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화 〉 1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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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의 뜨거운 밀회 이후로, 에리카의 분위기는 더 야릇해졌다.
에리카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굉장히 유혹적으로 느껴졌고, 그녀의 고혹적인 눈빛이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에리카에게서 애정이 담긴 아침키스를 받았고, 그녀를 인형처럼 끌어안고서 향취를 만끽했다.
에리카의 호감도는 단번에 4까지 올랐는데, 루드비히의 신병을 확보하고 그를 보호한 것과 에리카와 처음 섹스를 한 영향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음란도 역시 4로 상승했는데, 어젯밤의 섹스가 꽤나 강렬했지만 성경험 자체가 처음이라서 생각보다는 많이 오르지 않았다.
처음엔 호감도에 집중하고 음란도는 나중에 생각하자고 생각했었는데 상황이 바뀌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에리카의 피학적 성향을 고려해보면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음란도의 상승속도가 달라질 것이다.
벌써부터 에리카가 피어싱을 하고서 내 앞에 그 음란한 모습을 보여줄 날이 기다려진다.
내 미소를 본 에리카는 내 얼굴을 쓰다듬으며 날 빤히 쳐다보았다.
“레베카님,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나요?”
“그야 사랑하는 널 이렇게 안고서 한적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까 그렇지.”
“그런가요? 제가 보기엔 다른 생각을 하고 계신 것 같은데요.”
“아, 그건 나중에 생각하도록 하자. 나름 중요한 일이지만 지금은 중요하지 않은 그런 일이니까.”
나는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려 대충 얼버무리면서 에리카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그녀의 피부로 덮인 뿔에 관심이 갔다.
사람의 머리에 달린 뿔은 이리스 덕분에 익숙해졌지만 에리카의 뿔은 이리스의 것과는 달라서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에리카, 부탁이 하나 있어.”
“뭐든 말씀해보세요.”
“뿔을 만져도 될까?”
“레베카님이라면 괜찮아요. 민감하니까 조심해주세요.”
에리카는 흔쾌히 동의하더니 직접 내 손을 잡고 자신의 뿔 위에 올려주었다.
나는 에리카가 말했던 대로 살살 뿔을 만져보았는데, 피부로 덮여있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뱀파이어족은 뿔에도 로션이나 수분크림을 발라야겠는 걸?
내가 힘을 조금 주어서 뿔을 움켜잡자, 에리카가 얕은 신음소리를 흘렸다.
흐음... 이거 애무를 할 때 써먹을 수도 있겠네.
나는 뿔에 대한 흥미가 커졌지만 기껏 호감도를 올린 에리카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아서 만지는 걸 그만두었다.
그런데 뱀파이어족의 뿔이 민감하다는 설정은 내가 만들지 않았던 것 같은데.
“에리카, 너희 종족은 다 그런 걸까?”
“글쎄요? 동족을 만나본 적은 있긴 한데 그 사람들에게서 뿔이 생각보다 약하니까 부러지지 않게 조심하라는 말만 들었지 다른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요.”
“어쩌면 네 체질일 수도 있겠다.”
“그럴지도 몰라요. 전 예전부터 뭐랄까, 몸에 압박이 가해지는 상황이나 참을만한 고통을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느끼는 경향이 있거든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 앞으로 섹스를 할 때 기대해도 좋아.”
“레베카님이라면 저를 심하게 다루지 않으실 테니까 안심하고 제 몸을 맡길게요.”
에리카가 내게 보내는 신뢰에 나는 감명을 받았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좋은 말을 해줄 때마다 너무 기분이 좋았고 가끔은 기쁜 나머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내가 예전 세상에서 얻지 못했던 상냥한 관심이 정말 소중하게 여겨진다.
그리고 내가 배려를 받는 만큼, 사랑하는 이들에게도 베풀어야겠지.
“에리카, 이제 루드비히에게 가보는 게 어때? 노먼님이 출근하실 때 데려간다고 하셨으니까 곧 저택에서 나갈 거야.”
“어라?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나요? 레베카님에게 안겨있다 보니까 시간 가는 줄도 몰랐어요.”
“나도 그래. 응? 라우라랑 이리스가 방으로 오고 있네.”
