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상에서 마음껏 살아간다-128화 (128/271)

〈 128화 〉 127화

* * *

새해 첫 날은 일단 모자란 잠을 보충하는 걸로 시작했다.

우리는 해맞이를 하고 돌아오자마자 두꺼운 커튼을 치고 침대에 누웠다.

이번에는 알람을 맞추지 않고, 각자의 침대에 누워서 숙면을 추구했다.

우리가 쓰는 방의 침실은 3개이고, 침대는 큰 것 하나와 작은 것 4개라서 상황에 따라서 좋을 대로 선택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나는 침대에 누웠을 때만 하더라도 눈이 말똥말똥했지만 곧 눈꺼풀이 스르륵 내려앉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내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시계가 정확히 3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적당히 정신을 차린 뒤에 내 사랑들과 함께 짐을 챙기고 체크아웃을 했다.

그리고 곧장 알리시아의 저택으로 향했다.

약속이 있어서가 아니라 친한 사람들과 새해 인사를 나누고 싶어서다.

나는 저택에 들어가자마자 우연찮게도 다른 귀족들과 대화중인 알리시아와 눈을 마주쳤고, 바로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알리시아님.”

“고맙네. 자네도 새해 복 많이 받게나. 엘레나는 아직 수업 중이니 베로니카를 먼저 만나도록 하게. 이 자가 베로니카가 있는 곳으로 안내를 해줄 걸세.”

“네, 알리시아님.”

알리시아는 나의 예고에도 없는 방문에도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고, 내 사랑들이 저택에 함께 들어와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바쁜 와중에도 날 위해서 하녀를 붙여주었다.

나는 그녀의 친절함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나이 많은 하녀의 뒤를 따라갔다.

베로니카 언니는 저택에 있는 작은 도서관에서 두꺼운 책을 보고 있었다.

미니맵을 보니 남편인 알론과 어린 아들인 로베르트는 근처에 있는 정원에서 함께 뛰어놀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머, 레베카. 네가 올 줄은 몰랐어. 다른 친구들도 반가워.”

베로니카 언니는 나를 보자마자 책을 내려놓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며 반겨주었다.

그리고 나에게 다가와 반갑게 포옹을 해주었다.

오늘도 언니의 향기가 내 마음을 편하게 만들었다.

“언니한테 새해인사를 해주고 싶어서 왔어. 새해 복 많이 받아.”

“레베카, 우리 귀여운 동생도 새해 복 많이 받으렴. 라우라, 이리스, 에리카도 새해 복 많이 받고.”

베로니카 언니는 나는 물론이고 내 사랑들에게도 멋진 미소로 새해인사를 해주었다.

나는 언니가 좋아서 꼭 끌어안고 놓아줄 생각을 하질 않았다.

그러자 베로니카 언니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나를 한껏 귀여워해주었다.

“레베카, 제르디아에서는 어땠니? 도시는 마음에 들었고?”

“그게... 그쪽 기사단이 겪은 혼란의 한가운데에 있었어.”

“아직 이쪽으로 정보는 들어오지 않았지만 보통 일이 아니었나 보네.”

“응. 말하자면 길지만 중요한 것만 요약해서 말해줄게.”

나는 베로니카 언니에게 내가 제르디아에서 경험했던 일을 모두 말해주었다.

거대 인면어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엘카렌이 제르디아 기사단 본부를 습격했던 일, 노먼이 엘카렌의 계략에 속아 넘어갔던 일, 엘카힘이 판 함정에 빠져서 죽을 뻔했었던 일등등 다 털어놓았다.

내 말을 다 들은 베로니카 언니의 표정은 꽤나 심각했다.

“레베카, 무엇보다 네가 무사히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야. 그리고 나도 프랑카로 돌아가면 기사단이나 주변 사람들의 보안을 점검해야겠네. 그런 식으로 사람을 속이는 방법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해봤어.”

“가면쟁이들은 생물학적인 부분에서 제국을 훨씬 뛰어넘는 기술을 많이 가지고 있어. 하지만 마법추진기의 설계도를 훔쳐도 성능이 절반 수준인 걸 보면 모든 면에서 우월하지는 않을 거야.”

“마법추진기? 그건 뭔데?”

