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화 〉 8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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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마주한 막시안은 외모로만 따지면 꽤나 잘생긴 축에 속하는 휴먼족이었다.
외모뿐만 아니라 목소리까지 기분 나쁠 정도로 좋았고 키도 훤칠했다.
놈의 추악한 진실에 대해서 알지 못했더라면 누구나 호감을 느낄 정도로 멋지고 매력적인 아이돌 같은 미남으로 생각했을 지도 모를 정도였다.
나는 놈에게 분석스킬을 써봤지만 통하지 않았다.
마치 엘카힘과 같은 구도자처럼 몇 번을 써도 스킬이 먹통이었다.
가면쟁이들에게 구도자급으로 인정을 받으면 분석스킬을 막을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이라 그런 건지 모르겠다.
어쩌면 가면쟁이들은 막시안이나 나처럼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들을 포섭해서 구도자로 삼고 그런 구도자들은 게임을 하는 감각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악행을 저지르는 게 아닐까?
“왜 대답이 없지? 너무 아름다워서 감탄 밖에 할 수 없는 건가?”
막시안은 세상 모든 사람들을 하찮게 여기며 깔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입맛을 다셨다.
난 그걸 보자마자 전신에 소름이 쫙 돋을 정도로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너 지금 이 사람들을 수집품으로만 취급하는 거야?”
“그래, 내가 직접 엄선한 미녀들이다. 여기 이 작품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내 둘째누나다. 날 대하는 태도는 건방지기 짝이 없었지만 얼굴과 몸매는 정말 훌륭했지. 그래서 다른 새끼들하고는 다르게 죽이지 않고 작품으로 만들어줬다. 자비롭지 않아?”
“얼마나 대단한 이야기를 하나 싶었더니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는 헛소리만 늘어놓네.”
난 더 이상 막시안이 지껄이는 말이 듣기 싫어서 놈의 머리를 조준하고 마력권총을 쐈다.
하지만 막시안은 총알에 맞지 않았고 오히려 여유로운 태도를 보였다.
“인간은 전기신호와 호르몬으로 움직이는 생체기계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지금처럼 네 눈과 뇌 사이에 약간의 간섭만 해도 완전히 엉뚱한 곳을 조준하게 만들 수 있다.”
“닥쳐!”
나는 온 신경을 집중해서 놈의 모든 급소에다가 총을 쐈지만 역시나 전혀 맞추지 못했다
그래서 아예 마력산탄총을 꺼내들고 쏴버렸지만 이번에는 아예 천장을 쏴버렸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정말 성격이 급한 여자네. 총은 나도 쏠 줄 안단 말이지.”
막시안은 내게 마력권총을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나는 가면의 성능을 믿고 피하지 않았지만 총알이 내 볼을 스치고 지나가며 피가 흩뿌려졌다.
뭐지? 가면이 왜? 잠깐, 내가 애초부터 가면을 쓰고 있었던가? 가면?
난 갑자기 머리가 엄청나게 혼란스러워졌다.
분명히 루시벨에게서 가면쟁이들이 아끼는 가면을 받아서... 전혀 사용한 적이 없어.
“이제 슬슬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걸 눈치 챈 것 같네. 너희들은 별장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이미 내 그물에 걸려든 거다. 나는 마음만 먹으면 황제도 당장 내 발을 핥게 만들 수 있단 말이다! 하하하하!”
막시안은 내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더니 여태까지와는 다른 야비한 소리로 웃어재꼈다.
하필이면 정신을 조작할 수 있는 놈이 적이라니... 어쩐지 우리가 그렇게 들쑤시고 다니고 별장까지 쳐들어와도 대충 대응하더라.
그리고 놈의 말이 사실이라면 영주, 알리시아는 물론이고 엘레나까지 놈에게 조종당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고 나는 보기 좋게 함정에 빠져버린 게 분명하다.
하지만 막시안에게 협박을 받고 복종했던 루시벨과 크라우젠이 기회가 생기자마자 바로 반기를 든 것을 보면 분명 빈틈이나 약점이 존재하는 능력일 것이다.
