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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세상에서 마음껏 살아간다-133화 (133/271)

〈 133화 〉 132화

* * *

우리는 내 계획과는 달리 당분간 콘라드의 집에서 신세를 지기로 했다.

대부분의 숙박업소들이 봉쇄된 도시의 서쪽에 몰려있고, 접근이 가능한 숙소들은 수준이 낮은 곳들뿐이라 어쩔 수 없이 콘라드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자 콘라드는 뛸 듯이 기뻐하면서 호들갑을 떨다가 결국 아내에게 등짝을 맞았다.

자식들이 모두 독립을 해서 방은 넉넉했지만 방 하나에 두 명 이상 함께 잘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 사랑들은 하루씩 번갈아가면서 나와 같은 방을 쓰기로 합의를 보았다.

콘라드의 집은 1층이 아내의 빵집이고 2층과 3층은 주거공간이다.

그래서 아침 해가 뜨기 전부터 구수한 빵 굽는 냄새가 방으로 솔솔 들어와서 내 식욕을 자극했다.

빵 굽는 냄새에 취해서 잠에서 깬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다.

내 곁에서 자고 있던 라우라는 군침을 흘려가면서 잠에서 깨어나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상태에서 코를 킁킁거렸다.

나는 그런 라우라의 귀여운 반응을 감상하다가 그녀의 볼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라우라는 눈을 슬쩍 뜨더니 나에게 부드러운 입술을 내밀어 아침키스를 해주었다.

라우라의 적극적인 자세에 나는 그녀의 등과 허리, 엉덩이와 허벅지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라인을 차례대로 쓰다듬으며 달콤한 키스를 이어나갔다.

나는 이 기세를 몰아서 아예 섹스를 해버릴 생각에 라우라의 가슴을 주무르고 얇은 잠옷 너머로 부풀어 오르는 젖꼭지를 만지며 분위기를 끌어올리려고 했다.

하지만 갑자기 라우라의 배에서 크게 들리는 꼬르륵 소리에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분위기를 망쳐버렸네요.”

“우리 라우라가 배가 많이 고픈 모양이구나?”

“실은 잠에서 깼을 때부터 배가 고팠어요. 헤헤헤.”

라우라는 빨개진 얼굴로 멋쩍게 웃어보였다.

나는 그런 라우라가 너무 귀여워서 그녀를 인형처럼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라우라는 갸르릉하는 소리를 내면서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는 복슬복슬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레베카님,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최대한 빨리 카르디아를 떠날 거야. 이번 사태를 일으킨 주동자를 잡아서 때려눕히면 정말 속 시원하겠지만 우리가 직접적으로 엮인 일도 아니니 기사단에게 맡기면 돼.”

“좋은 생각이에요. 굳이 위험한 일에 끼어들어서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겠죠.”

라우라는 내가 이번 사태에 개입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말을 듣자마자 기뻐했다.

그녀는 내가 과도하게 정의감을 불태우며 앞으로 나서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아무 의미도 없는 영웅놀이를 즐기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이리스와 에리카는 그런 나를 항상 멋지다고 치켜세우지만 라우라는 겉으로는 친구들과 같은 의견을 보여도 속내는 그렇지 않았다.

라우라는 누군지도 모르고, 나의 헌신을 알지도 못할 수많은 사람들 때문에 내가 목숨을 걸어가면서 싸우는 걸 싫어한다.

이게 바로 라우라가 다른 애인들과 확실하게 다른 점이다.

“그럼 오늘은 보급품을 챙기는 날인가요?”

“응. 네 말대로야. 특수상점에 들러서 전송실을 활성화하고, 여행에 필요한 물자를 보급할 거야. 그리고 늦어도 사흘 안에는 카르디아를 떠나려고 해.”

“그동안 아무 일도 없으면 좋겠네요.”

“나도 제발 그랬으면 좋겠어.”

나는 어제부터 제발 이번에는 조용히 넘어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무슨 일에 엮이기만 하면 마법갑옷이 부서져라 고생을 하니 말이다.

