만 다행히 식량생산시설에는 피해가 없어서 이런 상황인데도 식단은 평소처럼 흠잡을 것이 없었다.

지난 이틀 동안 먹은 식사들처럼 이번에도 고기반찬의 비중이 제법 높았는데, 우울하고 슬플 땐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아이리스의 주장이 반영된 결과다.

비축된 고기가 얼마나 많은지는 모르겠지만 필요하다면 이리스와 함께 사냥을 해야겠다.

“아이리스, 네가 고생이 참 많아.”

“난 그냥 친구들이랑 같이 사람들에게 밥을 차려주는 게 전부인 걸. 시신을 수습하거나 무너진 건물을 치우는 힘든 일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

“내가 보기엔 급식도 만만치 않은 일이야. 대무녀님과 경비대장님은 어떠시니?”

“엄마는 다리를 잃어서 충격을 좀 받기는 했지만 자기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많다면서 금방 떨쳐내셨어. 하지만 그걸 보는 내 마음은 아직도 너무 아파. 그리고 제이슨 아저씨는 아직도 의식이 없어. 머리를 너무 심하게 다쳤었나봐.”

아이리스는 미소를 잃은 채 세실리아와 제이슨의 상태에 대해서 내게 말해주었다.

난 괜히 물어봤나 싶었는데, 아이리스는 금방 다시 밝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걸 보는 내 마음은 검게 타들어갔다.

“아이리스, 이쪽으로 앉아봐.”

“그래도 괜찮을까? 다들 별로 안 좋아할 거 같은데.”

“괜찮아. 걱정 말고 앉아.”

내 제안에 잠시 내 사랑들의 눈치를 살피던 아이리스는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내 허벅지 위에 살포시 앉았다.

에리카를 앉혔을 때도 느꼈었던 거지만 뱀파이어족 여자들은 정말 아담한 사이즈라는 생각이 든다.

하긴 평균키로 따지면 뱀파이어족 여자는 드워프족보다 작으니 당연한 거겠지.

“그런데 왜 앉으라고 했어?”

“그냥 너한테 맛있는 고기를 먹여주고 싶어서.”

“나 아직 밥을 안 먹은 걸 어떻게 알았데. 헤헤헤.”

“네 배에서 소리가 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거든.”

나는 아이리스에게 이것저것 맛있는 고기반찬과 쌀밥을 먹여주었다.

16살 먹은 소녀를 너무 어린 아이처럼 대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당분간은 그래도 된다고 생각한다.

아이리스는 내가 주는 대로 넙죽넙죽 잘 받아먹었고, 난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른 기분이 들었다.

내 사랑들은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아했지만 지금은 다들 부러워하는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레베카, 덕분에 잘 먹었어. 나 이제 친구들 도와줘야하니까 가볼게. 아, 모자라면 언제든지 말해.”

“그래,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나는 갑자기 내 품에서 떠나버린 아이리스를 향해서 아쉬움이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아직 더 먹여주고 싶었는데 말이다.

“레베카님, 아이리스가 그렇게 좋으세요?”

“귀엽잖아. 착하기도 하고.”

“저희들도 충분히 귀여운데 말이죠.”

“그래, 알았어. 한 명씩 순서대로 챙겨줄게. 그럼 라우라, 너부터 이리 와서 앉아.”

나는 아이리스가 떠나자마자 바로 질투심을 드러내는 라우라를 내 다리 위에 앉혔다.

다행인지 몰라도 라우라는 내가 쌈을 하나 싸주는 것만으로도 만족했고, 곧 바로 이리스에게 자리를 양보해주었다.

이리스도 역시 쌈 하나만으로 만족하더니 에리카와 자리를 바꾸었고, 에리카도 내가 싸주는 쌈을 맛있게 먹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뭔가 정신이 하나도 없는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미안할 정도로 말이다.

식사를 끝낸 우리들은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가 세실리아를 만나러 갔다.