“아, 그러셔? 그럼 나한테 그 잘난 능력을 당장 써보지 그래? 응?”
“난 단계를 거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네가 옷을 벗는 것부터 보고 싶은 걸. 아, 그래. 지금처럼 말이야.”
나는 막시안이 말을 해주기 전까지는 내가 걸치고 있던 로브를 벗어던지고 알몸이 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수치심 따윈 들지 않았지만 위기감은 점점 더 커졌다.
빨리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온갖 능욕을 당한 뒤에 막시안의 수집품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 다음에는 다리를 벌리고 네 손으로 직접 보지를 벌려 내부를 나에게 보여주는 것도 괜찮겠지.”
씨발! 정신을 차려보면 항상 저 개새끼가 원하는 대로 내 몸이 움직이고 있다.
이건 정말 부끄러워서 죽을 것 같지만 이대로 굴복할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도 물을 흘리다니 보통 변태가 아니구나, 너?”
“그럼 동정새끼처럼 질질 끌지 말고 빨리 내 보지에 좆이나 박아! 혹시 진짜 동정이라서 넣는 구멍도 못 찾을까봐 무섭냐? 어?”
“말조심해라. 지금 네 동료들은 모두 자기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어. 내가 마음만 먹으면 대가리를 날려버릴 수 있단 말이다.”
“어차피 좆된 거 말이라도 마음대로 하려고 그런다, 왜?”
“지금 넌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어. 어떻게든 날 도발해서 빈틈을 찾을 생각뿐이지.”
“아, 들켰네.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리고 내 생각을 다 안다면 내가 이 세상을 만든 것도 잘 알고 있겠지. 혹시 알아? 내가 좆되면 이 세상이 함께 좆될 지도 모른다고.”
“뭐라고? 헛소리하지마라. 이 세상의 창조주는 바로 나다! 내가 이 세상을 만들었고, 오직 나만이 이 세상을 마음대로 살아갈 권리가 있단 말이다!”
아, 새끼 내가 도발하는 거 안다는 놈이 간단하게 말려들었네.
혼자서 이세계 전생했다고 자만했나본데, 미안하지만 이 세상은 내가 인공지능을 시켜서 만든 세상이란 말이야.
“병신 같은 허세는 그만 부려. 어차피 아르카디아는 내가 Y.W.S로 만든 게임 속 세상이야. 네 딴에는 치트스킬을 가진 귀족 캐릭터를 플레이 한다고 생각했겠지만 그게 아니라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류 종족과 마족을 비롯한 온갖 특이한 생물들은 모두 내가 관여했고 세상의 풍족함이나 청결한 수준도 내가 설정한 결과물에 불과해.”
“네가 그 게임을 어떻게... 아니야, 분명히 내가 만든 촉수가 있고 나 혼자 치트스킬을 받아서 멋대로 살 수 있는 세상이란 말이다. 네가 창조했다니 말도 안 돼...”
기세등등했던 막시안이 처음으로 말끝을 흐렸다.
놈이 Y.W.S라는 말을 듣고 크게 당혹감을 느끼자 내 머리가 맑아지는 것이 느껴졌고 내 몸에 대한 통제력이 어느 정도 돌아왔다.
나는 추하기 짝이 없는 자세를 얼른 그만두고 바닥에 떨어뜨린 마력권총을 들고서 주변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분명 우리가 진입한 방이지만 확실히 분위기가 달랐다.
나와 막시안은 선명하게 보여도 다른 사람들이나 주변 환경은 흐릿하거나 일렁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내 시야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이건 혹시 환각이나 꿈같은 게 아닐까?
막시안이 큰 소리를 친 것 치고는 내가 Y.W.S에 대한 말을 꺼낼 줄도 몰랐으니 모험을 한 번 걸어봐야겠다.
“너... 뭘 하려는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현실이 아닌 것 같아서. 그럼 진짜 현실에서 보자고 찐따새끼야.”
