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 6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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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리제르카에 도착했을 때는 프랑카를 떠난 지 9일째 되는 날의 정오가 가까워지는 시간이었다.
예정보다 도착이 늦어진 이유는 갑자기 많은 비가 내리는 바람에 길이 완전히 진창이 되어버려서다.
봄을 알리는 비 자체는 좋지만 그 대가로 마차의 바퀴가 툭하면 진흙구덩이에 푹 빠지고 그걸 꺼내느라 애를 먹는 건 질색이었다.
나는 처음에는 관망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베로니카 언니에게 선물 받은 경량 마법갑옷을 입고 앞으로 나섰다.
마법갑옷은 분명 연식이 오래된 구형이지만 그래도 충분한 성능을 발휘해서 말들과 함께 힘을 합쳐서 무거운 마차를 위기에서 구해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사방에서 칭찬이 쏟아져서 정말 기분 좋고 보람찼었는데 이게 몇 번이고 반복되다보니 나중에는 짜증이 나기도 했다.
마법갑옷 사이에 낀 진흙을 일일이 씻어 내거나 닦아내서 다시 가방에 넣는 게 귀찮아서 그냥 계속 입고 다닌 지가 벌써 사흘째다.
청결이나 위생문제를 마법갑옷이 해결해주지 못했더라면 지금쯤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꼴이었을 거다.
그래도 습격을 받지 않고 무사히 리제르카에 도착하니 마음 놓고 마법갑옷을 벗을 수 있었다.
우리는 그동안 함께 생활하면서 정을 나누었던 일행들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남긴 뒤에 곧장 모험가길드로 향했다.
의뢰를 맡을 생각이 전혀 없으면서도 길드에 먼저 가는 이유는 지도를 보고 지도창에 정보를 업데이트하기 위해서다.
정확한 지도는 언제나 큰 도움이 되고 지금처럼 특수상점을 찾거나 다리우스 용병단과 막시안의 동향을 살펴봐야 한다는 확고한 목표가 있을 때는 특히 유용하다.
리제르카는 엘프족이 많이 사는 곳답게 대로변에는 가로수가 쭉 심어져있고 곳곳에 화단이 조성되어 있으며 도시부지에 공원의 비중이 높은 도시다.
지금은 겨울이라서 가로수는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었고 화단에는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으며 공원 역시 황량해보였다.
하지만 곧 봄이 오면 연둣빛 새싹이 자라나고 화려한 봄꽃이 피어나 도시를 아름답게 물들일 것이다.
그때가 되면 라우라와 이리스를 데리고 리제르카에서 꽃놀이를 즐겨야겠다.
“역시 오랜만에 고향에 오니까 좋네요.”
이리스는 도시 곳곳을 눈에 고이 담으며 미소를 지었다.
나는 고향이라는 말에 라우라의 눈치를 슬쩍 살폈지만 다행히 슬퍼하기보다는 이리스의 말에 관심을 가지며 귀를 기울였다.
“제가 어렸을 때 부모님과 함께 이 거리에서 열리는 축제에서 노점을 열었던 기억이 나요. 아빠는 사냥한 동물의 고기로 만든 소시지나 햄을 팔았고 엄마는 뜨개질로 만든 목도리나 장갑을 팔았었죠.”
“정말 재밌었겠다. 혹시 너도 뭔가를 팔았었니?”
“저는 종이로 만든 꽃을 팔았었는데 아무도 사주질 않았었죠. 그래서 정말 속상했었는데 어떤 여자애가 한 번에 꽃을 다 사줘서 정말 기뻤어요. 얼굴은 전혀 기억이 나질 않지만 파란색 눈동자만큼은 확실하게 기억나요.”
파란 눈의 착한 여자애라고? 흠... 설마 라우라는 아니겠지.
세상에 파란 눈을 가진 사람이 라우라만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래도 만약 그 여자애가 라우라라면 정말 재밌을 것 같다.
내가 라우라를 물끄러미 쳐다보자 그녀는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일뿐이었다.