세실리아는 원래 살고 있던 별관을 아이들을 위해서 개방했고, 본인은 우리가 머물렀던 숙소건물에서 지내고 있다.

우리가 그녀를 만나고자 하는 이유는 단 하나, 에리카의 요청 때문이다.

“대무녀님, 안에 계시나요?”

“네, 들어오세요.”

세실리아의 허락을 받고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니 의자에 앉아있는 그녀와 이불을 덮고 누워있는 제이슨이 보였다.

아이리스의 말대로 제이슨은 여전히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었다.

전신의 뼈가 다 부러지고 머리를 크게 다쳤으니 빨리 정신을 차리긴 어렵겠지.

세실리아는 정신은 멀쩡했지만 담요로 덮여있는 절단된 다리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만들었다.

“통증은 어떠세요?”

“이제 많이 가라앉았어요. 가끔 환상통이 느껴지긴 하지만 괜찮으니 걱정 마세요.”

세실리아는 반쯤 남아있는 허벅지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

힘든 상황에서도 밝은 표정을 짓고자하는 건 모녀가 꼭 닮은 것 같다.

“그렇군요. 식사는 제대로 하고 계시나요?”

“네, 아이리스가 저를 살뜰히 챙겨주고 있답니다. 지금까지 혼냈던 게 미안할 정도로요.”

“아이리스는 바깥에서도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덕분에 제때 밥을 얻어먹을 수 있죠.”

“평소에는 사고를 치다가도 진짜 필요한 상황에서 도움이 되는 걸 보면 자기 아버지의 피를 제대로 물려받은 것 같아요.”

세실리아는 창밖으로 보이는 아이리스를 향해 모성애가 담긴 눈빛을 보냈다.

난 그 모습을 보면서 두 사람이 살아남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대무녀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뭐든 말씀하십시오, 에리카님.”

“유물을 써서 모두를 오래된 의무에서 해방시켜드리고 싶어요.”

“그게 정말이신가요?”

“네, 모두와 대화를 나눈 끝에 내린 결론이에요. 여러분은 조상님들 아니, 좀비들을 통제할 수단을 잃었어요. 따라서 그것들을 모두 처리하지 않으면 언젠가 모두 죽고말거예요.”

에리카는 더 이상 좀비들을 조상님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것들은 조상님이 아니라 그저 되살아난 시체일 뿐이라는 걸 다른 사람도 아니고 대무녀 앞에서 확인시켜준 것이다.

세실리아는 조금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이내 체념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전통에 대한 고집을 부릴 수는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유물은 본당의 지하에 있는 봉쇄된 기도실에 보관되어있습니다. 원로무녀님들이 모두 돌아가셨고, 열쇠도 찾을 수 없으니 힘으로 열어야할 것입니다. 안내는 아이리스에게 부탁하시면 됩니다. 지금으로서는 저를 제외하면 유일하게 위치를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제가 책임지고 억지로 지상에 붙들린 영혼들을 저승으로 돌려보낼게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고 저에게 맡겨주세요.”

“조상님들을 잘 부탁드립니다, 에리카님.”

세실리아는 자리에 앉은 채로 에리카에게 고개를 숙이며 간곡히 부탁했다.

그녀 역시 우리와 함께 가고 싶은 마음이 역력해보였지만 현실적인 이유에서 포기한 듯 보였다.

우리는 세실리아가 머무르는 숙소에서 나왔고, 그녀의 말대로 아이리스에게 목적지까지 안내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아이리스는 아주 적극적인 자세로 우리를 본당의 지하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규칙적으로 마법으로 작동하는 등이 달려있어서 전혀 어둡지 않았다.

봉쇄된 기도실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있어서 금방 도착했다.

“바로 여기야. 열 수 있겠어?”

“음... 일단 시험해봐야겠지.”

나는 치트가방에서 마법갑옷을 꺼내 입고 힘으로 돌로 만들어진 문에 달려있는 자물쇠들을 모조리 다 뜯어냈다.

