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화 〉 91화
* * *
별장은 겉보기엔 기사단의 조사를 도왔을 때와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곳곳의 창문이 깨져있고 불에 타서 무너진 곳도 그대로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조사를 맡았던 기사단이 시체는 모두 치워줬다는 것이다.
“지금 보니까 제법 근사하게 생겼네. 여기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몰랐다면 그냥 살았을 지도 모르겠어.”
“그러게요. 정말 아쉬워요.”
“걱정 마, 라우라. 나중에 이것보다 더 근사한 집을 지어줄 테니까.”
“전 어떤 집이든 우리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으면 돼요.”
라우라는 내게 팔짱을 끼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말했다.
나는 사실 라우라의 고향에다가 우리가 살 집을 짓고 싶지만 그녀가 고향에 돌아가는 것조차 내켜하지 않으니 그 생각을 직접 입을 꺼낼 수 없었다.
인연퀘스트를 달성하기 위해서 언젠가는 라우라의 고향을 복구하겠지만 그래도 거기서 살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저도 라우라랑 같은 생각이에요. 이런 크고 근사한 집도 좋지만 제가 어릴 때 살던 그런 집 정도만 되어도 충분할 거예요.”
“하긴 우리가 무슨 귀족가문도 아니고 굳이 대저택을 짓고 살 필요는 없긴 하지. 그래도 명예기사니까 어느 정도는 체면치레는 해야 한다고 생각해.”
나는 검소하고 소박한 삶에 대한 막연한 동경도 있지만 적어도 손님들을 재울 방 정도는 넉넉하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베로니카 언니와 엘레나가 머무를 방 정도는 있어야지.
내가 잠시 미래에 살아갈 집에 대해서 상상하다가 곤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에리카에게 눈길이 갔다.
“에리카, 왜 그러니? 무슨 일이라도 있어?”
“레베카님이 명예기사님이셨을 줄은 몰랐어요.”
“아, 내가 리제르카를 구한 대가로 받은 작위야. 어차피 명예직이고 진짜 귀족이 된 것도 아니니까 신경 쓸 것 없어. 그냥 지금까지처럼 날 대하면 돼.”
“리제르카를 구하셨다고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설명하자면 좀 길어지는데 어차피 너도 알아야하니까 말해줄게.”
나는 에리카에게 프랑카에서 다리우스 용병단에게 습격을 받은 일부터 간략하게 말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리제르카에 와서 다리우스 용병단을 습격해서 막시안이 배후라는 증거를 찾아내고 엘레나에게서 그 놈이 저지르려는 짓이 무엇인지 알아낸 다음에 놈을 막으려고 애썼던 일까지 쭉 나열했다.
내 이야기를 모두 들은 에리카는 갑자기 양 손으로 내 손을 덥석 잡았다.
“레베카님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제 목숨을 구해주셨군요!”
“내가 아니라 그 날 함께 싸웠던 모두의 공이야. 특히 크라우젠이 스스로를 희생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모두 죽었을지도 몰라.”
“그래도 레베카님이 막시안을 막으려는 결단을 내리시지 않으셨다면 리제르카는 끝장났을 거예요.”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아무튼 너를 포함해서 리제르카에 사는 무고한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내가 이렇게 너를 만나게 된 건 아마도 그 일에 대한 하늘의 선물이라고 봐.”
내가 던진 느끼한 추파에 에리카는 짐짓 부끄러워하면서도 고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홀려버린 나는 무심코 에리카에게 다가가 그녀의 입술을 탐하려다가 이마에 입을 맞추는 것으로 만족했다.
에리카는 묘한 표정과 의도를 알 수 없는 눈빛을 내게 보내더니 나한테서 슬쩍 떨어져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내가 실수를 한 줄 알았는데 에리카가 자신의 뜨거워진 볼에 손을 자주 올리는 걸 보니 딱히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안에 들어가서 뭔가 쓸 만한 게 남아있는지 찾아보자. 혹시 안에 위험한 게 있을지도 모르니까 총을 들도록 해. 그런데 에리카, 총은 쏠 줄 아니?”
“아니요. 쇠뇌는 몇 번 쏴봤지만 총은 한 번도 쏴본 적이 없어요.”
쇠뇌? 저 약한 팔로 쇠뇌를 장전할 수 있다니 대단한 걸.
내가 마법무기점에서 파는 활줄을 당겨봤을 때는 팔이 다 후들거렸었는데 말이다.
“그럼 내가 가르쳐줄게. 너희들은 먼저 들어가서 내부를 살펴봐. 우리가 곧 따라갈게.”
