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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세상에서 마음껏 살아간다-145화 (145/271)

〈 145화 〉 144화

* * *

지도창을 통해서 확인한 결과, 족장 쪽에서 보낸 사람들은 사원뿐만 아니라 경비대 본부에서도 소란을 일으켰던 것으로 보였다.

그쪽으로 정찰드론을 날려서 상황을 보니, 사원과는 달리 본격적으로 물리력이 행사하려다 경비대에 진압된 것이 분명했다.

난 지금 이 상황이 선뜻 이해가 되질 않았다.

잠입에 대한 항의라면 이런 식으로 못 배워먹은 놈들을 우르르 보낼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직함을 가진 사람을 보내는 게 더 확실한 대처일 텐데 말이다.

그리고 만약 단순히 화풀이가 목적이었다면 마력총 같은 제대로 된 무기를 쥐어줬어야 했을 텐데 고작 몽둥이라니 뭔가 이상하다.

그렇다면 족장은 함께 있던 대무녀와 경비대장을 갈라놓아서 합심을 하지 못하도록 유도하고, 그 틈을 타서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려는 게 아닐까?

“라우라, 족장의 이름이 분명 레이놀드였지?”

“네, 레베카님. 정확히는 레이놀드 마실라스에요.”

“어디보자...”

나는 지도창에서 레이놀드 마실라스라는 이름만 뜨게 만들고 열심히 눈을 돌려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놈을 지도창에서 발견했는데, 놈이 향하는 곳은 나와 에리카가 아이리스를 따라서 신성한 그릇을 보러갈 때 썼던 바로 그 문이었다.

필터를 해제하니 족장 주변으로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좀비들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사상자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족장이 신성한 그릇을 노리고 있어. 가장 비싼 물건부터 팔아먹을 작정인가본데?”

“어떻게 하시겠어요?”

“당연히 가서 막아야지. 그게 카론의 아이들 손에 넘어가서 좋을 건 하나도 없으니까. 다 함께 가도록 하자.”

나는 내 사랑들과 함께 뒷문으로 나갔고, 치트가방에서 마법갑옷을 꺼내서 갈아입었다.

그리고 즉시 출발하려고 했지만 갑자기 아이리스가 우릴 막아서더니 작은 구슬 같은 것들을 내밀었다.

“이거 가져가!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조상님들의 공격을 받지 않을 수 있어.”

“고마워. 이제 대무녀님께 가서 우리가 뭘 하러 가는 지 말씀드리도록 해. 그리고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면 무조건 도망가서 숨어. 알았지?”

“응. 다들 조심해.”

“그래. 일을 깔끔하게 해결하고 올게.”

우리는 아이리스를 뒤로하고 족장을 막기 위해서 전속력으로 뛰어갔다.

마침 길가에 사람들이 별로 없었고, 갑자기 튀어나와도 점프해서 간단하게 피해버렸다.

철문은 족장의 부하들이 지키고 있었는데, 모두 마력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놈들은 우리를 보자마자 경고도 없이 무의미한 총질을 하기 시작했다.

꼴사나운 폼을 잡아가면서 총을 쏘는 걸 보니 화살보다 강한 마력권총의 위력에 심취한 나머지 그것보다 훨씬 강력한 존재에게 시비를 건다는 사실을 망각한 모양이다.

우리는 직접 상대할 필요성을 느끼질 못했고, 각자에게 배정된 무장드론들이 알아서 대응사격을 가해서 모조리 쓸어버리도록 했다.

그 사이에 나는 문을 열었고, 다 함께 그 너머로 들어가서 밑으로 뛰어내렸다.

큰 충격이 발생하기는 했지만 뛰어내려도 안전한 높이라서 다들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우리들의 제법 요란한 등장에도 근처에 있는 좀비들은 아무런 관심을 보이질 않았다.

아이리스가 준 마법구슬 덕분에 불필요한 교전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길을 막는 좀비들을 일일이 비켜서게 만들 수는 없어서 무장드론이 쏘는 풍압탄으로 날려버리면서 뛰어갔다.

다행히 좀비들은 공격을 받아도 우리를 적대하지 않았지만 사원에 가까워지자 곳곳에 숨어있던 족장의 부하들이 우릴 공격하기 시작했다.