“누군지 몰라도 참 착한 꼬마네요. 그렇지 않나요, 레베카님?”
“맞아. 심정이 고운 아이였네. 부모님이 교육을 잘 시켰나봐.”
“그러게요. 이리스, 우리 다음에 같이 축제에 가볼래? 난 도시에서 열리는 축제를 제대로 즐겨본 적이 없어서 한 번 경험해보고 싶어.”
라우라는 그녀의 반대쪽에서 내 손을 잡고 길을 걷고 있는 이리스에게 가서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
라우라는 우리에게 부탁할 일이 생기면 지금처럼 팔짱을 끼고 애교를 부리곤 했다.
나한테 애교를 부리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이리스에게도 그럴 줄은 몰랐는데, 그게 또 엄청 귀여워서 좋았다.
“물론이지. 그땐 내가 도시를 안내해줄게. 저택에 일하기 시작한 뒤로는 거의 나올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유명한 관광지나 축제에 데리고 다니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어.”
“헤헤헤, 벌써부터 기대된다. 우리 셋이서 데이트를 하면 진짜 즐거울 거야!”
라우라는 이리스에게 볼을 비비면서 어린 아이처럼 좋아했다.
나는 라우라의 반응을 즐기면서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그녀에게 부족했던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평소와는 다른 데이트를 해볼까한다.
우리가 그렇게 대화를 하는 사이에 리제르카의 모험가길드에 도착했다.
건물의 크기는 프랑카에 있는 것과 비슷하고 내부구조도 거의 똑같지만 한 번 피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프랑카와 달리 모험가들이 많아서 활기가 느껴졌다.
우리는 인파를 헤치고 접수대로 향했는데 줄을 서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제법 오랫동안 기다려야했다.
나는 기다리는 동안 모험가들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대부분은 마력권총만 가지고 있고 마력산탄총을 가진 사람들도 어느 정도 있었지만 마력소총을 보유한 사람은 소수였다.
마력소총은 가격이 비싸고 유지비도 많이 들어가니 등급이 높은 모험가가 아니면 감당하기 힘들어서 그런 것 같다.
우리가 리제르카로 오는 동안 지켜줬던 경호원들도 마력소총을 가진 사람은 별로 없었다.
역시 기사단이나 제국군 정도는 되어야 마력소총을 대량으로 보급할 수 있는 것 같다.
“레베카님, 이제 저희 차례에요.”
“아, 응. 생각보다 차례가 금방 돌아오네.”
나는 라우라 덕분에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바로 접수원과 마주할 수 있었다.
엠마처럼 붙임성 있고 귀여운 여자접수원을 기대했지만 잘생긴 큐버스족 남자, 다시 말해서 인큐버스가 나를 맞이했다.
어쩐지 여자들만 줄을 잔뜩 서있더라.
칼스란 덕에 인큐버스에게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막 성인이 된 인큐버스를 만나니 느낌이 또 달랐다.
내가 큐버스족은 설정을 너무 과하게 잡았나? 얘도 겁나게 잘생겼네.
“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와, 목소리가 진짜 꿀이 떨어지네.
나는 나도 모르게 라우라와 이리스를 내 뒤로 숨겼다.
“다른 건 아니고 지도를 보고 싶어서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접수원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보다 큰 키로 어디론가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금방 지도를 가지고 돌아왔다.
나는 접수원이 지도를 펼쳐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지도창을 업데이트할 수 있었지만 보자마자 가는 건 너무 이상하니 일부러 시간을 들여서 지도를 찾아보는 척을 했다.
“혹시 어떤 곳을 찾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아, 그게 그러니까... 막시안 남작님의 저택이 어디 있나 궁금해서요.”
내가 할 말이 없어서 던진 말에 접수원은 세상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손가락을 들어 자신의 입을 가리며 나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 분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게 좋아요. 어디에 그 분의 눈과 귀가 있을지 모르거든요.”
“가르쳐주셔서 고마워요.”
