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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세상에서 마음껏 살아간다-100화 (100/271)

〈 100화 〉 99화

* * *

나는 노먼의 저택으로 가기 전에 일단 특수상점에 들러서 워프기능을 활성화시켰다.

이걸로 대도시 3곳을 간단하게 오갈 수 있게 되었다.

횟수제한은 내가 얼마 전에 정확히 확인한 바에 따르면 사람의 경우에 왕복 2번이나 편도 2번이 가능하다.

매일 아침 7시에 초기화되기는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 하루도 엄청나게 시간낭비일 수도 있으니까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신중하게 이동계획을 짜야한다.

횟수제한을 늘리거나 아예 없애면 좋겠지만 더 이상 특수상점에 자금을 투자할 수 없으니 다른 방법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그나저나 여기에 선글라스를 팔던가? 음... 아! 여기 있네. 얘들아, 날 따라와.”

나는 판매목록에서 선글라스를 찾은 뒤에 일행을 데리고 그것이 진열된 곳으로 향했다.

종류는 별로 다양하지 않았지만 세련된 디자인이라서 그럭저럭 만족스러웠다.

내가 선글라스를 구매하려는 이유는 역시나 인면어 때문이다.

인면어와 관련된 사건에 발을 들였고, 그것을 해결하는 일을 도와주기로 했으니 대응책을 확보하는 건 필수다.

라우라와 이리스는 적극적으로 선글라스를 살펴보거나 직접 써보면서 서로를 평가하느라 바빴다.

반면에 에리카는 조용히 하나씩 눈으로만 쳐다보다가 하나를 들어서 나에게 내밀었다.

“저는 이걸로 할게요.”

“일단 써보고 고르는 게 어떠니?”

“뭔가 딱 봐도 감이 잡혀서요.”

“실은 내가 보고 싶어서 그런데 안 될까?”

내 부탁에 에리카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고, 나는 선글라스를 종류별로 에리카에게 씌워보았는데 허무하게도 에리카가 맨 처음에 써보지도 않고 고른 것이 가장 잘 어울렸다.

“역시 나보다는 네 눈썰미가 훨씬 좋은가봐. 넌 마음에 드니?”

“이런 특이한 안경을 써보는 건 처음이라서 약간 낯설기는 하지만 정말 마음에 들어요. 이런 좋은 선물을 사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난 어때? 어울려?”

“음... 그것보단 이게 더 좋아 보여요.”

에리카는 미리 정해놓은 듯이 곧바로 선글라스 하나를 고르더니 내가 쓰고 있는 것을 벗기고 그것을 씌워주었다.

거울을 보니 에리카의 말처럼 지금 쓰고 있는 게 더 내게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에리카, 네가 골라준 게 확실히 더 낫네. 네가 보기엔 어떤 것 같아.”

“멋있어요.”

“오, 정말?”

“레베카님은 분명 엄청난 미녀이시지만 멋있을 때도 많아요.”

에리카는 내 입장에서는 낯간지러운 말을 여과 없이 쏟아냈다.

나는 순간적으로 당황하는 바람에 뭐라고 대답을 해주어야 좋을지 몰랐다.

“왜 그러시나요?”

“아, 아니야. 갑자기 예상치도 못한 칭찬을 받아서 조금 놀랐을 뿐이야. 그게 뭐랄까...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너무 좋은 거 있지.”

“좋아하는 사람... 레베카님은 금방 사랑에 빠지시는 분이군요.”

에리카는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내 정곡을 찔렀다.

틀린 말도 아니라서 뭐라고 항변을 할 수도 없었다.

“맞아. 라우라도, 이리스에게도 그랬었고 너한테도 이렇게 빨리 푹 빠져버렸어. 난 정말 애정결핍이 심한 사람인 것 같아. 혹시 기분 나빴어?”

“아니요. 제가 다른 사람에게 이런 종류의 사랑을 받아보는 건 처음이라서 조금 어색할 뿐이에요. 그리고 레베카님처럼 멋진 분의 사랑은 제 분수에 넘친다는 생각마저 들어요.”

에리카는 얼굴을 발갛게 물들이며 나와 시선을 마주치질 못했다.