“얘들아, 여긴 너희들에게 맡길게. 라우라, 지휘를 부탁해.”

“네, 레베카님!”

나는 라우라의 우렁찬 대답을 들으며 마법추진기를 작동시켜 적들이 구축한 방어선을 간단하게 넘었다.

그리고 내 사랑들의 맹렬한 반격에 적들이 죽어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반쯤 열려있는 본당의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갑작스러운 나의 등장에 어느 노인이 놀라서 뒤로 나자빠졌고, 그의 부하들은 나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난 놈들이 신성한 그릇이 있는데도 사격하는 모습에 조금 놀라긴 했지만, 그것이 자체적인 방어막을 가지고 있어서 모든 총격을 막아내는 모습을 보고 안심했다.

“흥! 하찮은 공격이군.”

난 언젠가 한 번 써보고 싶었던 대사를 내뱉으며 잔뜩 겁에 질린 족장 레이놀드에게 유유히 다가갔다.

실물로는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이미 사진을 통해서 제대로 얼굴을 익힌 데다 지도창에 분명히 그의 이름이 표기되어 있어서 다른 사람과 착각할 수가 없었다.

키는 뱀파이어족 남자답게 큰 편이지만 체격은 별로 크지 않고 전체적으로 깡말라서 볼품이 없었다.

“뭣들 하느냐! 빨리 죽이지 않고!”

족장은 지금 상황파악이 제대로 되질 않는 모양이었다.

부하들의 공격이 나에게는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때도 됐는데 말이다.

내가 족장에게 충분히 가까이 다가가자 결국 사격이 멈췄고, 난 추악한 노인의 멱살을 잡고 번쩍 들어올렸다.

“지금부터 묻는 말에만 대답해라. 카론의 아이들이 왜 신성한 그릇을 원하고 있지?”

“감히 족장인 내게 이런 행패를 부리다니! 도둑질을 한 것도 모자라서... 으아악!”

나는 상황파악이 너무 느린 족장을 위해서 그의 팔을 간단하게 분질렀다.

족장은 숨이 넘어갈 듯이 소리를 질렀지만 여전히 나를 향해 특유의 표독스러운 눈빛을 거두지 않았다.

“다짜고짜 노인의 팔을 부러뜨리다니, 기본적인 예의도 없는 년이로구나!”

“지랄하고 있네. 어젯밤에 자다가 뒈지지 않은 걸 후회하게 만들어주기 전에 입조심 하는 게 좋을 거다.”

나는 족장의 반대쪽 팔도 손쉽게 부러뜨리며 그를 겁박했다.

족장은 다시 한 번 죽어라 비명을 질렀고, 더는 나를 향해 거만한 표정을 짓지 못했다.

그의 추악하게 늙은 눈동자 너머에서 죽음의 공포가 느껴졌다.

“그만! 이제 그만! 어흐흐흐.”

“다시 한 번 묻겠다. 카론의 아이들이 신성한 그릇을 원하는 이유가 뭐냐?”

“질 좋은... 실험체를 대량으로... 으으윽! 양산하기 위해서...”

족장의 입에서 힘겹게 나온 말은 내가 뻔히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다.

혹시나 싶어서 물어봤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럼 다음으로 중요한 걸 물어봐야지.

“엘리사는 어디에 있지? 그 여자의 목적은?”

“그 사람은 모험가... 끄아아아악!”

“뭐, 뭐야?”

나는 갑자기 몸을 기괴하게 비틀면서 괴성을 내지르는 족장을 보며 흠칫하고 말았다.

족장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놈의 부하들도 모두 똑같은 증상을 보이면서 소리를 질러대는 탓에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레베카님! 적들의 상태가 이상해요!’

‘나도 지금 보고 있어. 일단 내가 있는 곳으로 합류하도록 해.’

‘네, 지금 바로 갈게요.’

나는 급히 텔레파시를 보낸 라우라에게 명령을 내린 뒤에 스마트폰을 꺼내서 족장의 상태를 동영상으로 찍었다.

남이 고통 받는 모습이 즐거워서 기념품으로 남길 생각이 아니라 내가 족장을 죽이지 않았다는 증거로 삼기 위해서다.

