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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세상에서 마음껏 살아간다-110화 (110/271)

〈 110화 〉 109화

* * *

눈이 아플 정도로 밝게 번쩍거리는 시뻘건 섬광이 허공을 가로지른다.

사방에서 건물이 무너지고, 도로가 갈라지고,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엘카렌의 무지막지한 공격은 내가 이 세상에서 경험한 공격 중에서 가장 위력적이었다.

상급마물을 끝장냈었던 마력대포도 그녀의 공격에 비하면 원시적인 수준에 불과했다.

만약 내가 마법갑옷을 입고 있지 않았더라면 이미 주변에 널려있는 조각난 사람들처럼 처참한 몰골로 죽었을 것이다.

나는 라우라와 이리스에게 텔레파시를 보내 도움을 청했지만, 둘 다 대답이 없었다.

분명 특수상점은 텔레파시가 가능한 영역 안에 있는데도 말이다.

난 엄청난 불안감을 느꼈지만 일단 내 몸을 건사하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내가 여기서 죽어버리면 아무런 의미도 없으니까.

“나사가 하나 빠진 사람 때문에 도망치는 기분이 어때?”

“닥쳐!”

나는 최선을 다해서 쏟아지는 공격을 피하는 와중에도 엘카렌의 비아냥거림을 되받아치는 걸 잊지 않았다.

수세에 올렸어도 기세만큼은 꺾일 생각이 없었다.

“너 때문에 죄도 없는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기분이 어때? 벌써 대충 50명은 넘게 죽은 것 같은데.”

“네 년이 죽여 놓고는 왜 내 탓을 해?”

나는 마력소총을 엘카렌에게 조준하고 계속해서 방아쇠를 당겼다.

어차피 가면의 마법방어막에 모조리 다 막힐 게 분명하지만 계속 도망만 다니는 것보다 견제를 넣으면서 빈틈을 찾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엘카렌은 내 반격에 코웃음을 치더니 5개의 마법진에서 쏘는 빔을 나에게 집중했다.

땅을 가르면서 빠르게 다가오는 빔들을 보고 있으니 등골이 서늘했다.

나는 이번에도 당하기 전에 재빨리 피했고, 내가 있던 자리에서 제법 큰 폭발이 일어나 연기가 자욱하게 일었다.

덕분에 따로 연막탄을 쓰지 않아도 내 움직임을 어느 정도는 숨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어서 사방에 연막탄을 쏴서 엘카렌의 시야를 완전히 가리려고 했다.

“다 쓸데없는 짓이야.”

엘카렌은 날 비웃더니 주변에 강력한 바람을 일으켜서 연막을 모조리 날려버렸다.

마력을 에너지원으로 삼는 계열인 줄 알았더니 원소마법 같은 것도 쓸 수 있는 건가?

원리가 뭔지는 몰라도 간단하게 문제를 해결한 엘카렌은 이번에는 내 주변으로 빔을 난사했는데, 마치 나를 어디론가 유도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엘카렌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줄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과감하게 대형마법방패를 앞세운 채로 돌진하여 포위망을 뚫었다.

다행히 방패는 뜨겁게 달아오르기는 했지만 빔 공격을 막아냈다.

처음에 엘카렌의 공격에 너무 압도당해서 자꾸 도망만 쳤던 게 잘못이었다.

뭔가 마음에 여유가 생기는 기분이 들었다.

“엘카렌! 네 년의 목적은 뭐지?”

“그걸 알아서 뭐하려고? 어차피 너랑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일이야. 대체 왜 그 분은 널 방치하실까? 나나 다른 녀석들은 직접 포섭하셨으면서.”

“난 너희들의 미친 친목회에 들어갈 생각 없으니까 꿈 깨셔.”

나는 마법갑옷의 출력을 최대로 올리며 엘카렌에게 돌진했다.

엘카렌은 다시 나에게 빔을 퍼부었지만 나는 마법방패를 믿고 계속해서 달려갔다.

지면에 발이 닿을 때마다 쿵쿵하는 소리가 요란했고, 빔이 방패와 마법갑옷에 명중할 때마다 뜨거운 열기와 압박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에게 가까워질수록 무언가 웅웅거리는 것 같은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렸다.

