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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세상에서 마음껏 살아간다-106화 (106/271)

〈 106화 〉 105화

* * *

프리실라는 내 예상보다 훨씬 빨리 가르탱과의 약속을 잡아주어서 오후 3시에 그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노먼에게는 가르탱의 저택에 잠입해서 정보를 얻어내겠다고 말했었지만 그의 주장과 너무나도 상반된 이야기를 듣고 나니 당장은 그 약속을 지켜주지 못하겠다.

가르탱의 저택은 노먼의 저택을 기준으로 북서쪽에 위치해있고, 기사단 본부와 가까운 것이 베로니카 언니의 저택이 연상되었다.

그곳까지는 거리가 제법 있었지만 시간도 많으니 말을 타는 대신에 걸어서 가기로 했다.

우리들은 목적지까지 이어지는 대로를 따라서 둘씩 짝을 지어 걸었다.

라우라와 이리스는 이번에도 나와 에리카가 함께하도록 배려해주었는데, 이제 슬슬 부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에리카가 먼저 내 손을 잡고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나에게 재잘거리는 모습을 보는 건 정말 행복하다.

“레베카님, 저 나무 좀 보세요. 꽃망울이 올라오고 있어요. 봄의 전령이 다녀갔나 봐요.”

“오, 정말이네. 리제르카는 여기보다 더 꽃이 빨리 필 테니까 조만간에 돌아가야겠다.”

“새해맞이를 거기서 하실 건가요?”

“응, 예전에 라우라랑 이리스에게 리제르카에서 열리는 봄꽃축제를 즐기기로 약속했었거든. 분명 재밌을 거야.”

나는 고개를 돌려 우리 뒤에 있는 라우라와 이리스를 보면서 윙크를 했다.

그러자 두 사람은 사랑스러운 미소로 화답했다.

어디 내놓아도 손꼽을 정도로 아름다운 애인들을 대동하고서 화사한 꽃길을 거닌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행복해진다.

“그 축제라면 저도 좋아해요. 임시주인님께서 봄만 되면 직원들을 데리고 꽃놀이를 가는 걸 즐기셨는데 그 덕분에 맛있는 것도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요.”

“리제르카에 가면 그 아저씨한테 들러서 그동안 널 잘 돌봐줘서 고맙다고 선물이라도 드려야겠네.”

“술을 사드리면 정말 좋아하실 거예요. 많이 마시지는 않으셔도 애주가이시거든요.”

“그래? 술이라... 라우라, 무서우니까 그렇게 바라보지 말아줘. 내가 마시는 것도 아니고 선물로 사는 것 정도는 괜찮잖아.”

나는 술이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맹수의 눈동자로 날 바라보는 라우라를 진정시켰다.

벌써 두 번이나 술을 마시고 사고를 쳤으니 뭐라고 항변할 수도 없었다.

“저도 모르게 흥분해서 죄송해요. 저번에는 제가 레베카님에게 술을 끊으시라고 했었지만 그래도 아예 못 마시게 강요할 수는 없겠죠.”

“아니야. 난 적당히 강요를 받아야 자제를 하는 사람이야. 그래도 약간은 허용해줘서 고마워.”

“대신에 술을 마실 때는 항상 제가 곁에 있어드릴게요.”

“확실히 네가 따라주는 술이 맛있기는 해. 이리스, 너도 그렇고.”

나는 라우라와 이리스에게 술시중을 강요하거나 명령한 적은 없다.

언제나 두 사람이 자발적으로 나섰고, 오히려 내가 괜찮으니 편하게 마시자고 한 적도 제법 있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들이 술을 따라주면 기분이 좋아지는 건 또 사실이라서 아예 못하게 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당분간 날짜를 잘 확인해야겠다. 괜히 일정이 꼬이면 안 되니까.”

“저희들도 정신 바짝 차리고 있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그래도 내가 라우라 너를 포함해서 모두를 책임지는 입장이니까 거기에 맞게끔 행동하고 싶어.”

난 데이트 약속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이렇게 많은 애인을 거느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연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지금 내가 당면한 문제를 최대한 빨리, 깔끔하게 해결하고 마음 편하게 데이트를 즐기도록 노력해야겠다.

나는 조만간 다가올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계속 길을 걸어갔다.