나는 과감하게 내 머리에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어차피 여기서 내 추측이 틀리면 능욕이나 당하고 끝장날 테니 그럴 바엔 그냥 이대로 죽어버릴 거다.
하지만 전혀 아프지 않았고 피한방울 흘러나오지 않았으며 정신이 더욱 맑아졌다.
그리고 이곳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은 내 시야가 격하게 흔들리더니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느낌과 함께 새롭게 눈을 떴다.
“아, 역시 꿈이었네. 다들 일어나! 언제까지 자고 있을 셈이야?”
나는 라우라와 이리스를 동시에 흔들면서 깨웠고 나보다 조금 늦었지만 알아서 일어난 루시벨이 크라우젠의 뺨을 후려치면서 깨웠다.
“레베카님? 아... 그게 전부 다 꿈이었구나.”
“맞아.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막시안이 우리의 뇌에다 무슨 짓을 해서 강제로 잠이 들게 만든 모양이야.”
나는 먼저 눈을 떠서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라우라의 볼을 쓰다듬으며 안심시켰다.
라우라는 무언가 굉장히 아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나는 왜 그런지 물어볼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리고 나는 아직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리스를 더 세게 흔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녀도 잠에서 깨어났다.
“헤헤헤, 레베카님 우리 아기 귀엽... 응? 어라?”
“이리스, 너 대체 무슨 꿈을 꾼 거니? 우리 아기?”
“그, 그게 그러니까... 다 레베카님 탓이에요!”
이리스는 차마 나와 눈을 마주치질 못하더니 갑자니 내 팔을 때리기 시작했다.
아니, 자기가 꾼 꿈 때문에 부끄러운 걸 왜 내 탓을 하는 거야?
그래도 귀여우니까 상관없다.
“루시벨 씨는 어떻게 스스로 깨어난 거예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져서 바로 꿈인 걸 알아차렸죠.”
“내용은 굳이 물어보지 않을 게요.”
“어머, 별 것 아니에요. 당신이 돈을 주고 나를 사서 함께 즐기는 꿈이었거든요. 이미 당신의 강한 결심을 본 적이 있으니 현실이 아닌 걸 바로 알겠더라고요. 그래서 적당히 즐기고 스스로 꿈에서 깼어요.”
“그렇군요.”
나는 루시벨의 매혹적인 미소에 순간적으로 홀려버릴 뻔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예쁜 사람에게서 쉽게 눈을 돌리지 못하는 내가 바보 같다.
“자, 그럼 이제 진짜로 막시안을 처리하러 갑시다.”
나는 앞장서서 막시안이 틀어박혀 있는 방 안의 방으로 향했다.
막시안은 겁을 먹은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문제가 생긴 것인지 몰라도 전혀 나올 생각을 하질 않았다.
“문 열어! 아니면 내가 부순다?”
나는 평범한 나무로 만들어진 문을 거칠게 두드리면서 소리쳤지만 역시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훌륭한 협상도구인 마력산탄총으로 잠금장치를 쏘고 문을 힘껏 발로 걷어차서 내부로 진입했다.
“막시안!”
나는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는 막시안의 기분 나쁜 얼굴을 주먹으로 강하게 후려쳤다.
막시안은 꼴사나운 자세와 뒤로 나자빠지면서 스마트폰과 마찬가지로 이 시대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니터와 컴퓨터를 덮쳤다.
솔직히 이 작은 방은 내가 예전 세상에서 살 때 쓰던 자취방이랑 비슷한 느낌이 들었지만 나는 그걸 인정하기 싫었다.
“씨발... 내가 이런 꼴을 당하다니!”
“고작 단어 하나에 놀라서 당황한 네 잘못이지. 얼마나 자신감이 넘쳤으면 내가 동향출신이라는 걸 알자마자 무기력해지냐? 응?”
“넌 대체 정체가 뭐야? 뭔데 내가 만든 세상에 들어왔냐는 말이다!”