나는 미니맵으로 내 사랑들의 접근을 확인하고는 에리카와 침대에서 일어나 흐트러진 잠옷을 고쳐 입었다.
그리고 두 사람보다 먼저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가서 그들을 맞이했다.
내 생각보다 일찍 돌아온 라우라와 이리스는 우선 나에게 아침키스부터 해주었다.
언제나처럼 라우라가 먼저하고 이리스가 뒤를 이었다.
그리고 키스가 끝났을 때는 두 사람이 동시에 내 볼에 입을 몇 번이고 맞추면서 나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보고 싶었어요, 레베카님.”
“저도 레베카님을 많이 보고 싶었답니다.”
라우라와 이리스는 하루도 채 떨어져있지 않았는데도 내가 몹시 그리웠던 모양이다.
나는 솔직히 에리카에게 신경을 쓰느라 그리움을 덜 느끼기는 했지만 그래도 두 사람이 보고 싶었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난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고 번갈아가면서 뽀뽀를 해주며 잠깐 동안 주지 못했던 사랑을 나눠주었다.
다소 유치한 방식이지만 효과는 탁월해서 보다 못한 에리카가 라우라와 이리스 사이에 끼어들어서 말없이 뽀뽀를 요구했다.
우리 셋은 에리카가 너무 귀여워서 한꺼번에 그녀에게 뽀뽀를 퍼부었다.
집중폭격을 당한 에리카는 헤롱헤롱하면서 정신을 차리질 못했고, 이리스는 그런 에리카를 끌어안고서 귀엽다고 난리를 피웠다.
“레베카님, 에리카를 우리 딸로 입양하는 거 어떠세요? 너무 귀여워서 미칠 것 같아요. 꺄아아.”
“그만해... 숨막혀...”
“아, 미안! 나도 모르게 너무 세게 안아버렸네. 괜찮아?”
“그럭저럭.”
에리카는 자신을 너무 좋아해주는 이리스를 피해서 내 뒤로 숨어버렸다.
그걸 본 이리스의 눈빛이 예사롭지가 않았지만 내 앞에서 선을 넘지는 않았다.
“이리스, 에리카를 귀여워하는 건 좋지만 좀 자중하는 게 좋겠어. 그런데 입양하자니 그건 대체 무슨 말이니?”
“네? 아, 그건 말이죠... 그, 그게... 음... 부탁이니까 못들은 걸로 해주세요. 제발요!”
“하하하! 알았어. 알았으니까 진정해. 그래도 이리스, 네가 밝은 모습을 보여줘서 정말 다행이다. 난 앞으로 쭉 네가 웃는 날이 많기를 바라고 있어.”
“고맙습니다, 레베카님. 히힛.”
이리스는 이번에는 나를 끌어안고서 헤실헤실 웃었다.
내가 보기엔 셋 중에서 이리스가 하는 행동이 제일 귀여운 것 같다.
“레베카님, 그럼 저는 루드비히 오빠에게 갔다가 말들을 돌봐주러 갈게요.”
“그래. 도움이 필요하면 부르고.”
“네, 레베카님.”
에리카는 이리스가 나에게 심취하는 사이에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도중에 라우라가 그녀를 붙잡고 귓속말을 했지만 무슨 내용인지는 잘 들리지 않아서 모르겠다.
라우라는 에리카와의 짧은 비밀대화를 끝마치고는 나에게 사뿐사뿐 다가와서 이리스처럼 안겨들었다.
“레베카님, 아침식사는 하셨나요?”
“아니. 에리카랑 논다고 깜빡했어.”
“어쩐지 꼬르륵하는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프리실라님께서 주방을 사용해도 좋다고 허락하셨으니 이리스가 만들어드릴 거예요.”
“그래? 그거 잘 됐네. 나중에 사용한 식재료비는 따로 챙겨드려야겠다.”
애초에 귀족 걱정은 할 필요가 없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만삭인 사람이 없는 살림을 쪼개서 나눠준다는데 그냥 날름 받아먹기는 영 부담스러웠다.
분명 아직도 하인 5명의 고용을 유지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집안인데도 말이다.
“레베카님, 드시고 싶으신 것 있으세요?”
