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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세상에서 마음껏 살아간다-90화 (90/271)

〈 90화 〉 89화

* * *

우리는 방금 산 말들을 묵고 있는 호텔의 마구간에 맡기고 특수상점의 워프기능을 이용해서 프랑카로 돌아갔다.

리제르카에는 상시 운용되는 노예시장이 없다.

그래서 예속각인을 새기려면 저번에 이리스에게 예속각인을 새기려고 방문했었던 노예상점으로 갈 필요가 있었다.

에리카는 순간이동을 경험하고도 엄청 놀라거나 호들갑을 떨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감정표현에 서툰 것인지 아니면 원래 성격이 무덤덤한 것인지 모르겠다.

“레베카님, 저도 이리스와 같은 곳에 예속각인을 새기는 건가요?”

에리카는 이리스가 거의 항상 노출하고 다니는 하복부의 자궁문신을 보면서 내게 물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호기심과 불쾌함이 교차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내게 대놓고 싫어하는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 내가 노예들에게 강제하는 몇 안 되는 규칙 중 하나야.”

“그렇군요. 다른 규칙들도 알려줄 수 있나요?”

“아까 전에도 말했지만 나를 배신하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해. 그리고 아침마다 나에게 키스를 해야 하고 자위는 금지야. 그것 말고는 딱히 없어.”

나는 남들이 들을 수 없도록 작은 목소리로 에리카에게 말했다.

아직 에리카에게 텔레파시 스킬을 부여할 수 있는 조건을 맞추지 못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내 설명을 들은 에리카의 표정은 제법 복잡해졌다.

워프는 신기하지 않아도 내가 정한 규칙에는 제법 당황한 듯하다.

“제가 레베카님을 배신할 일은 절대로 없을 거예요. 그런데 만약 제가 다른 규칙들을 지키지 않으면 어떤 처벌을 받게 되나요?”

“음... 라우라랑 이리스는 항상 잘 지키고 있어서 처벌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은 없어. 어쨌든 난 네가 첫 번째 사례가 되는 걸 원치 않아. 난 차별대우를 싫어하고 저항하지 못하는 사람을 때리거나 괴롭히는 게 싫거든.”

나는 있는 그대로 말했다.

날 배신하면 몰라도 내게 복종한 노예를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고통스럽게 만드는 걸 원치 않는다.

만약 에리카가 내 음흉한 목적이 담긴 규칙을 거부한다면 그땐 미련 없이 팔아버리거나 아예 해방시키는 게 서로에게 좋을 것이다.

“레베카님은 착한 분이시군요.”

“적어도 내게 소중한 사람들에게는 친절하려고 노력해. 노예를 부리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지만.”

“에이, 거짓말하신다. 에리카, 레베카님은 보편적으로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착하게 대해주는 분이셔. 얼마나 나를 포함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레베카님에게 은혜를 입었는지 몰라. 정말 천사님이 따로 없다니까.”

이리스는 갑자기 우리의 대화에 끼어들어서 나를 부담스러울 정도로 추켜세웠다.

마치 신앙고백을 하는 종교인 같은 태도를 보이는 이리스와 그녀의 점점 커지는 목소리에 놀라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 때문에 부끄러워 죽을 것 같다.

“저기, 이리스? 날 칭찬해주는 건 좋은데 좀 살살해주면 좋겠어.”

“전 사실만 말했을 뿐인데요? 그것도 엄청 간추려서요.”

“아무리 그래도 부끄럽단 말이야.”

“정말요? 전 레베카님이라면 당당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네요.”

“나 은근히 소심한 사람이라고.”

“침대에서는 세상 적극적인 분이요?”

“라우라! 넌 날 수치심으로 죽일 작정이니?”

겨우 이리스를 진정시키나 싶었더니 이번에는 라우라가 끼어들어서 날 놀리기 시작했다.

어제 오전에는 날 잡아먹을 듯이 섹스를 하던 사람이 할 말은 아니잖아?

나는 라우라에게는 꿀밤도 먹일 수 없어서 그녀의 볼을 잡고 양쪽으로 쭉 늘려버렸다.

그걸 본 이리스는 소리 내서 웃었고 어떻게든 웃음을 참던 에리카도 결국 입 밖으로 소리를 내고 말았다.