“아까 꿈속에서도 말했지만 여긴 네 생각과 다른 세상이야. 엄연히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진짜 세상이라고. 네가 여태까지 가짜로 생각하고 살았다면 크게 실수한 거다.”
“웃기지 마! 상태창이 뜨고 스킬이 있고 NPC들을 내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데 이게 어째서 게임이 아니라는 건데? 그리고 난 치트스킬이 있어. 너한테는 없는 그런 치트가... 설마?”
“한심한 새끼야. 세상에 너만 좋은 일이 어디 있냐? 네가 날 만난 건 그냥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하는 게 편해. 애초에 네가 나랑 베로니카 언니를 죽이려고만 하지 않았어도 이런 사태까지 오지는 않았을 거다.”
“그래, 네가 내 수면스킬과 꿈조작스킬을 간단하게 파훼한 건 인정하지. 하지만 넌 귀족인 나를 어떻게 할 수 없을 거다.”
“글쎄? 내 경험상 아무리 잘나신 귀족이라도 눈 먼 총알이 알아서 피해가는 건 아니란 말이지.”
나는 다짜고짜 막시안의 정강이에다 총을 쏴버렸다.
대놓고 조준사격이지만 상관없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입을 싹 닫고 없었던 일로 만들면 그만이다.
“네가 감히! 으아악!”
“오, 이런. 실수로 총알이 발사되어버렸네? 총기관리가 부실했던 모양이야. 킥킥.”
“존나 아파! 씨발! 씨발!”
“게임이라며? 게임인데 그렇게 아플 리가 있을까? 로그아웃 같은 것도 없이 20년 넘게 여기서 살았으면 현실로 인정했어야지. 꼴에 잘생긴 얼굴과 치트스킬 좀 얻었다고 세상이 전부 네 것인 줄 알았어?”
“이럴 리가 없는데. 분명 내가 Y.W.S로 만든 세계인데! 내가 멋대로 살아가는 세상인데!”
“그건 내가 할 소리야. 네가 어떻게 내가 대부분을 관여한 설정에 네 설정을 끼워 넣었는지 정말 궁금해. 어쩌면 이 세상이 현실인 이유랑 관계가 있을지도 모르겠어.”
“그, 그럼 이렇게 하자. 나랑 같이 세상의 진실을 찾는 거야. 원래 세상으로 돌아갈 방법도... 아아악!”
“좆까! 난 그럴 생각 전혀 없으니까. 괜히 너 때문에 불쾌한 진실 같은 건 알게 되는 건 극구 사양이야.”
나는 막시안의 반대쪽 정강이도 쏴버렸다.
세상의 진실 따위는 알고 싶지 않고 그저 이 세상이 현실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애초에 이런 쓰레기랑 같이 손을 잡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리스를 비롯한 수많은 희생자들은 물론이고 유리관에 갇혀서 인간이하의 존재로 전락한 희생자들을 생각하면 절대로 막시안과 같은 길을 걷고 싶지 않다.
막시안에게 어울리는 건 고통스러운 죽음이다.
“너 스마트폰이나 다른 기계들도 스킬로 만든 거 맞지?”
“그래... 으윽! 인터넷은 못해도 다른 건 다 할 수 있어.”
“그러는 넌 원래 한국 출신이고?”
“그래.”
“가면을 쓴 놈들은 네 정체에 대해서 알고 있어?”
“위대한 지도자라는 놈 말고는 몰라. 애초에 그 놈들의 정체도 모르고.”
“그럼 마지막 질문. 폭탄 어디 있어?”
내 질문에 막시안은 불쾌한 미소를 지으면서 기쁜 듯이 대답했다.
“큭큭큭, 방금 전에 작동해서 목적지를 향해서 움직이고 있다. 너희들은 이미 늦었어.”
“어디로 가고 있어? 빨리 말해!”
“내가 왜? 어차피 넌 날 죽일 거잖아?”
“네 수집품처럼 만들어줄 수도 있고 이 자리에서 태어난 걸 후회하게 만들어줄 수도 있어. 그러니까 선택을 잘 하는 게 좋을 거다.”