“베이컨과 올리브절임을 곁들인 프렌치토스트가 먹고 싶어. 그리고 아침을 먹은 뒤에는 커피나 차를 마시면서 오늘 할 일을 정리하도록 하자.”
나는 이리스의 질문에 이제 막 머리에 떠오른 아침식사를 그대로 말해주었다.
뜨끈한 국물요리가 끌리기도 했지만 그건 점심이나 저녁에 먹어야겠다.
그나저나 에리카는 루드비히랑 같이 밥을 먹으려나? 혹시 굶는 건 아니겠지?
나중에 물어보고 제대로 챙겨줘야겠다.
다른 건 몰라도 밥은 먹고 다녀야 한다고.
“그런 간단한 요리는 저도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라우라, 너 나한테 처음 자기소개를 할 때는 요리는 최악이라고 했었잖아?”
“그래도, 그래도 저도 뭔가 레베카님께 만들어드리고 싶은 걸요.”
나는 라우라의 적극적인 태도가 고마우면서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보통 이런 식으로 돌아가면 스스로 비명을 지르는 뒤틀린 요리가 탄생한단 말이지...
“이리스, 네가 라우라를 올바른 요리의 길로 이끌도록 하렴. 부탁할게.”
“걱정 마세요. 제가 어떻게든 해결할 테니까요.”
이리스는 자신감을 보이며 나를 안심시켰다.
확실히 야영을 할 때마다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내 입을 만족시켰던 사람다운 태도였지만 불길함은 쉽게 사라지질 않았다.
그냥 내가 할까? 아니야, 그러면 라우라가 삐질게 분명해.
나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함께 두 사람을 데리고서 저택의 주방으로 향했다.
주방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고용인의 수가 적은 마당에 주방만 담당할 사람을 배치하기엔 인력이 부족해서 그렇겠지.
나는 벽에 기대어서서 이리스가 라우라를 데리고 아침식사를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특히 라우라에게 자꾸 시선이 갔는데, 그녀가 해선 안 될 짓을 할 때마다 이리스가 제동을 걸고 올바른 방향을 이끄는 모습을 보면서 안도하기를 반복했다.
고작 프렌치토스트를 만드는 일인데 왜 이렇게 긴장을 하면서 봐야하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짧지만 긴 시간이 지나가고, 내 앞에 각각의 접시 위에 올려져있는 두 종류의 프렌치토스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른쪽에 있는 것은 그야말로 완벽한 자태를 뽐내는 프렌치토스트였지만 왼쪽에 있는 것은... 조금 타긴 했지만 먹어도 지장이 없을 정도는 되었다.
내가 걱정했던 것에 비해서 정상적인 음식이 나오자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레베카님, 대체 뭘 생각했던 거예요? 제가 요리 실력이 최악이라고 말씀드리긴 했었지만 그래도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수준은 된다고요.”
“미안, 미안. 내가 요리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어서 그랬어.”
“아무리 그래도 비웃는 건 너무했어요.”
“아니야. 비웃지 않았어. 그건 비웃은 게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뿐이야.”
“정말요?”
“내가 어떻게 소중한 널 비웃을 수 있겠니?”
“그럼 제가 만든 것부터 드셔주세요.”
“알았어. 우리 다 같이 먹자.”
나는 라우라가 만든 살짝 탄 프렌치토스트부터 시식했고 상상 이상의 만족감을 느끼며 이리스가 만든 것도 먹었다.
우리는 조금 늦은 아침식사를 천천히 즐긴 뒤에 커피와 홍차로 좀 더 느긋함을 즐겼다.
그리고 진지한 논의를 하려고 할 때, 프리실라가 주방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프리실라님.”
“안녕하세요? 레베카님. 어젯밤은 즐거우셨나요?”
“아, 네. 하하하... 그런데 그걸 어떻게...”
“어제 잠이 들기 어려워서 산책 삼아서 복도를 걷다가 우연히 들었지 뭐예요. 후후후.”
프리실라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날 바라보았지만 난 부끄러워서 죽을 지경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집의 안주인에게 그런 걸 들켜버리다니 말이다.