“길드원끼리는 돕고 살아야지요. 그리고 프랑카의 동지들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우신 분이 위험해지는 것은 원치 않으니까요.”
응? 내가 언제 모험가길드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었지?
아! 갱단 소탕작전에 참가했던 일이 이렇게 와전된 건가보다.
모험가길드를 위해서 싸우지는 않았지만 이런 오해는 받아서 나쁠 것 없으니 그냥 입 다물고 있어야지.
“이제 필요한 정보는 다 얻은 것 같아요. 저 혼자서 너무 오랫동안 시간을 끌면 미안하니 슬슬 가봐야겠어요.
“리제르카에 머무르는 동안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길드로 찾아오세요.”
“네, 감사합니다.”
나는 너무 잘생겨서 숨이 턱 막히는 접수원에게 손을 흔들어주고는 다른 여자들의 날카로운 시선을 받으며 서둘러 도망쳤다.
분명 내가 잘생긴 접수원을 독차지한다고 생각해서 질투하는 거겠지.
정작 라우라와 이리스는 접수원에게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눈치였다.
나만 바라봐주는 연인들의 시선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뜬금없지만 라우라와 이리스에게 순서대로 키스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보든지 말든지 열정적으로 키스에 임하면서 주변의 부러움을 샀다.
“그럼 이제 그곳으로 가자.”
“네, 레베카님.”
나는 거의 동시에 대답하는 라우라와 이리스의 손을 잡고서 번화가 골목길에 위치한 특수상점으로 향했다.
리제르카의 특수상점은 프랑카의 것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완전히 똑같았고 특수상점끼리는 서로 투자레벨을 공유해서 따로 돈을 더 들일 필요가 없었다.
나는 상품에는 관심이 없어서 얼른 가게 뒤쪽으로 들어가서 워프기능을 어디서 쓸 수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리고 창고로 생각했던 곳의 바닥에 마법진처럼 보이는 기하학적이고 복잡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분석스킬을 사용해보니 그것이 마법전송진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고 이 방이 일명 전송실이라고 불리는 것도 알았다.
한 번에 전송할 수 있는 사람은 최대 5명, 물건은 한 번에 최대 1톤까지 전송할 수 있다.
하지만 하루에 사람 2번, 물건은 1번만 전송할 수 있고 매일 아침 7시에 횟수가 초기화되기 때문에 사용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인간을 제외한 다른 살아있는 생물은 전송할 수 없지만 죽은 생물은 물건으로 취급되어서 전송이 가능하다.
‘물건은 어차피 가방에 무한정으로 들어가니까 신경 쓸 필요가 없겠네. 그런데 왜 살아있는 건 사람만 가능한 거야? 도무지 이해가 안 돼.’
내가 억지스러운 제한에 불만을 품으며 마법전송진에 발을 디디자 그것에 밝은 빛이 들어오면서 활성화되었고 워프가 가능한 지역을 확인할 수 있는 전송창이 나타났다.
전송창은 이미 특수상점을 방문했었던 프랑카를 제외하고는 온통 물음표로 가득했다.
분명 특수상점은 대도시에만 존재한다고 했으니 앞으로 특수상점의 유무로 대도시의 기준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얘들아, 이리와 볼래?”
나는 라우라와 이리스를 곁으로 불렀고 바로 전송실로 들어온 두 사람은 마법전송진을 발견하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뭔가요?”
“내가 저번에 말했던 기능을 쓸 수 있는 마법전송진이야. 이걸 쓰면 바로 프랑카로 돌아갈 수 있어.”
“그럼 얼른 해봐요!”
라우라는 기대에 찬 눈으로 망설임 없이 마법전송진 안으로 들어왔고 이리스는 약간의 불안감을 느끼지는 했지만 내가 그녀에게 손을 뻗자 용기를 냈다.
그리고 나는 전송창에서 프랑카를 눌러서 마법전송진을 작동시켰다.
갑자기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밝은 빛이 마법전송진 전체에서 기세 좋게 뿜어졌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거... 작동하기는 한 건가? 허무할 정도로 아무런 느낌도 안 드네.”