도중에 내 옆자리에 있는 사람이 에리카에서 이리스로, 다시 이리스에서 라우라로 평소의 역순으로 바뀌는 경험은 꽤나 흥미로웠다.

에리카에게서는 꽃봉오리처럼 풋풋한 설렘이, 이리스에게서는 이제 막 피기 시작한 꽃잎처럼 부드러운 설렘이, 라우라에게서는 만개한 꽃처럼 화려한 설렘이 각각 느껴졌다.

나는 나만의 아름다운 꽃들이 절대로 시들지 않도록 꾸준히 관심과 사랑을 줄 것이다.

그래, 새해선물로 커플링을 준비해야겠다.

이런저런 핑계로 계속 미뤘지만 더 이상은 그럴 수 없어.

지금까지 들렀던 도시들 중에서는 프랑카가 제일 크니까 거기서 사면되겠지.

돈 걱정을 할 필요가 없으니 내 사랑들이 원하는 걸 마음껏 고를 수 있게 해줄 거다.

아예 주문제작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거야.

내가 반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이에 내 손을 잡고 있는 라우라가 넌지시 진지한 이야기를 꺼냈다.

“레베카님, 만약에 노먼님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일단 이유는 들어보고 같잖은 거라면 대가를 치르게 해줘야겠지.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냥 서로 깊은 오해가 생긴 것 같아.”

“지금 상황을 봐서는 오해를 풀어주는 게 쉽지는 않겠네요.”

“맞아. 괜히 쓸데없는 참견을 하는 것일지도 몰라. 하지만 가면쟁이들이 두 사람 사이를 이간질했고 그 사실을 우리가 밝혀낸다면 절대로 쓸데없는 참견이 아니겠지.”

“부디 좋은 결과만 있으면 좋겠네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어쨌든 가르탱을 직접 만나서 대화를 하다보면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거야.”

나는 이제 막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가르탱이 사는 저택의 대문을 보면서 말했다.

가르탱의 저택은 노먼의 저택과는 달리 저택에 딸린 부지가 별로 넓지 않아서 대문에서 현관까지의 거리가 걸어서 1분이면 충분할 정도였다.

대신 건물이 5층짜리라서 주변에 있는 주거지들 중에서 영주의 저택 다음으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대문을 지키고 있던 경비는 미리 언질을 받았는지 날 보자마자 알아서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중년의 집사가 현관에서부터 나를 맞이한 뒤에 저택 안으로 데려갔다.

가르탱의 저택은 인테리어가 전체적으로 고급스러웠지만 장식물은 없고 일정한 간격마다 화분이 놓여있었다.

이 많은 화분들을 관리하려면 보통 일이 아니겠지만 저택에 하인들이 많으니 괜찮겠지.

우리는 마법승강기를 타고서 가르탱의 개인공간이 있다는 5층으로 단번에 올라갔다.

승강기의 문이 열리자마자 짧은 복도가 보였고, 그 끝에 튼튼해 보이는 문이 있었다.

집사가 초인종을 누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문이 열렸고, 이리스와 키가 비슷한 젊은 여우족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제법 순박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고 안경을 쓰고 책을 들고 있어서 그런지 지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보기에는 별로 강해보이지는 않았지만 분석스킬을 사용해보니 이 사람이 바로 제르디아 기사단의 부단장인 가르탱이었다.

역시 사람은 겉모습만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니까.

가르탱은 집사를 돌려보내더니 우리 모두를 자신의 개인공간으로 들였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은 5층의 가운데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정육면체 모양의 작은 온실이었다.

그리고 온실을 중심으로 침실이나 서재, 체력단련실, 욕실, 식당 같은 방들이 쭉 배치되어 있었다.

가족들도 없이 혼자서 이 넓은 공간에서 지내면 외로울 것 같았지만 가르탱에겐 그런 기색이 전혀 없었다.

세상에는 혼자여야 행복한 사람도 있긴 하다지만 가르탱은 그 정도가 좀 심한 것 같다.

“만나서 반갑소. 내 이름은 가르탱빌란드르라고 하오. 제르디아 기사단의 부단장을 맡고 있소.”

“저는 명예기사 레베카라고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그대의 명성에 대해서는 익히 들은 바가 있소. 백성들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타락한 귀족과 맞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정말 대단하오.”