“어차피 넌 못 막아. 내 목소리가 아니면 절대로 작동을 멈추지 않으니까.”
“우리에겐 엘레나가 있어.”
“그 순진한 NPC는 언제나 내 말을 곧이곧대로 믿더라. 내가 그 년에게 진짜로 통제권을 줄 리가 없잖아! 이럴 줄 알았으면 그 년을 미리 따먹을걸. 크헉!”
나는 오늘들은 말 중에서 가장 좆같은 말을 지껄이는 막시안의 입을 발로 뭉개버리고 대책을 고심했다.
아, 그래 컴퓨터! 나는 막시안을 옆으로 치우고 모니터를 다시 컴퓨터 본체에 연결해서 자율폭탄의 위치를 알아보고자 했다.
다행히 막시안의 치트스킬 덕분인지 몰라도 컴퓨터는 전기코드를 꼽지 않아도 잘만 돌아갔고 자율폭탄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었다.
또한 자율폭탄의 시야도 공유할 수 있어서 그것이 정확히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도 확인이 가능했다.
“여기로 오고 있잖아? 이 개새끼가 사람을 가지고 놀고 있어.”
“내가 가서 막겠다.”
“잠깐만! 크라우젠! 야!”
크라우젠은 내 옆에서 자율폭탄의 위치를 보더니 곧장 방 밖으로 달려 나갔고 나는 그를 막으려고 뒤를 따라갔다.
하지만 마법갑옷 없이는 크라우젠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고 라우라와 이리스가 날 붙잡아서 더 이상 뛸 수도 없었다.
크라우젠은 승강기로 향하는 복도 쪽에서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비행접시 형태의 자율폭탄의 다리를 총으로 쏴서 맞히려고 했지만 워낙에 다리가 빨라서 좀처럼 쏘질 못했다.
그러자 이리스가 마안을 써서 자율폭탄의 다리를 모조리 날려버렸다.
역시 이리스야! 이리스 덕분에 자율폭탄은 움직이는 능력을 잃었고 바닥에서 허우적거리기만 했다.
“저걸 멈춘다고 너희들이 살 것 같아? 저게 터지면 이 방 전체가 날아가고 만약 너희들이 살아남았더라도 악마기생충에 감염될 거다. 총알 한 발만 제대로 맞아도 터진다 이 말이야!”
“그럼 당장 저걸 중지시켜!”
“싫은데? 네 말대로 어차피 좆된 거 그냥 뒈져버리면 그만이야! 하하하하!”
“씨발새끼!”
나는 홧김에 막시안을 마구 때렸지만 이건 아무런 소용도 없는 짓이다.
막시안이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으니 엘레나에게 연결을 해보려고 했지만 먹통이었다.
아무래도 막시안이 스킬을 써서 봉쇄한 게 분명하다.
죽을 작정인 인간은 무슨 수를 써도 설득할 수 없으니 미칠 노릇이다.
“앞으로 10분 남았군. 시간은 충분해.”
“크라우젠,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이걸 들고 밖으로 나가서 최대한 멀리 도망가면 너희들은 안전할 거다.”
“도망치지 마! 넌 엘레나에게 벌을 받아야 한다고!”
“벌은 지옥에서 받겠다. 엘레나님께는 그렇게 전해다오.”
“야! 병신아! 그런다고... 씨발!”
나는 폭탄을 들고 뛰기 시작하는 크라우젠을 말리고 싶었지만 라우라와 이리스, 루시벨은 나와 달리 크라우젠의 각오를 받아들인 상태였다.
내가 크라우젠을 총알받이로 쓴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런 식으로 폭탄처리를 맡길 생각은 없었다.
“여태까지 나한테 복종했던 주제에 갑자기 영웅행세를 하려고 들다니 정말 웃긴 NPC네.”
“닥쳐!”