“라우라와 이리스랑 놀아주시는 걸 보니까 제 생각이 맞는 것 같네요. 그럼 레베카님은 애인을 늘리기 위해서 노예를 구입하시는 건가요?”

조용히 웃던 에리카는 갑자기 내 정곡을 찔러버렸다.

그리고 라우라와 이리스는 은근히 욕망이 담긴 미소를 지으며 동시에 나를 쳐다보았다.

이제 와서 내 욕심을 숨길 생각은 없으니 당당하게 내 포부를 밝혀야겠다.

“난 너처럼 예쁜 여자들과 함께 평생을 행복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야. 그만큼 특혜나 차별 없이 동등하게 사랑을 나눠주고자 해.”

“지금처럼 말인가요?”

“놀림 받는 건 내가 전혀 의도한 적이 없는 일이지만 아무튼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그럼 저도 레베카님의 여자가 되면 같이 놀려도 되나요?”

“그건... 그래, 선만 넘지 않으면 받아줄게.”

내가 포용력을 보이며 하는 말에 에리카는 내게 처음으로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뱀파이어족 특유의 길쭉한 송곳니가 드러났지만 어차피 피를 빨아먹는 기능은 없으니 무섭기보다 독특한 매력으로 여겨졌다.

아무리 놀림을 받아도 아름다운 여성의 미소 한 방에 바로 실실 웃는 게 바로 나, 레베카 카론이라는 사람이다.

“농담이에요. 전 그런 장난 같은 건 못 치는 성격이거든요. 임시주인님이 믿고 저를 맡기신 분이니 저도 레베카님을 믿고 따르도록 할게요. 제 맹세의 증거로 예속각인을 기꺼이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날 믿어줘서 고마워. 널 실망시키는 일이 없도록 할게.”

“제가 아직 레베카님을 사랑하지 않아도요? 전 솔직히 말씀드리면 여자를 사랑할 수 있을 지 잘 모르겠거든요.”

“그건 나중에 생각하자. 사랑이라는 감정이 억지로 만들어지는 건 아니잖아.”

“네, 레베카님.”

다행히도 에리카는 내 하렘에 포함되는 것을 덮어놓고 거절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내 캐릭터 설정과 예속각인의 힘이 합쳐지면 그녀가 내 사랑이 되는 건 시간문제겠지만 가끔은 그런 것에 의존하지 않고 순수한 내 능력으로 사랑에 빠지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도 굳이 피곤하고 번거로운 방식의 연애를 하고 싶지는 않다.

맹목적으로 사랑을 받고 그만큼 베풀어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사랑을 즐겼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에리카는 여러모로 매력적인 미녀이고 마침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를 닮았으니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다.

‘2명까지는 금방이었지만 3명 째는 제법 오래 걸린 느낌이네. 아직 하렘멤버라고 하기엔 많이 부족하지만 내가 노력하면 금방 호감도와 음란도를 올릴 수 있겠지. 그런데 앞으로 3명을 상대로 섹스를 하면 내 체력이 남아돌까? 왠지 무리일 것 같으니 열심히 운동해야겠다.’

내가 잠시 앞으로 할 일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이에 우리는 노예시장에서 제일 큰 상점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나는 이상하리만치 친밀하게 느껴지는 늑대족 직원과 눈을 마주쳤다.

사람이 3번이나 만났으니 이제는 이름을 알아두긴 해야겠다.

분석스킬을 써서 확인해보니 제인이라는 흔한 이름이었다.

“정말 간만에 뵙는 군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골치 아픈 사건에 휘말리긴 했었지만 그럭저럭 잘 해결한 참이에요.”

“고생이 많으셨을 것 같군요. 그래도 훌륭한 보상을 얻으신 것 같습니다.”

제인은 에리카를 슬쩍 보더니 나를 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나는 그녀가 말하는 훌륭한 보상이라는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기왕이면 저희 가게에서 노예를 구입해주셨으면 하지만 고객님께서는 노예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계시니 아쉬울 따름입니다. 지금 바로 예속각인을 새겨드릴 테니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나는 제인의 안내에 따라서 가게 안으로 들어가 익숙한 장소로 에리카를 데리고 갔다.