“아, 그건 엘리자베스 황녀님께서 발명하신 건데, 마법갑옷의 등 뒤에 달아서 잠깐 하늘을 날 수 있게 해주는 마법도구야. 내가 직접 보여줄게.”

나는 도서관의 가장 넓은 곳으로 이동한 뒤에 치트가방에서 엘리자베스가 만들어준 멋진 마법갑옷을 꺼냈다.

베로니카 언니는 내 마법갑옷을 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구석구석 아주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역시 황녀님께서는 천재이셔. 나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상상으로만 머무르는 걸 실제로 만들어내신 다니까. 난 황녀님 덕분에 기사들이 백성들을 지켜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

“분명 대단한 사람이지. 문제는 그런 황녀님의 가까이에 첩자를 심어둘 정도로 가면쟁이들의 침투능력이 좋다는 거야.”

“그러게. 나라의 안위가 걱정돼. 마족에 대한 확실한 우위를 점하기도 전에 훨씬 교활한 적이 나타나다니, 정말 답답하네.”

“난 결국엔 가면쟁이들이 패배할 거라고 믿어. 그러니 언니도 기운 내.”

나는 베로니카 언니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격려했고, 언니는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 마법갑옷을 다시 치트가방 안에 집어넣었다.

“응. 그래야지. 그나저나 다음 여행지는 어디니?”

“카르디아라는 백작령이야. 제르디아 지방 바로 옆에 붙어있어.”

“아, 거기라면 내가 아는 사람이 모험가길드에서 일하고 있어. 콘라드라는 엘프족 남자인데 나랑 동갑이야. 맡은 일을 아주 성실하게 수행하는 사람이야.”

“언니가 발이 참 넓구나.”

“아니야. 우연히 아는 사람이 마침 거기에서 살고 있을 뿐이지. 아마 나처럼 인맥이 얇은 귀족도 없을 걸?”

“언니가 좀 별난 귀족이긴 하지.”

“부정을 못하겠네. 아무튼 콘라드를 만나면 내 안부를 전해줘.”

“어차피 어느 도시를 가든 모험가길드부터 들르니까 나한테 맡겨.”

나는 벌써부터 사건에 휘말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설마 안부를 전하다가 그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 거라고 믿고 싶다.

들르는 여행지마다 사건이 터지면 인생이 너무 피곤할 거 같거든.

“이 시간이면 엘레나의 수업이 끝났겠다. 얼른 가서 만나줘. 너를 엄청나게 그리워하고 있거든. 어제도 달래주느라 애를 먹었어. 오죽하면 우리 로베르트가 맛있는 간식을 다 나눠줬다니까.”

5살 꼬마가 나눠주는 간식을 얻어먹으며 투덜거리는 15살 소녀라?

이대로 둘의 인연이 쭉 이어지면 꽤나 흥미로운 미래가 펼쳐질 것 같다.

“하하하, 로베르트가 더 어른스럽네. 언니는 조만간에 프랑카로 돌아가지?”

“아마 다음 주에 출발할 거야. 돌아가면 밀린 일을 하느라 엄청 바쁠 게 분명해. 그래도 네가 오면 얼굴 볼 시간 정도는 있지 싶어.”

“내가 카르디아에 도착할 때면 언니도 프랑카에 있겠네. 어차피 그땐 엠마 씨의 결혼식에도 참석해야하니까 겸사겸사 언니네 저택에 방문할게.”

“우리 아들 생일도 그때쯤인데 잘 됐네.”

“정말? 선물 준비해야겠네. 남자애들이 좋아하는 물건이라면 자신 있어.”

“벌써부터 기대된다.”

“그럼 난 엘레나에게 가볼 테니까 그때 다시 만나자.”

“그래, 네가 무사히 여행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할게.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베로니카 언니는 나를 포옹하더니 내 이마에 뽀뽀를 해주었다.

덕분에 나는 헤실헤실 웃으며 언니와 작별인사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도서관에서 나온 나는 곧장 엘레나의 방으로 향했다.

더 이상 안내를 받을 필요가 없어서 하녀는 그대로 돌려보냈다.

엘레나의 방 앞에 도착한 나는 조심스럽게 노크를 하면서 내 도착을 알렸다.