특히 제르디아에서는 친구들을 새로 사귄 것을 제외하면 며칠 만에 사건이 후다닥 몰아치는 바람에 도시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이게 여행인지 고행인지 구분이 안 되는 상황이 계속해서 벌어지는 건 질색이다.

이래서야 마음껏 살아간다는 새로운 인생의 목표가 아무런 의미도 없어질 것 같다.

“힘내세요. 웬만하면 그냥 지나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어떤 일이 생긴다하더라도 저희들이 최선을 다해서 레베카님을 도와드릴게요.”

“고마워. 역시 넌 내 마음을 잘 알아줘서 좋아.”

나는 라우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에게 칭찬을 해주었고, 라우라는 애교를 부려가면서 내 품에 더욱 안겨들었다.

우리는 한 번 더 키스를 했고, 이번에도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서로의 몸이 달아올랐다.

하지만 누군가 노크를 하는 바람에 또 김이 팍 새어버리고 말았다.

아무래도 오늘은 날이 아닌 것 같다.

나는 아쉬워하는 라우라를 침대에 눕혀둔 채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어주었다.

노크를 해서 우릴 방해한 사람은 다름 아닌 이리스였다.

잠옷차림인 그녀는 에리카와 함께 나를 향해 애정이 듬뿍 담긴 눈빛을 보냈고 순서대로 내게 아침키스를 해주었다.

“둘 다 좋은 아침이야. 우리 모두 일찍 일어났네.”

“빵 냄새가 너무 좋아서 깨버렸어요. 빨리 아침을 먹고 싶어지더라고요.”

이리스는 여전히 창문 너머에서 올라오는 빵 굽는 냄새에 심취해있었다.

그녀의 배에서는 꼬르륵하는 소리가 나지는 않았지만 왠지 그런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리스, 넌 라우라랑 똑같은 소리를 하는구나. 뭔가 둘이 점점 닮아가는 것 같아.”

“친구끼리는 서로 닮는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어요.”

“하긴 너희 둘은 키스까지 할 정도로 사이가 가깝긴 하지.”

내 말에 이리스는 크게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아니, 섹스를 할 때 내 앞에서 라우라랑 키스를 하는 모습을 보여줘 놓고는 왜 저런 반응을 보이지?

혹시 내가 안 보는 사이에도 둘이서 키스를 하고 그러나?

“그, 그건 섹스를 하다가 분위기를 타서 그런 거예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가끔씩 할 때도 있어요.”

“라우라!”

“뭐 어때? 어차피 우린 레베카님께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고.”

이리스는 내 눈치를 살폈지만 라우라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여유로운 태도를 보였다.

이런 문제가 엮이면 항상 라우라는 강하게 나왔고, 그게 난 마음에 들었다.

내가 이끄는 것도 좋지만 이끌어지는 것도 나름 흥미로운 일이거든.

“걱정 마. 난 너희들끼리 키스하는 것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해. 에리카, 너도 얘네 하고 키스해봤나?”

“아니요. 그런 생각 자체를 안 해봤어요.”

에리카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수줍게 말했다.

내가 보기엔 호기심 자체는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에리카 성격에 먼저 해보자고 제안할 사람이 아니기는 하다.

“저번에 날 실컷 애무해놓고는 순진한 척을 하면 안 돼.”

“그, 그, 그건 분위기에 휩쓸려서 나도 모르게 그런 거란 말이야.”

“킥킥, 농담이야. 네가 우리 중에 가장 순수한 친구라는 건 잘 알고 있지.”

“애초에 너랑 이리스는 사귀지도 않으면서 왜 같이 키스를 하고 그러는 거야?”

에리카가 던진 질문에 라우라와 이리스는 서로 눈을 한 번 마주치더니 씩 웃었다.

저 미소는 내 경험상 우정과 사랑 사이에 놓인 오묘한 감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내 하렘구성원끼리 서로 우정을 넘어선 감정을 느끼는 건 꽤나 흥미로운 일이다.