난 몸놀림은 별로 빠르지 않은 엘카렌의 코앞에서 조명탄을 쏴서 순간적으로 그녀의 눈을 멀게 만들었다.

엘카렌은 짧게 비명을 지르며 고통에 찬 표정을 지으며 가면 위에 손을 올렸다.

난 그 틈을 타서 남은 5발의 마력권총탄을 그녀의 몸에다 모조리 쏟아 부으려고 했지만 마법진의 각도가 내 쪽으로 틀어지면서 한꺼번에 쏟아지는 빔에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씨발!”

나는 분통이 터졌지만 한계에 다다른 마법방패에 구멍이 뚫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일단 뒤로 멀찍이 물러났다.

그 와중에 아직 시력을 회복하지 못한 엘카렌에게 마력산탄총을 쏘려고 했지만 마법진에서 쏟아지는 빔 공격이 워낙에 집요해서 약점조준스킬을 발동시킬 시간조차 부족했다.

“으으으... 아직도 잘 안 보여. 씨발년, 그 분이고 뭐고 그냥 죽여 버릴 거야.”

“뭐야? 너희 대장의 명령은 절대적인 거 아니었어?”

“알게 뭐야!”

엘카렌은 악에 바친 소리를 내질렀고, 마법진들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마법진들이 날아다니는 원리가 정말 궁금했지만 지금은 그런 사소한 호기심 때문에 고민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마법진들은 웅웅거리는 소음과 함께 바람을 내뿜으며 사방에서 날 포위해오면서 빔을 난사했다.

엘카렌의 주변을 지키고 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기동성을 자랑하며 나를 압박했다.

가까운 곳에서 계속 폭발이 일어나는 바람에 귀에서 이명이 들리고 체온유지기능을 넘어서는 열기 때문에 숨이 막혔다.

“돌겠네, 진짜!”

“그냥 포기하고 죽어! 어차피 도망치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주제에!”

나는 엘카렌이 나에게 무슨 말을 하던 간에 무시하고 내 생존에만 집중했다.

급한 마음에 연막탄을 다시 쏴봤지만 마법진이 연막 위를 지나가면 맥없이 흩어졌다.

잠깐, 마법진의 아래로만 바람이 나오는 이유가 뭐지?

마법진에 물리적인 추진력이 필요하다고? 보통 마법은 그런 거 무시하지 않나?

나는 마법진이 어쩌면 마법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혹시 기계 같은 거 아니야?’

나는 의문을 해결하고자 다짜고짜 마법진에다가 마력산탄총을 쐈다.

마력산탄은 허무할 정도로 마법진을 그냥 통과해버렸지만 곧 수많은 산탄들이 금속에 튕겨나가는 듯한 소리가 이어졌다.

아! 저게 뭔지 대충 알겠다.

마법진은 그냥 눈속임일 뿐이고 그 너머에 밑으로 바람을 내뿜으면서 날아다니는 작은 비행체, 그러니까 드론 같은 게 숨겨져 있는 것 같다.

물론 내가 아는 소형드론에 비해서는 말도 안 되는 화력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경기관총이나 로켓포도 아니고 빔을 쏜다니!

여기가 무슨 우주에서 광선검을 휘두르는 세상도 아닌데 말이다.

게다가 방어력도 무척 튼튼해서 가까운 거리에서 산탄을 맞았는데도 아무런 손상을 입지 않고 계속 날아다녔다.

정체를 알아낸 것은 좋았지만, 내가 가진 화력으로 파괴할 수 없다면 전황을 뒤집을 수 없을 것이다.

“쳇, 벌써 눈치채버렸네. 그래봤자 달라질 건 없지만 말이야.”

엘카렌은 짜증스럽게 말을 내뱉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화려한 마법진이 사라지고 비행접시처럼 생긴 5기의 드론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 예상보다는 크기가 커서 직경이 1미터 정도는 될 것 같았다.

드론은 몸체의 가운데에 개폐식 빔포가 달려있고 다른 무장은 없었다.

“여태까지 마법인척 속이고 살아왔는데, 역시 동향출신은 눈치가 빠르네.”

엘카렌은 대놓고 자신이 지구출신이라는 걸 밝혔다.

어쩌면 이 녀석도 나처럼 한국 사람이거나 거기서 살던 외국인이었을지도 몰라.