가르탱도 노먼처럼 내가 리제르카에서 했던 일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었다.

하긴 부단장인데 다른 영지의 기사단이 보내는 정보를 모를 리가 없겠지.

그리고 가르탱은 인사치레로 날 칭찬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나를 대단하게 여기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의 순박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눈에서는 가식이라는 감정을 전혀 읽어낼 수가 없었다.

“과찬이십니다. 동료들이 없었더라면 이룩하기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가면을 쓴 자들과 연관된 일이었으니 필시 아주 위험한 일이었을 것이라 짐작되오.”

가르탱의 마냥 착해 보이는 얼굴에서 험악한 기색이 느껴지는 것을 보니 가면쟁이들에 대한 그의 적개심이 상당히 큰 것으로 보였다.

노먼은 가르탱을 가면쟁이들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었지만 지금은 노먼이 뭔가 철저하게 잘못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벌써부터 머리가 혼란스럽지만 정신을 바짝 차리자.

“그들을 알고 계시는 군요. 어떤 경위로 알게 되신 겁니까?”

“놈들은 기사단장님을 납치하고 노먼에게 막대한 빚을 지게 만든 원흉이오. 정작 그 친구는 내 조사결과를 믿지 않고 오히려 날 의심하고 있지만 말이오.”

가르탱은 굉장히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둘도 없는 친구에게 원수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고 있으면 분명 마음이 편치 않겠지.

가면쟁이들은 기사단장을 납치한 뒤에 노먼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빚을 만들고 그와 가르탱 사이를 이간질해서 진실에 다가가지 못하게 만들려는 것 같다.

물론 이건 가르탱의 진실만을 말하고 있다는 가정에서 성립되는 예측이다.

가르탱이 거짓말로 일관하고 있다면, 난 적에게 놀아나는 꼴이 될 것이다.

“처음에는 그들을 뭐라고 불러야할 지 고민이었는데 마침 그대가 가면쟁이라는 우스꽝스러운 별명을 지어줬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로 만족스럽게 사용하고 있소.”

“그, 그렇군요. 유치하지 않나요?”

“난 아주 마음에 드오. 그런 악독한 놈들에게는 그런 식의 별명이 딱이라고 생각하오. 그나저나 커피는 좋아하시오?”

“네, 자주 즐깁니다.”

“마침 새로운 원두가 들어왔는데 잘 됐구려. 따라오시오.”

가르탱은 우리를 열대어들이 헤엄치고 있는 커다란 수족관이 있는 방으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작은 탁자들이 몇 개 있었고, 어디에 앉든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열대어 무리를 감상할 수 있게끔 되어 있었다.

우리는 가르탱의 말에 따라서 얌전히 자리에 앉아서 기다렸고, 곧 구수한 향이 물씬 풍기는 커피가 담긴 고급스러운 머그잔이 내 앞에 놓였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라우라에게는 밀크티를 만들어주었다.

노예에게도 세심한 배려를 해주는 걸보면 일단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더 나쁜 일을 위해서 거짓친절을 베푸는 것일 수도 있으니 경계를 늦추지 말자.

“부단장님께서는 노예에게도 친절하신 분이시군요.”

“노예라 할지라도 내가 지켜야할 백성임에는 변함이 없으니 말이오. 아예 노예와 사랑에 빠져서 결혼까지 한 노먼보다야 선을 긋고 있는 게 사실이긴 하오.”

“그래서 프리실라님이 부단장님을 굉장히 신뢰하고 계시는군요.”

“프리실라는 원래 우리 가문이 운영하는 농장의 노예였소. 사관학교에 입학했던 해에 노먼을 그 농장에 데리고 갔었는데 그 친구가 프리실라를 보자마자 한 눈에 반해서는 나에게 해방시켜달라고 떼를 쓰지 뭐요. 친구를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별 것 아니니 흔쾌히 승낙했었는데 설마 결혼까지 할 줄은 몰랐소. 아무튼 그 이후로 프리실라에 대해서는 신경을 끄고 있다가 임신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어느 정도 챙겨주고 있소.”

“그런 사정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노먼님의 빚에 대한 채권을 모두 사들이셨다고 들었는데 왜 그런 일을 하신 겁니까?”

“혹시 노먼이 내 탓을 했소?”

가르탱은 아주 익숙한 일처럼 말했다.

