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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세상에서 마음껏 살아간다-135화 (135/271)

〈 135화 〉 13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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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나흘 동안 콘라드의 집에서 지내면서 종종 프랑카로 돌아가 로베르트의 생일파티와 엠마의 결혼식에 참석하거나 푹 쉬는 시간을 가졌다.

로베르트에게는 중량 마법갑옷을 입은 기사모형을 생일선물로 주었는데, 역시나 남자애들은 이런 장난감을 좋아했다.

내 선물을 받고서 진심으로 기뻐하면서 가지고노는 로베르트 보고 있자니 조카에게 선물을 사주는 심정이 뭔지 알 것 같았다.

앞으로도 로베르트가 건강하게 자라서 베로니카 언니를 행복하게 해주면 좋겠다.

그리고 엠마의 결혼식에 참석했을 때는, 하객들 틈에 조용히 앉아서 가끔씩 박수를 치다가 엠마가 힘껏 던진 부케를 얼떨결에 받아버렸다.

이 세상에서는 부케를 받으면 슬하에 자식이 많이 생긴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데, 나랑은 아무런 관련도 없는 미신이라서 별 느낌이 없었다.

그래도 버리기는 아까우니 유리상자에 넣어서 밀봉한 뒤에 치트가방에 집어넣었다.

내 사랑들은 내가 부케를 받았다는 말에 다들 나를 향해 묘한 시선을 보냈고, 내가 부케를 보여주자 거기에 푹 빠져서는 헤어 나오질 못했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내 사랑들과 함께 카르디아에 있는 도서관을 찾아가서 아쿨타리에 대한 정보를 모았다.

아쿨타리는 372년 전에 지금의 인류연합제국을 상대로 무려 8년에 걸친 끈질긴 저항을 하다가 멸망한 도시국가이자 유목민들의 중심지였다.

카르디아의 북동쪽 숲에 있는 지하유적은 아쿨타리가 인류연합제국의 침공에 대비하여 자신들의 도시 바로 밑에 만든 거대한 지하도시라고 한다.

전쟁을 하는 내내 증축을 했고, 곳곳에 위험한 함정이 설치되어 있는데다, 각종 위험한 괴물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내부구조를 정확하게 파악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한다.

그동안 모험가길드에서 작성한 지하유적 지도는 파편화되어 있어서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문제는 도서관의 역사책을 모두 찾아봤는데도 우리가 알아낸 건 이게 전부라는 것이다.

아쿨타리의 역사나 멸망과정에 대해서 대략적으로나마 정리한 역사책조차 하나도 없었다.

작은 나라라서 역사가들이 흥미를 가지지 않은 탓인지, 아니면 일부러 은폐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렇다고 드미트리가 다른 모험가길드 지부에 요청한 뱀파이어 부족들에 대한 자료를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아깝다.

그래서 오늘은 콘라드의 집에서 아침식사를 먹자마자 지하유적으로 출발했다.

이미 필요한 물건들과 물, 식량은 충분히 보충해서 가기 전에 따로 들를 곳은 없었다.

우리는 직접 말을 타고 가는 대신에 모험가길드에서 빌려준 마차를 타고 갔다.

지하유적에 얼마나 머물러야 하는지 모르니 말들과 세르자를 데려갈 수는 없었다.

에리카는 물론이고 라우라와 이리스도 자신들의 말과 오랫동안 헤어져야하는 걸 몹시 아쉬워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인지라 말들을 카르디아에서 가장 좋다는 마구간에 맡겨서 작게나마 아쉬움을 달랬다.

그리고 세르자는 모험가길드 소속인 맹금조련사에게 맡겨서 재활훈련을 시키기로 했다.

이건 에리카의 부탁이었는데, 그녀는 세르자가 날개는 다 나았지만 스스로 날 생각을 하질 않아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었다.

세르자는 에리카와 헤어지는 걸 싫어했지만 녀석의 미래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나저나 난 언제쯤 이 녀석과 친해질 수 있을까?

내 먹이는 잘만 받아먹는 주제에 나에 대한 경계를 풀 생각이 전혀 없었다.

확 그냥 튀겨먹어 버릴까하는 생각을 몇 번 했었지만 에리카를 생각해서 꾹 참았다.

여전히 어수선한 도시를 떠난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가볍게 수다를 떨었다.

어떤 일에 대한 대책이나 해결방안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는 이렇게 실없는 이야기를 하는 게 더 좋았다.