막시안은 스마트폰을 들고 설치더니 이쪽은 자율드론이라니... IT업계의 음모인가?

그렇다면 가면쟁이의 대장이라는 놈은 실리콘밸리 출신일지도 모르겠어.

“이게 네 스킬인가보지?”

“그래. 너처럼 별 볼 일 없는 스킬만 잔뜩 가지고 있는 것보다 이거 하나 가지고 있는 게 훨씬 나아.”

엘카렌은 자신의 스킬에 자부심을 드러내더니, 이제는 정체를 숨기지 않는 드론들을 동원해서 다시금 나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나는 관통력이 높은 마력소총을 들고 반격에 나섰지만 이것 역시 효율적인 공격수단이 되어주질 못했다.

마력소총탄은 드론의 장갑에 박히기는 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약점조준스킬을 발동시켜서 드론의 빔포를 향해 발사해도 순식간에 뚜껑을 닫아버려서 유효한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안 그래도 계속 폭발이 일어나서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공격도 마음대로 안 풀리니 미칠 노릇이었다.

‘관통이 되질 않는다면 아예 날지 못하게 만들면 되지 않을까?’

나는 마력권총의 약실을 비우고 제압탄으로 채웠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드론을 향해 약점조준스킬을 발동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드론에 명중한 제압탄은 순식간에 무거운 돌덩이로 둘러쌌지만 한 발로는 드론을 떨어뜨릴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남은 5발을 모두 쐈고, 결국 드론은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바닥으로 추락했다.

추락한 드론은 빔을 바로 앞에 쏴서 폭발을 일으키는 식으로 대응했지만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암석에는 큰 효과가 없었다.

나는 그 드론의 빔포를 향해서 제압탄을 쐈고, 드론은 치명적인 약점에 대한 공격을 막겠다고 뚜껑을 닫았다가 그대로 완전히 무력화되었다.

그리고 난 다른 드론들이 무력화된 친구를 구하러 오는 걸 막기 위해서 풍압탄을 쏴서 비행을 방해했다.

풍압탄의 효과는 별로 오래가지는 않았지만 순간적으로 드론을 휘청거리게 만들어서 결정적인 움직임을 방해하는데 탁월했다.

“아, 진짜! 제대로 좀 싸우라고!”

엘카렌은 괜히 드론들에게 화풀이를 했다.

그녀가 직접 조종하는 게 아니라 드론들이 자율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일이 안 풀리면 저런 식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아무튼 나는 엘카렌이 그러든가 말든가 나머지 드론들을 제압하는데 집중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제압탄은 이제 24발이 남았고, 이론적으로는 남아있는 모든 드론들을 무력화시킬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드론들도 학습을 했는지 내가 한 놈에게 제압탄을 명중시키자마자 다른 놈이 그 놈에게 출력을 낮춘 빔을 쏴서 암석을 깔끔하게 도려냈다.

하아, 이러면 곤란한데...

나는 일단 남아있는 제압탄을 신중하게 사용해서 또 다른 드론을 무력화시켰다.

이번에는 다른 드론들이 도와줄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서 제압탄을 한꺼번에 쏟아 부었다.

하지만 그 사이에 다른 드론들이 내가 가장 먼저 무력화시킨 드론을 구출해버렸다.

나 혼자서는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면서 학습까지 하는 드론들을 상대하는 건 무리인 모양이다.

재기동한 드론은 나에게 화풀이라도 하려는 듯 동료들과 함께 나를 맹렬하게 공격했고, 두 번째로 제압했던 놈까지 풀려났다.

나는 이번에도 잘 피하다가 결국 폭발에 휘말려서 멀찍이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마법갑옷 덕분에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귀가 잘 들리지 않고 시야가 흐릿해졌다.

하지만 드론들의 공격은 끝나지 않아서 거의 본능적으로 몸을 피하면서 정신을 차리려고 애를 썼다.

“이제 너도 슬슬 한계인 것 같은데 내 실험체를 넘기면 넌 무사히 보내줄게. 어때?”

“거짓말은 집어치워.”

“난 널 죽여서 이득이 될 게 없어. 지금까지는 그냥 화풀이를 했던 것뿐이라고.”