나는 라우라와 이리스를 먼저 별장 안으로 들여보내고 에리카를 데리고 탁 트인 정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가방에서 빈병을 몇 개 꺼내서 벤치 위에 일정한 간격으로 세웠다.
차마 아무 곳에나 쓰레기를 버릴 수 없어서 그냥 넣고 다녔던 것이 이렇게 쓸 일이 생길 줄은 몰랐다.
“내가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재주는 별로 없지만 그래도 참고 들어줘.”
“네, 레베카님”
“이건 마력권총이야. 가장 널리 사용되는 총기지. 총을 사용하기 전에 꼭 명심해야할 것은 생명을 간단하게 뺏어갈 수 있는 무기라는 거야. 적뿐만 아니라 너까지 순식간에 죽여 버리는 무시무시한 괴물인 셈이지.”
“너무 겁을 주시는 거 아니에요?”
“사실 이것도 모자라다고 생각해. 위력에 비해서 너무 쉽게 쓸 수 있거든. 그러니까 너도 늘 정신을 바짝 차리고 총을 다뤄야해. 알았지?”
“명심할게요.”
“총을 다루기 전에는 항상 장전되어있는지 확인하고, 장전여부와 관계없이 절대로 총구를 직접 들여다보거나 다른 사람에게 들이대면 안 돼. 이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지키도록 해. 그럼 약실을 여는 법부터 가르쳐줄게.”
나는 에리카가 보는 앞에서 마력권총의 작은 마법진에 정신을 집중해서 약실을 개방했다.
그리고 거기에 들어있던 마력탄을 모두 꺼내고 다시 닫았다.
“어떻게 하는지 잘 봤니?”
“네. 그 마법진이 잠금장치 역할을 하는 거 맞죠?”
“그래. 정신을 집중하면 바로 열려. 그럼 직접 해보도록 해.”
나는 에리카에게 마력권총을 넘겼고, 에리카는 간단하게 약실을 열었다.
정말 별 것도 아닌 일이지만 에리카는 기뻐하는 표정을 지었다.
“자, 그럼 이 마력탄을 빈 공간에 하나씩 넣도록 해. 모든 총기는 마력탄이 6발씩 들어가기 때문에 쏠 때는 항상 남은 탄수를 생각해야 돼. 그리고 사격연습만큼이나 재장전을 빨리하는 연습을 하는 것도 중요해.”
에리카는 내 설명을 들으면서 약실에 총알을 채워 넣고 그것을 닫아 장전을 끝냈다.
그녀는 마력권총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내가 사람에게 총구를 겨누면 안 된다는 말을 떠올렸는지 알아서 총구를 바닥으로 향했다.
그걸 본 나는 기특하다는 생각에 에리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총알도 종류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지금은 일반총알만 써서 사격해보도록 하자. 지금 보는 게 조준기인데 이걸 눈과 목표에 일직선으로 놓는 다는 느낌으로 조준하면 돼. 음... 말로 설명하긴 어려우니 직접 보여줄게.”
나는 말로 설명하는 것에 한계를 느껴서 일단 시범을 보이기로 했고 10발자국 조금 넘게 떨어져있는 유리병을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자 총성과 함께 유리병이 산산조각 나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걸 본 에리카는 팔을 들어서 앞에 있는 유리병을 조준하는 시늉을 했다.
“이렇게 하면 되는 걸까요?”
“어디보자, 팔을 조금 더 올리고 자세를...”
나는 에리카에게 가까이 붙어서 그녀에게 사격하기 좋은 자세를 가르쳐주었다.
내 가르침은 좀 모자라긴 해도 그럭저럭 에리카에게 도움이 되었는지 그녀가 목표를 조준하는 모습은 라우라와 이리스 못지않게 그럴싸해졌다.
“이제 총을 쏘겠다는 의지를 확고하게 품고 방아쇠를 당기도록 해. 그럼 발사될 거야. 총을 쏠 때는 절대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거나 눈을 감으면 안 돼.”
“네, 레베카님.”
에리카는 입술을 질끈 깨물면서 떨리는 손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그녀는 총이 발사될 때 조금 움츠려들었고 총알은 유리병을 맞추지 못하고 빗나갔다.
“에리카, 겁먹지 말고 침착하게 다시 쏴봐.”
에리카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이번에는 조금도 움츠려들지 않았고, 유리병을 깨뜨리는데 성공했다.
두 번 만에 성공이라니, 에리카에게 재능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잘 했어, 에리카! 그럼 이제 조금씩 거리를 벌려가면서 쏴보자.”
나는 에리카가 유리병을 맞출 때마다 그녀를 몇 발자국씩 뒤로 물렸다.