하지만 어느 방향으로 밀어도 문이 꿈쩍도 하질 않았다.

뭔가 특별한 잠금장치가 문을 꽉 붙잡고 있는 것 같다.

“아이리스, 아무래도 이거 부숴야할 것 같은데?”

“마음대로 해. 어차피 유물을 쓰고 나면 여기도 별로 필요 없을 테니까.”

“나중에 너희 어머니께 잘 말해주렴. 다들 뒤로 물러나.”

아이리스의 허락을 받은 나는 발로 문을 힘껏 걷어찼지만 약간의 흠집만 날 뿐이었다.

그렇다면 역시 그 방법 밖에 없겠네.

나는 주먹을 꽉 쥔 상태로 오른팔에 장착된 마법추진장치를 작동시켜 발차기보다 훨씬 강력한 위력을 가진 로켓펀치를 내질렀다.

그러자 커다란 충격음과 함께 문에 구멍이 뚫렸고, 먼지가 자욱하게 일었다.

“우와! 그거 진짜 멋지다!”

“그렇지? 아직은 세상에서 나만 쓸 수 있는 기술이야.”

아이리스는 박수까지 쳐가면서 내 로켓펀치에 대한 감상을 남겼고 난 어깨가 으쓱해졌다.

나는 손을 구멍 뒤로 뻗어서 몇 가지 잠금장치를 박살냈고, 곧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그리고 우리의 눈앞에 화려한 의자가 나타났고, 그것의 맨 위에 검은색 수정구가 장착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수정구에 분석스킬을 써서 ‘아쿨타리 왕조의 마지막 소원’이라는 이름을 알아냈다.

그리고 광역스킬인 언데드 생성 스킬과 언데드 통제 스킬, 언데드 파괴 스킬과 사용자에게만 적용되는 생명력 흡수 스킬도 확인했다.

생명력 흡수 스킬은 보통 사람이 쓰면 곧 죽음으로 이어질 정도로 강력한 편이었지만 에리카가 가지고 있는 재생력 강화 스킬의 스킬레벨이 충분히 높고, 내가 미리 챙겨준 고속회복캡슐이 있으니 충분히 상쇄가 가능하다.

또한 아쿨타리 왕조의 직계혈통만 사용할 수 있다는 조건과 함께, 이제 사용횟수가 딱 한 번 남아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에리카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그걸 마지막으로 수정구는 완전히 기능을 상실할 것이다.

“에리카, 준비됐니?”

“네, 그럼 시작할게요.”

에리카는 거리낌 없이 왕좌에 앉아서 정신을 집중했다.

난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에리카가 허공에 터치를 하듯이 손가락을 부드럽게 움직이는 것을 보면 뭔가 일이 진행되고 있는 건 확실했다.

곧 수정구에서 화려한 빛이 뿜어져 나왔고, 에리카의 표정은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하지만 내가 예상했던 대로 그녀의 생명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고, 그 어떠한 저주도 내려지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수정구가 내뿜던 불빛이 사라졌고, 검은색 수정구는 가루가 되어 사라지며 자신의 최후를 고했다.

이로서 오랜 세월 동안 이어져온 저주가 말끔하게 사라졌고,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후우, 이제 끝났어요. 이렇게 쉬울 줄 알았더라면 진작할 걸 그랬... 꺅!”

에리카는 대수롭지 않다는 태도를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려서 앞으로 넘어지려고 했다.

그래서 난 서둘러 손을 뻗어서 에리카가 넘어지기 전에 그녀의 허리를 잡아주었고, 조금 놀란 그녀를 공주님처럼 안아들고서 기도실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수고했어, 내 사랑.”

나는 에리카에게 진하게 키스를 해주며 그녀를 치하했고, 라우라와 이리스도 에리카의 이마와 볼에 뽀뽀를 해주었다.

그러자 에리카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면서도 정말 행복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난 그 모습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심장이 멈출 것만 같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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