이미 그는 노먼에게 자신이 많은 의심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네, 부단장님께서 본인을 조롱하기 위해서 그런 거라고 하셨습니다. 처음엔 저도 그렇게 믿었지만 프리실라님의 말을 듣고는 생각을 바꿨습니다.”

“나는 노먼을 위해서 채권을 깔끔하게 정리해서 원금만 갚으면 되게끔 만들었소. 아예 빚을 없던 일로 만들어 주고 싶었지만 노먼이 그걸 원치 않아서 만기 없이 갚기만 하게끔 새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그걸로 일이 다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했소.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노먼이 날 공공연히 비난하지 뭐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소.”

“노먼님은 부단장님이 기사단 내에 파벌을 만들어서 노먼님께 대적하고 있다는 말도 하셨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이신지요?”

“후우, 이젠 그렇게까지 날 의심하고 있단 말이오? 정말 너무하는군. 단장님께서 실종되고 노먼이 단장대리가 된 이후로 그 사실에 불만을 품은 자들이 파벌을 만들었고, 난 거의 모든 파벌에게서 함께하자는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하고 역으로 그들을 설득해서 파벌을 해체하고 다녔소. 그걸 노먼은 내가 파벌을 만들었다고 여긴 모양이오.”

가르탱의 항변을 들어보니 이거 노먼이 전적으로 잘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노먼과 가르탱을 마주보게끔 앉혀놓고 내 중재 하에서 서로 솔직한 대화를 하게 만들지 않으면 서로에 대한 의심과 불신, 실망감만 커질 것이다.

만약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의 골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깊어진다면 제르디아 기사단은 분열과 반목을 거듭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제일 좋아할 집단은 분명 가면쟁이들이겠지.

“누군가 이간질을 하는 게 아닐까요? 예를 들면...”

“가면쟁이들이 분명하오. 인면어의 비정상적인 증식과 거대 인면어의 출현 또한 놈들의 짓일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볼 수 있소.”

“혹시 놈들의 기지나 접선장소에 대한 단서를 가지고 계시는지요?”

“유감스럽게도 어떠한 단서도 가지고 있지 않소. 그저 무수한 목격담이 전부일 뿐이오. 그대가 거대 인면어를 쓰러뜨리고 구해낸 그 남자라면 뭔가 알고 있을 지도 모르지만 노먼이 협조를 해주지를 않으니...”

“그 친구라면 저희 쪽에서 어느 정도 조사를 끝낸 참입니다.”

“실례지만 정보를 공유해줄 수 있겠소?”

“물론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제 요구사항을 먼저 들어주십시오.”

“말해보시오. 내 권한으로 들어줄 수 있는 일이라면 좋겠구려.”

“제가 보는 앞에서 노먼 단장대리님과 만나서 대화를 하시기 바랍니다.”

내 요구를 들은 가르탱은 굳은 표정을 침묵했다.

사실 이 문제는 둘이서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는 게 최선의 해결책이다.

제3자인 내가 두 사람 사이를 오가면서 서로 다른 입장을 듣는 것만으로는 아무 것도 해결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왜 이 두 남자들은 서로 사적으로 만날 생각을 하질 않는 걸까?

심지어 단장대리와 부단장이라서 하루에 한 번은 꼭 얼굴을 마주보고 대화를 나누어야할 사이인데도 말이다.

“좋소. 그대의 요구를 들어주겠소. 하지만 노먼이 거절한다면 방법이 없소. 난 이미 몇 번이고 노먼과 솔직한 대화를 하려고 했지만 모두 실패했소. 그러니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높을 것이오.”

“제가 노먼님을 설득해보겠습니다. 기사단이 분열된 상태로는 가면쟁이들을 막을 수 없고 기사단장님을 찾지도 못할 겁니다.”

“그대 말이 맞소. 참으로 염치없는 부탁이지만 부디 노먼과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도와주시오.”

가르탱은 머리까지 숙이며 내게 간곡하게 부탁했다.

우선 가르탱의 협조를 얻어냈으니 노먼만 어떻게든 설득하면 둘 사이의 무의미한 갈등을 매듭지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분명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갑자기 들려오는 굉음과 창문 너머로 보이는 기사단 본부에서 피어오르는 시커먼 연기가 내 믿음을 뒤흔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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