그래도 반나절 동안 계속 떠드는 건 지치는 일이라서 나는 잠깐 눈을 붙이기로 했다.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마차가 지하유적으로 향하는 숲길 앞에 멈춰 섰을 때다.

마부가 말하길, 여기서부터는 길이 좁아서 마차를 타고는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우리는 짐을 챙겨서 마차에서 내렸고, 마법갑옷으로 갈아입었다.

다른 모험가들은 마법방어구에 의존해야하니 같은 사람의 기습공격에는 속수무책이지만 우린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고작 화살로는 경량 마법갑옷에도 흠집조차 낼 수 없으니 말이다.

물론 적들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니 자만하지 않고 신중한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내 사랑들에게 무장드론을 배정하고, 내 몫의 드론들을 띄워 경계를 강화했다.

하지만 워낙 숲이 울창해서 아직 열화상 기능이 없는 정찰드론은 별 쓸모가 없었다.

이번에는 내가 대열의 가장 앞에 섰고, 그 뒤를 라우라, 에리카, 이리스 순으로 따랐다.

지도창에 의하면, 지하유적까지는 대략 1시간 정도를 걸어가야 한다.

그리고 주변에 사람의 이름은 아직 하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정체불명의 뱀파이어족들은 대체 어디서 사는 걸까?

“레베카님, 잠시 만요.”

“무슨 일이니, 라우라?”

“주변에서 발소리가 들려요.”

“지도창을 보니 사람은 아닐 테고...”

“킁킁, 시체 냄새가 나는 걸 보면 좀비가 확실해요. 숫자는 대략 50구에서 60구 사이이고 왼쪽에 적들이 더 많아요.”

라우라는 바이저를 올려서 주변의 냄새를 맡더니 인상을 확 찌푸리며 말했다.

아르카디아의 언데드는 여느 판타지 세상의 언데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피와 살점을 탐하는 저주받은 시체들일 뿐이다.

역시나 지하유적과 언데드는 떼어놓기 어려운 관계인 모양이다.

뭔가 그럴 것 같다는 막연한 예감이 들었는데, 그게 실제로 벌어지니 달갑지가 않다.

“내가 오른쪽을 맡을 테니 너희들은 왼쪽을 맡아. 라우라, 네가 지휘하고.”

“네, 레베카님.”

나는 언제나처럼 라우라에게 지휘를 맡기고 적들이 더 많은 오른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곧 뱀파이어족 좀비들이 떼를 지어서 느릿느릿 움직이는 모습을 포착했다.

적당히 썩은 몸뚱이에 후줄근한 몰골을 한 녀석들은 굳이 기괴한 각도로 몸을 이리저리 꺾어가면서 괴상한 소리를 냈다.

‘우리 쪽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은데... 아, 눈 마주쳤다.’

나는 좀비들이 한꺼번에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리고 놈들은 시끄러운 괴성을 내지르며 엄청난 속도로 나를 향해 뛰어왔다.

살아있는 사람보다 속도가 훨씬 빠르지만 맹목적인 달리기라서 자기들끼리 발이 걸려 넘어지거나 나무나 돌에 부딪히기도 했다.

하지만 고통을 느끼지 않는 괴물들이라 뼈가 부러지든 말든 미친 듯이 달렸다.

나는 무장드론으로 내 앞쪽에 빙결탄을 충분히 쏴서 바닥을 미끄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좀비를 퇴치하는데 있어서 가장 좋은 수단 중 하나인 마력산탄총을 손에 들었다.

좀비들은 고맙게도 얼음이 깔린 바닥을 향해 정면으로 달려들었고, 우당탕 소리를 내면서 추하게 미끄러져 그 위에서 허우적거렸다.

나는 여유롭게 마력산탄총을 놈들의 머리통에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겼고, 뻥뻥하는 소리와 함께 놈들의 대가리가 터져나갔다.

그리고 얼음판에서 미끄러지지 않거나 겨우 빠져나온 놈들은 내 마법갑옷을 할퀴고 물어뜯겠다며 기세 좋게 달려들었다.

나는 무장드론으로 풍압탄을 쏴서 주변의 좀비들을 날려버리고 클레이 사격을 하듯 놈들을 쏴버렸다.

그런 뒤에 여전히 얼음판 위에서 자기들끼리 잔뜩 뒤엉켜서 허우적거리는 썩은 살덩어리들을 향해서 화염탄을 난사했다.