나는 수줍은 에리카의 보들보들한 볼을 쓰다듬다가 그녀의 갸름한 턱을 자연스럽게 잡고서 살짝 들어올렸다.

에리카의 생기 넘치는 입술과 고혹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외모는 나에게 먼저 키스를 하라고 부추기는 듯했다.

“레베카님...”

에리카는 내 이름을 부르면서 뜨거운 숨을 내뱉었고, 뒤꿈치를 바짝 들면서 내 양쪽 어깨를 잡고 내게 살며시 기대었다.

이건 분명히 허락을 알리는 신호다.

나는 과감하게 에리카의 촉촉한 입술에 내 살짝 건조한 입술을 조심스럽게 포개었다.

그녀의 입술을 살짝 떨렸지만 내 입술을 받아들이는 데는 주저함이 없었다.

하지만 함께 혀를 섞기에는 아직 에리카의 준비가 부족해보였다.

우리는 쪽쪽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서로의 입술을 집중적으로 탐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에리카의 떨림은 잦아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풋풋한 키스를 끝냈을 때, 에리카는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녀에게서 열기가 느껴지는 것을 보면 키스를 하고 난 뒤에 몰려드는 부끄러움 때문에 차마 날 쳐다볼 수 없는 모양이다.

“에리카, 이제부터 넌 진짜로 내 여자야. 누구에게도 넘겨주지 않을 거야. 그러니 너도 그만큼 날 사랑해주면 좋겠어.”

내가 내뱉는 낯 뜨거운 말을 들은 에리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다시 고개를 든 그녀의 이마와 볼에 뽀뽀를 해준 뒤에 다시 입을 맞추었다.

기습적인 키스에도 에리카는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내 애정표현을 받아주었다.

서로의 입술이 질펀하게 젖었고, 입술이 잠깐 떨어질 때마다 투명한 실 가닥이 아래로 늘어졌다.

에리카는 나보다도 먼저 조심스럽게 혀를 내 입으로 집어넣었고, 나는 그녀의 혀를 내 혀로 감아 돌리며 환영인사를 해주었다.

나는 지금까지 라우라와 이리스를 통해서 단련된 혀놀림으로 에리카를 압도했고, 그녀의 입에서는 야릇한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에리카의 작고 얇은 몸은 미지의 쾌감에 조금씩 떨려왔고 나는 그녀의 가녀린 목덜미와 잘록한 허리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그녀에게 좀 더 빠져들었다.

그렇게 한참동안 에리카에게 내 사랑을 주입한 뒤에야 나는 그녀를 놓아주었다.

에리카는 아쉬움이 담긴 신음소리를 흘리더니 황홀한 표정과 고혹적인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 감정이 사랑이군요. 하지만 어째서 이렇게 빨리, 큰 계기도 없이 레베카님에게 이런 가슴이 뜨겁게 타오르는 듯한 감정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네 말처럼 내가 예쁘고 멋지기 때문이 아닐까? 후훗, 농담이야. 그건 우리가 함께 차차 알아가기로 하자. 시간은 많고 서로 사랑해줄 시간은 많으니까.”

나는 에리카의 손을 잡고서 라우라와 이리스에게로 다가갔다.

그러자 두 사람은 내가 아니라 에리카에게 몰려가서는 양쪽에서 그녀에게 축하한다거나 환영한다는 말을 전달했다.

에리카는 정신이 없어했지만 나와 눈을 마주치고는 생긋 웃으며 여유를 되찾았다.

아, 정말 귀엽고, 사랑스럽고, 잡아먹고 싶은 사람이다.

나는 세 사람이 서로 꺅꺅거리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그녀들과 함께 특수상점을 나섰다.

그리고 우리는 내가 한참 전부터 원했던 대로 고급스러운 식당에서 만족스러운 식사를 즐긴 뒤에 노먼의 저택으로 향했다.

도시의 외곽에 가까운 곳에 위치한 노먼의 저택은 부지가 굉장히 넓어서 저택의 입구에서 정문까지의 거리가 제법 멀었다.