나중에 둘이서 섹스를 하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앞으로 우리가 레베카님과 결혼을 하면 서로 의자매가 될 사이니까 미리 가족애를 돈독하게 다져놓는 거야.”

“내 상식이랑은 거리가 좀 멀어 보이는 행동이네.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아.”

“억지로 참여하라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

“그건 당연한 일이잖아.”

“그러다 언젠간 우리랑 키스를 하고 싶은 날이 올지도 모르니 너무 그렇게 완강한 태도를 보이지는 마. 큭큭큭.”

라우라는 마치 무시무시한 음모를 꾸미는 사람처럼 음흉한 웃음소리를 흘렸고, 에리카는 냅다 내 등 뒤로 숨어버렸다.

난 라우라가 에리카를 억지로 덮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에리카의 불안감을 덜어줘야겠다.

“라우라, 에리카가 불안해하니까 그런 장난은 자제해줘.”

“네, 레베카님.”

“어디보자, 아직 아침식사를 하려면 시간이 좀 남았으니까 밖에서 산책이라도 하자.”

내 제안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거나 말로 동의를 해주었다.

섹스를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지금은 참기로 했다.

난 단순히 성욕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써의 섹스보다는 시간을 들여서 분위기를 잡고 느긋하고 달달한 섹스를 즐기는 게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

라우라랑 방에 단 둘이 있을 때는 그게 가능했지만 지금처럼 세 명을 모두를 육체적, 정서적으로 만족시키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남의 집에 초대받은 입장이니 아침부터 섹스로 소란을 떠는 것도 좋지 않을 것 같고.

나는 내 사랑들과 함께 잠옷에서 간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는 콘라드의 집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이쪽은 피해가 전혀 없는 곳이라서 가슴이 아프거나 눈살이 찌푸려지는 장면을 볼 일은 없다는 게 좋았다.

아침부터 그런 걸 보면 하루종일 기분이 안 좋을 게 분명하다.

만약 이곳도 피해가 막심했더라면 어제 바로 도시를 떠났을 지도 모르겠다.

라우라와 이리스는 그냥 고개만 이리저리 돌리며 얌전히 마을을 구경했고 에리카는 적극적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똑같이 생긴 건물들이 줄지어 서있는데도 식상하게 여겨지지 않는 모양이다.

“레베카님, 콘라드 씨의 가족들은 다 이 근처에 산다고 했었죠?”

“맞아, 에리카. 그런데 집이 다 똑같이 생겨서 구분을 하기 어렵네. 여기 사는 사람들 분명 남의 집 대문을 두드린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거야.”

“콘라드 씨의 집은 다르게 생겨서 다행이네요.”

“그러게. 에리카, 세르자는 어때?”

“이제 날개를 조금씩 움직이더라고요. 금방 다시 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 나으면 바로 나에게 말해줘. 실험해볼 게 있거든. 아, 위험한 건 아니니까 걱정 마.”

“네, 레베카님. 그런데 그전에 세르자랑 친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저를 주인으로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요.”

“먹이를 주면 좋아할까?”

“동물에게 신뢰를 주는 가장 빠른 방법이니까 분명 세르자도 좋아할 거예요. 먹이는 제가 준비해드릴게요.”

“고마워.”

나는 그 말과 함께 에리카의 손을 꼭 잡았다.

그러자 에리카는 내게 슬쩍 기대면서 헤실헤실 웃었다.

겨우 손을 잡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기분 좋아하다니, 정말 흐뭇하다.

“레베카님, 이제 말들을 보러가도 될까요? 마구간에서 돌봐주기는 하지만 그래도 직접 확인해보고 싶어요.”

“안 그래도 확인해볼 생각이었어. 마구간에 잠깐 들렀다가 바로 콘라드 씨의 집으로 돌아가자.”

우리는 에리카의 요청에 따라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마구간으로 향했다.

콘라드의 집은 그의 작은 말 한 마리만 수용할 수 있는 좁은 마구간이 전부라서 마구간에 돈을 주고 맡길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말들은 마구간에서 잘 지내고 있었다.