나는 의아함을 느끼며 전송실에서 나와 창밖을 살펴보았다.
익숙한 어두운 골목과 그 너머에 보이는 밝고 활기찬 분위기가 가득한 거리 그리고 낯익은 문장이 새겨진 마법갑옷을 입고 있는 기사단 병사.
분명 제2의 고향처럼 여겨지는 프랑카의 모습이었다.
“얘들아, 아무래도 우리가 무사히 프랑카에 도착한 것 같아.”
나는 아직도 쉽게 믿기지를 않아서 아예 가게 밖으로 나가서 주변을 살펴보기까지 했다.
지도창을 열어보면 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 일인데도 말이다.
“정말요?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 같은데 신기하네요.”
“그보다 무섭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라우라는 실망감이 가득한 목소리로, 이리스는 안도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라우라와 비슷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지만 이리스가 무서워할 일이 없어서 좋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법무기점에 잠깐 들렀다가 바로 리제르카로 돌아가자. 우리가 워프기능을 쓸 수 있는 걸 적이나 정보원들에게 알려서 좋을 게 없으니 얼굴과 몸을 가려야할 것 같아.”
나는 가방에서 로브와 두건을 꺼내서 라우라와 이리스에게 나눠주었다.
일주일이 넘는 거리에 떨어져있는 리제르카로 떠난 지 아직 열흘도 되지 않은 사람들이 프랑카를 활보하고 다니면 괜한 의심을 사게 될 것이 분명하다.
라우라는 귀를 누른 뒤에 그 위에 머리띠를 씌워서 쫑긋하게 올라오지 못하게 만들었고 꼬리는 안쪽으로 말아 넣어서 자신이 수인족이라는 사실 자체를 숨겼다.
반면에 이리스는 뿔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서 라우라처럼 종족 자체를 속이는 게 불가능했다.
그래도 큐버스족의 뿔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다 똑같이 생겼으니 뿔 때문에 신원이 특정될 일은 없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나는... 평범한 휴먼족이라서 거슬리거나 조심해야할 특수한 신체부위가 하나도 없어서 편하게 몸을 가렸다.
“레베카님, 칼스란 씨는 지금 시점에서 만나도 괜찮은 건가요?”
“그 사람은 입이 무겁고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사람이라서 믿어도 돼.”
나는 걱정하는 라우라의 볼을 쓰다듬으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내가 칼스란을 신뢰하는 이유는 그가 지금까지 우리에게 보여준 자세 때문이다.
특히 도로테아와 관련된 사건과 겪은 뒤로 베로니카 언니와 마찬가지로 믿어도 되는 사람으로 확신하게 되었다.
“나도 레베카님이랑 같은 생각이야. 칼스란 씨와 미나테린 씨는 좋은 사람들이니까.”
“알았어. 레베카님과 네가 그렇게 말하는데 당연히 믿어줘야지.”
라우라는 우리에게 무한한 신뢰를 내비치면서 미소를 지었다.
나는 항상 의문을 제기해도 결국엔 우리를 믿어주는 라우라가 참 좋다.
우리는 준비를 끝낸 뒤에 바로 특수상점에서 나와서 최단거리로 마법무기점으로 향했다.
다행히도 길거리를 지나치는 사람들 중에서 우리를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추워서 온 몸을 똘똘 감고 다니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는 겨울이라서 그런 것 같다.
만약 지금이 여름이었다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의심을 하고 기사단에게 불심검문을 당해도 할 말이 없었을 거다.
최대한 빨리 마법무기점 앞에 도착한 우리는 잠시 가게 안에 다른 사람이 있는지 확인한 뒤에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안에는 언제나처럼 칼스란이 계산대에 서서 마법도구를 조작하고 있었고 대장간에는 미나테린이 열심히 담금질을 하고 있었다.
도로테아가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낸 뒤로 잠시 방황하기는 했지만 이제는 제대로 기운을 차리고 생업에 전념하는 모습이 다행스럽다.