에리카의 명중률은 그렇게 높지 않았지만 빗나가도 좌절하지 않고 꿋꿋하게 사격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에리카의 명중률은 점점 더 높아졌고 연속으로 2병을 명중시키며 사격을 끝냈다.
에리카는 만족감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표정을 지으며 총알을 다 쓴 마력권총을 굳이 두 손 위에 올려서 나에게 내밀었다.
“빌려주셔서 고마워요.”
“아, 그건 내가 너한테 총기세트를 선물하지 전까지는 네가 쓰도록 해. 이건 총알이 들어있는 파우치인데 오늘부터 거의 항상 몸에 메고 다녀. 총이 아무리 좋아도 총알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도 없으니까.”
나는 에리카의 잘록한 허리에 여분으로 가지고 있던 마력탄파우치를 메어주었다.
워낙 체격이 작고 날씬해서 아래로 쑥 빠질 것 같았지만 에리카의 적당히 발달된 골반에 딱 걸쳐졌다.
“역시 잘 어울리네. 그런데 에리카, 쇠뇌를 사용할 수 있을 정도면 보기보다 힘이 센 가봐?”
“제가 쓰던 쇠뇌는 한손으로 쏘는 작은 거라서 저처럼 힘이 약한 사람도 부담 없이 쓸 수 있어요.”
“그런 것도 있구나? 혹시 지금도 가지고 있니?”
“납치되던 날에 망가졌어요. 나름 저항해보려다 실패한 거죠. 제가 고아원에 맡겨졌을 때, 요람 속에 저랑 같이 들어있던 거라서 애착이 갔던 물건이었는데 말이에요.
에리카는 슬픔이 묻어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녀에게는 얼굴도 모르는 가족에 대한 유일한 연결점이나 마찬가지였을 텐데, 참 안타까운 일이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네. 내가 복구는 해주지 못하겠지만 비슷한 걸로 새로 사줄게.”
“괜찮아요. 이미 미련을 버렸는걸요. 그래도 레베카님이 제게 선물을 주신다면 정말 기쁠 거예요.”
에리카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처음엔 감정표현을 잘 하지 않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그냥 낯을 가리는 것에 불과했던 것 같다.
그녀가 빨리 나에게 적응한 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쉽게 호감을 살 수 있는 내 캐릭터 설정 덕분일 것이다.
“넌 긍정적인 사람이구나. 부러워.”
“웬만하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더라고요. 힘든 일이 있을 때는 그런 태도가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나도 그건 너한테 배워야겠다. 그럼 이제 우리도 별장으로 들어가자. 라우라랑 이리스에게만 맡겨놓으면 미안하잖아.”
나는 에리카를 데리고 별장의 정문으로 들어갔다.
저번에 왔을 때는 바닥이 아주 깨끗했는데 지금은 흙과 모래로 엉망이었다.
조사단이 다녀간 뒤로 누가 청소를 했을 리가 없으니 당연한 상황이겠지.
‘라우라, 뭔가 찾은 거라도 있니?’
‘지금 2층인데 아직은 특별한 게 없어요. 그럴싸한 건 조사단이 전부 털어간 모양이에요.’
‘못 찾아도 상관없으니까 부담가지지 말고 찾아보도록 해. 우리는 1층을 살펴볼게.’
나는 라우라와의 텔레파시를 짧게 끝내고 에리카와 함께 1층에 있는 방들을 뒤져보기 시작했다.
라우라의 말대로 별장에는 남아있는 게 별로 없었다.
가구는 내부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를 것들 때문에 거의 다 박살난 상태고 수납장은 텅 비어있었다.
하긴 전문적으로 조사를 하는 사람들이 쓸고 지나간 자리에 뭐가 남아있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욕심이긴 하다.
“레베카님, 특별히 찾으시는 거라도 있나요?”
“그건 아니고 내일부터 알리시아님이 보낼 사람들이 별장을 수리하기 전에 건질만한 게 남아있나 싶어서 뒤져보는 거야.”
“그렇군요. 전 왜 이렇게 엉망인 별장을 넘겨줬나 했어요.”
“그쪽에서 멋대로 나를 영웅이라고 치켜세웠으니 그 정도는 당연히 해줘야하지 않겠어? 에이, 여기도 허탕이네. 다른 방으로 가보자.”
나는 에리카를 데리고 1층에 있는 방을 몇 군데 돌아봤지만 쓸 만한 게 하나도 없었다.
이쯤 되니 별장을 뒤지는 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1층에 남은 방이 하나밖에 없으니 이것만 뒤져보고 돌아가야겠다.