엘카렌은 여전히 날 죽이려고 하는 주제에 어이없게도 관대한 척을 했다.

유리한 고지에 섰는데도 협상을 요구하다니, 생각보다 사정이 좋지 않은 모양이다.

“지랄 말고 닥치기나 해. 난 너희 가면쟁이들은 모조리 박살내겠다고 다짐했거든.”

“쳇, 그럼 뒈져버려!”

엘카렌은 맹수처럼 으르렁거리며 크게 소리쳤다.

하지만 그녀의 바람과는 다르게 드론 하나가 갑자기 펑하고 큰 소리를 내며 폭발하더니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며 추락했다.

엘카렌은 굉장히 당혹스러워했지만 난 놀라지 않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멀리서 위력적인 공격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아는 한, 이리스뿐이니까.

아직 텔레파시는 불가능했지만 이리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샘솟았다.

나는 추락했는데도 여전히 작동을 멈추지 않는 드론에게 달려가서 그것을 마법방패로 힘껏 내리찍었다.

그러자 드론은 스파크를 몇 번 튀기더니 기운 없는 소리를 내면서 완전히 침묵했다.

“좋았어!”

기세등등해진 나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드론에게 마법방패를 던져서 명중시키고, 균형을 잃고 고도가 떨어진 그것의 위로 뛰어올라 내리찍었다.

드론은 빔을 쏘아대며 다시 위로 날아가려고 했지만 마법갑옷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나는 드론을 무게로 억누르면서 주먹질을 해댔다.

맨주먹이었으면 뼈가 다 부러졌을 테지만 마법갑옷의 주먹은 묵묵히 드론의 장갑을 찌그러뜨렸다.

주변에서 다른 드론들이 날 공격하려고 했지만 이리스의 저격 때문에 오히려 또 하나의 드론이 추락하고 말았다.

나는 주먹으로 마구 때리던 드론의 장갑을 뜯어내고 그 안에 있는 부품들을 모조리 뜯어버렸다.

그렇게 나는 총도 아니고 근접공격으로 드론을 둘이나 박살냈다.

지금까지 총으로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던 게 다 허무하게 느껴졌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분명 텔레파시도 차단하고 주변에 병력도... 허억!”

“그런 오합지졸들로 뭘 하겠다는 건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던 엘카렌은 자신의 뒤에서 칼날이 불쑥 튀어나오는 것을 보면서 바람이 새는 소리를 냈다.

엘카렌을 찌른 라우라는 그녀를 비웃고는 나를 바라보면서 어여쁜 미소를 지으며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온통 피범벅인 그녀는정말이지 달콤살벌한 사람이다.

“라우라, 그 년을 꼼짝 못하게 만들어. 난 하나 남은 것을 마저 부수고 올게.”

“네, 레베카님.”

나는 라우라에게 엘카렌을 맡기고 홀로 남은 드론을 향해서 전력으로 뛰어갔다.

정면에서 뿜어지는 빔을 도중에 다시 손에 든 대형마법방패로 막아냈고, 그대로 뛰어올라서 치트가방에서 꺼낸 대검으로 힘껏 내리찍었다.

대검은 드론을 갈라버리지는 못했지만 그것을 추락시킬 정도의 충격량을 선사했다.

드론은 다시 날아보려고 했지만 내가 그 위로 착지를 해버리는 바람에 그대로 박살이 나버렸다.

“총이 정답이 아니었을 줄은 몰랐네. 기술력 차이가 너무 컸던 모양이야.”

나는 생각보다 엄청 얇은 드론의 장갑을 살펴보며 허탈감을 느꼈다.

보기에는 프라이팬 정도에 불과한데 마력소총탄까지 거뜬하게 막아낼 줄이야.

그리고 이런 작은 덩치로 그런 강력한 공격을 쏟아 부으면서 날아다니다니 에너지원이 뭔지 참 궁금하다.

전투에는 별 재능이 없어 보이는 엘카렌이 아니라 전문가가 사용했더라면 난 이렇게 쉽게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라우라, 그 년 가면을 벗겨봐.”

라우라는 내 명령에 따라서 엘카렌의 쿠앤크가면을 벗겼다.

그리고 나는 아주 익숙한 얼굴과 마주하고 말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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