“어서 오세요. 아, 레베카 씨였군요. 얼굴을 가리셔서 누군가 했어요.”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거든요. 저번에 의뢰한 물건은 완성되었나요?”
“물론입니다. 갑자기 호텔에서 나갔다는 말을 듣고 걱정이 많았는데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칼스란은 진심으로 우리를 걱정해주었다.
단순한 고객이나 지인을 넘어서 은인이고 친구가 되어서 그런지 이젠 칼스란 부부와 옛날부터 알고 지내는 가까운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게... 약간 골치 아픈 일에 휘말렸거든요. 그래도 최대한 빨리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너무 걱정은 마세요.”
“창조신께 항상 여러분의 안전을 기도 올려드려야겠군요. 그럼 부탁하신 물건을 가져다드릴 테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칼스란은 2층으로 후다닥 올라가더니 자기 몸보다 커다란 상자를 하나 들고 낑낑거리면서 내려왔는데 제법 위태로워보였다.
결국 남편이 힘들어하는 소리를 들은 미나테린은 하던 일을 멈추고 곧장 칼스란에게 다가와 한손으로 상자를 번쩍 들어주었다.
여러 의미에서 아주 잘 어울리는 한 쌍인 것 같다.
“이거 참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드렸군요. 하하하. 의뢰하셨던 대로 기사단 병사들에게 납품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품질로 완성시켰습니다.”
잠깐 힘을 썼을 뿐인데 땀을 뻘뻘 흘리는 칼스란은 상자를 열어서 내용물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내가 주문했던 대로 마력권총과 마력산탄총 그리고 마력저격소총이 눈에 들어왔다.
총기세트에 분석스킬을 사용하니 저번에 라우라가 베로니카 언니에게 받았던 총기세트와 같은 수준의 완성도를 가져서 B등급의 품질을 가졌다.
모두 화력 25%증가, 반동 25%감소, 내구력 강화기능을 가지고 있고 마력권총은 전조등, 마력산탄총은 사거리 25%증가, 마력저격소총은 관통력 25%증가 기능이 추가되었다.
품질과 기능 모두 라우라가 받았던 총기세트와 같은 것을 보면 진짜 말 그대로 군용총기와 완벽하게 같은 수준이었다.
기사단이 칼스란 부부에게 각종 정비와 수리를 맡기는 이유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정말 훌륭하네요! 고생 많으셨겠어요. 다음에도 또 주문제작을 할 일이 있으면 잘 부탁드릴게요. 이리스, 와서 이것 좀 봐줄래?”
나는 칼스란에게 감사를 표한 다음에 잘 만들어진 총기 중에서 마력저격소총을 들어서 이리스에게 보여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기분이 좋은 편이었던 이리스는 분위기를 파악하고는 표정이 확 밝아졌다.
“이리스, 이것들은 모두 그동안 고생을 많이 했던 너를 위해서 주문제작한 거야. 부디 기쁘게 받아주었으면 해.”
“전부 저를 위해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리스는 얼마나 기뻤는지 눈물까지 흘리며 날 와락 껴안더니 몇 번이고 내 얼굴에 뽀뽀를 하다가 입술에 키스까지 해주었다.
그리고는 라우라와 서로 손을 맞잡고 폴짝폴짝 뛰면서 그녀와 기쁨을 공유했다.
라우라는 부러울 법도 할 텐데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좋아해주었다.
조만간에 라우라에게도 선물을 하나 해주어야할 것 같다.
“라우라와 이리스가 우애가 좋으니 참 보기 좋군요. 레베카 씨가 둘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서 지탱을 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가요? 제가 최대한 공평하게 사랑을 주려고 노력하지만 사실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았는데 칼스란 씨가 그렇게 말해주시니 마음이 놓이네요.”
나는 칼스란이 해주는 말에 안도감을 느끼면서 내 사랑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감상했다.
부디 평생토록 우리가 행복하게 지낼 수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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