지성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놈들이라 그런지 놈들과 전투를 한다기보다는 더러운 걸 청소하는 느낌이 더 크게 들었다.

적어도 100마리는 넘게 달려들어야 조금 긴장을 하지 싶다.

아무튼 마법갑옷에 피 한방울 묻히지 않고 끝나서 기분이 좋다.

나는 좀비들이 타들어가는 모습을 잠깐 지켜보다가 산불로 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빙결탄을 쏴서 불을 껐다.

그리고 내 사랑들의 곁으로 돌아갔다.

세 사람은 나처럼 마법갑옷에 피가 튀지 않아 깔끔했고, 그녀들 앞에는 두개골이 터진 시체들이 잔뜩 널려있었다.

그녀들과 무장드론들이 쏟아 붓는 화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 분명하다.

내 인기척을 느낀 세 사람은 내게 가까이 다가와 바이저를 올려 예쁜 얼굴을 보여주었다.

“레베카님, 수고하셨어요.”

“그래. 너희들도 고생했어. 다친 사람 없지?”

“물론이죠. 저희들 중에서 고작 저런 멍청한 시체들을 상대로 다칠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에리카에겐 움직이는 목표를 사격하는 연습을 충실하게 할 수 있었고요.”

이리스는 우수한 제자를 자랑하는 선생님처럼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래서 에리카의 스킬창을 확인해보니 확실히 이번 전투로 스킬레벨 몇 개가 올랐다.

내가 이런 식으로 수치를 확인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부분을, 이리스는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 같다.

“잘됐네. 에리카도 이제 어엿한 전투원이 되어서 기쁜 걸.”

“저도 레베카님과 친구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서 좋아요. 언제까지고 보호만 받으면 민폐잖아요.”

“딱히 민폐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네가 우리를 생각해줘서 고마워.”

“히히히, 앞으로도 열심히 할게요.”

에리카는 귀여운 웃음소리를 내면서 기뻐했다.

그녀가 우리를 위해서 노력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대견한지 모른다.

“그나저나 좀비들이 전부 뱀파이어족인 걸 보면 뭔가 불길한 기분이 드네요.”

라우라는 시체들을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말했다.

확실히 다양한 종족이 있는 세상에서 특정 종족만으로 구성된 좀비 떼는 누구나 이상하게 여길만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아쿨타리의 멸망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어.”

“무릎에 화살을 맞았던 모험가와 동료들도 좀비나 다른 언데드에게 당한 걸까요?”

“모험가들을 공격한 건 분명 살아있는 사람들이야. 언데드 중에서도 무기를 사용하고 말을 할 수 있는 놈들이 있지만 그건 전부 뼈만 남은 놈들이거든.”

“그렇군요. 레베카님은 언데드에 대해서도 잘 아시는 군요?”

“그건 내가 세상을... 아니, 관련된 책을 읽은 적이 있어.”

나는 무심코 라우라가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을 하려다 황급히 말을 돌렸다.

다행히 라우라는 별 의심을 하지 않고 넘어갔지만 나는 식은땀이 다 흘렀다.

내가 이 세상을 창조하는데 관여했다는 사실을 내 사랑들이 알게 되면 분명 나를 향한 시선이 애정에서 경외나 두려움으로 바뀔 것이다.

나는 그런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일어나는 게 싫다.

“좀비가 이렇게 많은데 활을 쏘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 걸까요?”

“뱀파이어족은 이동생활에 익숙한 종족이니 좀비 떼의 움직임을 피해서 수시로 거주지를 옮겨 다니겠지. 그게 아니라면 좀비들이 그 사람들을 공격하지 않거나.”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글쎄. 어디까지나 내 상상일 뿐이니까 진지하게 생각하지는 마. 그럼 다시 출발하자.”

나는 다시 선두에서서 모두를 이끌었다.

그동안 좀비의 공격을 받지 않았지만 곳곳에 놈들의 발자국들이 잔뜩 남아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가니 온갖 식물들로 뒤덮인 버려진 도시가 나타났다.

우리는 도시에 바로 진입하지 않고 고지대로 올라가 정찰드론으로 시가지의 상황을 먼저 살펴보기로 했다.

나는 내 사랑들에게 정찰드론을 재배정하고 다함께 도시유적을 살펴보았다.