족장의 몸에서는 급격한 변형이 일어났고, 나는 한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우선 피부가 갈라지면서 시커먼 생체물질이 튀어나와 옷을 녹임과 동시에 몸을 뒤덮어 갑각을 형성했고, 부러진 팔이 순식간에 회복되었으며, 손톱과 발톱이 날카롭게 자라났다.

그리고 등이 찢어지면서 6개의 촉수가 힘껏 튀어나와 생체물질을 뚝뚝 흘렸고, 꼬리뼈가 몸 밖으로 튀어나오더니 그것과 피부 사이에서 2개의 채찍꼬리가 자라났다.

마지막까지 멀쩡하던 얼굴은 극한의 고통과 공포로 일그러졌고, 곧 목이 이상한 각도로 꺾이더니 마물 특유의 주둥이가 갈라진 대가리가 사방으로 피를 흩뿌리면서 솟아올랐다.

심하게 말랐던 족장의 몸은 근육이 급격하게 팽창하여 체격이 커졌고, 칼 날이 붙어있는 팔 한 쌍이 더 자라나서 바닥을 긁어댔다.

거의 변형이 끝난 족장이었던 괴물은 꿈틀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기록은 이만하면 됐고, 싹 죽여 버려야지.”

나는 동영상을 저장한 뒤에 스마트폰을 치트가방 안에 넣었다.

그리고 마력산탄총을 꺼내들고 방금 전까지 추하게 늙은 족장의 머리와 흉측한 마물의 대가리를 순서대로 날려버린 뒤에 몸을 밟아서 터뜨렸다.

난 그걸로 끝내지 않고 주변에 있는 인간마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박살을 내버렸다.

단순한 사격으로는 잘 죽지를 않으니 마력산탄으로 대가리를 날려버린 뒤에 발로 밟거나 방패로 내리찍어서 끝장을 냈다.

“바깥에서 총성이 들리네. 얼른 합류해야지.”

나는 서둘러 바깥으로 나갔고, 내 사랑들의 전투를 도우려고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급한 상황이 아니라서 굳이 도와줄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인간마물들은 좀비의 파도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고, 이리스가 여유롭게 저격을 해서 숨통을 끊고 있었다.

놈들은 여전히 우리가 받은 것과 같은 마법구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였지만 이미 인간이 아닌 괴물로 변해버려서 그런지 혜택을 받지 못했다.

좀비의 내구력으로는 인간마물의 매서운 공격을 도저히 버티질 못했지만 어마어마한 물량은 그 단점을 극복하고도 남았다.

사람의 이빨로는 뚫을 수 없는 갑각인데도 좀비들은 무작정 물고 늘어졌다.

맹독성 생체물질에 몸이 녹아내려도, 머리만 남았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근성 하나만큼은 배울만한 것 같다.

“방금 그게 마지막이지?”

“네, 마안으로 확인해보니까 더는 살아있는 인간마물은 없어요.”

“수고했어. 그런데 사람들이 한순간에 마물로 변하는 건 자연스러운 상황은 아닌 것 같아. 족장이 엘리사에 대해서 말하려고 할 때 변하기 시작한 것을 보면 분명 녀석이 인위적으로 조작했을 게 분명해.”

나는 내가 보고 겪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악마기생충에 감염되었을 때, 잠복기가 있다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숙주의 몸에 변화가 생기는 건 비정상적인 일이다.

아마도 엘리사가 족장과 접촉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패거리들을 감염시켰고, 자신의 정체나 위치에 대해서 누설될 것 같으면 자동으로 변형을 일으키게 만들었겠지.

본래 마물은 제대로 변형하려면 충분한 먹이가 필요한데도 인간마물은 그런 조건이 없는 것을 보면 앞으로 상상 이상으로 심각한 일이 발생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인간을 마물로 만드는 방법을 만든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런 식으로 발동조건을 설정해두다니, 기술발전 속도가 너무 빠른 것 같다.

“혹시 사원을 찾아온 그 사람들도 이미 감염된 게 아닐까요?”

에리카가 떨리는 목소리로 하는 말에 우리 모두가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분명 그 녀석들도 족장의 부하들이니 이미 감염된 사람일지도 모른다.