덕분에 도시에서 비롯되는 소음이 거의 들리지 않았고 마치 동떨어진 곳에 지어진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우리는 입구를 지키고 있던 경비 중 한 명의 안내를 받아서 저택부지 안으로 들어갔고, 제법 시간이 지난 뒤에야 노먼의 저택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부지에 비해서 작게 느껴지는 노먼의 저택은 겉보기에는 여느 귀족들의 저택처럼 고급스러워보였지만 뭔가 어수선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우리는 마구간에 말을 맡겨놓고, 저택의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하녀가 열어주는 문을 통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귀족이라면 하나쯤은 있을 법한 화려한 장식물은 아예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건물 내부자체가 전체적으로 휑한데다 하인들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다.

보아하니 집안의 경제사정이 상당히 좋지 않은 모양이지만 그래도 여느 평민들에 비하면 풍족한 삶일 것이다.

제법 실망스러운 상태인 저택을 돌아보던 나는 저택의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어느 젊은 불곰족 미녀와 눈을 마주쳤다.

임신을 한 그녀는 거의 만삭에 가까웠지만 특이하게도 별로 힘들어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녀는 2층에서 계단을 타고 내려와서 내 앞으로 다가왔는데 키가 노먼보다는 조금 작아도 최소한 190cm는 될 것 같았다.

“만나서 반가워요. 제 이름은 프리실라 로트라본이라고 해요. 앞서 만나셨던 노먼의 아내랍니다.”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명예기사 레베카라고 합니다.”

“아! 바로 그 리제르카의 영웅이라는 그 명예기사님이로군요? 남편에게서 당신의 활약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꼭 만나보고 싶었어요.”

프리실라는 큰 키와 엄격해 보이는 인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명랑한 목소리를 내며 내 손을 양 손으로 붙잡으며 기뻐했다.

뭔가 이런 식으로 추켜세워지니까 기분은 좋네.

“저택이 좀 어수선하지요? 말하기 부끄럽지만 집안사정이 갈수록 안 좋아져서... 영웅을 누추한 곳에 모신 것 같아서 죄송스럽네요.”

“아, 아니요. 초대를 받은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저희들은 어느 방에서 머무르면 좋을까요?”

“그건 제가 안내해드릴게요.”

프리실라는 매력적인 눈웃음을 짓더니 앞장서서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나는 만삭인 그녀가 거침없이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불안하기 짝이 없었지만 정작 본인은 멀쩡했다.

불곰족은 몸이 튼튼한 수인족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강한 축에 속하니 만삭임에도 저런 거침없는 행동이 가능한 모양이다.

“저택을 팔기 전에 마지막으로 좋은 손님을 모실 수 있어서 기쁘네요.”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군요.”

“실은 기사단장이셨던 시아버지께서 실종되신 이후로 가세가 많이 기울었어요. 시아버지께서 가족들 몰래 만든 빚이 어마어마했고, 연달아 큰 충격을 받으신 시어머니께서는 그대로 쓰러지셔서 돌아가셨어요.”

“정말 안타까운 일이군요.”

“맞아요. 하지만 그 정도로 끝났더라면 저택까지 팔 필요는 없었을 거예요. 자산이 충분한 남편의 형제들은 전부 타지로 도망갔고, 자매들도 빚을 갚지 않으려고 아예 연을 끊어버렸어요.”

“그것 참 가족 간의 정이나 사랑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상황이네요.”

“그렇죠? 그래서 결국 유일하게 공직에 있어서 도망칠 수도 없는 남편이 모든 빚을 다 떠맡게 된 거예요. 저 같은 사람을 기꺼이 거두어준 착한 사람이 왜 그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프리실라는 눈물을 훔치며 불행한 남편을 안타까워했다.

그런데 내가 돈이 여유가 좀 있는 편이라도 저택을 팔아 치워야할 정도로 큰 빚을 어떻게 해결해줄 수는 없다.

그렇다면 노먼은 빚이 아니라 다른 이유로 내게 도움을 요청했을 것이다.

지금으로선 단순히 거대 인면어 습격사건을 해결하는 것을 도와달라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힘내세요. 분명 좋은 일이 생길 거예요. 그런데 저 같은 사람이라니요?”