대부분의 건물들은 오랜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서 흔적을 찾기 어려웠지만 신전이나 관공서, 저택, 궁전, 성벽 같은 커다란 건물들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공성병기에 공격당해 무너진 성벽 근처에는 과거에 벌어졌던 통일전쟁의 흔적이 역력하게 남아있었다.

각종 무기들과 방어구, 옷가지가 죽은 지 오래인 병사들의 뼈와 뒤섞인 채 이끼로 덮여있었다.

그리고 아직 남아있는 건물 안에는 학살당한 사람들의 뼈가 가득했다.

오래 전에 발생한 전쟁이지만 지금 남아있는 흔적만 보아도 그것이 얼마나 나쁜지 알 수 있었다.

“레베카님, 지하유적은 어디로 들어가야 하나요?”

“신전의 지하에 있는 입구를 사용할 거야. 거기가 가장 많이 탐험된 장소라서 적응기간을 가지기 좋을 것 같아.”

아쿨타리 지하유적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도시 곳곳에 널려있지만 실제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는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입구가 뚫려있다 하더라도 사람이 들어가기엔 너무 위험한 곳들이 많아서 실질적으로는 4곳만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다.

내가 이리스에게 말해준 신전 지하의 입구는 카르디아의 모험가길드가 꾸준히 탐험을 이어나가는 장소라서 초입이 거의 항상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다고 한다.

“레베카님, 신전 근처에 좀비들이 너무 많아요.”

나는 이리스가 하는 말을 듣자마자 그녀가 정찰하고 있던 지역 상공에 내 정찰드론을 보내서 상황을 살펴보았다.

“어디보자... 그냥 많을 정도가 아니라 우리가 가야할 입구에서 계속 쏟아지는 것 같네. 계획을 수정해야겠는 걸.”

나는 신전에서 꾸역꾸역 나와 무리를 짓는 좀비들을 보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대충 봐도 방금 우리가 처리한 좀비들의 10배는 넘어보였고, 계속해서 그 수가 늘어났다.

정면 돌파를 할 수는 있지만 언제까지 좀비들이 튀어나올지 모르니 무리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좀비퇴치가 아니라 지도제작과 사람 찾기다.

“레베카님, 다른 지역도 좀비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어요. 지하유적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게 분명해요.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동시에 나오지는 않을 거예요.”

“그러게. 강령술사처럼 좀비들을 제어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

“혹시 그 부족 아닐까요?”

“이런 곳에서 살면서 아쿨타리를 지킨다는 말을 하는 거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아! 네 추측이 맞는 것 같아. 지도창을 보니 사람들이 좀비들이랑 같이 움직이고 있어.”

나는 지도창에 뜨는 사람의 이름이 있는 곳으로 정찰드론을 보냈다.

그러자 에리카가 얼굴에 그렸던 것과 똑같은 형태의 문양을 얼굴에 그린 사람들이 수정구를 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 좀비들을 동원해서 조상들의 나라를 멸망시킨 제국에 복수라도 하려는 걸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카르디아를 공격한 건 상급마물이지만 마물을 추적하던 모험가들이 도달한 게 결국 이 근방인데다 저 뱀파이어족들에게 공격을 받았으니 어떻게든 연관이 있을 거야.”

“지금은 진입하기 어려우니 기다려보는 게 어떨까요?”

“그게 좋겠다. 어차피 휴식시간을 가질 때도 됐고, 불을 피우면 바로 들킬 테니 텐트만 치자.”

우리는 텐트를 치고 돌아가면서 마법갑옷을 벗고 쉬었다.

다들 알몸이라서 당장 섹스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신나게 신음소리를 내면 좀비들이 우르르 몰려들 게 분명하다.

그래서 우리는 키스를 하거나 가슴을 빨고 몸 곳곳을 쓰다듬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하지만 에리카는 그럴 기분이 들지 않는지 그냥 구석에 앉아만 있었다.

“에리카, 너 괜찮니?”

“아, 네. 괜찮아요. 그냥 저 사람들이 제 동족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저 사람들이 분명 좀비들을 통제하고 있지만 아직 의도가 뭔지 확실치 않으니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마. 나름 사정이 있을 거야.”

내가 나름 위로를 하겠다고 건넨 말에 에리카는 말없이 내게 안겼다.

난 부디 내가 사랑하는 에리카가 슬퍼할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불길한 예감을 좀처럼 떨쳐낼 수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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