그러자 안에서 우당탕하는 소리가 나더니 엘레나가 급하게 문을 열어주었다.

“레베카! 나 보러 온 거야?”

“응. 새해 인사도 하고 다른 곳으로 떠나기 전에 널 만나고 갈 생각이었거든.”

“정말? 히히히, 어서 들어와.”

엘레나는 엄청 좋아하는 기색을 풍기며 내 손을 꼭 잡고서 안으로 끌어당겼다.

못 보는 사이에 엘레나의 방에는 아기자기한 인형들이 많아졌다.

엘레나가 이렇게 인형을 좋아할 줄 알았더라면 나도 예쁜 인형을 하나 사 올 걸 그랬다.

“엘레나, 새해 복 많이 받아. 올해는 분명 좋은 일로 가득할 거야.”

“응! 정말 고마워. 베로니카, 너도 새해 복 많이 받고 건강해. 그리고 이건 너한테 주고 싶었던 거야.”

엘레나는 나에게 작은 선물상자를 하나 내밀었다.

나는 기꺼이 그 상자를 받아서 열어보았는데, 안에는 꽃처럼 생긴 장식물이 붙어있는 튼튼하고 큼지막한 머리핀이 들어있었다.

내 나이에는 별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장신구이지만 엘레나의 기대하는 눈빛을 보니 차마 거부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옆머리를 뒤로 조금 넘기고 머리핀을 꼽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머리핀을 달아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뭔가 어설프게 느껴졌다.

그래도 보다보니 나한테 제법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어때? 안 이상해?”

“솔직히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직접 해보니까 마음에 들어. 좋은 선물을 줘서 고마워.”

“야호! 성공이다! 하하핫!”

엘레나는 제자리에서 방방 뛰면서 기쁨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어쩜 이렇게 귀여운 동생이 다 있나 싶다.

나는 보답해주는 차원에서 그녀를 붙잡고서 양쪽 볼에 뽀뽀를 해주었다.

그러자 엘레나는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그대로 정지한 채로 볼을 어루만지며 수줍어했다.

으윽! 내 심장이 멎어버릴 것만 같다.

“다음에 나도 선물을 사줄게. 뭐 가지고 싶니?”

“음... 너랑 똑같이 생긴 인형? 농담이야. 어떤 인형이든 좋으니까 다음에 올 때 사줘.”

“알았어. 예쁜 걸로 하나 사줄게.”

나는 엘레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약속했다.

카르디아에 가면 모험가길드에 들렀다가 바로 인형을 사러 가야겠다.

벌써부터 엄청 큰 곰 인형 하나를 사줄지, 작은 곰 인형 여러 개를 사줄지 고민된다.

“이번 여행지는 재밌었어?”

“사건에 휘말리긴 했지만 새 친구들을 사귈 수 있어서 즐거웠어.”

“네가 즐겁다니 다행이네. 아참, 알리시아 언니가 그러는데 조만간에 내 정혼자를 구해줄 거라고 해.”

엘레나는 오늘 처음으로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 아이에게 정혼자가 생긴다는 말을 들으니 내 신경이 곤두서버렸다.

만약 정혼자가 엘레나를 울리는 종류의 인간이라면 내 산탄총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그렇구나. 그런데 넌 싫은 모양이네.”

“너도 알다시피 우리 집안은... 여러모로 끝장이 났잖아. 알리시아 언니를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상한 사람을 만나게 될까 걱정이야.”

“걱정 마. 알리시아님이라면 네게 잘 어울리는 사람을 골라주실 거야.”

“그렇겠지? 난 사실 정혼 같은 거 하기 싫어. 하지만 우리 가문을 다시 일으키려면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어. 귀족은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말이 실감이 나.”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나한테 기대도록 해. 내가 최선을 다해서 도와줄게.”

“응. 고마워. 역시 넌 좋은 친구야.”

엘레나는 나를 와락 끌어안으면서 말했다.

난 어린 나이에도 큰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엘레나가 대견하면서도 막시안 때문에 벌써부터 정치적 선택을 강요받는 엘레나가 안쓰러웠다.

“그런데 너희 둘째 언니는 어떠니?”