나는 황급히 지도창을 펼쳤고, 에리카가 우려했던 일이 이미 벌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말았다.

지도창에 표기된 무고한 이름들이 빠르게 지워지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모두 죽어버릴 지도 모른다.

“최대한 빨리 돌아가자! 얼른!”

우리는 전속력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 마을로 향하는 문을 통과했다.

이미 마을 전체에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인간마물의 괴성이 가득했고, 곳곳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정찰드론으로 상황을 확인해보니 인간마물들은 사원, 경비대 본부, 족장의 저택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흩어져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고 있었다.

쉽사리 우선순위를 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광범위한 학살현장에 갑자기 던져지니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정신 차리자! 한 명이라도 더 살려야만 해!

“라우라, 이리스. 너희들은 경비대 본부로 가. 우리들은 사원으로 갈게. 가다가 눈에 보이는 마물은 전부 죽이도록 해. 지금은 주요시설을 방어하고 그쪽으로 피난민들을 유도하는 게 최선이야.”

내가 하는 말에 다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즉시 행동으로 옮겼다.

나는 에리카를 데리고서 사원으로 향했다.

다른 사람들보다도 아이리스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첫인상은 영 별로였고, 친분이 깊어질 시간도 적었는데도 아이리스가 죽을까봐 너무 걱정되었다.

“다 비켜!”

나와 에리카는 죽은 사람들을 뜯어먹다가 우릴 향해 달려드는 인간마물들을 향해서 마력산탄을 쐈다.

그리고 무장드론들을 이용하여 풍압탄을 난사해서 놈들이 제대로 일어서지 못하게 만들거나 불이 난 곳에 빙결탄을 쏴서 화제를 진압했다.

인간마물들의 마력산탄에 맞아서 몸이 터져나가고, 풍압탄에 날려가는 와중에도 미친 듯이 괴성을 내지르며 동료들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자 사방에서 우르르 달려드는 발소리가 들렸고, 지붕과 골목길에서 모습을 드러낸 인간마물들이 한꺼번에 나와 에리카를 덮치려고 했다.

나는 에리카를 데리고서 마법추진기를 작동시켜 높이 떠올랐고, 무장드론으로 우리가 있던 자리에 충분한 양의 제압탄을 쐈다.

수많은 인간마물들이 제멋대로 엉킨 채로 꼼짝도 하질 못했고, 난 거기다 빙결탄을 쏴서 완전히 얼음으로 뒤덮었다.

마물도 어쨌든 호흡을 해야 살 수 있는 생물체이니 저 상태로 방치하면 분명 질식사를 할 것이다.

문제는 아직 길을 막는 인간마물들이 제법 많다는 사실과 여전히 사람들이 빠르게 죽어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생명의 불꽃이 꺼져가는 지도창을 보면서 무력함을 느꼈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사람이라도 구조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내가 슈퍼히어로는 아니라도 힘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니까.

나는 에리카와 함께 우릴 방해하는 인간마물들을 침착하게 처리하면서 그리 멀리 떨어져있지 않은 사원으로 다가갔다.

마력산탄으로 쏘고, 방패를 휘두르고 주먹을 내지르면서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들을 죽이고, 또 죽인 끝에 사원의 입구에 도달할 수 있었다.

나는 에리카를 안고서 마법추진기를 작동시켜 순식간에 본당 앞에 도달했고, 그곳에서 벌어진 참상을 목격했다.

우리에게 늘 친절했던 무녀들의 시신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심하게 훼손되었다.

이미 인간마물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미니맵으로 생존자를 확인했지만... 아무도 없었다.

“씨발!”

나는 욕을 하면서 애꿎은 기둥을 발로 걷어차고 들고 있던 방패를 바닥에 내던졌다.

너무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고, 아무도 구해주질 못해서 너무 미안했다.

조금만 더 빨리 왔더라면 한 명이라도 구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르는데...

나는 주변에 있는 시신들 중에서 아이리스나 세실리아를 찾아보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엄두가 나질 않았다.

이제 지도창에는 나와 내 사랑들을 제외하면 살아있는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질 않았다.

마침 누군가 내게 말을 걸지 않았더라면 난 아마도 주저앉아서 엉엉 울었을 것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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