나는 이빨이 몇 개 빠졌는데도 피를 줄줄 흘리며 비웃음을 흘리는 막시안의 얼굴을 한 번 더 걷어찬 뒤에 모니터와 지도창을 통해서 크라우젠의 움직임을 살펴보았다.
크라우젠의 앞길을 막는 적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부리나케 자리를 비켜주었다.
아마도 놈들은 폭탄이 얼마나 강력하고 위험한지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별장 밖으로 나간 크라우젠은 뒷산으로 전력을 다해 뛰어갔고 그가 들고 뛴 지 거의 10분이 되었을 때, 지도창에서 그의 이름이 사라짐과 동시에 약한 지진이 발생해서 지하가 약간 흔들렸다.
크라우젠은 분명 막시안의 꾐에 넘어가 그의 친위대원으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악행에 동참했지만 적어도 벌을 받을 각오를 하고 있었고 결국 우릴 위해 목숨을 희생한 사람이 되었다.
나는 마냥 그를 부정적으로 또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에게 목숨을 빚진 것은 쉽게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복잡한 기분을 느끼게 만들어준 막시안을 끝장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리스, 항상 복수하고 싶다고 그랬지?”
“네, 레베카님.”
“루시벨 씨도 복수를 원하시죠?”
“그럼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우리 다 함께 막시안을 처벌하는 게 좋겠네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적인 원한으로 복수를 원하는 이리스와 루시벨, 사적인 원한은 없지만 날 위해서 보복을 원하는 라우라를 데리고 막시안에게로 다가갔다.
죽으면 그만이라며 큰 소리를 치던 막시안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잔뜩 겁을 먹은 표정을 지었다.
“복수는 허무할 뿐이라는 말 알지?”
“아주 잘 알고 있어. 그게 개소리라는 것도 알고 있지. 모두 화염탄을 장전해.”
“무,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나는 막시안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놈의 입에다가 고속회복캡슐을 잔뜩 털어 넣고 수혈패치를 목 안에다 우겨넣었다.
그리고 우리는 동시에 화염탄을 막시안에게 쏴서 놈을 불태웠다.
막시안은 불에 타면서도 동시에 몸이 빠르게 회복되어 쉽사리 죽지 못했다.
오히려 상처의 회복이 너무 빨라서 괴상한 형태로 몸이 변형되었다.
마치 놈이 수집품이라고 칭했던 여자들을 뒤덮고 있는 촉수처럼 말이다.
“으아아악! 그냥 죽여! 죽이라고! 끄아아아악! 죽여줘! 제발!”
“죽으면 그만이라며? 원하는 대로 해줬으니까 고마워하라고.”
나는 막시안의 비명소리를 감미로운 음악처럼 감상하다가 금방 질려서 모두와 함께 놈의 곁을 떠났다.
“난 그냥 총으로 쏴서 죽이는 것만 생각했는데 이런 방법도 있었군요.”
“굳이 내 손에 피를 묻히는 방법 보다는 땔감으로 쓰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요.”
“절대로 당신의 적이 되면 안 될 것 같네요. 후후후.”
“그럴 일 없을 테니 안심하세요.”
나는 루시벨과의 짧은 대화를 끝내고 여전히 막시안이 고통스럽게 꿈틀거리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이리스에게로 다가갔다.
이리스는 내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희열로 가득한 살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이리스의 그런 모습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아서 그녀의 얼굴을 잡고 내 쪽으로 돌렸다.
“고마워요, 레베카님. 덕분에 원수를 갚았어요. 이제 엄마의 장례식만 끝내면 미련이 없을 것 같아요.”
“이리스, 이젠 좋은 일만 생각하자. 우리가 아기를 만들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라우라랑 같이 셋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야.”
“레베카님, 평생 당신을 위해서 살아갈게요.”
이리스는 나에게 뜨거운 키스를 해주었다.
막시안이 죽어가면서 내는 비명소리와 함께하는 키스는 전혀 로맨틱하지도, 감미롭지도 않았다.
그저 사태가 마무리되었다는 안도감만 느껴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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