“눈을 뜨기는 했는데 아직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라서 날 못 알아보고 말도 제대로 못해. 그래도 밥이라도 잘 먹어서 다행이야.”

“그렇구나.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모르겠지만 분명 원래대로 돌아올 거야. 그러니 너도 마음 강하게 먹고 언니의 곁을 지켜주도록 해.”

“당연하지! 내가 책임지고 우리 언니를 평생 보살펴줄 거야.”

엘레나는 자신감이 넘쳤다.

알리시아의 교육 덕분인지 아니면 엘레나의 타고난 성격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일을 겪고도 주눅 들지 않고 강한 모습을 보이니 다행이다.

“너랑 더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곧 수업시간이야. 다음에는 언제 올 수 있어?”

“아마도 2주 정도 걸릴 거야. 카르디아까지는 길이 험해서 시간이 제법 걸린다고 하더라고.”

“조심해서 다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건 싫으니까.”

“알았어. 너도 잘 지내. 다음에 만날 때는 시간이 많으면 좋겠네. 그럼 가볼게.”

나는 엘레나를 포옹해주고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어렵사리 옮겼다.

난 아쉬운 마음에 몇 번 뒤를 돌아보았고, 그걸 본 라우라가 씩 웃으며 말을 걸었다.

“레베카님, 엘레나님이 많이 신경 쓰이시나 봐요?”

“내 동생 같아서 말이야. 마음 같아서는 내가 데려가고 싶어.”

“어머, 그러면 우리가 섹스를 하기 힘들어질 걸요? 설마 엘레나님도...”

“아니야! 그건 내 머리에 총구를 들이대어도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엘레나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몰라도 난 절대로 그럴 일 없어.”

나는 손사래를 치면서 격한 반응을 보였다.

윤리적인 문제도 물론이거니와, 그런 짓을 했다가는 알리시아가 날 죽이려고 들 것이다.

“헤헤헤, 농담이에요. 그래도 엘레나님이 좀 부럽기도 하네요. 저희가 받는 사랑이랑 좀 다른 종류의 사랑을 받으니 말이에요.”

“그럼 내가 너희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주면 되겠구나?”

“이미 어젯밤에 분에 넘치는 사랑을 주셨어요. 아직도 배가 부른 느낌인 걸요.”

라우라는 배를 쓰다듬으면서 야릇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배가 부르다는 말이 나온 김에 생각나는 건, 내 사정량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아무리 스킬로 자지를 만들어낸다지만 내 몸의 체액보다 더 많은 양의 정액이 나오는 건 이상한 일이다.

나중에 스킬에 대한 설명을 다시 읽어봐야겠다.

“레베카님, 지금 야한 생각하시고 있지요? 어제 섹스한 걸로는 만족하지 못하신 건가요?”

“아니, 아니. 그럴 리가 있니? 난 충분히 만족했어. 잠깐 딴 생각을 했을 뿐이야.”

“혹시라도 욕구불만이 생기시면 즉시 저희들에게 말씀해주세요. 원하신다면 아침마다 입으로 깨워드릴 수도 있어요.”

“음... 뭐?”

나는 라우라가 던지는 말에 순간적으로 사고가 정지하고 말았다.

아침마다 펠라치오를 해주겠다고? 아마 내가 말라죽을 걸?

그런데 한편으로는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아침에 키스를 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아직이라는 말씀은 언젠가 제가 말한 것도 요구하실 수 있다는 건가요?”

“음...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을 게.”

나는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라우라에게서 시선을 회피했다.

하지만 라우라는 굳이 내 시선을 따라다니며 음흉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무서운 사람 같으니라고!

“순번이야 미리 정해졌으니 언제든지 말씀만 하세요.”

“그, 그래. 알았어. 휴우, 이게 뭐라고 식은땀이 다 나네.”

나는 이리스가 내미는 손수건을 들고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냈다.

뒤늦게 주변에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내 스스로가 웃긴다.

잠깐, 아침에 펠라치오로 깨워주는 걸 허락해주면 아침키스를 할 때마다 내 정액을 먹어야하는 건가?

아니, 그건 싫어! 싫은데... 왠지 그것만으로는 없던 일로 하기엔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흐음... 아무래도 난 답도 없는 변태인 것 같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