“전 원래 노예였지만 남편이 노예에서 해방시켜주고, 가족의 반대를 모두 물리치더니 절 아내로 받아주었어요. 벌써 10년은 된 이야기네요.”

“10년이요? 그럼 15살에 결혼을...”

“맞아요. 절 보고 한 눈에 반했다면서 그 자리에서 구매와 해방을 진행해버렸죠. 정말 불같은 사람이에요. 뱃속에 있는 아이도 남편처럼 멋진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어요.”

프리실라는 사랑이 가득 담긴 손짓으로 배를 쓰다듬었고, 노먼과 태어날 아이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드러냈다.

흠.. 뭔가 내가 라우라를 처음 봤을 때랑 상황이 비슷하지만 노먼은 나보다는 훨씬 건전하고 올바른 사람이네.

나는 어쩌다보니 라우라와 눈을 마주쳤고, 그녀는 야릇한 눈빛을 보내왔다.

저건 대체 무슨 의미일까...

내가 잠시 쓸데없는 고민을 하는 사이에, 프리실라는 어느 방의 문을 열어서 나에게 내부를 보여주었다.

“지금 저택에서 가장 상태가 좋은 방이에요. 부족한 부분이 많겠지만...”

“아니요. 이 정도면 충분해요. 부족한 거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질 않네요. 좋은 방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반쯤 거짓말을 쳤다.

솔직히 실망감이 큰 게 사실이기는 하다.

상황이 이럴 줄 알았으면 노먼의 호의를 거절할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예쁜 프리실라의 친절한 태도와 눈물, 그리고 만삭인 배 앞에서는 마음이 약해지고 말았다.

내가 에리카에게 체험시켜주고 싶었던 호화로운 귀족의 삶은 다음 기회를 노려봐야겠다.

“저야말로 고마워요. 역시 영웅이라는 칭호에 걸맞게 친절하신 분이시군요.”

“제가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미녀와 아이들에게는 신사적인 편이랍니다.”

“후훗, 그 부분도 영웅답군요. 혹시 식사는 하셨나요?”

“네, 이곳에 오기 전에 먹고 왔습니다.”

“그럼 다과를 내올 테니 그때까지 편히 쉬세요.”

프리실라는 화사한 미소를 내게 지어주더니 방문을 살포시 닫았다.

집안사정을 보아하니 값비싼 간식거리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 같다.

“레베카님, 이제는 임신부도 홀리실 생각이신가요?”

“뭐? 아, 아니야! 라우라, 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니?”

“뭔가 베로니카님이랑 같이 술을 마시기 직전이랑 분위기가 비슷하단 말이죠.”

“떽! 그런 말 금지!”

“네, 레베카님. 후후후.”

라우라는 나를 괜히 한 번 놀리더니 짧은 입맞춤으로 내 마음을 달래주었다.

그리고는 방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위험요소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녀는 새로운 숙소에 도착하면 언제나 저런 식으로 앞장서서 행동하곤 했다.

나한테 짓궂은 장난을 많이 치더라도 할 일은 언제나 제대로 수행하니 얄밉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여기서 지내는 동안에는 집안일을 좀 도와드려야 할 것 같아요. 곧 팔아버린다고는 하지만 임신부가 사는 집이니까요.”

“좋은 생각이야, 이리스. 시간나면 나도 도와줄게.”

“정말요? 고마워요. 역시 레베카님은 좋은 사람이라니까요.”

이리스는 나에게 가볍게 입을 맞추고는 창문을 열고 이불을 터는 것을 시작으로 방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내가 보기에는 깨끗해 보이는데 이리스의 눈에는 부족한 게 많은 모양이다.

청소에 관해서는 이리스가 전문가이니 언제가 그녀가 하는 대로 따라가는 게 좋다.

그리고 나는 자신은 뭘 해야 좋을지 고민하고 있는 에리카에게로 다가갔다.

“에리카, 다른 사람들 눈치는 보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해.”

“그럼...”

에리카는 내 팔을 잡아당기더니 또 나에게 키스를 했다.

하고 싶은 일이 키스라니? 어쩜 이리도 앙큼할 수가 있을까?

나는 에리카가 지칠 때까지 그녀의 애정표현에 어울려주면서 다과를 기다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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