에리카는 약간 긴장한 표정을 지었지만 거부감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제인은 에리카의 딱 달라붙는 상의를 걷어 올리고 하의를 살짝 내려서 그녀의 하복부를 노출시켰다.

그리고 내가 거기다 손바닥을 올리자마자 에리카가 몸을 파르르 떨면서 눈을 질끈 감았다.

아플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곧 제인이 예속각인을 새겼고 에리카의 하복부에 분홍빛이 감도는 하트모양이 나타났다.

에리카는 자신의 몸에 새겨진 예속각인을 손을 살살 만져보더니 얼른 옷을 똑바로 입고서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아, 저건 평생 책임을 지라는 눈빛이 분명하다.

“에리카, 이제 누가 뭐래도 내 노예이니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줄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날 배신하지 말고 내 말에 잘 따르도록 해.”

“명심할게요, 레베카님. 저도 레베카님을 위해서 성의를 다하여 봉사하겠습니다.”

에리카는 갑자기 검지를 길고 뾰족한 송곳니로 찌르더니 상처를 냈고 거기서 흐르는 피를 자신의 이마와 콧등에 각각 가로와 세로로 묻혔다.

그리고 양쪽 볼에도 대각선으로 묻혀서 전체적으로 역삼각형 모양을 만들었다.

어... 이런 식의 살벌한 맹세는 생각도 못했었는데 아마도 유목민의 문화인 것 같다.

“나도 얼굴에 피를 묻혀야하니?”

“아니요. 이건 저희 부족만의 방식이니 따라하지 않으셔도 돼요.”

난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그래도 내 손에 직접 상처를 내고 얼굴에 피를 묻히고 싶지는 않았다.

“넌 뿌리를 찾고 싶다고 했었잖아? 그런데 어느 부족 소속인지는 알고 있구나?”

“네, 하지만 동족들 중에서 누구도 저희 부족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해요. 그래서 그 의문을 해소하고 싶어요. 저희 뱀파이어족은 뿌리를 소중히 여기거든요.”

“그건 나도 알고 있어서 네 심정이 이해가 돼. 그런데 네 가족은?”

“전 태어나자마자 고아원에 맡겨졌어요. 이 쪽지가 제가 누구인지 증명해주고 있죠.”

나는 에리카가 가방에서 꺼낸 꼬깃꼬깃한 쪽지를 받아서 읽어보았다.

거기에는 에리카의 이름, 생일, 부족 그리고 맹세의 의식이라는, 방금 에리카가 내 앞에서 보여주었던 독특한 의식을 진행하는 방법이 적혀있었다.

고아원에 갓난아기를 버리면서 굳이 부족의 전통의식을 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이유를 모르겠다.

대체 에리카의 부모님과 그녀의 부족에게 무슨 일이 생겨서 에리카를 도시의 고아원에 맡긴 걸까?

설마 또 가면쟁이들이 원인은 아니겠지? 웬만하면 그 놈들이랑 엮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럼 말을 돌보는 법은 어디서 배웠니?”

“지난 4년 동안 임시주인님으로부터 배웠어요.”

“그렇구나. 그런데 언제부터 노예였던 거니?”

“갱단이 절 고아원에서 납치한 15살부터요.”

갱단? 고아원? 납치? 이거 설마?

나는 너무나도 익숙한 단어들이 귀에 들리자 조금 놀라고 말았다.

이게 설마 진짜 이런 식으로 연결되는 건가?

“잠깐만. 에리카, 너 혹시 프랑카에 있던 고아원 출신이니? 구시가지랑 슬럼가 사이에 있는 그 고아원 말이야.”

“네, 맞아요. 그걸 어떻게 아셨나요?”

에리카는 내가 그녀와 만난 뒤로 가장 감정이 많이 담긴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내가 자신이 살았던 고아원에 대해서 아는 것 자체에 굉장히 놀란 것 같다.

“내가 방문한 적이 있거든. 고아원은 이제 안전해. 내가 기사단을 도와서 갱단을 싹 쓸어버렸거든. 지금은 기사단에서 고아들을 돌봐주고 있어.”

“정말 다행이다. 원장님은요?”

“무사해. 기사단에 보육교사로 고용되셨어. 그럼 넌 베네사 씨가 누군지도 알겠구나?”