비싼 돈을 준만큼 관리가 확실하게 되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우리는 각자의 말들과 교감하면서 적당히 시간을 보낸 뒤에 콘라드의 집으로 돌아왔다.

마침 아침식사가 준비된 상태였고, 우리는 고대했던 갓 구운 따뜻한 빵을 입에 넣었다.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고소함과 부드러움, 달콤함이 입속에서 한데 어우러져서 행복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함께 나온 야채수프의 맛도 훌륭해서 식욕을 억제하지 못하고 3그릇이나 먹었다.

콘라드의 아내는 이럴 줄 알고 많이 만들어놓았다면서 얼마든지 우리에게 빵과 야채수프를 베풀어주었다.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원 없이 베푸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은 없다.

적어도 내 경험에 따르면 그건 정설이나 마찬가지다.

내가 장담하건데 콘라드는 정말 복 받은 사람이다.

가끔 등짝을 얻어맞기는 하지만 그건 철없는 남편의 숙명이라지.

“레베카님, 식사는 마음에 드셨는지요?”

“물론이죠. 특히 빵이 너무 맛있더라고요. 아내분의 솜씨는 정말이지 최고인 것 같아요.”

“하하하! 감사합니다.”

콘라드는 마치 자신이 칭찬을 들은 것 마냥 크게 기뻐했다.

정말이지 가족 밖에 모르는 바보라니깐.

“오늘도 힘쓰는 일을 하시나요?”

“네, 당분간 낮에는 구호작업을 돕고 밤에는 집에서 서류작성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고생이 많으시겠어요.”

“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일원이니 기꺼이 받아들여야지요. 그리고 우리 이웃들을 해친 장본인을 붙잡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겁니다.”

콘라드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와는 달리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다른 사람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분위기가 달랐다.

“너무 무리는 하지 마세요. 그리고 도시의 안보를 책임지는 건 기사단이니까 그들에게 맡기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실은 기사단에서 모험가길드에 동원령을 내려서 모든 모험가들이 의뢰수주를 중단하고 기사단의 명령에 따라서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설마 저도 동원되어야 하나요?”

“아닙니다. 레베카님께서는 명예기사이시니 기사단의 동원령에는 아무런 해당사항이 없습니다.”

“휴우, 그것 참 다행이네요.”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예전 세상에서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공권력에 의한 강제동원을 새로운 세상에서 경험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무정부주의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강제로 일하고 싶지는 않단 말이지.

“아참, 레베카님의 모험가 등급이 신분에 비해서 낮아서 길드장님께서 C급으로 등급을 올려드리라고 하셨습니다.”

“C급이 되려면 수도에서 심사를 거쳐야하지 않나요?”

“원칙적으로는 그렇지만 명예기사작위를 받았다면 이미 인격적인 부분을 인정받았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심사를 면제받을 수 있습니다.”

“C급이 되면 특별히 달라지는 점이 있나요?”

“평범한 모험가라면 일반적인 평민들보다 전반적으로 더 좋은 대우를 받게 되겠지만 레베카님은 이미 명예기사이신지라 착수금과 완수금이 높아지는 것 말고는 체감되는 혜택은 없으실 겁니다.”

이런, 모처럼 모험가등급이 올라도 아무런 감흥이 느껴지지를 않네.

모험가길드 측에서는 나름 날 위해준다고 준비한 건데 말이다.

이럴 땐 콘라드가 무안하지 않도록 영업용 미소라도 지어주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저희 길드장님께선 레베카님께서 원하신다면 B급 승급시험을 치게 해드리고 싶어 하십니다.”

“전 모험가길드에 크게 기여한 적이 없는데 그래도 될까요?”

“명예기사가 되셔서 길드의 명성을 높인 것만으로도 충분한 기여를 하신 겁니다. 겸사겸사 차기길드장인 저도 구해주셨고요.”

“그렇군요. 그럼 기꺼이 받아들일게요.”

나는 콘라드와 악수를 하며 그의 제안을 수용했다.

무슨 군사작전도 아니고 고작 모험가길드 승급시험인데 설마 개고생을 하겠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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