나는 마지막 방의 문을 열었고, 먼지가 잔뜩 쌓인 창고가 우리를 맞이했다.
열자마자 허탕이라니, 더 이상 별장에 있고 싶지 않아졌다.
“여긴 먼지가 눈처럼 쌓여있네. 에리카, 이제 그만 돌아가자.”
“잠깐만요. 여기 발자국이 있어요. 생긴 지 얼마 안 된 것 같아요.”
“조사하는 사람들 발자국이겠지.”
“들어가는 발자국은 있는데 나오는 발자국이 없는 건 이상하지 않나요?”
“그러게...”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어가려다 에리카의 지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난 바로 마력권총을 빼들고 복면을 쓰고서 창고 안으로 발을 디뎠다.
그리고 정체모를 발자국을 천천히 따라가다가 흔적이 갑자기 끊긴 벽 앞에 섰다.
나는 미니맵을 확인하고 지도창을 열어서 또 한 번 확인했지만 이건 그냥 벽이었다.
하지만 발자국의 주인이 갑자기 사라졌을 리는 없으니 마법적인 방법으로 벽을 막아둔 게 분명하다.
나는 조심스럽게 총구를 벽에다 들이댔고, 곧 벽이 일렁거리며 총구가 안으로 쑥 들어갔다.
아, 정말 간단한 눈속임 장치네. 이건 막시안이 만든 게 아니라서 사라지지 않았나보네.
‘라우라, 이리스. 지금 바로 1층 왼쪽 복도 맨 끝에 있는 방으로 와. 뭔가를 발견했어.’
나는 대뜸 벽 너머로 들어가지 않고 두 사람을 즉시 불러들였다.
그리고 창고의 창문을 열고 풍압탄을 몇 발 쏴서 먼지를 다 밖으로 날려버렸다.
복면을 써도 코가 간지럽고 목과 눈이 따가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눈물과 콧물을 줄줄 흘리며 고통을 받다가 라우라와 이리스가 합류했을 쯤에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에취! 죽겠네, 진짜. 이제 난 괜찮으니까 안으로 들어가 보자.”
나는 세 사람을 대동하고서 일렁거리는 벽 너머의 공간으로 진입했다.
빛이 전혀 들지 않는, 사방이 석조구조물로 꽉 막힌 복도는 마치 게임 속 던전을 연상시켰다.
그러나 어떠한 형태의 적도 존재하지 않는 빈공간인데다 라우라가 꼼꼼하게 확인한 결과, 함정도 아예 없었다.
게다가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벌써 막다른 길이 나오는 걸 보면 그런 거창한 장소는 아닌 것 같다.
그래도 그곳에 그려진 마법진과 한 가운데에 있는 상자는 제법 던전스러운 느낌을 줬다.
하지만 마법진은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고, 상자는 활짝 열려있었다.
“발자국의 주인이 누군지는 몰라도 막시안과 자신의 관계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야. 우리가 너무 늦었어. 잠깐, 이건 뭐지?”
나는 상자의 뚜껑 밑에 붙어있는 쪽지를 떼어내서 펼쳐보았다.
거기에는 다양한 숫자가 나열되어 있었는데, 꼭 암호처럼 보인다.
“제가 보기엔 지도의 좌표처럼 같아요.”
“좌표?”
나는 이리스의 의견을 듣자마자 곧바로 지도창을 펼쳐서 쪽지에 적힌 것을 그대로 입력해보았다.
그러자 제국 최북단 국경지대에 있는 마을이 하나 나타났다.
“노르헤임?”
“지금 노르헤임이라고 하셨나요?”
갑자기 라우라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언성을 높였다.
화가 난 것이 아니라 깜짝 놀란 것처럼 보인다.
“왜 그러니, 라우라?”
“제 고향의 이름이 노르헤임이에요. 어째서 그곳의 좌표가... 설마! 엘카힘이 내 고향도!”
“라우라, 아직 단정 지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어. 그러니 네 고향으로 가서 좌표의 의미를 확인할 필요가 있어. 나와 함께 가주겠니?”
나는 흥분하는 라우라를 포옹하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정시켰다.
그리고 이리스도 뒤에서 라우라를 안아주면서 그녀를 달랬다.
덕분에 라우라는 금방 흥분을 가라앉히고 내 품에서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며 그토록 꺼렸던 고향으로 가는 일에 동의했다.
누가 왜 하필이면 노르헤임의 좌표를 남겼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그곳에 해답이 있을 것이다.
노르헤임에 가서 의문을 해소하는 김에 그곳을 재건해서 라우라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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