“그 분은 갱단에 속한 사람이지만 절 강간당하지 않게 보호해주셨고 프랑카 밖으로 탈출도 시켜주셨어요. 목숨이 위험한 와중에도 노예에서 해방시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셨죠.”

“정말? 난 고아원에 후원자 역할을 했다기에 갱단과 관련이 없는 줄 알았어.”

“아, 저를 탈출시킨 뒤에 약속한 대로 갱단을 그만두셨나보네요. 거기다 고아원까지 후원해주셨다니 정말 고마운 일이에요. 그 분은 어떻게 지내시나요?”

난 에리카의 기대에 찬 눈빛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녀의 기대에 보답할 수 없다는 게 정말 아쉬웠다.

“안타깝게도 몇 달 전에 마족에게 희생당했어. 난 그 사람이 남긴 유산 덕분에 네가 지냈던 고아원에 대해서 알게 되었지. 그리고 내가 고아원에 찾아갔을 때, 우연히 갱단에게 공격을 받았고 그 소식을 들은 영주님께서 갱단소탕을 명령하셨지. 덕분에 프랑카는 전보다 훨씬 안전한 도시가 되었어.”

나는 내가 베네사의 유산으로 인해 프랑카에서 경험했던 일련의 일들을 간단하게 줄여서 에리카에게 말해주었다.

그러자 에리카는 침통한 표정을 짓더니 눈물을 글썽였다.

“언젠가 꼭 은혜를 갚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게 되었군요. 많이 늦었지만 무덤이라도 찾아가서 고맙다는 말을 전해드리고 싶어요.”

“지금 당장 공원묘지에 가보자. 가는 김에 기사단 본부에 먼저 들러서 원장님도 만나게 해줄게. 난 기사단 본부에 들어갈 수 있는 권리가 있으니까 미리 허락을 받지 않아도 문제없어.”

“네, 레베카님! 감사합니다!”

에리카는 고개는 물론이고 허리까지 숙여가며 나한테 고마워했다.

그녀와의 대화를 끝낸 나는 세 명의 미녀들을 이끌고서 기사단 본부로 향했다.

가는 길에 고아들을 위한 과자를 잔뜩 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는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바로 기사단 본부 안으로 들어와서 고아원으로 쓰이는 건물로 향했다.

사용하지 않는 창고를 개조해서 만든 고아원은 원래 창고였다는 것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예전에 살던 고아원에 비하면 고급스러울 정도로 시설이 좋았다.

마당에서 놀던 고아들은 우리가 주는 과자를 받으며 신나게 웃고 떠들면서 놀았고 에리카를 아는 아이들은 그녀를 엄청나게 반가워했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소란에 무슨 일인가 싶어서 하던 일을 멈추고 밖으로 나온 원장, 지금은 보육교사인 휴먼족 아주머니는 에리카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깜짝 놀랐다.

“에리카?”

“원장님! 정말 많이 보고 싶었어요.”

에리카는 아주머니에게 달려가 그녀를 와락 껴안았고 아주머니는 눈물을 흘렸다.

“나도 네가 얼마나 많이 보고 싶었는지 모른단다. 너희들이 납치당하고 강제로 끌려가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날 용서하지 마렴.”

“아니에요. 그때도 납치범들이랑 싸우다가 죽을 뻔 하셨잖아요. 원장님은 최선을 다하셨어요. 그냥 갱단이 나쁜 거라고요.”

에리카는 아주머니를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감싸주었고 그 말에 감격을 받은 아주머니는 목 놓아 울었다.

한참 뒤에 기운을 차린 아주머니는 나에게 다가와 내 손을 꼭 잡고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는 말을 했다.

난 그저 새로운 노예를 내 소유로 만들고 노예에게 친절을 베푼 것에 불과한데 말이다.

거기다 나는 방금 에리카를 성노예로 만들고 온 입장이라서 상당히 곤란한 기분이 들었다.

고맙다는 말에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들어서 얼른 고아원에서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에리카가 저렇게 기뻐하는데 금방 떠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나는 에리카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감상하면서 부정적인 생각을 싹 잊기로 했다.

고혹적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에리카의 분위기는 나를 충분히 행복하게 만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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