이 세상의 귀족여자들이야 서로 자위기구마저 선물로 주고받는 사람들이니 그런 질문을 던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난 아직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베로니카 언니 덕에 나름 적응이 되었다고 생각했었지만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
이런 걸 보면 내 사랑들은 몰라도 남이 대놓고 어젯밤의 섹스에 대한 감상을 묻는 건 시간이 많이 지나더라도 쉽사리 적응이 되지 않을 것 같다.
“어제 잠깐 몰래 듣고 있다 보니 남편과의 첫 경험이 떠오르더라고요.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몸으로 실천하기는 어려워해서 결국 제가 주도하고 말았지 뭐예요.”
“노먼님이 그런 면모도 있으시군요.”
“무뚝뚝해보여도 귀여운 구석이 있는 사람이에요. 둘도 없는 애처가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시아버지께서 실종되시고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신 이후로는 사람이 바뀌어 버렸어요.”
“바뀌다니요?”
“예전보다 성격이 급해지고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내요. 물론 저한테는 화를 내지는 않지만 애정표현을 별로 하질 않아서 걱정이에요.”
“워낙 안 좋은 상황을 연달아 맞이했으니 힘들어서 그런 거라고 봐요. 분명 빚을 청산하고 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거예요.”
“저도 그렇게 믿어요. 하지만 가끔은 지금보다 더 엇나가면 어쩌나 걱정이에요. 가르탱님도 어찌나 친구 걱정을 많이 하시는지...”
잠깐, 가르탱이 여기서 왜 나와?
분명 노먼이 말하는 가르탱은 부패한 기사이고 자신을 조롱하기 위해서 채권을 하나로 모은 기행을 벌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프리실라가 말하는 가르탱은 마냥 나쁜 사람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가르탱이라는 분은 어떤 사람인가요?”
“남편의 사관학교 동기에요. 남편의 둘도 없이 좋은 친구이고, 저희 집 가세가 기울었을 때 가장 먼저 도와준 사람이에요. 제가 임신했을 때도 남편 다음으로 기뻐하면서 선물을 잔뜩 주셨어요. 거기다 지금 저택에서 일하고 있는 하인들은 모두 가르탱님이 임금을 지급해주시고 있어요. 남편에게는 비밀이지만요.”
프리실라는 가르탱에 대한 칭찬을 마구 쏟아냈다.
그걸 듣는 내 머리는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노먼의 말만 듣고 가르탱을 마냥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던 게 미안해질 정도였다.
“그럼 채권을 모두 사들인 건 왜 그랬던 건지 아시나요?”
“원래 시아버지가 물려주신 빚의 채권은 여러 명의 고리대금업자들이 나눠가지고 있었어요. 이자가 너무 세서 우리가 가진 것을 모두 팔아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죠. 하지만 가르탱님이 직접 그들을 처벌하고 채권을 강제로 매입하셔서 무이자로 만들어주셨어요.”
“아예 빚을 없던 것으로 만들어주지는 않았군요.”
“가르탱님도 처음엔 그렇게 하려고 하셨는데 이자가 불법이지 채무 자체는 법적인 문제가 없는 거라서 무이자로 만들어주시는 게 한계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대신 갚아주는 건 남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라면서 할 수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정작 노먼님은 본인을 조롱하기 위해서 가르탱님이 채권을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었다고 하셨는데 앞뒤 말이 맞지 않는군요.”
“남편이 그런 말을 했다고요?”
“네, 가르탱님에 대한 시선이 굉장히 좋지 않더군요.”
“그럴 리가 없는데... 둘은 언제나 사이가 좋았고, 서로에 대한 신뢰가 두터웠어요. 그런데 어째서 남편이 그런 말을... 역시 사람이 변해버린 걸까요?”
“걱정 마세요. 분명 서로 오해가 있는 걸 거예요. 혹시 가르탱님과 저의 만남을 주선해주실 수 있나요?”
“네, 그건 제가 도와드릴 수 있어요. 최대한 빨리 만날 수 있도록 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힘내세요. 분명히 다 잘 될 거예요.”
나는 울먹거리는 프리실라의 손을 잡아주었다.
어떻게든 참아보려던 프리실라는 결국 눈물을 보였고, 나는 그녀를 정성껏 위로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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